수석 미용사만 찾던 내가 신입에 정착하게 된 이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나는 알게 되었다. 머리 실력은 연차나 유명세에 비례하지 않는다. 큰맘 먹고 비싼 돈 들여 유명 디자이너에게 머리를 맡겼을 때는 그 대신 인턴이 내 머리를 해줬으며, 디자이너는 가끔 와서 간식을 주고 불편한 점 없냐고 물을 뿐이었다. 그럼 나는 찹쌀선과를 입에 넣으며 괜찮다고 답했다. 규모 큰 프랜차이즈 미용실은 손님도 그만큼 많아 제대로 신경 써주지 않는다. 염색약은 고루 발리지 않아 얼룩덜룩, 매직기를 꼼꼼히 안 써서 결국 부분적으로 곱슬곱슬. 에센스와 드라이, 그리고 영문 모르겠는 칭찬 폭격으로 일시적으로 예뻐 보일 뿐, 다음 날부터는 그냥 머리를 묶고 다니기 일쑤였다. 이럴 바에는 그냥 ‘소규모 동네 미용실의 성격 꼼꼼한 선생님이 짱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오늘의 주인공 H는 그렇게 찾은 선생님이다. 동네에서 가장 저렴한 미용실의, 가장 연차가 낮아 보이는 사람. 미용 학원을 갓 나와 열정과 성실성이 최고조에 달해 있을 것 같은 사람. 단 한 가닥의 머리카락도 포기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 네이버에서 프로필 사진을 보고 가장 어려 보이는 선생님을 선택했다. 아주 편견 그득한 선택이었다. 그래도 이런 편견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찰랑찰랑 세팅된 머리(나의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연차가 쌓인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머리를 신경 쓰지 않는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옷(나의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2, 연차가 쌓인 사람들의 출근룩은 대개 츄리닝이다), 그리고 나보다 어려 보이는 앳된 얼굴. H는 한눈에 봐도 신입 막내 미용사였다. 나는 H와 커트 상담만 5분 넘게 했다. 미용실에 가본 사람이라면 상담 5분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알 것이다. H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내 얼굴형과 머리 상태를 면밀히 보더니 가장 어울릴 만한 스타일을 추천해 줬고, 그의 책임감을 엿본 나는 머리를 온전히 그에게 맡겼다.
그때부터 H의 묘기가 시작됐다. H는 내 머리를 한 움큼 잡더니 별안간 자신의 머리에 꽂혀 있던 보라색 왕집게를 내 머리에 꽂았다. 또 한 움큼을 잡더니, 또 다른 보라색 왕집게를 그의 머리에서 뽑아 내 머리에 꽂았다. 보라색 집게는 그의 머리카락에서 내 머리카락으로, 내 머리카락에서 다시 그의 머리카락으로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집게를 앞치마나 카트가 아닌 자기 머리에 우수수 꽂아두는 사람은 난생 처음 봤다. 뒤통수에서 왕집게를 뽑아 마구 내 머리에 찝는 H의 모습이 마치 사극에서 검객이 등에서 칼을 멋지게 뽑아 휘두르는 것 같아 처음에는 신기했고, 이후에는 웃겼고, 종국에는 사랑스러웠다. H와 나는 비듬을 공유한 사이가 된 것이다.
가슴까지 오던 머리가 턱선까지 잘려 나갔다. 나는 거울을 통해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머리를 자르고 있는 H의 얼굴을 관찰했다. 미간이 찌푸려져 있고, 입술은 안으로 오므라들어 있었다. 이건 누군가가 초집중했을 때 나오는 표정이다. 그러다가 별안간 의자를 가지고 와 내 뒤에 자리를 잡고 앉더니 다리를 쩍 벌려 자세를 더욱 낮췄다. 단 한 가닥의 머리카락도 삐져나오지 못하게 하겠다는 H의 의지가 보였다. 단지 머리를 잘랐을 뿐인데 20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마침내 일어나는 H를 보고 드디어 끝났나 했는데, 그는 가위를 내려놓고 바리깡을 집어 들었다. 도구까지 바꿔가는 그는 정말이지 열정이 넘쳐도 한가득 넘치는 사람이었다. 칼단발은 그동안 여러 번 해봤어도 바리깡을 들이미는 사람은 H가 처음이었다.
끝났다고, 맘에 드냐고 수줍게 물어보는 H는 조금 전 눈을 번뜩이며 머리를 한 가닥 한 가닥 자르던 사람과 다른 사람 같았다. 그제서야 나는 H의 나이와 연차를 체감한다. H는 내게 미용사로서 최선을 다해줬으니, H에게 할 수 있는 손님으로서의 최선은 무엇일지 생각해 봤다. 정성스러운 리뷰 남기기, 또 정기적으로 방문해서 당신을 믿고 있다는 암묵적인 신호 주기. 나는 이제 한 달에 한 번씩 그를 찾아가 머리를 다듬는다. 세 달에 한 번은 뿌리염색을 한다. 여섯 달에 한 번은 볼륨매직도 한다. H는 지금도 처음 만났을 때와 똑같다. 똑같이 보라색 집게를 뒤통수에 잔뜩 꽂아둔 채 일하고, 똑같이 머리 한 가닥도 허투루 다루지 않는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 그는 조금씩 입을 열고 내게 사적인 이야기도 한다. 이를테면 동네 맛집이라든지, 휴가 계획이라든지. 이 실력 있고 열정적인 미용사가 그에 맞는 대우를 받았으면 좋겠다. 내겐 H가 실장이고 수석이고 원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