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 현장을 팝니다

by 사야

인류학자 라미아 카림 Lamia Karim은『가난을 팝니다』라는 실험적 기록에서 방글라데시 소액대출 시장의 허상과 거대 비정부기구 운영의 민낯을 조명했다.

저자의 시각을 빌려 전문적으로 ‘가난을 파는 사람들’이 있다고 가정해 본다면 어떨까. 그 시장에는 가난의 현장을 사고 싶어 하는 ‘구매자(일명 후원자 또는 기부자)’가 있으며, 그들 사이를 조정하는 ‘중개자’ 또한 있으리라 짐작해 볼 수 있다. 시장 언어로 비유했지만 단순히 경제적 거래만이 아닌, 양측 사이 불균형한 모든 자원의 교류를 대입해 볼 수 있다.

10년 중 매년 두 달 정도는 출장으로,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히기 직전 1년은 파견으로, 현장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 글들은 국제개발사업 코디네이터이자 국내 NGO 실무자로 여러 사안의 모순성과 다면성 안에서 나름의 균형을 찾으려 씨름했던 날들의 기록이다. 기억이 묵혀진 또 다른 몇 해 동안 나의 입장은 마치 나이 먹듯 무르익거나 계절이 바뀌듯 빛깔을 달리하게 되기도 했다. 일하며 떠오른 단상들을 글감으로 정리하기 시작한 건 2017년 무렵이었는데, 겹겹이 쌓인 문장들을 하나의 생각으로 꿰어 책의 형태로 만든 건 2021년이었다. 그리고 국제개발 현장을 떠나 거듭 회고하고 다듬어진 여정기는 2025년 말에야 비로소 막을 내릴 수 있었다.

‘모든 진실에는 흑백이 없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무언가를 지나치게 확신하는 자는 본질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거나 자신을 속이는 것뿐이라 믿었다. 두 가지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요소가 있을 때 어느 것이 정답이 되리라 선뜻 결론 내기란 어렵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대한 관점이 형성되는 20대 초반 접했던 인문학이 삶의 불확실성과 다의성을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어쩌면 수직적 정의와 수평적 사랑을 동시에 실현한다는 불가능해 보이는 모순을 오랫동안 품은 결과일지도 모른다. 어느 한쪽으로 완전히 기우는 때가 오면 나는 그제야 멋없는 기성세대가 되는 거라 생각했다. 그게 두려워 아직도 적당한 의심 속에서 더 그럴듯한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무거운 물음표를 품었던 순간들이 어쩌면 가벼운 기억력만큼만 생명을 다해버리고 말아서. 또는 느낌표가 되어있는 지금의 자리가 과연 누군가에게 이해받을 수 있을지 기대하는 마음에서. 더 바라기는 비슷한 여정을 보낸 이들에게 당신만 감히 풀지 못할 매듭을 만지작거린 게 아니었다고 공명할 수 있는 신호를 보내고자. 이미 닳아진 생각을 조심히 활자에 눌러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