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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야 Oct 30. 2023

#1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첫 출장이 던지는 질문들


르완다 키갈리와 베트남 하노이


사업 제안서를 한 뭉텅이 뽑아 인천공항 게이트 앞에 앉았다. 책상 앞에서 글로만 현장을 배운 지 5개월이 지나고, 1주일 만에 부랴부랴 준비된 출장이었다. 나이로비 공항에서 커피를 시켜놓고 기다릴 때도 낯선 공기를 탐지하느라 긴장을 내려놓지 못했었다. 그리고 마침내 다다른 5월의 키갈리는 아담하게 정돈된 푸르름이었다. 베트남 하노이로 가는 길은 거리도 마음도 부담이 덜 했다. 서로 기대어 있는 유럽식 건물과 폭격에서 살아남은 반얀나무들이 멋스럽다고 생각했다. 사람 수보다 많아 보이는 오토바이는 하노이의 열기를 지탱하는 동력 같았다.     

키갈리와 하노이에서 밀려온 첫 감정이 비슷했다면 과장일까. 지극히 단순하게 말하면 ‘와, 생각보다 좋다’였을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 활기를 더하는 곳이라면 비관과 동정의 눈으로만 바라보지 않아도 되겠다는 일말의 안도감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행과 삶이 다르듯이, 시간을 견디며 애써 들여다보지 않으면 반쪽 진실에 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물질적 빈곤과 비물질적 풍요


처음 이 분야에서 일해보겠다 마음먹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저개발국이라 불리는 곳에 ‘마땅히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없는 것들’이 명백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만이 전부이고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고 싶은 영웅심 충만한 젊은이에게 딱 맞는 분야였는지도 모른다. 수도 한가운데 위치한 호텔에서 짐을 다 풀지 못하고 이튿날 지방으로 이동하면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포장도로나 번듯한 건물이 부족하다는 건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양적인 지표로 빈곤을 규정해 버리면 시골의 개발 현장에는 부족한 것만 한없이 많았다.      

그런데 소탈한 옷차림과 필요한 만큼의 양식, 그리고 쉬이 터지는 웃음을 마주하고 나서 나는 외국인 관광객 모드에서 오지 희망동화 시청자 모드로 곧 바뀌었다.

    

‘내가 이곳에서 눈에 보길 원하는 것을 이곳에 사는 사람들도 보길 원하는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오히려 현지 사람들이 더 풍요롭게 누리고 있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이들은 정말 가난한가?’      


사실 현장을 누비지 않아도 원주민을 순수의 결정체로 그려내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 아니면 삶 이면에 놓인 구조를 보기 어려운 단기 봉사활동의 단상과 다르지 않았다. ‘소유가 없는 곳에는 부정이 있을 수 없다’는 듯 무위를 찬양하거나, ‘오래된 미래’만 여전히 유효하다는 듯 눈에 보이는 게 부족해도 행복할 수 있지 않겠냐고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알게 된 그도 이전의 나와 비슷한 질문을 만난 것 같았다. 처음 저개발국 현장에 방문한 그는 시골로 들어가는 굽이진 도로에서 멀미를 피하지 못하고 창밖 풍경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도로 옆 초가집 마당에 발가벗고 앉아 흙과 하나 되어 노는 아이들을 여럿 지나쳤다. 그는 ‘저 아이들이 우리나라 아이들보다 더 자유롭고 행복해 보이는데 왜 어릴 때부터 굳이 유치원이라는 공간에 밀어 넣고 교육을 해야 하냐’고 물었다. 나는 ‘그러게요, 우리는 정말 자유를 주고 있는 걸까요’하는 기나긴 토론이 될만한 되물음은 삼켰다. 대신 직업인으로 일에 필요한 정보만 드렸다. 첫 출장에서 정답을 내리기보다 그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보이는 것’을 만들어 내는 ‘보이지 않는 것’


우리의 의심처럼 개발이 되지 않은 현장에는 눈에 보이는 게 없는 대신 보이지 않는 건 충분히 있었을까. 2016년 스리랑카 전역에 홍수가 났을 때 순식간에 사랑하는 사람과 재산, 모든 걸 잃은 가정들을 만났다.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은 미약한 존재라는 감상은 사치였다. 오늘의 목숨을 부지해 줄 생필품은 뒤로한 채, 집 벽에 남은 물자욱을 텅 빈 눈으로 응시하는 세 아이의 어머니가 있었다. 그 앞에 나는 멀끔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그녀의 표정이 걸렸다. 나의 존재 자체가 송구스러웠다.

    

목숨 붙은 가슴 한가운데 뻥 뚫린 그 공허함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짧은 순간이었지만 길이 남을 고민을 했다. 많은 말 대신 무거운 마음을 남겨두고 왔다. 진정한 회복은 결국 잘 갖추어진 재난 대응 시스템이든 건강한 마음이든 보이지 않는 것에서 다시 시작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했다. 그리고 지역 주민에게 내재된 발전 가능성과 자발적인 행동, 정부와 의무이행자의 제도 변화와 같이 무형적인 것들이야말로 세상이 정의하는 부(富)와 관련된 유형적인 것을 만들어 내는 것과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객관적 복지와 주관적 행복의 수준


사무실에 돌아와 무거운 짐을 지고 산을 오르는 티베트인 사진을 바라보다 다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행복의 수준이 1인 사람에게 갑자기 10만큼의 행복이 주어지면 마냥 좋기만 할까? 객관적 행복이 주관적 행복을 능가할 수 있을까? 10 만큼이 좋다는 기준은 누가 정한 걸까? 그것은 1이 결코 괜찮지 않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밖에 되지 않을까? 가닿을 수 없는 10보다 현재와 맞닿아 있는 삶 속에서 2, 3, 4…. 차곡차곡 경험해 가는 행복이 더 크지는 않을까? 이렇게 개발은 슈퍼히어로가 기적처럼 1을 10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2와 3과 4의 상태로 같이 발전을 경험해 가는 것 아닐까 하는.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떠나기 전 품었던 호기심에 상응하는 실마리를 얻기도 하고, 되려 더 큰 질문을 얹어 오게 되기도 한다. 현지 사람들의 필요를 확인하면 할수록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고 있는 건 오히려 나 같다는 혼란을 경험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은 나의 세계관이 확장되는 배움의 여지를 준다. 나에게 첫 출장은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지 말자는, 빈곤을 저 멀리 두고 퇴치해야 할 대상으로 보기보다 지금 내 옆에 품고 같이 짐을 견디어가는 동료로 바라보자는, 어렴풋한 다짐을 스스로 던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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