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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껌정호랭이 Black Tiger Jul 08. 2023

4. 사업은~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서울에 있는 모 대학교 합격자 명단이 학교 정문 앞에 붙은 날, 시골에서 전날 올라와 사촌형이 다니는 회사 기숙사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발표시간 보다 이른 시간에 대학교에 도착해 명단이 붙기만을 기다렸다. 시간이 다가 오자 진실 씨 심장은 두근두근 쿵쾅 거리기 시작했다. 벽보판 앞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모여들기 시작했다. 키가 크지 않은 진실 씨도 맨 앞으로 뚫고 들어가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되어 부착된 1 지망 합격자에는 진실 씨 이름이 없었다,

"어!!! 합격했을 텐데!!!"

혼자 중얼 대면서 다시 한번 찾아보지만 진실 씨 이름은 끝내 찾지 못했다. 여기저기서 환호 소리와 한숨 소리가 뒤섞여 들렸다. 진실 씨도 한숨을 쉬면서 2 지망 명단이 붙어 있는 옆칸으로 이동해서 차근차근 이름을 확인하는데 강 씨, 구 씨, 다음 김 씨 줄 두 번째에 "김진실" 이름이 대문짝 만하게 크게 진실 씨 눈 속으로 파고들었다. 


곧바로 공중전화로 달려가 시골집에 합격 소식을 전했다. 아버님께서 너무 좋아하시는 느낌이 수화기를 타고 느껴질 정도였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당시 입시제도는 1 지망, 2 지망, 3 지망까지 순차적으로 지원이 가능했었다.


진실 씨는 고등학교 생활은 나름 열심히 성실하게 잘했었다. 비록 SKY 대학은 아니었지만 진실씨네 시골 고등학교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혼자만이 서울에서도 순위 안에 들어가는 학교에 합격해서 축하도 많이 받았다.


시골 고등학교 출신인지라 매년 3월이 되면 각 대학마다 대자보 판에 붙는 "땡땡고등학교 동문회 모임"이라는 문구가 쓰인 벽보가 그렇게 부러웠었다.


그러나 진실 씨는 단 한 번도 이런 벽보를 보고 동문회에 참석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진실 씨 이후로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 진실 씨가 다니는 대학교에 단 한 명도 입학을 하질 안아서 그 고등학교 출신은 오로지 진실 씨뿐이었다. 그래서 3월에 학교 대자보 판에 붙는 "땡땡고등학교 동문회 모임"이 한 번만이라도 붙어 있기만을 기대했으나, 졸업할 때까지 끝내 붙지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자기 자신을 남들한테 알려야 고 스스로 무엇이든 찾아서 해결하려고 만 했다.


진실 씨는 대학생활도 누구보다 알차게 했다. 아무것도 몰라서 납부한 1학년 입학금 이후로 4년 동안 단 한 번도 수업료 때문에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고 학생회 활동으로 면제나 장학금을 받아 해결했다.


혼자라는 두려움에 자기 자신이 스스로 모든 걸 해결해야 만 해서, 학교나 학생회에서 주관하는 행사나 단체활동에는 모두 어떻게 든 반드시 참여해서 학비를 면제받았다.


과 학생회 간부, 과 학술지 편집부장, 과 학회장, 학교 전체 졸업 연도 졸업준비위원 활동 등등...


당시 시골에서 떠도는 말로는 "서울에 대학교 한 명 보내려면 최소한 일 년에 황소 2마리씩은 팔아야 보낸다"라는 말이 회자되곤 했는데, 진실 씨는 학비 때문에 부모님께 부담을 드리지 않고 무사히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진실 씨가 대학에서 4년 동안 수많은 스펙을 쌓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한 덕에, 무사히 졸업 논문까지 잘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치열한 전쟁터 취업전선이 진실 씨 앞을 떡하니 가로막으며 버티고 서 있었다.  국내에 있는 모든 그룹 공채는 물론 공무원 시험, 중견기업에서 중소기업까지 가리지 않고 총 망라해서 모집공고 만 나왔다 하면 물 불 가리지 않고 모두 입사원서를 정성 들여 작성해서 혹시나 분실될까? 하는 불안함과 간절한 맘에 직접 가져가서 접수했었건 만 서류전형 통과마저도 쉽지 않았다.


이렇게 될까 봐 두려운 맘에 대학 3학년이 되면서부터, 정보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찾아가서 보고 알아보고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을 했고 많은 입사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현실에서는 보이지 않는 정치적인 편 가르기식 밀실정치로 인해 실력과 상관없이 기회마저 공정하게 주어지지 않았다.


당시는 공식적은  아니었지만 사회통념적으로 출신지역이나 어느 특정학교 혈연 지연 등등 어느 쪽이든 연결 고리가 있어야 만 이끌어 주고 보살펴 주고 모든 일들이 수월하게 잘 풀리던 시절이었다.


기업에 입사를 하려면 일차적으로 서류 전형이 통과되어야 나머지 부족한 부분은 평가시험과 면접에서 경쟁자들과 당당하게 대결을 해 볼 수 있었는데, 첫 관문인 서류에서 통과가 안 되고 떨어지다 보니, 경쟁대상이 되어 보지도 못하고 시들어 가고 있는 처지였다. 이런 환경이 한탄스럽고 처절했다.


진실 씨는 많이 괴로워했다. 그리고 슬퍼했다.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께는 너무나 죄송했다. 그렇다고 부모님을 원망하진 않았다. 그분들도 그런 사회 환경 속에서 누구한테도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 어렵게 현실을 살고 계시고, 오로지 스스로 현재상태까지 일구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진실 씨는 잘 알고 있고, 부모님도 진실 씨한테  어떠한 물리적 도움도 줄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하는 기업에는 입사가 힘들어 신생업체인 ㅇㅈ출판이라는 곳에 잠시 몸을 담고 있으면서 여기저기 기회를 보면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조금은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사촌동생 영섭이로부터 솔깃한 제안이 들어왔다.


"형 나하고 사업 한번 해보지 않을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내가 돈이 어디 있냐?"

"뭐 사업을 내 돈 가지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거의 대부분의 사장들이 은행이나 남의 돈으로 사업하지!!!"


세상 물정을 모르던 진실 씨를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출생신고 마저 되어 있지 않아 진실 씨 이름을 도용해서 20년 가까이 여기저기 가내수공업 봉제공장들을 전전하며 잔뼈가 굵은 사촌동생 영섭이가, 대학까지 졸업한 사촌형을 상대로 뭔가 일을 꾸미고 싶어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진실 씨는 오로지 취직 말고는 다른 어떠한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사촌동생 영섭이가 믿음은 가지 않지만 제안하는 사업 내용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기술은 사촌동생이 충분히 가지고 있을 것 같고, "

"운영은 나름 대학까지 나온 내가 챙기고, "

"봉제공장 생산 일은 비록 숙여복이지만 여동생도 봉제 관련 업종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같이 하면 도움이 될 것이고... 등등"


어딘가 돈만 마련된다면 사업을 해도 괜찮을 것 같은 방향으로 조금씩 생각이 바뀌어 가고 있었다.


"사업, 그래 이것이 답일 수도 있겠다."


백은 물론이거니와 이끌어 줄 줄하나 없는 진실 씨 입장에서는 차라리 취업한다 하더라도 어떤 줄이든 잡아서 승승장구하지 못할 바에는 빠른 시간에 사업에 성공해서 돈으로 부모님께 보답하고 줄줄이 매달려 있는 5남매 형제들이 성장하는데 돈으로 도움이 되어 준다면, 이는 효도와 성공을 동시에 획득하고, 말 많은 시골, 자존심 강한 아버님 어깨도 세워 드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진실 씨는 취업보다는 첫 사업을 시작하기로 마음의 결정을 했다.


이미 결정을 했으므로 이왕이면 빨리 서둘러서 시작하고 자, 진실 씨는 봉사단체에서 사업하는 사장 회장님들만 상대하는 사랑 씨가 여러 가지로 들은 이야기도 있을 것이고 경험도 많을 것 같아, 사랑 씨한테 사업을 하면 어떻겠냐고? 운을 보았으나, 사랑 씨는 사업이라는 말도 꺼내지 못하게 반대했다.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란다.


어려운 세상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사회경험도 어느 정도는 쌓여야 하, 자금도 최대한으로 자기 자금으로 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 갖추어진 후에 자기 사업을 시작한다 해도 성공 확률이 지극히 낮다는 것이었다.


사랑 씨가 하는 말들은 모두가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진실 씨 성격 상 한번 마음을 정하면 반듯이 그 일을 해야만 하는, 부리지 말아야 할 고집을 버리지 못하고 굳건히 간직하고 있었다.


사랑 씨와 처음으로 이번 일로 인해 다툼도 잦아졌고, 두 사람 사이에  일로 금이 갈까 두렵기도 했다.


그렇지만 진실 씨는 밀어붙였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소굴로 들어가라" 했던가. 배낭공장을 하려면 배낭공장과 가방공장이 많은 장안동 근거리에서 하기로 장소를 정하고 자금 마련을 위해 이 은행 저 은행을 다니면서 받을 수 있는 대출은 다 끌어 모아 보았으나, 진실 씨 명으로는 십원 한 장 대출을 해 주겠다는 곳은 없었다.


첫 관문부터 한계에 봉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직장 경험도 짧고, 담보도 없고, 예금 한 푼 적립되어 있지 않은 빈털터리의 젊은 청년에게... 은행 입장에서는 대출을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 있는, 맞는 조건이 아무것도 없으니 못해 줄 수밖에...


사업자금이라고 겨우 마련한 돈은 여동생 직장인 대출 조금과 사랑 씨가 여유 돈에서 빌려 준 돈을 합해 고작 300만 원이 전부였다.


"그래 시작은 부족하지만 작고 알차게 아끼면서 시작하자!!! 그러나 그 끝은 반듯이 영롱하고 창대하게 하리라."


 누구나 처음에는 이렇게 다짐하면서 일을 벌리 듯이 진실 씨도 이처럼 굳은 결심을 하면서 취업이 아닌 사업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상호는 "황성물산" "황금색 별" 삼성그룹만큼 반듯이 성장시키리라는 모티브로 생각했다.


손수 이름도 짓고 간판도 약간 타원형의 송판을 구해다 진실 씨가 직접 붓글씨로 멋들어지게 써서 공장 입구에 잘 보이는 장소를 골라 걸었다. 간판을 걸고 보니 비록 볼품없는 허름한 지하실 입구지만,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였을 것이다.


 "黃星物産"  실 씨는 공장입구에 걸려 있는 간판을 보고 또 보면서 마음 깊이 꼭 성공하리라 다짐을 했다.


말로는 거창한  회사라지만 장안동 어느 한적하고 인적도 드문 뒷골목 모퉁이에 위치한 2층 건물 지하 1층 30평에 보증금 50만 원에 월세 30만 원, 중고 미싱기계 5대, 원단 재단대 3m가 전부인 전 재산이라고 해봐야 대출과 차용금으로 만든 300만 원이 전부인 공장이다.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처음에는 영섭이가 그래도 이 계통에서 잔뼈가 굵도록 경험을 많이 쌓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여기저기서 일을 해 달라며 일 거리를 가져다주었다. 진실 씨는 단가가 맞는지 안 맞는 지도 전혀 모른 체, 시간이 지나다 보면 알아 지겠지?라는 생각으로 영섭이가 하자는 대로 끌려 다녔다.


한 달 두 달이 지나면서 점점 일도 늘어나고, 여기저기 오퍼상에서 연락도 오기 시작했다. 그 사이 직원들도 여러 명을 충원을 해서 10여 명으로 늘게 되었다.  


사랑 씨도 퇴근 하는 길에 가는 길이기도 했지만, 황성물산이 궁금한 건? 진실 씨가 궁금 한 건? 모르지만 매일매일 오다시피 와서 잡일도 도와주고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진실 씨와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즐기기도 했다.


당시 가내수공업 봉제공장들은 밤늦게까지 연장 근무를 하지 않으면 납기를 준수할 수가 없어서, 당연 아닌 필연적으로 밤늦게 까지 근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진실 씨네 공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랑 씨도 진실 씨와 조금이라도 함께 있고 싶어서 일을 도와주다 보면 늦게 까지 있는 경우가 잦아졌고 너무 늦어져서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도 종종 발생했다.


그럴 때마다 잠자리가 항상 문제였다. 운영 자금이 풍부하지 않다 보니 기숙사 겸 생활공간으로 방 두 칸을 빌려서 남자들 한 칸, 여자들 한 칸 이렇게 사용하다 보니 서로가 불편할 수밖에 없었고, 진실 씨와의 오붓한 시간을 갖고 싶어도 둘만의 시간은 단 1분도 허락되질 않았다.


진실 씨가 궁리에 궁리를 한 끝에 다행히도 당시 기숙사 방이 옥탑이었는데 방과 방 사이에 주방이 있고 그 주방 옆에 물탱크실이 있었다. 거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바닥에는 커다란 물탱크가 있고 그 위를 나무 목으로 튼튼하게 선반이 놓여 있는데 이 공간이 어림잡아 2~3평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이 공간을 사랑 씨의 단독 방으로 꾸미면 진실 씨와의 둘만의 공간도 되고 사랑 씨가 오는 날이면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예쁘게 꾸밀 수 있을 것 같았다.


얼마나 사용하지 않고 방치한 공간인지는 몰라도 몇십 년 동안 켜켜이 묶은 먼지로 가뜩 쌓여 있는 쓰레기를 모두 정리하고, 진실 씨 혼자 손수 그 많은 먼지를 다 털어 내고 닦아 내고 도배지를 사다가 천정과 벽면을 바르고 바닥은 장판을 깔고 보니, 양옆이 모두 벽으로 막혀서 어두웠으나 창문은 낼 수 없는 구조였다. 그래도 정성이 들어간 만큼 아늑하고 예쁜 방으로 재 탄생 되었다.

 

출입문은 구조상 달기가 쉽지 않아 달지 못하고, 꽃무늬가 그려진 화려하면서도 든든한 커튼을 달아서 사생활이 보호될 수 있게  만들었다.


비록 좋은 아파트나 좋은 집의 방은  아니었지만 진실 씨가 현 상황에서 사랑 씨에게 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선물이었다.


잠시라도 여기 왔을 편하게  쉬기도 하고 혹시 늦어서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에는 여기에서 직원들 눈치 보지 말고 편안하게 잠이라도 자라고 정성으로 만든 선물이라고 했더니 사랑 씨가 얼마나 좋아하던지!!! 


그동안 미안해했던  진실 씨의 마음이 조금은 용서받는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담하고 깔끔하게 꾸며진 모습이, 마치 사랑 씨와 진실 씨의 첫 신혼집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문제없이 하루하루 그런대로 공장은 잘 돌아가는 것 같았다. 비가 오면 가끔씩 옥탑 천이다 보니 여기저기 빗물이 스며들어 와서 작업 중인 제품이 젖을 까봐 조마조마하는 마음을 빼고는 모두 무탈했다.


언젠가부터는 "산동실업"이라는 무역회사와 독점계약을 맺고, 영국으로 수출되는 소형 배낭을 일주일에 몇백 장씩 수출용 화물차에 선적을 해야 했다. 힘은 들었지만 끊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일이 있고, 대금 결제도 일정하게 잘 들어와 재미도 있었다. 매출도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진실 씨는 이제는 친구나 동창들 모임에도 자신 있게  참석해서 찬조금도 다른 친구들 보다는 조금은 여유 있게 할 수 있다 보니 많은 친구들로부터 부러움도 샀다.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이나 부모님 회사에 근무하면서 직급으로 依恃데던 친구들 보다도 어깨가 더 우뚝해 할 수 있었다.


가끔씩은 소문을 듣고 진로문제가 아직 안정되지 못한 친구들이 공장으로 자문을 구하기 위해 찾아오기도 했다. 이때마다 진실 씨는 자신감 있게 자랑하 듯 대기업에 취업하지 못 할바에는 차라리 자기처럼 좋은 아이템 찾아서 빨리 성공할 수 있는 사업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 중의 하나라고 강력하게 권하면서, 맛있는 음식을 꼭 먹여서 보내 곤 했다. 진실 씨도 학창 시절 항상 돈이 부족 해 먹을 것을 맘대로 먹지 못한 설움의 기억이 있어서였다.


시기에는 진실 씨가 주변 친구들 사이에서는 최고로 잘 나간다는 소문이 여기저기 많이 퍼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생활 내내 무엇이든 남 앞에 나서서 솔선 수범 했고, 특히나 사랑 씨를 만나던 시점 3학년 때는 학전 학년 학생들이 투표로 선출하는 학회장으로 만장일치로 당선되어, 여태껏 한 번도 시도도 해보지 못한 학과의 여러 학술적인 행사들을 처음으로 시도해서 모두 성공적으로 완수했었기 때문에, 친구들 마음속에 진실 씨는 성공의 아이콘처럼 나름 자리를 이미 잡고 있어서였다. 그렇다 보니 다음 해에 선출되는 단과대학 학생장 후보로 물망에 오르기까지 했다.


여기저기 좋은 방향으로 소문이 많이 나면서 여러 ORDER 업체들로부터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익히 들어서 알만한 회사들은 생산단가가 낮지만 믿을 만하고, 많이 알려지지 않은 신생 업체들은 그래도 단가는 좀 높은 반면 위험 요소가 있는 편이라서, 업체 선정에 심혈을 기울여 신중하게 선택할 정도가 되었다.


특히나 당시 한참 인기가 상종가이던 여성의류 전문 업체들이 신사업을 확장하면서 한국에서 제조한 배낭 인기가 세계적으로 붐을 일으키자 배낭과는 거리가 먼 비전문 의류 업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배낭 제품 개발 생산에 한창 뛰어들던 시기였다.


진실 씨네 황성물산에도 한창 잘 나가는 모 땡땡어패럴이라는 숙녀복 전문 업체에서 처음으로 등산 전문가용 배낭을 개발했다며 SAMPLE 제작부터 함께 시작하자는 제안이 들어와 좀 더 세밀하게 따져 보고 진행했어야 했는데, 진실 씨는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알려진 기업이라는 이름만 믿고, 덥석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말았다. 여기에서부터 진실 씨와 황성물산은 보이지 않는 검은 그림자 속으로 서서히 빠저 들고 었다.


진실 씨는 이 바닥 경험이 짧다 보니, 이런 말을 듣어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경험이 많다는 영섭이 동생마저도 귀띔을 해주기는커녕 회사 이미지 개선을 위해서는 이런 전문가용 배낭을 꼭 생산을 해봐야 한다면서, 재촉하는 바람에 이런 조건을 하나도 요구하지 못하고  덜컥 그것도 신생업체와 초품샘플 물건부터 생산을 하기로 계약을 해 버리고 말았다.


등산 전문가용 배낭은 일반용 배낭보다 사이즈도 훨씬 크고, 자제 종류가 많을 뿐만 아니라 자제들이 전부 고가라서 관리를 잘못하다가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특히나 배낭 전문가들 사이에서 떠도는 말로는 고도의 기술자가 필요하지만 국내에 전문 기술자가 많지 않아 구하기 힘들고, 어느 업체든 마무리할 때쯤이면 항상 자재가 모자라는데, 이유는 비싼 자제란 걸 알고 있는 생산직원들이 하나 둘 훔쳐가기에, 부족 자재를 구매해서 마무리하고 나면 임가공비로는 감당을 못하고 오히려 자기 돈으로 부족분을 충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전문가용 배낭 생산은 선불을 미리 받고 하거나, 여유분의 자제를 더 많이 청구해서 받는 조건이 아니면 생산을 꺼려한다는 것을 한참 후에야 알았으나 이미 떠나버린 버스를 바라보면서 손 흔드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거기에 처음부터 자금이 넉넉지 못하다 보니 작고 비좁공장에서 시작을 했는데, 진실 씨가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확인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계약을  버린 바람에 신규 물량과 기존 산동실업 물량현제 규모 공장에서 처리하기에는 너무나 어렵고 힘든 상황이었다.


따라서 일부 자재 창고를 무리해서 더 늘렸고, 고임금의 전문가용 배낭 생산 기술자들을 급하게 모집했다. 더군다나 부피가 큰 배낭이라서 사내에서 모든 공정을 다 처리하기에는 공정 수가 너무 많아, 일부 공정을 외주 처리 즉 가정에 부업으로 빼서 작업을 해 오려고 하다 보니, 가정부업 담당 직원들과 차량도 필요했다.


모든 것이 다 돈이 있어야 만 해결할 수 있었다. 기에  제품이 공장이 아닌 외부 가정집을 여러 군데 거처서 생산이 되다 보니, 각 가정에서 없어지는 비싼 물품많이 발생하는 등등 보이지 않는 손실이 많아지면서 여기저기 빗물이 서서히 스며들어 나중에는 옷 전체가 빗물에 젓듯 여기저기에서 자금 압박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자금 부족으로 인한 어려움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금이 문제가 되다 보니 눈치 빠른 이 계통 생산기술자들 회사가 어떻게 잘못이라도 되면 본인들한테 피해가 올까 봐  월급을 받고 나서는 하나 둘 출근을 안 하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때마다 진실 씨는 사랑 씨가 결혼자금으로 암암리에 저축하고 있는 쌈짓돈을 어떻게든 구슬려서 살금살금 빼내 황성물산 운영 자금으로 사용하곤  했다.  


그때 서운 하더라도 사랑 씨가 결혼자금 만이라도 진실 씨한테 없다고 숨기고, 주지 말았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참 후에야 알고 많은 자책과 후회를 했었다.


그러나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이랄까? 사랑 씨가 모아 둔 돈으로 회생시키기에는 택도 없었다.


제품 생산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아 납기가 지연되고, 품질이 균일하지 않자 땡땡어패럴 본사에서 간부가 직접 나와서 꼼꼼하게 점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진실 씨 공장에 나온 땡땡어패럴 간부라는 사람이 기존 진실 씨와 계약을 맺고 거래를 시작한 희성산업 직원들 하고는 좀 대면 대면 하는 모습이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어색해하는 모습들이 이상 했다.


희성산업 직원과 계약 당시에 그 직원이 분명히 몇 번씩이나 강조한 것은, 땡땡어패럴과 희성산업은 같은 회사인데 세금 문제로 이름만 다르게 두 개 회사로 나눠서 운영을 하고 있고, 상호만 다를 뿐 동일한 회사라고 믿어도 문제없다고 수없이  강조하기에 이를 믿고 몇 번이나 구두로 다짐을 받 나서야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었는데...


여기저기 수소문 해서 알아본 바, 진실 씨와 계약한 당사자는 땡땡어패럴이 아닌 중간에 끼여서 양쪽 다 속이고 이득만 취하는"희성산업"이라는 완전 별개의 다른 사람 회사였다. 


땡땡어패럴에는 황성물산이 자기네가 투자한 자회사라고 거짓말을 했고, 황성물산의 모든 계약과 관련된 업무는 희성산업에서 한다면서 희성산업과 땡땡어패럴이 임가공계약을 체결했고, 희성산업은 다시 황성물산을 속이고 위장 계약을 체결했었던 것이다.


 이처럼 양쪽을 다 위장된 서류 내용과 거짓으로 쌍방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희성산업은 황성물산에 임가공료도 본청 땡땡어패럴에서 지급받는 금액의 50%로 낮게 산정해서 계약을 체결했던 것이다.


그런 내용을 사촌동생 영섭이는 절친인 강대리라는 희성산업에 근무하는 친구와 의기 투합해서 진실 씨를 속이고, 제품 생산만 마무리하고 대금을 챙겨 도망가기로 작정한 상태에서 진실 씨한테  계약을 서둘러야 한다고 유도했던 것이다.


 당시 가내수공업 업계에서는 이런 일들이 非一非再 했었다.


전문가용 배낭 생산이 70% 정도 진행 되었을 즈음, 허위 계약 사실을 진실 씨가 모두 알게 되자 사촌동생 영섭이는 자기가 설립하자고 해서 시작한 공장 일은 아무것도 모르고 자기만 믿고 따라온 진실 씨한테 모두 떠넘긴 채,  몰라라 하고서 야반도주 어디론가 도망가 버렸다.


진실 씨는 희성산업 소속 담당자로 매일 출근 하 듯 황성물산을 방문해서 자기 공장 인양 관리 감독하던 영섭이 친구 강대리 라도 혹시나 나타나면 영섭이를 잡을 수 있을까?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 친구 또한 소리 소문 없이 어디론가 사 라저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부터 희성산업에서는 전혀 모르는 한 번도 오지 않던 사람들이 나타나서 빨리 생산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계속 재촉만 하는 것이 어딘가 이상하고 무엇엔가 쫓기는 느낌이 강해서 진실 씨도 희성산업 직원들에게 조건을 제시했다.


"고급 기술자 몇 명을 일당을 주고서 채용을 하고"

"최대한 빨리 생산을 마쳐 줄 테니!!!"

"임가공비를 선불로 먼저 당겨 줘라?"


그랬더니 이 사람들은 알았다면서 윗선에 보고 하겠다는 말만 할 뿐 며칠이 지나도 돈을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진실 씨는 다시 이제 진짜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아니, 돈이 입금되지 않으면 물건 생산을 중단하고 모든 자제도 빼주지 않을 모양으로 작심을 하고 다시 제안을 했다. 아니 제안이 아닌 통보였다.


"당신들이 돈을 주지 안으면, 땡땡어패럴에 내가 직접 요청해서 받겠다"

"그리고 작업 지시도 납품도 땡땡어패럴에서만 받고 납품도 직접 거기로 하겠다"

"당신들도 더 이상 저희 회사에 오지 말아라"


그랬더니 희성산업 직원들은 그러면 계약 위반이라는 둥, 손해배상 청구 하겠다는 둥, 온갖 엄포와 협박을 해대며 펄펄 뛰었다.


진실 씨도 방법이 없었다. 마지막 정리 해야 할 시점이라는 느낌이 싸하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자금도 이미 메마른 지 오래전이었고, 물러 자리 보이지 않았다.


후로도 며칠만 말미를 주면 반드시 지급해 주겠다면서 떼로 몰려와 다그치던 희성산업 직원들이 언젠가부터는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이상하다. 웬일일까?"


궁금해하던 찰나, 들려온 소식은, 황성물산이  임가공비를 선 지급 해 주지 않으면 생산을 중단하려고 한다면서 이미 황성물산에 지불해야 할 임가공비까지 모두 땡땡어패럴에서 받아서 황성물산에는 한 푼도 주지 않고, 희성산업은 부도 처리 해버리고 모든 직원들이 다 도망가 버린 상태였다.


원래 임가공을 생산할 때는 자제는 모두 본청, 즉  임가공을 의뢰하는 업체에서 전량 공급받아 단지 생산만을 해서 주기 때문에, 소유권이 모두 본청에 있음으로 문제가 발생하면 본청으로 돌려줘야 하고, 약속된 일정까지 제품을 마무리해 주지 못해도 그 이후에 발생되는 모든 추가비용까지 임가공 업체에서 부담하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었다.


진실  만 여태껏 생산한 비용 한 푼 받지 못하고 남의 물건인, 생산 중인 제품마저 다 빼줘야 하는  상황으로 코너에 몰려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골머리만 아파 오기 시작했다.


납품 날자는 다 되어 가는데, 계약 당사자인 희성산업은 부도로 도망갔고 땡땡어패럴에서는 현 상태에서 황성물산에 있는 자재를 모두 회수해서 가져가기 위해 법적인 절차를 진행한다 하고....


결국 진실 씨는 생에 최초로 법정에 까지 출두해서 진술을 하면서 최소한의 임가공비 만이라도 지급해 달라고 하소연을 해 보았지만, 대한민국 법정은 냉정했다.


결국 황성물산은 처음으로 시도했던 전문가용 배낭 생산에서는 십원 한 푼도 받지 못하고, 큰 손실을 은 채 모든 물건을 땡땡어패럴에 회수당하고 말았다.


일을 처리하느라 소홀 해진 산동실업 물건마저 정해진 날자에 납품을 해 주지 못하자 다른 업체로 넘어가 버려서 그일 마저도 없어 저 버렸, 전 직원은 물론 고임금의 신규직원들까지 모집해서 일해 주고 돈 한 푼 못 받고... 진실 씨의 꿈 많던 황성물산은 이처럼 처참하게 완전 四面楚歌에 빠지고 말았다.


소문에는 항상 발이 달렸다고 들 말한다. 진실 씨네 공장 소식은 삽시간에 이 계통 온 동네에 다 퍼저서 일은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직원들을 모집하는 것조차도 힘들어졌다.


이제 진실 씨의 마지막 결단의 시간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회사 돌아가는 상황을 옆에서 지켜만 보고 남아 있던 몇몇 착한 직원들 마저 하나 둘 떠나겠다고 했다. 미안한 마음뿐, 진실 씨는 어떻게 더 기다려 달라고 말하면서 잡을 명분이 서질 않아, 한마디 말도 하질 못했다.


그러나 직원들을 보내려면, 설령 진실 씨 자신은 오늘 당장 굶어 죽을지라도 고생한 직원들만큼은 위로금은 챙겨 주지 못하더라도 현재까지 일한 날자 만큼의 임금과 밀려 있는 퇴직금은 지불해 주어야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 생각했다. 그것만이 세상 살아오면서 터득한 진실 씨의 지론이고 또한 다짐이었다


진실 씨와 사랑 씨는 고민에 고민을 했다.


원대한 꿈을 품고 시작했던 황성물산이 이처럼 시들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가까이 가까이 둘이서 귀속 말 하듯 직원들 몰레 상의 하다 보니, 사랑이라는 것이 그토록 아픈 현실 앞에서 깊게 두터워지고 위로도 되고, 혼자 하는 생각보다는 함께 하는 생각이 더 의지가 되는 것 같았다.


일단 공장 기계들을 처분했다. 공장 및 숙소 방 다  다. 그 돈으로 모든 직원들과 아쉽고 서운 하지만 욕먹지 않고 아픈 이별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특히나 서울에서 취직시켜 주겠다고 불러 올린 진실 씨와 동향 시골마을 동생들도 말 많은 시골인지라 말 나오지 않게, 본인은 힘들고 어렵지만 섭섭지 않게 월급과 퇴직금 그리고 조금의 위로금까지 챙겨서 고향으로 내려 보냈다. 그처럼 신경 써서 다시 고향으로 내려 보냈건만 그래도 후에 두명중 한 동생 아버님은 술만 한잔 하시면 진실 씨 집에 찾아와서  월급을 덜 주었다는 둥 하면서 한동안 진실 씨 부모님들께 구시렁 대긴 했다.


큰 꿈을 꾸면서 황성물산이 탄생한 지 딱 2년, "2년 천하"의 저물어 가는 순간이었다.





진실 씨 수중에 남은 전 재산이 현금 30만 원 하고 가재도구, 가재도구라고 해 보았자 TV와 VIDEO가 함께 장착된  당시 제일 인기 있던 가전 " VIDEO VISION " 1대만 값어치 있는 가재도구 일 뿐 나머지는 모두 버려야 할 것들 뿐이었다.


진실 씨는 여동생과 함께 생활해야 하는데 30만 원으로 어디로 이사를 해야 하나? 뭘 해 먹고살아가야 하나? 앞길이 막막했다.  


황성물산을 설립할 때 조금이라도 자금을 더 확보하고자 여동생과 살고 있던 집 보증금까지 모두 당겨서 사업자금으로 사용해 버렸기에 여동생과 함께 살 방을 구하는 것이 제일 급선무였다.


여기저기 수소문 해 찾다 보니 사촌 형이 결혼해서 살고 있는 경기도 광명시에 20만 원에 12만 원짜리 그것도 방 두 칸짜리가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두 칸이라고 해 보았자 다 쓰러져 가는 판잣집에 비가 오면 물이 넘쳐 방안까지 물난리가 나는 그런 곳이었다.


거기로 이사를 하기로 결정을 했다. 그러나 문제가 좀 있었다. 입주하려면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한 달 후에 이사를 가기로 되어 있어서, 한 달 동안 어디 임시 거처에서 살면서 기다려야  했다. 그렇지만 이 금액으로 구할 수 있는 방은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어서 한 달 후에 입주하는 조건으로 결정을 하고, 임시방편으로 비어 있는 허름한 창고를 한 칸 빌려서 남루한 가재도구 지만 거기에 넣어 놓고, 여동생과 둘이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여관에서 한 달을 어렵게 버텨 냈다.


입주시점이 다가와 이사를 하려고 창고문을 열었더니, 비록 남루 하지만 그래도 진실 씨 전 재산임으로 잘 정돈해 두었던 이삿짐들이 여기저기 흐려 저 나뒹굴고 있는 것이 난리가 아니었다. 무엇이 없어졌는지 다른 물건들은 확인할 수도 없었으나, 당시 유행이고 가재도구 중 그래도 유일하게 값어치가 나가던  VIDEO VISION만이 진실 씨를 기다리지 못하고 이미 어디론가 타인의 손에 의해 먼저 이사를 홀로 떠나버리고 없었다.


그토록 복도 없을까? 거지들도 다 훔쳐 먹어도 자기들 동료인 거지 물건에는 손을 안 댄다는데...


상거지나 다름없는 진실 씨 전 재산 중에서도 크게 일부분을 차지하던 정든 벗이면서, 당분간 얼마 동안은 고민이 많을 진실 씨의 유일한  놀이기구가 되어 줄 친구였는데... 그렇게도 운도 없고 복도 없고 되는 일 없는 진실 씨는 한숨만 나왔다.


그렇게 웅대하고 거창하고 화려한 꿈을 안고 삼성그룹을 모태로 탄생했던 진실 씨의 첫 사업의 상호 "황성물산"은 진실 씨에게 많은 경험과 쓸쓸한 아픔만 여기저기 남긴 채 저 멀리 기억 속으로 묻히고 말았다.


사업을 정리한 이후로 진실 씨는 누구 든 다른 사람을 잘 믿지 못하고, 점점 더 사람들과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처럼 믿었던 사람들로부터의 배신 배반감 뒤통수... 한동안 마음 깊숙이 아팠다.


사랑 씨한테 너무나 미안했다.

한~참 동안을 이것저것  많이 힘들어했다.

사랑 씨가 떠나갈 것 같아 불안하고 더 힘들었다.


그때서야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고 

그리고 사회생활의 좋지 않은 이면 또한 감사하게 체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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