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대장 Nov 06. 2024

왜냐하면 저에겐  보물이 없기 때문이에요

보물 같은 아이에게 안겨주고픈 보물

독서방으로 들어서는 두 아이의 입술이 새파랗다. 손엔 아직 다 먹지 못한 시퍼런 사탕이 쥐어져 있다. 상가 1층 무인점포는 아이들의 방앗간이다. 300원만 있어도 먹을 걸 살  수 있는 일명 부엉이 가게에서 오며 가며 군것질로 배를 채운다. 그도 그럴 것이 급식을 오전 11시 반에 먹고 방과 후 수업을 다 받고 나오면 오후 3시가 넘는다. 학원이 밀집한 상가로 들어설 때는 이미 배가 출출한 상태를 너머 고프기까지 할터이니 주려진 배를 급히 채울 곳이 어딨 으랴. 그나마 부엉이 가게라도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아이들과 글을 쓰기 시작한 게 어느덧 1년이 다되어간다. 아파트 내 상가에 조그만 독서방을 차릴 때 어찌나 좋던지. 처음에는 딸아이와 옆 동에 사는 딸아이 친구를 집으로 불러다 필사수업 시작했다. 초등학교 입학을 코앞에 두고 읽고 쓰는 일에 유연함을 주고파 시작한 필사였다. 책 한 권을 정해 본문의 한 두 페이지를, 그래봐야 글자수로 치면 300자 내외의 글자를 매주 필사 했다. 딸아이는 친구가 집으로 오는 시간을 기다렸고, 엄마와 떨어져 본 적이 거의 없는 친구는 그렇게라도 엄마와 떨어지는 연습을 자연스럽게 했더랬다.    


  

얼마 안 가 독서방을 꾸렸고 자연스럽게 딸아이와 친구가 필사하는 공간이 독서방으로 옮겨졌다. 인테리어 작업이 다 끝나기 전부터 커다란 책상에 앉아 글자를 따라 쓰고, 간식을 먹고, 장난치며 1시간을 부지런히 쓰고 갔다. 아이들과 필사한다는 소식에 주변 측근들은 자신의 자녀들도 합류하길 원했고 자연스럽게 매주 만나 어떻게든 쓰고 읽는 시간들을 이어왔다. 사실 필사를 하기 이전부터 딸아이의 친구들과 함께 독서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매달 1번, 한 권의 그림책으로 시작한 일명 '송아지 어린이 독서회'. 직업이 독서회 강사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들과도 독서회를 운영해 볼 수 있었고, 즐겁게 독서회를 이어갔다. 합류한 친구들은 독서회와 필사수업을 같이 하는 친구들이 대다수였고, 아파트 내 친근하게 지내던 지인의 아이가 더해지고, 오랜 책벗의 아이들까지. 자그마치 6명의 아이들이 매주 글을 쓰기 위해 독서방을 찾는다. 나이가 어린 친구들은 필사부터 세 줄 쓰기, 필사를 1년 넘게 꾸준히 쓴 친구들은 한 페이지의 글을 썼다. 다양한 글쓰기 재료와 방법들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어떻게로든 쓰게 하기 위한 시간들이었다. 그것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어느새 매주 한 편의 글을 쓰는 것에 적당한 당위를 집어넣어주었고, 이곳에 오는 이유나 상황들을 하나의 놀이처럼 즐기고 반겨주었다.  


    

아이들과 글을 쓰다 보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바로 아이들의 마음. 그건 온 하루를 함께 하지 않아도 어렴풋하게 나마 그려지는 아이의 일상이었고, 그런 일상은 아이의 마음을 다는 아니어도 어떻게로든 드러내주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 몇 줄의 문장으로 아이의 삶과 생각을 단정 짓는 것이 아니다. 지금 하는 말이 허상이나 상상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생각하는 눈빛과 표정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느 정도 담기기 마련이다. 입술이 퍼런 채 자리에 앉은 두 아이. 아직 시작 시간 전이라는 걸 인지하고는 다급히 책을 빼어든다.      

"어? 지금, 3분 전이야! 준비해야지."

"알고 있어요. 조금만 보고 꽂을게요."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웃고 재잘대는 아이들. 예쁘다.  


   

수업이 시작되면 질문이 난무하다. 오늘은 주제 글쓰기. 단, 주제는 랜덤으로 제시되고 그것을 바꿀 기회는 각 한번, 바꾼 주제가 맘에 안 들어도 다시 돌이킬 수 없다. 그러니 아이들은 고민되지 않을 수 없다. 그냥 편하게 하고 싶은 주제로 줘야 하는 것 아니냐 싶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편안한 주제에서 편하게 이야기가 지어지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글쓰기 수업에서 가르치는 일은 단순히 편하게, 쓰고 싶은 글만 쓰는 건 아니라는 것에 의미를 둔다. 그래서 이따금 "저는 오늘 못쓰겠어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라고 하는 친구도 있다. 그럴 때 또 거기까지로 글을 마무리 짓게 한다. 그것에서 스스로가 부딪히는 지점과 글을 쓴다는 것이 비단 하고 싶은 말만 쓰는 건 아니라는 것. 그렇게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도 분명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주제를 안아 든 아이들, 그 순간부터는 잠시 소란스럽다. "와, 진짜 저걸 어떻게 써요?"부터 "니 주제는 쉽잖아!" 괜스레 옆 친구 주제가 더 쉬워 보여 볼멘소리도 나온다. 그럼 또 옆 친구는 가만있나, "무슨 소리야, 네가 더 쉽거든!" 각자 앓는 소리로 한동안 시끌벅적하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의 눈알이 굴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너스레를 떨면서도 아마 각자 마음속으로는 오늘 쓸 글에 대한 전체적인 아우트라인을 잡아가고 있는 것. 그것에서 스스로 포기하거나 주저앉게 하고 싶지 않아 마음이 조금 급해진다. "봐봐, 얘들아. 주제 자체가 일상적인 거잖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거면 지금 잠시 생각해 봐. 일상적이면 그것에 대한 경험과 감정을 좀 부각해서 쓰고, 겪어보지 않은 일이라면 상상글을 써보는 것도 좋지." 다급한 마음으로 이런저런 팁을 빠르게 내뱉으면 아이들은 이내 연필을 곧추 세운다. 서걱서걱. 고요해진 공간 안에서 아이들의 연필이 굴러간다. 덩달아 내 마음도 또로롱 이리저리 신나게 굴러다닌다.      



초안이 완성되면 아이들이 손을 들고, 글을 봐주러 곁으로 간다. 아침부터 학교로 가 쓰고, 읽고, 먹고, 뛰었을 아이들. 아직은 달착지근한 땀냄새가 훅 끼쳐온다. 오늘 하루 고단했을 아이의 검게 그을린 목덜미와 바닥이 시커먼 양말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도 글을 쓰겠다고 여기까지 온 아이들. 예쁘다.  


   

아이가 오늘 쓴 주제는 '내 보물 3가지'였다. 주제를 받았을 때부터 만족스러운 듯 별 말 않던 아이였다. 보물 세 개 정도야 뭐, 얼마든지 쓸 수 있겠지. 아이가 쓴 글에는 좋아하는 간식과 부모님, 친구가 나열되어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 꽂힌 문장은 따로 있었다. '저는 보물이 한 개도 없어요. 하지만 앞으로는 많은 보물을 가질 거예요.' 소박한 것 같아도 자신이 가진 보물에 부모님과 친구를 생각한 아이의 진심이 따스하게 다가왔다. 지금 아이는 모르겠지만 결국 내 곁의 사람이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걸 이미 배운 것이리라. 하지만 이어지는 문장에서 보물이 한 개도 없다고 한 건, 아이의 마음속이 지금 텅 비어 있다는 의미로 나에게 안겼다. 부모님과 친구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건 배워서라도 할 수 있는 생각이지만 지금 나에겐 보물이 한 개도 없다고 표현하는 건 누군가 가르쳐 줘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한 줄의 문장에서 잠시 호흡이 멈춰진다. 지금 이 아이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나? 앞으로는 많이 가질 거라는 다음 문장으로 위안을 삼아야 하나? 1~2초 사이에도 무수한 생각이 흘러간다. 아이의 글을 수정해 주고, 보태면 좋을 문구들을 이야기 나누고 문단까지 나눠 써보게 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 문장에 대해 더 물어보고 싶지만 차마 묻지  못한다. 이 아이에게 보물은 뭘까?     



아이들의 글에는 지금의 마음이 그려져 있다. 그것을 내 마음대로 해석할 수도, 평가할 수도, 짐작할 수도 없다. 다만, 오직 글에서만 보이는 마음은 지금 앞에 앉은 아이의 입으로는 뱉어지지 않는 말들일 것이다. 발표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작고 힘없다. 지금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작지만 진심을 담은 응원 한마디, "오늘 S의 글이 굉장히 잘 짜였어.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자연스럽게 문단도 쪼개지고, 유일하게 맞춤법 이탈이 한  글자도 없었다고! 아마도 정성을 담아 한 글자, 한 글자씩 써 내려갔기 때문이 아닐까? 얘들아, 오늘 우리 S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자!"     



박수소리에 겸연쩍어진 아이가 자리로 들어가 앉는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뽀얀 손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아이에게 이 박수가 그저 잘 쓴 글에 대한 칭찬이 아닌 텅 빈 마음에 찰랑이는 동전처럼 한 닢 두 닢 쌓여가길 진심 담아 바라본다.






이미지 <이상한 나라에 간 파울라 - 파울 마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