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먹고 갈래?"가 그 "라면 먹고 갈래?"가 아니잖아요
"오늘은 결말을 바꿔보는 글쓰기를 할 거예요."
"결말이 뭐예요?"
쉽게 대답해 주지 않는다. 간단한 대답도 바로 해주지 않는다 나는. 답을 얻는 일은 생각보다 쉽고 간편하다. 지금 당장 이집트 피라미드의 높이를 알아보라. 아마 10초도 채 걸리지 않아 모두들 답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피라미드의 높이를 안다는 것이 중요할까 그것을 알아가는 과정과 이유가 중요할까? 내가 생각하는 공부는 정답을 맞히는 것이 아닌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뉴런의 충돌이다.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정답을 아느냐 모르냐 보다 그것을 어떻게 알아가느냐와 왜 알아야 하느냐를 더 의미 있게 이야기하고 그 과정에서의 시간을 기다려주어야 한다. 각설하고, 간단한 질문에도 나는 꼭 한번 다시 되묻는다. "결말이 무슨 뜻일까요?"
대뜸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든다. "저는 알아요. 결말은 해피엔딩이에요." 얼마나 많은 그림책들이 해피하게 끝이 나는지 아이의 대답을 통해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는 그래, 해피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대답이 끝난 아이에게 다가가 되묻는다. "해피는 무슨 뜻일까요?" 기다렸다는 듯 "해피벌쓰데이 투유!"를 연발하던 아이들은 '행복'이라는 단어를 어렵게 않게 내지른다. 아이들의 흥미가 올랐다 싶어 곧바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다.
"그럼 엔딩은 무슨 말일까요?"
"행복하게 끝나는 거요!"
해피 엔딩과 새드 엔딩을 이야기하며 행복한 결말과 슬픈 결말을 이어 설명하자 질문을 던졌던 아이가 말한다. "아, 저도 엔딩은 알아요. 영어학원에서 배웠어요." 영어로 엔딩을 배웠는데 한글로 결말을 배우지 못한 아이를 보자 순간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한글을 읽게 되면서 하나의 세계가 열렸고, 세계가 열림과 동시에 사회가 부여한 역할의 과업이 생긴다. 과업 중 일정한 나이가 되면 학교엘 가고, 배우는 것들은 이전처럼 단순히 몸을 쓰고 감각을 이용해 알아가던 것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읽게 된 것의 기쁨도 잠시, 갈수록 많은 활자를 읽어야 한다. 비단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의미까지 파악해야 한다. 읽어내는 것만으로도 벅찬 텍스트를 해석해 배움과 앎을 일으켜야 하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에게 필연적으로 투입되는 재 2의 언어이자 교육이 '영어'다.
작년 문해력 강의자료를 만들기 위해 읽은 책과 찾아 본 방송 자료를 통해 익히 알고 있던 상황들이다. 영어 교사가 영어 수업에서 영어만 가르치기 어려운 시대다. 많은 영어교사들이 한글로 번역된 단어를 학생들이 알지 못하니 되려 영어시간에 한글을 가르쳐야 하는 현실에 대한 고충을 토로하고 있었다. 국어뿐 아니라 사회나 과학에서도 마찬가지다. 피지배층, 공권력, 침략, 수립 등 한글로 된 단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문해력 부재를 절감하면서도 여전히 많은 부모님들이 3학년부터 시작되는 영어교육에 신경 쓰며 영어 학원과 영어 교육에 시간과 에너지, 비용을 아끼지 않고 할애한다. 그런 부모님들을 불편하게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나 또한 초등 2학년 딸아이에게 영어 교육을 시키고 있다. 놀이식 유아 영어학원에도 8개월가량 보냈었고, 얼마 전부터는 영어 책 읽어주는 과외 선생님과 함께 매주 1시간 반을 영어 교육에 할애하고 있다. 다만, 우선시 되는 것을 한 번 더 고심해 보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영어 단어로 배우는 한글이 아닌 한글 자체로 의미를 십분 이해한 후에 스펠링을 익히고 단어의 뜻을 배울 수 있도록 순서나 양을 고심해 보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엔딩을 뭐라고 배웠어요?"
"끝이요."
"맞아요. 해피 엔딩은 그럼 무슨 뜻이일까요?"
"행복한 끝이요."
"그래, 맞아요. 결말도 끝이나 마무리라는 뜻의 한자어예요. 각자 활동지 지문이 다릅니다. 실제 그림책에서 그대로 가져온 문장이에요. 각자 문장들의 결말을 한번 지어보는 거예요. 작가가 되었다고 생각해 봐요 "
두세 줄의 문구들을 죽 읽어내며 아이들은 각자의 상상력을 동원해 뒷이야기를 붙인다. 제시된 문장들이 꼭 앞에 올 필요는 없다고, 중간에 가도 되고, 맨 뒤로 가도 된다고. 어떻게로든 하나의 이야기로 자연스러운 스토리를 붙여 재미있게 써보라 말했다. '결말'이라는 말을 모를 수 있다. 한글보다 영어가 더 쉽게 읽히는 아이 들고 있고, 영어와 국어 무엇이 더 중요하냐 아니냐를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다만, 아이들이 읽고 쓰는 것에 더 다각적인 지원이 필요함을, 비단 하나의 언어를 단순히 읽는다는 것에 그치지 말고 더 많은 단어와 어휘에 대한 자각 및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지도하고 끌어나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영어 교육에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붓는 것만큼 읽기 교육과 쓰기의 경험, 그것에 필요한 어휘력을 영어 교육을 하는 것만큼의 시간과 에너지로 꼭 보조를 맞춰주길 바라는 마음인 것이다.
한글은 읽는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라면 먹고 갈래?"를 단순히 밥 먹고 가자는 말로 해석하면 안 되듯 "그래서 소녀는 뒤돌아서 집으로 돌아왔어요."를 돌아오는 소녀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고 그래서 집에 왔대. 끝!으로 '읽기'만 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초등학생이 되면 자연스럽게 영어 교육의 중요성을 운운하는 만큼 읽고 쓰는 것에서도 그만큼,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임을 꼭 이해하고 계셨으면 좋겠다. 잘 읽고 잘 쓰는 아이는 같은 영어를 배워도 그냥 단어만 읽고 조합해 문제만 잘 풀어내는 아이가 아닌 영어로 된 문장 속에서 앎을 배우는 아이로 자랄 것이다. 그러니 부디 영어 교육에 심혈을 기울이기 이전에 아이에게 필요한 언어, 즉 한글을 충분히 읽고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이미지 <딱, 열 밤만 자면 - 서보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