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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밍캅 Sep 08. 2024

알람시계

12년 전, 발령 3일 차

  12년 전. 설레는 마음으로 지구대 첫 발령을 받고 설렘반 기대반으로 일하던 중, 근무한 지 약 3일쯤 되었을 때 누군가 우리 집 현관문을 두드렸다. 6평가량 작은 원룸이었기에 두드리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고 난 번뜩 일어나서 "누구세요?" 하고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앞에 있는 사람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늦잠 잤어?" 무서운 표정과 함께 짧은 질문을 던진 사람. 같은 팀 선배였다. 그 순간 등꼴이 오싹했다. 내가 출근을 하지 않고 휴대폰도 꺼져 있기에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싶어서 집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등에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근무 한지 3일밖에 되지 않은 신임이 지각을 했다고 생각하니 나조차도 어이없는 일임은 분명했다. 무엇보다 앞으로 지구대 생활이 순탄치 않겠구나 생각되었다.




  서둘러 준비하고 출근하니 아니나 다를까 선배들은 돌아가며 한마디 씩 하였다.

  "벌써 빠진 것이냐", "3일 밖에 안된 놈이 지각을 하는 게 말이 되느냐", "정신이 있는 것이냐" 등등

  내가 잘못한 일이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죄송하다는 말 밖에. 어떤 선배는 내가 극단적인 선택이라도 한 줄 알았다며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였다.


  주주주야비야비야비 3조 2교대의 불규칙한 패턴 때문이라 하면 핑계일 것이고, 휴대폰을 알람시계로 사용하였지만 배터리 점검을 하지 않은 채 잠이 들어버린 나 자신을 원망해야 했다. 그런데 한 선배님은 나에게 어떠한 꾸지람도 하지 않았다. 차라리 무슨 말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그날 오후, 동료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다. 나에게 꾸지람을 하지 않던 그 선배님이 나를 위해서 잡화점에서 알람시계를 고르셨다고 한다. 하지만 후배에게 알람시계를 사주는 일이 되려 후배에게는 압박감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아 사지 않으셨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듣고 난 '따르릉따르릉' 소리가 경쾌하게 울리는 알람시계 1개를 구매했다.


  요즘은 다시 휴대폰 알람을 이용하지만 우리 집 거실에 떡하니 놓여 있는 그때 그 알람시계를 볼 때면 가끔 그 선배님이 생각난다. 비록 딱딱한 수직구조의 경찰집단이지만 후배를 생각하고 조직을 위해 애써 주시는 분들이 참 많이 계신다. 발령받은 지 어언 12년이 지났다. 내가 그 선배님의 위치에 올라와 보니 세심하게 후배를 신경 써 주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신임 때의 일을 생각해 보며 나는 현재 어떤 선배로 비칠지 나 자신을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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