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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Dec 20. 2024

From. 은행에 저축만 했던 바보

당신도?

   본인은 오로지 저축으로 몇억을 모았다. 20년 넘게 매달 쓴 가계부가 나의 자랑스러운 기록이자 지난날 치열하게 돈을 모았던 흔적이다. 이런 내가 후회하는 것이 있다. 나는 저축밖에 몰랐다. 내가 쓸 수 있는 제도와 조직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면 돈을 더 잘 모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다시 돌아가서 저축한다면 나는 아래 두 가지를 시작하고 싶다.


1. 주식도 펀드도 아닌 연금저축

   나는 매년 9월부터 연말정산을 준비한다. 보통 9월까지의 카드값과 현금 영수증 총액을 합산하여 연봉의 몇 %가 되는지 어림해 본다. 목표치까지 돈을 썼다면 이제 생활비는 남편의 몫으로 돌린다. 남편에게 인적 공제를 모두 몰아주는데도 몇 년 전부터 남편은 연말 정산 때 돈을 토해내고 있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의 나도연말 정산 때 돈을 뱉어냈다. 아이가 둘 있는데도 돈도 안 쓰고 몸도 건강한 내가 나라에서는 행복에 겨워 보였는지  통장에서 돈을 더 가지고 갔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연말 정산으로 돈을 환급받게 되었으니 바로 연금저축 덕분이다.

    나는 5년 전부터 매년 연말정산 환급을 받을 수 있는 한도로 매년 돈을 넣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불입한 돈으로 펀드에 가입해서 꽤 쏠쏠한 수익도 맛보았다.


연금 저축은 공적연금을 보완하는 개인연금 상품으로 55세 이후에 연금으로 수령할 수 있다.  2024년 기준 최대 600만 원까지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퇴직연금 IRP와 합치면 900만 원 한도에서 혜택을 받는다. 총 급여 5,500만 원 이하에서는 16.5% 세액공제를 받고, 5,500만 원 이상 근로자는 13.2% 세액공제를 받는다. 12월에 돈을 넣으면 10% 넘는 이자를 두 달 만에 돌려받거나 이자만큼 세금을 덜 낼 수 있는 것이다.


   연금 저축 계좌를 개설하면 세액공제 혜택도 받고 투자 수익에 대해서도 과세 이연 및 저율 과세(세금을 나중에 떼고, 세율도 낮다는 의미)가 적용되니 안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첫해에는 가볍게 한 달 치 적금액 정도만 넣었었다. 그리고 두 달 만에 내가 넣은 돈의 13.2%만큼 세금을 덜 낸 것을 보았다. 적금 대신 연금저축의 돈을 늘렸다. 연금 저축은 이자율 높은 10년짜리 적금으로 생각하고 이용한다.


   하지만 연금 저축은 중간(가입 5년 내 또는 55세 전에)에 해지를 하게 되면 이제까지 받은 환급액을 모두 제하고 돌려받는다. 혹시 결혼을 앞두고 있거나 큰돈을 쓸 계획이 있는 사람이라면 납입 금액을 잘 조절해야 한다(연봉 5,500만 원 이상을 기준으로 해지하면 16.5%의 소득세를 내야 한다. 세액 공제가 13.2%이니 이 경우 낼 돈이 커진다. 다만 5,500만 원 이하는 받은 만큼(16.5%)만 다시 내면 된다). 유지 가능한 수준에서 미리, 꾸준히, 일찍부터 넣는 것이 유리하다. 공무원 연금이 물가상승률이나 정부의 제도 개편에 의해 삭감되는 것을 생각하면 일찍부터 가입해서 함께 준비하는 것이 좋다. 또한 연금저축계좌나 IRP로 리츠 주식이나 펀드 거래가 가능하니 주식이나 펀드도 조금씩 해보길 권한다. 


  나는 세전 연봉 5,500만 원 이하일 때 이 제도를 몰랐다. 그래서 더더욱 아쉽다.


2. 공제회 저축

   공제회 저축을 알게 된 건 4년 전, 2% 남짓한 시중금리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다. 예금 금리 높은 상품을 찾던 중 후배 교사가 공제회 목돈 급여를 권했다. 본인은 시중 은행은 이용하지 않고 공제회 저축만 하고 있다고 했다. 공제회는 장기 저축 급여만 가입했던 터라 다른 저축 상품은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덕분에 공제회 저축도 알아보게 되었다.

   교직원 공제회 저축은 예금과 적금 상품이 다 있었다. 목돈 급여는 일반 예금과 비슷하지만 부가금형의 경우 이자 받을 주기를 선택할 수 있고, 예탁형은 원금과 이자를 찾지 않고 복리로 굴릴 수 있다. 당장 돈이 필요하지 않을 때는 이자가 복리로 붙는 예탁형이 좋다. 다만 현금 흐름이 필요할 때는 부가금 형이 좋다. 은행보다 나은 점이라면 은행 예금은 이자를 월마다 또는 1년에 한 번 받는 것으로 설정할 수 있는데, 목돈 급여는 분기, 반기, 1년 주기로 예금 이자를 받을 수 있다. 또한 해약 환급금이 유리하다. 시중 은행은 중도해지하면 이자의 1% 미만을 받지만 이 경우는 납입기간이 90일 미만이어도 해당하는 기간에 대한 이자의 50%를 지급해 준다(180일 이상이면 해당 기간에 대한 이자의 90%를 지급한다). 나는 예금이 만기 되는 대로 돈을 공제회 목돈 급여로 옮겼고, 현재는 분기 또는 반기 예금 덕분에 매달 이자를 수령한다. 이렇게 모인 이자는 파킹 통장에 모은 돈과 합쳐 다시 예금을 만들고 있다.


  단점도 있다. 첫째, 은행 이자는 1년간 이자가 정해지면 그대로 이자를 받을 수 있지만, 이 상품은 금리가 분기마다 바뀌고 내가 받는 이자도 그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시중 은행 금리가 높으면 시중 은행에 예금을 가입하고, 은행 금리가 공제회보다 낮을 때 예금은 공제회에 넣는다(공제회 적금, 예금까지 합쳐 3억까지 가능하다). 둘째, 금리 상승기에는 시중 은행에서 상승하는 금리보다 금리 상승분이 늦게 반영된다. 금리 하락기에는 잽싸게 금리를 내린다(내 기분 탓일까?). 셋째, 분기로 이자를 받으면 반기나 1년 단위의 이자를 받는 것보다 금리가 낮다. 1년에 한 번 받는 이자의 금리가 가장 높고 그다음 반기, 분기 순으로 낮다(24년 12월 현재금리는 세전으로 분기(3.84) < 반기(3.86) < 1년(3.90) 순이다). 넷째, 교직원 공제회의 장기저축급여에 가입한 사람만 이 상품을 이용할 수 있다.



 

  나는 열심히 모아서 저축만 할 줄 알았지 내가 이용할 수 있는 조직이나 제도를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오랫동안 저축만 했던 것은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아버지는 이것저것 다 해봤자 결국에 저축으로 정직하게 돈을 모으는 게 가장 좋다고 하시면서 주식을 하면 망하고, 공제회나 연금 상품은 목돈이 필요할 때 해지하면 이자가 똥값이니 하지 말라고 하셨다.

  현재 나는 아버지가 절대 하지 말라고 했던 것 중 보증 빼고 다 하고 있다. 주식은 자산을 큰 위험에 빠뜨리기도 했고, 몇몇 종목은 처참한 수익률을 보이고 있지만 덕분에 세상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국제 유가와 연준의 금리 발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다른 나라의 전쟁이 우리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나 환율과 인플레이션도 생각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저축만 했을 때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삶에 대해 다양한 경험이 필요한 만큼 돈에 대한 다양한 경험도 필요하다. 그리고 자신의 위치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제도나 조직을 충분히 알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당신이 박봉으로 고통받고 있다면 내 직장을 레버리지 할 수 있는 제도나 조직이 있는지 살펴보기 바란다. 어차피 공무원인 우리는 배달이나 카페 알바 같은 부업은 못한다. 약속 없는 주말에 컴퓨터를 켜고 공제회 금리, 저축 상품이나 연금 공단 홈페이지에서 공무원 임대주택이나 퇴직금 담보대출, 시중 은행에서 청년 저축 상품을 찾아보자.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이번주 연준의 금리 인하 뉴스와 트럼프 이후 세계 경제 전망, 한국의 부동산 경매매물 사상 최대에 관한 소식도 한 번쯤 기웃거려 보길 바란다. 돈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From. 은행과 사랑에 빠져 저축만 했던 바보.




P.S. 이 글의 연관 검색어로 '저축만 하면 바보인가'가 뜬다. 저축만 해서 바보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 꽤 있나 보다(나만 들은 것 같은데...) 그분들께 한 말씀드리고 싶다.


   저는 현금이 쓰레기라고 할 때도 현금을 모았습니다. 저축은 속도는 느리지만 절대 뒤로 가지 않지요. 다만 저축만 하면 돈, 경제를 보는 시야가 좁아집니다. 저는 저축만으로 경제적 자유를 꿈꿨지만 저금리 시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늦게 깨달았어요(단, 현재 같은 3% 이상 금리에는 저축도 할만하지요). 다만 저축으로 돈을 모을 때는 이자에 의지하지 마세요. 내가 아껴서 모은 돈이 진정한 이자입니다.

그리고

정직하게 돈을 모은 시간은 내 안에 남아 삶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될 겁니다.

저축만 하는 바보들을 응원합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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