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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Jan 04. 2025

가계부 쉽게 쓰는 법을 알려드립니다.

16. 경력 20년 차 프로가계부 작성러의 쓴소리

  새해를 맞아 돈을 모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며 가계부 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 본인은 2004년부터 가계부 쓰기를 시작하여 올해로 20년 차 매달 빠지지 않고 가계부를 쓰고 있다. 공무원 생활 시작과 동시에 가계부를 썼기에 사회생활 초기에 돈을 쓰고 모으는데 시행착오가 적었다고 생각한다.

  가계부의 장점은 첫째 본인의 소비성향을 파악하여, 지출을 통제할 수 있다. 새는 돈을 금방 캐치할 수 있다. 째, 저축 목표와 계획을 체계적으로 잡을 수 있다. 급여가 정해진 공무원에게 미리 계획을 세울 있다는 건 얼마나 유용한가?  예산 관리를 통해 긴급 상황에 대비할 수 있다(가용자원을 파악하기 쉬워진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결심이 무색하게 가계부를 쓰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다. 그 이유는 째, 정기적으로 기록하는 시간이 걸린다. 요즘에는 가계부 쓰는 앱이나 프로그램이 나와서 그나마 편해졌지만 지출영역을 분류하는 것이 번거로울 때가 많다. 째, 정보가 누락된다. 카드로 쓴 것은 통제가 가능하지만 현금이나 상품권으로 쓴 것은 누락되기 쉽다. 째, 가장 큰 단점이자 가계부를 쓰기 어려운 이유는... 바로 지속적으로 작성하지 않으면 효과가 적다는 것이다.


  가계부를 쉽게 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새해 '절약' 하고 '돈을 모으기'위한 굳은 결심이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조건을 몇 가지 요약해 본다.


첫 번째 1) 선저축 후지출 2) 선대출상환 후지출

   저축할 돈을 뭉텅이로 떼어 놓는다. 그러면 돈의 규모가 작아진다. 돈의 규모가 작아지기 때문에 쓸 돈도 적다. 그럼 가계부 쓰기가 다. 대출도 마찬가지다. 영끌하였다면 이미 월급의 반 이상은 원금상환과 대출이자로 나갈 것이다. 그러면 적금일 또는 대출상환일 이후 통장에 남는 것은 심플한 몇 자리 숫자일 뿐이다. 만약 당신이 가계부를 쓰며 돈을 '모으고' 싶다면 1안과 2안 중 하나만 고르면 된다. 쓸 돈이 적을수록 가계부에 남길 내용도 간단하다. 일단 돈의 크기를 줄이면 가계부를 쓰기가 쉽다.

   그래서 박봉일수록 가계부를 쓰기가 더 쉽다(이렇게 또 처음부터 유리한 위치를 선점합니다)


두 번째, 결제방법 단순화 하기 

   가계부를 쉽게 쓰는 두 번째 방법은 돈이 나가는 통로를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다. 일단 카드가 많으면 정리가 어렵다. 카드사나 은행마다 다른 방식으로 지출 내역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oo페이라고 해서 각 쇼핑몰마다 많은 혜택을 걸고 자체적인 방식으로 돈을 쓰라고 유도한다. 돈이  흩어지면 관리가 어렵다. 관리가 안 되는 돈은 샌다. 돈이 흐르는 허브를 단순화해야 한다. 그래야 가계부를 쓰기 쉽다.


   혹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가계부 어플도 있고, 마이데이터를 이용하면 수입 지출 내역을 한 번에 보여주는데 굳이 이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그것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의 수입과 지출을 한 번에 보여주는 앱과 프로그램이 널린 요즘 왜 서점에는 손으로 직접 쓰는 가계부가 그렇게 많을까? 많은 사람들이 개인이 만든 엑셀 가계부를 굳이 다운로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정리해서 보는 것과 남이 내 것을 보여주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돈을 직접 정리하면 과거의 소비를 생각하며 판단하게 된다. 필요와 욕구를 구분하게 된다.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과정은 직접 정리해 봄으로써 더 잘할 수 있다. 그래서 해주는 것보다 해봐야 좋다.


P.S. 어플이나 마이데이터를 사용한 지출 통제는 가계부 경력 5년 차 이상에게 추천해 본다.


세 번째, 가족수가 적을수록, 할부가 적을수록 가계부 쓰기가 쉽다.

   가계부를 시작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결혼하지 않았을 때다. 미혼이 가계부 쓰기 더 유리한 이유는 돈의 규모가 작기 때문이고, 나의 소비패턴만 파악하면 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쓴 돈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할부가 생기면 지출을 1/n로 나눠 매달 써야 한다. 할부가 많을수록 매달 고정적으로 기록해야 하는 항목이 늘어난다. 또한 할부는 전체 소비의 규모를 일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변동지출로 볼 것인지 고정지출로 볼 것인지 애매해진다-나의 경우 할부를 쓰지 않고 변동지출로 기록한다). 그리고 매달 지출 규모가 커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할부가 적을수록 가계부를 쓰기 쉽다.


네 번째, 과거와 같은 오늘을 살면서 내일이 달라질 거라 생각하지 말 것.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돈'에 대한 고민이다. 비싼 것을 먹지고, 쇼핑도 자주 하지도 않는 데다 남들 다 가는 여행도 거의 안 가는데 왜 돈이 늘 부족한지 토로한다. 나는 조심스럽게 가계부를 써 보라고 한다. 일단 석 달을 써보면 왜 돈이 새는지 어디에 돈을 주로 쓰는지를 알 수 있다고. 가계부 쓰기가 힘들다는 사람에게는 세 달 치 카드 명세서를 모아서 소비내역을 한번 확인하라고 한다. 명세서를 봐도 모르겠다는 사람에게는 마이데이터를 신청해서 대략의 소비지출 상황을 파악하면 도움이 된다고 해준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답한다.

' 나는 '그런 것'과는 잘 안 맞는 것 같아.'

 

   돈문제에 관해서 맞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아니면 돈이 새는 현실을 직시하기 어려운 것일까? 내가 상대의 경제 상황을 다 알 수 없지만 확실하게 아는 것은 있다. 과거와 다름없는 현재를 살면서 미래가 현재와 다를 것이라 기대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새해 다짐 중 돈에 관한 결심은 빠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저축을 시작하겠다. 가계부를 써 보겠다. 돈을 더 모으겠다'라고 다짐한다. 어플을 깔든, 가계부 노트를 구입하든,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의 엑셀 양식을 다운 받든 돈에 관한 새로운 결심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시작은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쓰다 보면 놓치는 부분도 있고, 생각보다 부끄러운 결과에 계속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모든 일은 어렵다. 나쁜 습관은 버리기 어렵고 좋은 습관은 만들기가 어렵다. 반대로 포기하는 건 쉽다.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


  2024년과 다른 2025년을 보내고 싶다면, 돈 걱정을 좀 덜고 미래를 준비하고 싶다면 전과는 다른 마음으로 내가 가진 돈을 파악해 보자. 완벽한 가계부를 찾느라 시간 보내지 말자. 또는 내가 고른 가계부 노트나 프로그램이 나와 맞지 않다는 핑계로 포기하지 말자. 삶의 모습이 같지 않듯 사람마다 맞는 가계부가 다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가계부를 써보고자 하는 마음이고 나와의 약속을 깨지 않으려는 다짐이다.


   당신의 새해 결심이 끝까지 이어지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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