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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사 May 03. 2024

충무로에서 동묘까지 '레트로 공간 기행' (1)

뭉쳐야 잘 사는 집적의 장

충무로는 왜 영화로 유명할까


진양상가 (2024년 4월 촬영)

나의 고향, 서울 충무로. 이곳에 대한 기억은 없다시피 하지만 오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안정된달까. 그런 이곳에서 아침을 맞았다. 어느덧 동이 트기 시작했다. 어젯밤 내린 비에 바닥은 축축하고 아침 특유의 습한 기운도 불어왔다. 구름이 많아 우중충할지언정 어둠이 걷히고 햇볕이 번졌다. 고운 해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말갛게 해야 솟아라. 해야 떠라.

대한극장 (2024년 4월 촬영)

이 일대의 랜드마크는 단연 대한극장. 요즈음에는 유수의 멀티플렉스 영화관들에 밀려 기를 펴지는 못하지만, 한때는 서울의 대표적인 영화관 중 하나였다. 입구에 게시된 상영 시간표를 보니 영화관으로써의 기능은 계속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았으나, 글을 작성하던 시점 폐업 확정 소식이 들려왔다. 영원한 영광은 없듯 이곳도 사라지는구나. 여하튼, 혹시 '충무로'라는 말이 다른 의미로 쓰이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충무로'라는 지명이 영화계를 나타내는 단어로써 사용되는 것인데, 나에게는 고향인 충무로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충무로 하면 영화, 영화 하면 충무로'로 받아들여지는 듯하다. 제목에서 묻듯, 충무로는 왜 영화로 유명할까.


결론부터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일종의 집적이익(集積利益)이다. 동종 혹은 연관 있는 산업들이 한 군데로 모임으로써 발생하는 이익을 집적이익이라 일컫는데, 전자 산업으로써의 서울 용산 일대와 의류 산업으로써의 서울 동대문 일대가 그 예시로 꼽히곤 한다. 충무로도 마찬가지이다. 앞서 본 대한극장, 그리고 명보극장과 서울극장 등 서울 도심 내로라하는 극장들이 모여 있던 충무로. 자연스레 극장을 뒷받침해 줄 영화 관련 산업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충무로라는 공간은 한국의 영화 산업을 대표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일요일의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골목에 사람은 나 말고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저 다시 오면 사라져 있을 것만 같은 경관을 사진으로 담으며 적막한 새벽녘의 골목을 걸었다. 나의 고향인 곳이지만 사실 충무로역 북쪽에 해당하는 이 일대는 내게 친숙하지 않다. 그래도 골목골목을 이리저리 헤집고 길도 잃어 보며 '집적의 장'에 내 몸을 던져 보았다.


을지로에서 느낀 현대 동아시아


망우삼림 (2024년 4월 촬영)

서울 지하철 을지로3가역. '망우삼림(忘憂森林)'이라 적힌 네온사인의 현상소를 찾은 적이 있었다. 글을 쓰며 다시 생각을 해보자면, 현상소가 이곳에 입지하게 된 것에는 일대에 모였던 영화 산업과의 관련성도 한몫했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곳 또한 글로 우려내보기로 하였다.

입구에서 반겨주었던 우편함. 어디에서 구해 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모습은 마치 대만의 것과도 같았다. 실제로 상호인 '망우삼림(忘憂森林)'부터가 대만 난터우에 있는 지명이기도 하니, 이 소품도 일종의 '대만 느낌을 내기 위한 것' 아닐까.

그뿐일까. 천장에 걸린 플립시계에도 눈에 들어왔다. 유독 사람마다 꽂히는 무언가가 있는데, 나에게는 영화 중경삼림(重慶森林)에 등장한 트웸코(TWEMCO) 사의 플립시계가 그런 존재. 이곳이 마치 홍콩이고, 나 자신이 홍콩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달까. 이 시계는 그저 별 볼일 없는 시계일 뿐일지도 모르지만, 홍콩이라는 공간의 모습을 재현하여 그 공간에 가지 않더라도 그곳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존재이다.

위층에서는 '20세기 인쇄 사무실'이라는 이름의 인쇄소가 같이 운영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버블 경제 시기의 일본을 연상케 하는 인테리어를 볼 수 있었고 나는 다시금 당시의 그곳에 있었다. 


우편함은 대만, 시계는 홍콩, 인쇄소 인테리어는 일본, 그리고 창 밖의 풍경은 한국. 흔히 동아시아의 공통 요소로 꼽히는 한자, 불교, 유교, 율령. 이들은 주로 전근대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제는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현대 동아시아라는 공간의 공통된 무언가. 망우삼림은 그 형용하기 어려운 무언가를 인테리어를 통해 표현하였고, 나는 '실제 있을법한' 동아시아의 '어딘가'를 느낄 수 있었다.


다음 글에서는

다시 충무로로 돌아와, 진양상가부터 세운상가까지 걷고, 동묘와 황학동으로 향합니다.


공간기록

살아가는 공간에서 가치를 찾고, 그 유산들을 기록해 나갑니다.


글 철사

사진 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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