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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런호의 물빛 아래에서

by Elizabeth Kim

토버모리는 여름의 끝자락에 있다.


온타리오 북쪽 끝, 브루스 반도의 뾰족한 손끝처럼 휴런호를 향해 뻗어 있는 마을. 겨울에는 눈과 바람만이 머무는 이곳이 여름이면 다시 깨어난다. 도시의 복잡한 공기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너도나도 북쪽으로 향하고, 그 끝에는 늘 토버모리가 있다.


나는 그곳을 여러 번 찾았다. 가족과 함께였고, 한국에서 온 동생들과도 갔고, 엄마와 시누이 부부, 캐나다 친구들과도 갔다. 매번 같은 길을 걸었지만, 한 번도 같은 마음으로 본 적은 없었다. 그곳의 물빛은 언제나 달랐고, 함께한 사람들에 따라 전혀 다른 색으로 내 기억에 남았다.


토버모리를 처음 알게 된 건 김연아 선수가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나다 여행지”로 이곳을 언급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그녀가 사랑한 물빛, 그 빛이 대체 어떤 색인지 궁금했다. 그렇게 시작된 마음의 여정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브루스 반도 국립공원은 토버모리를 품은 커다란 대지와도 같다. 약 4억 5천만 년 전, 석회암이 바다 밑에서 쌓여 만들어진 지형 위로 숲과 절벽, 동굴과 물빛이 함께 존재한다. 그 시간의 흔적이 오늘날의 토버모리를 완성했다. 이곳에는 세 개의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그로토(Grotto), 인디언 헤드 코브(Indian Head Cove), 그리고 꽃병섬(Flowerpot Island). 모두 토버모리의 얼굴을 만드는 대표적인 장소들이다.


항구에서 배를 타고 나가면 맑은 물 위로 두 개의 석회암 기둥이 서 있다. 그곳이 바로 꽃병섬이다. 바람과 물이 수천 년 동안 깎고 다듬어 만든 바위의 형태는 사람의 손으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예술품 같다. 유리처럼 투명한 물에 돌을 던지면, 그 궤적이 선명히 남았다가 천천히 사라진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세상이 잠시 멈춘 듯하다. 물과 바위와 시간, 그 세 가지가 만들어내는 침묵 속에서 마음은 오히려 고요히 흐른다.


브루스 반도 국립공원 안으로 들어서면, 숲길을 따라 그로토로 향한다. 처음에는 단순한 오솔길 같지만, 조금만 걸으면 공기가 달라진다. 절벽이 가까워질수록 바람은 차가워지고, 발밑의 돌길이 단단해진다.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물소리가 조금씩 커지다가, 마침내 시야가 트이는 순간, 눈앞에 그로토가 펼쳐진다. 햇살이 물 위를 스쳐 동굴 안으로 들어올 때, 빛은 물결에 부딪혀 벽을 푸른빛으로 물들인다. 그 빛은 살아 있는 듯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계속 흔들리고, 그로토의 어둠 속을 천천히 감싼다. 그 앞에 서면 인간의 시간은 아주 작고 가볍게 느껴진다.


그로토를 지나 조금 더 걸으면 인디언 헤드 코브에 닿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곳이지만, 내게는 그보다 더 개인적인 의미를 가진다. 가족과 함께 갔던 날, 아이들이 바위 위를 뛰어다녔고, 엄마는 휴런 호숫가에 앉아 물을 오래 바라보았다. “이 물은 바다보다 맑네.”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그날의 물빛은 유리처럼 고요하고 투명했다.


한국에서 온 동생들과 갔던 날은 웃음이 많았다. “언니, 여기 김연아가 좋아한다던 곳 맞지?” 하며 그들은 연신 사진을 찍었다. 햇살이 물 위에 흩어질 때마다 빛이 동생들의 얼굴 위로 번졌다. 호수의 물은 차가웠지만, 그날의 기억은 따뜻했다. 함께 얼마나 깔깔거렸는지...


시누이 부부와 함께 갔던 날은 흐린 하늘 아래였다. 비도 부슬부슬 온 날이었다. 절벽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조금 무서웠지만, 그날의 물빛은 가장 깊고 경이로웠다. 호수는 잔잔했지만, 그 속에는 알 수 없는 힘이 있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오래 물을 바라보았다. 그날 이후로 자연 앞에서 겸손해지는 법을 조금은 배운 것 같다.


그리고 어느 여름, 캐나다에서 가장 친한 친구들과 함께였다. 그로토의 빛이 코브로 흘러들며 온 세상이 유리처럼 반짝였다. 친구가 말했다. “이 물은 참 정직해. 비춘 대로 보여주잖아.”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인디언 헤드 코브의 물빛은 정말 그런 것 같다. 같은 빛이지만,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비춘다.


해가 기울 무렵, 물빛은 천천히 색을 바꾼다. 에메랄드에서 청록, 청록에서 짙은 푸름으로. 사람들은 떠나고, 호수는 다시 고요해진다. 그때 들려오는 건 물결이 바위에 부딪히는 소리뿐이다. 토버모리의 물빛은 사실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건 그 빛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다. 어떤 해에는 설렘이 비쳤고, 어떤 해에는 두려움이, 또 어떤 해에는 고마움이. 어떤 날은 생의 맑음으로, 어떤 날은 그리움의 파도로...


언젠가 또다시 그곳을 찾게 되리라는 것을 난 안다. 물빛 속의 기억이 지금도 나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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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의 한 줄 기록

“토버모리의 물빛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그 빛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 달라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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