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세인트 마리에서 아가와 캐년까지, 그리고 나이아가라로 이어진 인연의
날씨는 흐린편이었지만, 수 세인트 마리(Sault Ste. Marie)의 아침 공기는 유난히 맑았다. 기차역은 이른 시간부터 붉은 기대감으로 빛나고 있었다. 북미에서 가장 사랑받는 기차여행, 아가와 캐년 트레인 투어(Agawa Canyon Train Tour)가 곧 출발을 앞두고 있었다.
온타리오 북부의 가을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여정이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원시림과 깊은 협곡, 그리고 장엄한 단풍이 이 열차가 달려가는 길의 풍경이다. 기차가 출발하자, 도시의 경계는 금세 사라졌다. 차창 밖으로 도시는 어느새 사라지고, 점점 붉어지며, 북쪽으로 향하는 길은 마치 계절의 속으로 들어가는 통로 같았다. 기차는 온타리오 북쪽으로 약 180km, 약 4시간의 여정이다. 숲은 점점 더 빽빽해지고, 붉고 노란 잎들이 마치 불길처럼 주변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승객들 모두가 창밖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기차가 천천히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 그곳은 바로 몬트리올 강(Montreal River). 여러 미디어에서 극찬했고, 토론토 스타 신문에선 “기차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라 묘사했던 바로 그 구간이었다. 강 위에 비친 단풍과 하늘의 색이 섞이며 물 위의 거대한 유화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한 폭의 유화였다.
내 앞자리에 앉은 부부는 나이아가라에서 왔다고 했다. 은빛 머리칼에 여유로운 미소가 흐르고, 말투에는 오래 세월이 만들어낸 평화가 배어 있었다.
“저흰 매년 이 길을 달려요. 이게 우리의 가을 루틴이랍니다.”
그 말이 이상하게 내 마음에 남았다. 그 여정이 훗날 나를 나이아가라의 여행작가로 이끈 인연의 출발점이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기차가 달리며 보여준 풍경은 인간이 닿을 수 없는 차원의 ‘시간의 얼굴’ 같았다. 1억 2천만 년 전 지각 변동으로 생긴 깊이 175미터의 협곡이 지금도 그 형태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가와 캐년은 대자연이 써 내려간 오래된 시 한 구절이었다.
약 4시간의 여정 끝에, 기차는 드디어 Agawa Canyon Park에 도착했다. ‘북쪽의 정원(Northern Garden)’이라 불리는 이곳은 오직 이 기차로만 올 수 있는 자연보호구역이다. 기차에서 내리자 공기가 달랐다. 숲의 향, 젖은 흙냄새, 멀리서 들려오는 폭포의 숨소리. 도시에서는 잊고 살던 감각들이 서서히 되살아났다. 다른 교통수단도, 휴대폰 신호도 없다. 그야말로 자연만이 존재하는 세상. 그래서일까 — 이곳에 발을 내딛는 순간, 세상의 소음이 완전히 사라졌다.
주어진 시간은 단 90분. 거의 뛰다시피 하며 세 곳의 명소를 찾아 나섰다. 가장 먼저 만난 Bridal Veil Falls(브라이덜 베일 폭포)는 햇살에 비친 물안개가 이름대로 면사포처럼 흩날렸고, Black Beaver Falls(블랙 비버 폭포)는 굵은 물살로 계곡을 진동시켰다. 마지막으로 향한 Agawa Canyon Lookout(전망대)... 숨이 차오르는 300개의 계단을 오르면, 그 어떤 사진으로도 담을 수 없는 풍경이었다.
붉고 노란 숲이 겹겹이 이어지고, 멀리서 폭포의 하얀 선이 산의 골짜기를 가로질렀다. 바람에 흩날리는 단풍잎, 멀리서 들려오는 폭포 소리,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산맥의 굴곡. 그 순간, 왜 캐나다의 대표 화가 그룹 “그룹 오브 세븐 Group of Seven”이 이곳을 ‘에덴동산’이라 불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J.E.H. 맥도널드(J.E.H. MacDonald)는 이 계곡을 “리틀 요세미티 Little Yosemite”라 부르며 사랑했다. 그에게,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도 이곳은 ‘북쪽의 낙원’이었다.
기차는 정확히 예고된 시각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출발했다. 그 단호함이 오히려 이 여행의 순수함을 지켜주는 듯했다. 그곳은 자동차도 들어올 수 없고, 기차를 놓치면 머무를 수도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곳에서 보낸 한 시간 반은 더없이 진하고, 더없이 깊었다.
돌아오는 길, 창밖의 풍경은 같은 모습이었지만 내 마음은 달라져 있었다. 슈페리어호의 잔잔한 물결, 기차의 리듬, 그리고 앞에 앉은 부부의 미소가 내 안에서 한 장의 그림처럼 이어졌다. 그날 이후로, 여행의 길 위에서 만난 인연을 글로 남기고 싶어졌다. 아가와 캐년의 하루는 결국 내 인생의 다음 여정을 여는 서문이었다.
✍️ 작가의 메모
출발지: Sault Ste. Marie역
운행기간: 매년 8월 말 ~ 10월 중순 (단풍 절정은 9월 말~10월 중순)
소요시간: 왕복 약 10시간 (편도 4시간, 자유시간 1.5시간)
관광포인트: Agawa Canyon Lookout, Bridal Veil Falls, Black Beaver Falls
팁: 전망대 계단이 가파르므로 편한 신발 필수/기차는 정시에 출발하므로 절대 늦지 말 것
특별한 순간: 몬트리올 강(Montreal River) 위를 건너는 장면 — 토론토 스타 선정 “가장 아름다운 뷰 포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