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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기술전쟁의 포화 속에 던져진 도발적 선언

팔란티어 CEO 알렉스 카프의 『기술 공화국 선언』

by 무딘날

팔란티어의 CEO 알렉스 카프와 니콜라스 자미스카가 공동 저술한 책이 최근 번역서로 출간되었다. <기술 공화국 선언>에는 기술 경쟁이 비대해진 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그들의 도발적 선언이 담겨있다.


그들은 이 책을 통해 현대 서구 사회, 특히 그 심장부인 실리콘 밸리가 직면한 깊은 정체성의 위기를 해부하고,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대담하게 제시한다. 팔란티어를 이끌며 직접 체득한 냉철한 통찰은 책의 모든 페이지를 관통하며, 안일한 믿음에 안주해 온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거리낌 없이 던진다. 그리고 어느샌가 인류 최고의 재능과 자본이 모인 실리콘 밸리가 꿈꾸던 위대한 소명을 잃어버린 채, 사소하고 단기적인 소비주의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렇게 해서 나온 대안이 바로 '기술 공화국'의 재건이다.


그 재건 과정에서 기술 산업이 다시금 국가와의 파트너십을 복원하고, 국방-안보-공공복지와 같은 거대하고 본질적인 문제 해결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고 강력하게 촉구한다. 인상깊은 지점이 많아 『기술 공화국 선언』을 읽으면서 느낀 알렉스 카프의 핵심적인 기술적·산업적 통찰, 이를 바탕으로 한 21세기 기술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그의 거시적이고도 담대한 비전을 간단하게나마 적어보려고 한다. 자세한 내용과 직접적인 그들의 언어를 느끼고 싶은 분들은 책을 사보시길.


물론, 아무래도 방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회사의 대표이다 보니 그들의 생각에 전면적으로 동의하지는 못 할 수도 있다. 본인 또한 일부 동의 못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책의 저자는 국제학적 관점에서 보기에 철저한 현실주의자로, 억지력에 의한 '공포의 균형'을 중심으로 긴장관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안보관이 깔려있다는 점을 알고 읽기를 권장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동의하든 못하든 배울 점은 많다. 책을 직접 읽으면 나의 부족함으로는 담지 못한, 또다른 통찰을 발견할 수도 있다.


현대 실리콘 밸리에 대한 근본적 비판: 길 잃은 거인


저자들의 통찰은 실리콘 밸리에 대한 애정과 실망이 뒤섞인 날카로운 비판에서 시작한다. 그들은 실리콘 밸리가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인재와 막대한 자본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혼과 방향성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말한다. 적기 편하게 '그'라고 그가 주장하기를, 실리콘 밸리의 기원은 본래 국가, 특히 국방 부문과의 긴밀한 협력 속에 있었다. 반도체, PC, 인터넷 등 현대 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기술들은 시장의 논리만으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 국가 안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와 인류 문명을 진일보시키겠다는 개척자들의 사명감이 빚어낸 산물이었다.


그러나 영광스러운 과거와 달리, 현대의 실리콘 밸리는 그 전통을 망각한 채 지극히 편협하고 사소한 영역에 몰두하고 있다고 말한다. 현재의 디지털 시대가 본질적으로 온라인 광고, 쇼핑, 소셜 미디어, 사진 공유 앱과 같이 "사소하고 덧없는" 것들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천재 엔지니어들의 두뇌와 수십억 달러의 자본이 인류의 실존적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어떻게 하면 광고를 한 번 더 클릭하게 만들고, 더 많은 '좋아요'를 받게 할지에 소모되고 있다고 말하며, 이는 단순히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을 넘어 한 시대가 품을 수 있는 야망의 총량이 비극적으로 축소되었음을 의미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실리콘 밸리가 국방, 법 집행, 공교육처럼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논란의 여지가 많은" 어려운 문제들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카프는 구글의 '메이븐 프로젝트' 철회나 마이크로소프트 직원들의 군사 계약 반대 시위를 대표적인 예로 든다. 그는 직원들이 "무기 개발을 위해 입사한 것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동안, 정작 그들의 재능은 사용자의 모든 활동을 추적해 수익화하는 광고 알고리즘을 만드는 데 주저 없이 사용되는 도덕적 모순을 꼬집는다. 이는 기술 엘리트들이 국가 안보라는 공동의 책임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하고, 논란 없는 안전한 소비자 시장이라는 울타리 안으로 도피해버린 현상이다.


나아가 그는 냉전 종식 이후 서구 엘리트들이 "역사는 끝났고, 자유 민주주의가 영원히 승리했다"는 '승자의 오류'에 빠져 지정학적 경쟁의 냉혹한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경쟁자들이 군사 AI와 드론 떼 같은 차세대 무기 개발에 몰두하는 동안, 서구의 기술 기업들은 내부의 이념 논쟁에 빠져 주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기술적 우위가 곧 국가의 생존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망각한 이들의 무지가 서구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무책임한 행위라고 경고한다.



'기술 공화국'의 재건: 기술과 국가의 새로운 파트너십


그는 비판에만 머무르지 않고 '기술 공화국(Technological Republic)'이라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기술의 힘을 다시 국가적 목표와 결합시켜 서구 사회가 직면한 실존적 위협에 대응하자는 담대한 비전이다. 그는 기술 기업들이 단순히 이윤을 추구하는 존재를 넘어, 자신들의 성장을 가능케 한 국가와 사회에 대해 '적극적 의무(affirmative obligation)'를 진다고 주장한다. 실리콘 밸리의 성공이 미국의 교육 시스템, 자본 시장, 법치주의, 그리고 무엇보다 국방력이 제공하는 안정적인 안보 우산 위에서 가능했음을 상기시키며, 국가 안보에 기여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의무라고 역설한다. 이는 단순한 애국심 호소가 아니라, 서구 민주주의 체제가 흔들릴 경우 기술 기업의 혁신 생태계 자체가 붕괴할 것이라는 냉철한 현실 인식에 기반한다.


현재 바이든 행정부 때부터의 미국의 통상 외교 전략이나 기술 안보 기조에서도 그렇지만, 그 또한 21세기는 명백한 '소프트웨어 세기'이며 미래 전쟁의 승패는 AI에 의해 갈릴 것이고 본다. 원자폭탄이 20세기의 힘의 균형을 결정했듯, AI 기반 자율 무기 시스템이 21세기의 억지력을 결정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따라서 미국 국방부는 전통적인 전쟁 수행 조직에서 AI 무기를 설계하고 획득하는 조직으로 신속히 전환해야 하며, 기술 기업들은 '새로운 맨해튼 프로젝트'에 착수하는 수준의 결단으로 이에 동참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주 위험하면서도, 누군가에게는 미치도록 매력적으로 들릴 수 있는 제안이다.


이러한 파트너십은 국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기술이 외면해 온 법 집행, 공교육, 의료와 같은 분야를 '혁신의 사막(innovation deserts)'이라 부르며, 이곳에 기술을 접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뉴올리언스 경찰과의 협력으로 폭력 범죄 네트워크를 와해시킨 사례를 들며 기술의 긍정적 역할을 강조하는 한편, 프라이버시 침해 등을 우려하는 비판 이면에 실제 위험에 노출되지 않은 특권층의 '사치스러운 신념'이 자리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기술의 진입을 막는 것은 결국 가장 취약한 계층에게서 혁신의 혜택을 빼앗는 결과만을 낳을 뿐이라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파괴적 혁신을 위한 조직 문화와 엔지니어링 사고방식


'기술 공화국'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기술 기업의 참여를 넘어, 정부와 사회가 실리콘 밸리의 성공 비결인 '엔지니어링 사고방식'의 핵심 가치를 이해하고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상적인 조직을 중앙 통제 없이 수많은 개체가 협력해 문제를 해결하는 '꿀벌 군집'에 비유한다. 문제와 가장 가까운 말단 개인에게 자율성을 부여하고, 그들의 정보가 조직 전체의 의사 결정에 직접 반영될 때 진정한 혁신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는 중간 관리 계층이 정보 흐름을 왜곡하는 전통적 관료제와는 정반대의 모델이다.


또한, 그는 즉흥 연극 이론을 빌려와 전통적 기업 문화의 병폐인 '지위 숭배'를 비판한다. 그에게 혁신 조직에서의 지위는 고정된 권위가 아니라 목표 달성을 위한 유연한 '도구'에 불과하다. 경직된 위계가 아닌 유연한 구조 속에서 최고의 아이디어가 승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리더는 순응하는 직원이 아니라, 기존 질서에 의문을 제기하고 때로는 상부 지시에 불복종하는 '건설적 불복종'을 감행하는 이단아들을 포용해야 한다.


그는 "호감은 감옥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비판과 갈등을 감수할 용기야말로 혁신의 전제 조건임을 강조한다. 이 모든 사고의 핵심에는 '가차 없는 실용주의'다. 소프트웨어는 '실행되거나 실행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이며, 어떤 변명으로도 실패를 가릴 수 없다. 이처럼 결과에 기반한 현실주의는 이념이나 형식보다 '작동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기게 만들며, 관념적 논쟁 대신 구체적인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문화를 낳는다.



서구 엘리트의 신념 상실과 그 결과


궁극적으로 카프의 기술·산업적 통찰은 서구 사회, 특히 교육받은 엘리트 계층이 겪고 있는 정신적·철학적 위기에 대한 깊은 진단으로 귀결된다. 그가 보기에 실리콘 밸리의 방향성 상실은 더 큰 문화적 병리 현상의 파편에 불과하다. 그는 1960년대 이후 확산된 서구 문명에 대한 자기 비판과 해체주의가 기존의 결함 있는 서사를 무너뜨렸지만, 그 자리를 채울 새로운 긍정적 공동체 서사를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고 분석한다. 그 결과, 교육받은 세대는 무엇에 '반대'하는지는 알지만,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는 답하지 못하는 '신념의 포기' 상태에 이르렀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공동의 국가적 프로젝트라는 거대한 서사가 사라진 빈자리를 채운 것은 다름 아닌 '시장 허무주의'였다. 어떤 기술을 개발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치 판단이 사라지자, 오직 시장에서 수익을 낼 수 있는가 하는 단 하나의 척도만 남게 되었다. 이와 같은 실패가 한 세대의 야망 자체를 축소시켰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구호는 공허해지고 실제로는 가장 손쉬운 길만을 택하게 만들었다고 꼬집는다.



마무리하며...


결론적으로 보면, 알렉스 카프가 제시하는 '기술 공화국'은 단순히 뜬구름 잡는 제안이 아니다. 서구 사회가 잃어버린 '신념'과 '공동의 목적'을 되찾기 위한 문화적, 철학적 재무장을 요구하는 '일종의 선언'이다. 기술이 국방과 안보에 적극적으로 기여해야 한다는 주장, 엔지니어링의 실용주의를 사회 전반에 확산시켜야 한다는 주장,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유된 서사를 다시 구축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현대 엘리트 문화의 안일함에 대한 도발이며 도전이다.


그에게 기술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다. 기술은 우리가 어떤 미래를 지향할 것인지에 대한 더 큰 질문에 답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며, 그 도구를 올바르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의 신념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기술 공화국』을 관통하는 강력한 핵심 메시지다. 이 책은 기술과 사회의 미래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에게 불편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성찰의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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