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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과 ‘쉬었음’ 청년의 현실적 딜레마

한국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고통스러운 질문

by 무딘날

모순 속에 드러난 한국 경제의 민낯


2025년 한국 사회는 두 개의 상이한 경제 뉴스가 공존하는 역설적 풍경을 목도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의 시행을 두고 산업계의 존립이 위협받는다는 절박한 외침이 터져 나온다. 원청의 책임 강화와 파업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제한이 기업 경쟁력을 훼손하고 투자를 위축시켜 결국 일자리를 소멸시킬 것이라는 주장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통계청의 암울한 발표가 이어진다. 일할 의지조차 접어둔 채 ‘쉬었음’으로 분류된 청년 인구가 사상 최초로 50만 명을 돌파했다. 말이 쉬었음이지, 사실 노동으로부터 퇴출당한 것이다. 이는 ‘양질의 일자리 부족’과 ‘구시대적 노동 구조’에 대한 청년 세대의 조용한 파업(Quiet Quitting)이자, 미래 성장 동력의 심각한 침식을 예고하는 적색경보다.


언뜻 무관해 보이는 이 두 현상은 사실 동전의 양면처럼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 기업의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 보호해야 한다는 바로 그 구조가, 청년들이 ‘쉬었음’을 선택하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란봉투법에 대한 찬반 논쟁은 단순히 노사 간의 힘겨루기를 넘어, 한국 경제가 저비용·하청 구조에 기반한 낡은 성장 모델을 고수할 것인지, 아니면 고통스러운 체질 개선을 통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노란봉투법: ‘책임’의 재구성과 ‘경쟁력’의 항변


노란봉투법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노동조합법 제2조 개정을 통해 ‘사용자’의 정의를 확대하는 것이다. 기존에는 직접적인 근로계약을 맺은 사업주에게만 사용자성이 인정되었으나, 개정안은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까지 그 범위를 넓혔다. 이는 다단계 하청 구조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원청 기업도 하청업체 노조의 교섭 상대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둘째, 제3조 개정을 통해 폭력이나 파괴 행위 등 명백한 불법을 제외하고, 노동조합의 정당한 쟁의행위에 대한 기업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것이다.


법의 당위성: 기울어진 운동장의 정상화


법 개정을 지지하는 측은 이것이 비정상적인 원하청 관계를 정상화하고 헌법에 명시된 노동 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그간 수많은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근로조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원청과는 대화조차 할 수 없었다. 2022년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조 파업 사태는 이러한 구조적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하청 노조는 임금 30% 인상을 요구했지만, 정작 키를 쥔 원청(당시 대우조선해양)은 “교섭 당사자가 아니다”라며 대화를 거부했고, 하청업체는 “권한이 없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결국 51일간의 극한 파업으로 이어졌고, 파업 이후 하청업체는 노조를 상대로 47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려 했다. 이는 사실상 노조 활동 자체를 위축시키거나 파괴하려는 ‘전략적 봉쇄 소송’(SLAPP)의 성격이 짙었다.


CJ대한통운 택배기사, 현대제철 사내하청 노동자들 역시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원청의 교섭 의무를 인정받기까지 기나긴 법적 투쟁을 거쳐야 했다. 이처럼 ‘진짜 사장’을 교섭 테이블로 불러내고, 노조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손해배상 폭탄을 막는 것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는 과정이라는 것이 지지 측의 핵심 논리다. 이는 최근 EU가 시행한 ‘공급망 실사지침(CSDDD)’과도 맥을 같이 한다. 이 지침은 기업이 자사 공급망 전반에서 발생하는 인권 및 환경 문제에 대해 실사하고 책임질 의무를 부과한다. 즉, 원청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것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것이다.


경영계의 반론: 예측 불가능성과 비용 증가


반면, 경영계는 노란봉투법이 한국 경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판도라의 상자’라고 강력히 반발한다. 우선 ‘실질적 지배력’이라는 사용자성의 기준이 모호하여 법적 안정성을 크게 해친다는 점을 지적한다. 모든 하청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할 경우, 기업은 연중 내내 예측 불가능한 노사 갈등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고, 특히 해외 자본의 한국 시장 기피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실제로 GM 한국사업장은 법안 통과 시 한국 사업의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손해배상 청구 제한 역시 재산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소지가 있으며, 불법 파업을 조장하여 산업 현장의 무질서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한상공회의소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기업의 89%가 노란봉투법이 기업 및 국가 경쟁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응답했다. 일부 민간 연구기관은 법 시행 시 매년 수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GDP가 수조 원 감소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이들의 논리는 결국 ‘비용’으로 수렴된다. 원청의 책임이 커지는 만큼 인건비, 교섭 비용, 파업 리스크 관리 비용 등이 증가하고, 이는 고스란히 제품 가격에 전가되거나 투자 여력을 감소시켜 기업의 생존 자체를 위협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현재의 원하청 생태계가 지난 수십 년간 한국 제조업의 성공을 이끈 효율적인 시스템이었음을 강조하며, 급격한 변화가 가져올 충격을 우려한다.


‘쉬었음’ 청년: 침묵으로 외치는 구조적 절망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는 동안, 한국의 미래 세대는 노동시장으로부터 조용히 퇴장하고 있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15~29세 청년층 인구 중 특별한 이유 없이 구직 활동도, 교육도 받지 않고 ‘그냥 쉬었다’고 답한 인구는 50만 명을 넘어섰다. 이는 청년 실업률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 ‘그림자 노동력’으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이들은 왜 노동을 거부하는가? 단순히 개인의 나태함이나 높은 눈높이 탓으로 치부할 수 없는 구조적 원인이 자리하고 있다.


일자리의 질: ‘갈 수 있는 곳’과 ‘가고 싶은 곳’의 괴리


청년들이 노동시장을 외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양질의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인협회가 2025년 실시한 미취업 청년 인식 조사에 따르면, 구직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양질의 일자리 부족(30.0%)’과 ‘경력직 위주의 채용 구조(20.4%)’를 꼽았다. 이들이 생각하는 양질의 일자리 조건은 높은 급여(31.8%)뿐만 아니라 고용 안정성(17.9%), 일과 삶의 균형(17.4%), 그리고 성장 가능성 등 복합적인 요소를 포함한다.


문제는 한국의 노동시장이 극심한 이중구조(Dual Labor Market)를 특징으로 한다는 점이다. 대기업·공공부문의 1차 시장은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과 고용 안정성, 발전 기회를 제공하지만 진입 장벽이 매우 높다. 반면, 중소기업·하청업체·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2차 시장은 저임금, 고용 불안, 열악한 근무 환경, 불투명한 미래라는 특징을 공유한다. 청년들은 이 구조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 한번 2차 시장에 진입하면 1차 시장으로의 이동이 거의 불가능한 ‘낙인 효과’를 두려워하며, 차라리 구직 기간을 연장하거나 ‘쉬었음’을 택하며 1차 시장 진입을 위한 스펙 쌓기에 몰두한다. 이는 비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라, 생애 소득과 경력 경로를 고려한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의 결과다.


구시대적 노동 구조: ‘성장’이 없는 ‘노동’의 거부


MZ세대로 대표되는 현 청년 세대는 직업관에 있어 기성세대와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이들은 단순히 생계 수단을 넘어 직장을 자아실현과 개인적 성장의 장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2025년 한 연구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MZ세대 직장인의 75%가 ‘개인의 성장 기회 제공’을 중요한 직장 선택 기준으로 꼽았다. 수직적이고 경직된 위계 문화, 불합리한 의사결정 과정, 개인의 성과보다는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낡은 기업 문화는 이들에게 참을 수 없는 ‘구시대적 노동 구조’로 인식된다.


이러한 ‘구시대성’은 원하청 구조의 하층부로 갈수록 더욱 심화된다. 원청의 갑작스러운 단가 인하 압력, 불투명한 물량 배분, 위험 업무의 전가 등은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더욱 열악하게 만든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장기적인 경력 개발이나 직무 만족을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청년들이 기피하는 것은 ‘중소기업’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그 안에 내재된 ‘성장의 부재’와 ‘불공정한 대우’인 것이다. ‘쉬었음’ 청년의 증가는 바로 이 불공정하고 희망 없는 노동 구조에 대한 세대적 거부권 행사라 할 수 있다.


딜레마의 교차점: ‘비용 절감’이 ‘미래 비용’을 낳다


여기서 노란봉투법 논쟁과 ‘쉬었음’ 청년 문제는 하나의 지점에서 만난다. 경영계가 ‘경쟁력’의 원천이라며 지키고자 하는 ‘효율적인’ 원하청 구조가, 바로 청년들이 거부하는 ‘질 낮은’ 일자리를 양산하는 시스템이라는 사실이다. 원청은 핵심 업무와 R&D에 집중하고, 위험하고 부가가치가 낮은 생산 공정은 외부 하청업체에 맡겨 비용을 최소화한다. 이 과정에서 절감된 비용은 원청의 이익으로 귀결되지만, 그 부담은 고스란히 하청업체와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전가된다.


이 구조 하에서 하청업체는 원청에 대한 극심한 종속성으로 인해 독자적인 기술 개발이나 인적 자원 투자에 나설 여력이 없다. 오직 인건비 절감을 통해서만 생존할 수 있기에,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보상이나 성장 기회를 제공하기 어렵다. 이것이 바로 청년들이 외면하는 2차 노동시장의 현실이다.


결국, 노란봉투법에 대한 경영계의 반대는 ‘단기적 비용’ 증가에 대한 우려에 기반한다. 그러나 ‘쉬었음’ 청년의 확산은 현재의 저비용 시스템이 야기하는 훨씬 더 거대한 ‘미래 비용’을 보여준다. 노동력의 질적 저하, 내수 시장 위축, 잠재 성장률 하락, 심화되는 사회적 불평등과 갈등 비용은 당장의 인건비 상승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시적 위협이다.


따라서 두 현상이 동시에 제기되는 것은 모순이 아니라, 기존 성장 모델의 한계가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알리는 필연적 신호다. 단기적인 비용 경쟁력에만 매몰되어 노동 구조의 근본적인 개혁을 외면한다면, 기업은 숙련된 노동력을 구하지 못해 경쟁력을 잃고, 사회는 활력을 잃어 침체하는 공멸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향한 패러다임 전환


노란봉투법과 ‘쉬었음’ 청년의 딜레마는 한국 경제에 고통스러운 선택을 요구한다.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었던 저비용·하청 기반의 효율성 모델을 계속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공정한 분배와 사람에 대한 투자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지속가능한 경쟁력’ 모델로 전환할 것인가?


단기적으로 노란봉투법의 시행은 일부 기업에게 비용 증가와 노사 갈등의 불확실성을 안겨줄 수 있다. 법의 세부적인 내용과 적용 범위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정교한 보완 장치가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더 큰 틀에서 이 법이 지향하는 ‘원청의 책임 강화’와 ‘공정한 교섭 구조’는 한국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원청이 공급망 전체의 노동 환경과 인권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될 때, 무분별한 비용 절감 압박은 줄어들고 상생을 위한 협력이 강화될 수 있다. 이는 하청업체의 경영 안정을 돕고, 이는 다시 소속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의 단초를 제공한다. 이러한 변화는 2차 노동시장의 질을 점진적으로 개선하여 청년들이 ‘쉬었음’ 대신 ‘일터’를 선택할 유인을 만들 수 있다.


물론, 법 개정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대·중소기업 간의 공정한 거래 질서 확립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 신산업 분야에서의 양질의 일자리 창출, 그리고 변화하는 세대의 눈높이에 맞는 기업 문화 혁신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쉬었음’ 청년 50만 시대의 경고는 명확하다. 미래 세대가 참여하고 싶지 않은 경제 시스템은 지속될 수 없다. 노란봉투법 논쟁을 소모적인 이념 대결로 끝낼 것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낡은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사람 중심의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나아가는 사회적 대타협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누군가는 ‘청년을 위해서’라는 명목 아래, 산업들이 떠나가면 더 가난한 나라에 살게 될 것이라며 미래세대를 위해 노란봉투법은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결국, 질 낮은 일자리를 경쟁력 삼아 인력을 갈아 넣는 현실에 좌절한 청년층들에게 ‘그게 한국의 경쟁력이니 거기서 일해야 할 놈은 눈높이 낮추고 공장에나 들어가라’하는 것과 별 다를 바가 없는 말이다. 그런 마인드가 과연 청년층에게 좋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지 근본적인 의문을 남긴다. 툭 까놓고 말해서, 그런 사람들이 말하는 그 '한국의 경쟁력인 일자리'에 자기 자식을 흔쾌히 밀어넣을 수 있는 부모가 있는가? 어차피 자기 자식은 그런 곳에서 일 안 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 막대한 책임을 누군가에게 미루면서 '미래 세대' 운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노란봉투법이 미비한 점이 있고 성급하다는 부분에 일견 동의하면서도, 그들의 방어논리가 품고있는 그 모순을 스스로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현재도 수많은 제조업의 질낮은 일자리를 40대 이상인 세대들이 지탱하고 있는데, 그 구조를 변혁하지 못하고 더 시간을 보낸다면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청년세대 유입 없이 나이가 차서 갈 곳 없는 노동력을 착취하는 구조로 이어가거나, 해외 저임금 노동력을 이주해서 받을 수 밖에 없다. 이게 정말 미래세대를 위한 부유한 나라로 나아가는 길일까. 사실 참 어려운 문제라 선뜻 대답하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더욱, 너무나 손쉽게 자신들이 답이라고 얼굴을 내비치는 인간들이 갑갑하게 느껴진다. 그들의 현재를 담보로 한 위태로운 경쟁력이 과연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최우선의 가치인지, 이제는 우리 모두가 답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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