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 재정'과 '실용적 규제 완화'를 결합한 ‘강한 정부’
12월 11일 진행된 기획재정부의 2026년 업무보고는 이재명 정부의 경제 철학이 구체적인 정책 로드맵으로 구현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이날 보고와 대통령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새 정부의 경제 기조는 크게 '확장적 재정 운용', '실용주의적 규제 혁신', 그리고 '국가 기여에 기반한 이익 공유'라는 세 가지 축으로 요약된다. 이는 시장의 자율 조정 기능에 의존하기보다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조정을 통해 저성장과 양극화라는 이중고를 돌파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1. 재정 운용의 전환: 감세에서 '지출 중심'으로
가장 뚜렷한 변화는 재정 정책의 기조 전환이다. 이 대통령은 현재 0.9% 수준으로 하락한 잠재성장률을 지적하며, 내년도 성장률 목표(1.8%+α) 달성을 위해 당분간 확장 재정이 불가피함을 명확히 했다. 주목할 점은 물가 관리와 경기 부양의 방법론이다.
기존의 유류세 인하 등 세금 감면 방식에 대해 대통령은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세금 감면은 고소득층에게 혜택이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대신 세수는 원칙대로 확보하되, 이를 바우처나 환급 형태로 취약계층에게 직접 지원하는 '재정 지출' 방식을 주문했다.
이는 정부가 분배의 키를 쥐고 양극화 해소에 직접 개입하겠다는 의지다. 향후 기재부의 정책은 세제 혜택보다는 재정 지출의 효율성을 높여 소득 재분배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재설계될 것으로 전망된다.
2. 규제 혁신의 실용주의: 금산분리 완화와 경제 형벌의 행정 제재화
산업 정책 측면에서는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경계를 넘는 '실용주의'가 확인되었다. 특히 첨단 기술 분야의 대규모 투자 유치를 위해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원칙의 예외를 적용하겠다는 방침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자본 조달의 애로사항을 해소하여 기업 투자를 활성화하겠다는 의도로, 이념적 원칙보다 산업 육성이라는 실리를 우선시한 결정이다.
또한, 기업 활동 중 발생하는 위법 행위에 대해 형사 처벌(징역 등)보다는 경제적 제재(과징금, 과태료)를 강화하는 '경제 형벌 합리화'를 지시했다. 이는 경영 리스크를 낮춰 투자를 유도하는 동시에, 불법 이익 환수라는 경제적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접근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형사 처벌의 불확실성은 줄어들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이나 고액 과징금 등 금전적 책임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3. 새로운 민관 협력 모델: 전략수출금융기금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기조는 '전략수출금융기금' 구상에서 구체화되었다. 이는 국가의 외교력, 재정 지원(ODA 등)이 투입되어 달성한 대규모 해외 수주나 수출 성과에 대해, 그 이익의 일부를 기금으로 환수하는 제도다.
이 대통령은 "국민 세금이 투입된 성과를 특정 기업이 독점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이는 기업의 성과를 인정하되, 공적 자원이 투입된 부분에 대해서는 사회적 환원을 제도화하겠다는 것이다. 향후 대형 방산 수출이나 인프라 수주 시, 기업의 수익성 분석에는 '기금 출연'이라는 새로운 변수가 추가될 것이며, 이는 정부와 기업 간의 새로운 이익 배분 모델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4. 결론 및 전망
이번 업무보고를 통해 확인된 이재명 정부의 경제 정책(J-Nomics)은 '강한 정부'를 지향한다. 정부가 재정을 풀어 성장의 마중물을 붓고, 규제는 과감히 풀되, 그 과실은 제도적으로 환수하여 재분배하겠다는 구조다.
향후 과제는 재정 건전성 관리와 정책의 속도다. 확장 재정으로 인한 국가 채무 증가 우려를 불식시키면서, 잠재성장률을 얼마나 빠르게 반등시킬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기재부를 향해 "속도가 생명"이라고 강조한 대통령의 주문은, 이러한 정책 전환이 가시적인 경제 지표 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조급함과 절박함의 표현으로 읽힌다. 2026년은 이 새로운 경제 실험의 성패를 가늠할 분수령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