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일 얇아지는 월급봉투가 오로지 세금 탓이라는 매일경제

매일 얄팍해지는 경제지와 전문가들의 경제논리.

by 무딘날

"월급 60만 원 올랐는데 세금 떼니 20만 원이더라."

최근 매일경제를 위시한 경제지들이 이 자극적인 문구를 대서특필하며 '세금 공포'에 불을 지폈다. 기사는 물가는 오르는데 과세표준은 그대로라 사실상의 증세가 이뤄지고 있다는 ‘브래킷 크리프(Bracket Creep)’를 문제 삼았다. 여기에 일부 경제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거들고 나섰다. 그들은 "한국의 조세부담률 상승 속도가 OECD 1위"라며, 한국이 마치 재정위기를 겪은 그리스보다 더 가혹한 '세금 지옥'이 된 것처럼 데이터를 흔들어대며 선동하고 있다.


월급에서 원천징수해가는 근로소득세와 사회보험료가 5.9% 오른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분노하지만, 정작 5년새 내 월급이 고작 3.3% 오른 건 ‘어쩔 수 없는 경제 현실’이라며 받아들인다. 이 기이한 이중잣대가 지금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


물론, 이들의 주장에 틀린 팩트는 없다. 하지만 '맞는 말'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진실'인 것은 아니다. 매일경제가 깔아놓은 판과 전문가들이 들이미는 통계는, 문제의 절반(세금)만 과도하게 부풀려 나머지 절반의 거대한 진실(기업의 탐욕)을 덮어버리는 전형적인 '눈 가리고 아웅' 식 프레임이기 때문이다.


먼저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정부는 지난 수년간 인플레이션이라는 파도에 무임승차했다. 2008년 이후 15년 가까이 소득세 과세표준 구간이 사실상 고정된 탓에, 물가 상승으로 명목 소득이 늘어난 근로자들이 더 높은 세율 구간으로 밀려 올라가는 현상은 분명 존재한다. 이는 정부가 아무런 정치적 비용 없이 세수를 늘려온 ‘부작위(不作爲)에 의한 증세’이자 명백한 직무유기다. 유리지갑을 가진 중산층이 이에 분노하며 과세표준 현실화를 요구하는 것은 납세자로서 당연한 권리다.


그러나 경계해야 할 것은 이 정당한 분노가 기득권의 입맛대로 악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중산층의 불만을 이용해, “한국의 조세부담률 증가 속도가 그리스보다 빠르다”는 자극적인 그래프를 들이민다. 하지만 이는 경제 성장의 맥락을 거세한 통계의 착시다. 지난 5년간 한국의 세수가 급증한 주된 원인은 직장인의 월급을 쥐어짜서가 아니라, 부동산 폭등에 따른 자산세 증가와 반도체 호황기 대기업들이 낸 법인세가 자연스럽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성장하는 국가의 ‘자연적 세수 증대’와 국가 부도로 인해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세금을 올린 ‘그리스’를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경제학적 오류를 넘어선 의도적인 곡해다.


특히 한경협(전 전경련)이 내세운 “근로소득세가 연평균 9.3% 오를 때 임금은 3.3%밖에 안 올랐다”는 통계는 악의적인 숫자 놀음이다. 여기엔 치명적인 '평균의 함정'이 숨어 있다. 한국의 소득세는 상위 10%가 전체의 70% 이상을 부담하는 구조다. 지난 몇 년간 IT 업계의 연봉 전쟁과 대기업 성과급 잔치로 고액 연봉자들의 소득이 늘어 낸 세금이 폭증하면서 전체 평균을 끌어올린 것이다. 억대 연봉 임원의 세금이 늘어난 통계를 들고 와서, 왜 평범한 대리의 세금 부담이 9%나 폭등한 것처럼 둔갑시키는가. 게다가 세수 총액의 증가는 코로나 이후 고용 회복으로 ‘세금 내는 사람(취업자)’ 자체가 늘어난 효과가 큰데, 이를 마치 개인의 세금 부담이 가중된 것처럼 포장하는 건 명백한 기만이다.


(-> 그렇다면 한국이 하위층은 면세로 세금 안내고 복지만 누리고, 모든 세 부담을 부유층이 지는 위선적인 사회주의 국가인 것인가? 그건 임금 시장 자체를 왜곡되게 형성시켜놓은 기업의 책임도 분명히 존재한다. 애초에 면세되는 하위 33%는 임금수준이 ’기초생활비용을 제외하면 세금을 낼 형편조차 안 되는 최저생활수준‘이다. 33%라서 감이 안 올 수 있지만, 연 2000만원 수준의 임금을 받으며 기업의 최하층에서 톱니바퀴를 하는 인구가 그만큼에 해당한다. 상위 10%가 최소 연봉 7-8천 이상의 임금수준의 근로자로 평균 연봉 1억 중반 정도에 해당한다.


결국 이 말은 사회적으로 임금 격차가 그만큼 심각하게 벌어져있음을 의미한다. 일자리의 질적 불균형이 심각한 상황을 극복하지 않은 채로 상위 10% 중심으로만 임금 시장이 활성화되니 당연히 세 부담이 몰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만약 세 부담을 공평하게 하자면서 저 33%에게 세 부담을 강화하면 결국 사회적으로 그 인구는 죽음으로 내몰릴 수 밖에 없고, 그렇다면 사회의 최하층에서 생산성을 담당하던 고리가 무너져서 결국은 위도 무너지게 된다. 그런데도 이게 무책임한 이상론, 극단적인 사회주의라고 말할 것인가? 오히려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게다가 이 기간 연말정산 신고 인원은 2019년 1,917만 명에서 2023년 2,053만 명으로 늘었다. 고용 회복으로 세금을 내는 ‘머릿수’ 자체가 늘어 세수 총액이 커진 것을 두고, 마치 개개인의 세금 부담이 9%나 폭등한 것처럼 포장하는 건 명백한 기만이다. 백번 양보해서 증가율이 높다고 치자. 여기엔 ‘기저효과’의 착시가 숨어 있다. 월 13만 원 내던 세금이 7만 원 오르면 증가율은 50%가 넘지만, 월 350만 원 받던 월급이 60만 원 오르면 증가율은 상대적으로 낮아 보인다. 본질은 비율(%)이 아니라 내 손에 쥐어지는 절대 액수다. 세금이 7만 원 늘어나는 것이 문제인가, 아니면 기업이 역대급 수익을 내고도 내 월급을 물가 상승분만큼 안 올려줘서 실질 소득을 갉아먹는 게 문제인가. 작은 파이(세금)의 증가율을 침소봉대해 큰 파이(임금)의 정체를 숨기려는 전형적인 ‘통계 마사지’에 속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진짜 주목해야 할 진실은 ‘세금’이라는 연막탄 너머에 있다. 세금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과연 우리의 살림살이는 나아질까? 근본적인 문제는 기업이 벌어들이는 이익과 노동자가 받는 임금 사이의 괴리가 역대급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거래소(KRX) 자료에 따르면, 2024년 3분기 누적 코스피 상장사의 영업이익은 155조 6,463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4.5%나 폭증했다. 기업의 곳간은 반도체 수출 호조로 넘쳐나는데, 정작 근로자들의 지갑은 쪼그라들었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물가를 반영한 실질임금은 2023년 1.1% 감소했고, 2024년 1분기에도 1.7% 감소하며 뒷걸음질 쳤다.


지금의 상황은 ‘그리드플레이션(탐욕 인플레이션)’의 전형이다. 기업들은 원자재 가격 상승을 이유로 제품 가격을 올리면서, 그 혼란을 틈타 마진율까지 은근슬쩍 높였다. IMF와 유럽중앙은행(ECB)조차 최근 인플레이션의 상당 부분이 기업의 과도한 이윤 추구에서 비롯되었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언론과 재계는 “임금을 올리면 물가가 또 오른다”는 낡은 악순환 논리를 내세우며 노동자에게만 고통 분담을 강요한다. 물가 상승의 혜택은 기업이 독식하고, 그 비용은 노동자의 실질임금 삭감으로 전가하는 구조가 고착화된 것이다.


더욱 악질적인 것은, 그 소득 격차에 따른 불평등은 가난의 원인이 아니라며 현실을 호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매일경제는 이 다음 지면에서 “부의 양극화는 소득이 아니라 부동산 때문”이라는 논조를 폈다. 이는 “소득 격차는 별거 아니니 기업한테 돈 더 달라고 하지 말고, 집값 못 잡은 정부 탓이나 하라”는 고도의 책임 전가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산 격차는 소득 격차에서 잉태된다. 고소득이 있어야 대출(Leverage)을 일으키고, 그 돈으로 부동산을 사서 자산을 불린다. ‘월급 차이’가 ‘대출 한도의 차이’를 만들고, 그것이 결국 ‘아파트 평수의 차이’를 만든 것이다. 소득 격차를 부정하는 것은 불은 보지 않고 연기만 탓하는 꼴이다.


결국 매일경제와 전문가들이 ‘세금 폭탄론’을 그토록 강조하는 속내는 뻔하다. 중산층의 분노를 정부로 돌려 법인세 인하와 상속세 완화 같은 ‘부자 감세’의 명분으로 삼고, 동시에 기업이 져야 할 ‘임금 인상의 책임’을 정부의 조세 정책 문제로 치환하려는 것이다. “정부가 세금을 깎아주면 실수령액이 늘어날 테니 회사는 임금을 덜 올려줘도 된다”는 논리는 기업 입장에서 최상의 방패막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명해져야 한다. 정부와 기업, 양쪽 모두에게 책임을 물어야 내 지갑을 지킬 수 있다. 정부를 향해서는 비겁한 자동 증세를 멈추고 물가에 맞춰 과세 구간을 현실화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통계 장난으로 본질을 호도하는 언론과 전문가들을 향해 일갈해야 한다.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면 그에 걸맞게 물가 상승분 이상의 임금을 지불하는 것이 시장의 정의다. 세금 20만 원을 깎는 것에만 매몰되어 정작 받아야 할 정당한 몫을 놓친다면, 우리는 결국 기업의 이익을 지켜주기 위해 정부와 싸우는 대리전의 병사로 전락할 뿐이다.


기업의 본질은 상법에도 명시되어있듯, 이윤 추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에 대한 분배로까지 이어진다. 사라진 월급의 진짜 범인은 세무서가 아니라, 분배를 거부하는 기업의 탐욕 속에 숨어 있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19화1,450원의 충격: 왜 원화만 홀로 무너졌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