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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옭아매는 일

나 돌아갈래~ 승진 전으로!

by 나얀



* TMI: 제가 다니는 회사에선 승진해도 유의미한 월급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동 문제 등등 잃는 것이 더 많아 가까운 선배들은 승진을 뜯어말리는 분위기입니다. 그런데도 굳이 굳이 시험까지 봐가며 승진한 바보 나야 나…




처음으로 내 아이를 만난 순간, 두려움에 떨었었다. 부서질 듯 작은 몸을 한 아이가 내 품으로 왔을 때, 그 연약함에 숨이 막혔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기는 원래 이렇게 작은 건가?'


신생아를 한 번도 본 적 없었기에, 내 서툰 손길이 이 작은 아가를 다치게 할까 봐 두려웠다.


고백하자면, 사람들이 말하는 '폭발하는 모성애'는 내게 찾아오지 않았다. 처음엔 회음부 통증, 그다음엔 젖몸살에 휘말려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특히 젖몸살은 진통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진통은 끝이라도 있었지만, 젖몸살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고통이었으니까.


조리원에서 혼자 밤중에 일어나 유축할 때마다 나를 옭아매는 온갖 잡생각들이 밀려들었다. 그중 최고봉은 '승진한 나와 우리 가족의 미래'였다.




나는 임신 중에 시험을 봐서 승진했다. 그리고 남편과 같이 다니던 지사를 떠나, 멀리 떨어진 도시의 본사로 발령받았다. 그때는 '해낼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난 특별하다고, 모든 걸 다 가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무슨 근자감이었는지..

물론 아이를 위하는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고, 오로지 내 커리어를 위한 선택이었다. 한마디로, 모성애라곤 전혀 없는 결정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몇 달 뒤 복직을 하면 이 어리디 어린 아이들을 두고 그 먼 곳으로 가야 한다. 왜? 외국어 좀 쓰자고, 내 커리어를 위해서. 아이를 데려갈 수도 없다. 거기서 집을 또 구할 여건이 안 된다.



유축을 할 때도, 샤워를 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쉬거나 자려고 누웠을 때도... 오로지 일요일 저녁이면 아이를 떼어 놓고 혼자 본사로 가는 내 모습과, 그런 나를 보며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승진한 것이 진심으로 후회돼서. 아이에게 너무 미안해서. 이렇게 모성애가 부족한 사람이 엄마라는 게 너무너무 미안해서.




물론 '주말 엄마' 생활은 아직 경험해보지 않았다. 나도 아이들도 남편도, 생각보다 괜찮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중립적인 생각은 호르몬 때문인지 전혀 들지 않았다. 사실 지금도 쉽게 들지 않는다.


첫째가 태어난 이후로 단 한순간도 승진을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다. 복직하기 전날까지도, 복직하고 회사를 다니면서도 그렇지 않을까.


당연히 이직도, 퇴사도 고민해 봤다. 하지만 빚 때문에 고정 수입이 필요한 우리 가족에게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래서, 나를 옭아매는 이 일과 씨름하고 있다.




첫째뿐 아니라, 둘째가 태어나고 커가는 모습을 볼수록 아이들에게 더 미안했다. 복직하면 이 예쁜 모습을 매일 보지 못할 거라는 게 아쉽기도 했다. 그래서 (나를 갈아 넣어..) 첫째가 40개월이 될 때까지, 그러니까 불과 몇 달 전까지 두 아이 모두 가정보육을 했었다. 연년생 동생은 아직 집에 있지만 26개월이 되는 다음 달부터 기관에 간다.


이렇게 나의 자유를 줄여가면서라도, 엄청난 육체의 피곤함과 고됨을 (미안한 마음에서 비롯된) 정신력으로 이겨내며, 아이들과 함께하는 순간을 더 많이 만들고 온전히 즐기고 싶었지만.. 미안함과 걱정이 항상 고개를 내민다.


내가 한 선택이 과연 장기적으로 옳은 것이 될지,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지, 이 선택으로 나와 우리 가족의 인생이 어떻게 바뀔지... 이 모든 질문들이 나를 옭아맨다.



때때로 이런 생각도 든다. 이 모든 불안과 죄책감이 실제로는 나 자신을 옭아매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아이들은 생각보다 잘 적응할 수도 있고, 오히려 내가 여러 역할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모습이 아이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도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한밤중에 내 옆에 있는 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을 잡을 때면, 곧 이 손을 주말에만 잡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것이 나를 옭아매는 일의 무게다. 내가 과거에 했던 선택의 무게.


그 무게와 함께 살아가는 법은, 아직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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