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과잉 활동인
나는 '멈추지 않는 두뇌의 소유자', 즉 '정신적 과잉 활동인'이다.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몰랐다. 고등학생 때는 모두들 공부에 매달리니까.
하지만 대학에 입학하고 자유 시간이 생기면서 깨달았다.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을 '그냥' 보내는 것이 불가능한 사람이라는 것을.
공강 시간이 생기면, 약속이 있지 않는 한 나는 어김없이 도서관으로 향했다.
거기서 '공부'를 했는데, 그 공부는 꼭 시험을 위한 공부는 아니었고, 굳이 따지자면 ’세상 공부‘였다.
내가 잘 모르는 세상에 대한 공부.
예를 들자면, 나는 아랍어와 영어통번역을 전공했지만, 도서관에서는 경제 서적을 뒤적였다(물론, 추리소설에 빠져 있을 때도 많았지만. 어쨌든 계속 뭔가를 읽었다.)
직장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열일했으니 이제 좀 쉬어야지'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한데, 퇴근 후 예능 프로를 보며 낄낄거리고 쉬는 건 내키지가 않았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거나, 심지어 당시 내가 인볼브된 사업 관련 계약서(...)를 집에 가져와 읽었다.
물론 계약서가 방대해서 업무 시간 외에도 읽어야 했던 상황.. 일 수도 있었지만, 사실은 내 욕심이 9할이었다.
모르는 것,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으니까.
간혹 TV를 보고 싶은 날이 있더라도, 무조건 영어나 아랍어로 된 프로그램만 봤다.
한국어 예능이나 유튜브 쇼츠를 그냥 '즐기기만' 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뭔가 '얻어가야' 직성이 풀렸다. 하다못해 외국어 단어나 표현 하나라도.
육아를 하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들이 잠든 후, 나는 거실로 나와 나만의 시간을 즐긴다.
소설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육아서나 경제서를 읽거나, 온라인 강의를 듣거나.
함께 자는 첫째에게 책을 읽어주다가 "엄마는 먼저 나가볼게"라고 하면, 아이는 대번에 "엄마 또 공부해? 또 무슨 강의 들어?"라고 묻는다.
요즘 들어 연년생 육아의 끝물에서 체력이 달려 아이와 함께 잠들어버린 날도 있지만, 그전에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다 내가 졸더라도, 아이가 잠들기 시작하면 내 정신은 말짱해졌다.
'이제 나가서 뭘 할까?' 하는 기대감에 머릿속이 분주해졌으니까.
이렇게 적고 보니 나 좀 이상한 사람 같다..
실제로 주변을 둘러봐도 나 같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 가족만 봐도, 또 남편만 봐도 그렇다.
남편은 종종 "넌 참 독하다" 했었고, 회사 팀원들에게 내 이야기를 하면(같은 회사에서 근무해 나를 아는 사람들이 많다) 다들 혀를 내두른다고 했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은 정말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얼마 전, '정신적 과잉 활동인'이라는 개념을 알게 됐다.
그 순간 바로 깨달았다. '아, 이게 나구나.'
역시 하늘 아래 나 같은 사람이 없을 리가… 싶었다.
특히 정신적 과잉 활동인은 여가 시간에 그냥 쉬거나 논다고 충전되지 않으며, 오히려 복잡한 정신 활동(새로운 것 공부라든가..)을 해야 한다는 문장에 위로를 받았다.
그동안 나만 이상한 줄 알았는데, 세상에는 나 말고도 '정신의 휴식'보다 '정신의 전환'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다. 나는 정신적 과잉 활동인이다.
그래서 그제도, 어제도 밤마다 경제서적이나 사이트를 뒤지면서 거시경제 공부를 하고...
틈틈이 육아서도 읽고...
이 모든 걸 영어로 챗GPT와 상의하면서 영어 공부도 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이상할지 모르지만, 이것이 나를 살게 만든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배우고, 이해하고 싶어 하는 이 욕구 때문에 가끔 몸은 피로하지만, 결국 이것이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멈추지 않는 생각의 체인, 이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의 일부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도 그러실지 궁금하다.
쉴 때 오히려 더 바빠지는 분들, 우리 건강관리도 잘 하면서 계속 바쁘게 살아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