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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원 Nov 27. 2023

바쁜 하루는 좋은 신호일까

일상 14



다시 만나게 된 연인은 옛날과 많이 달라져서, 관계 속에 있어도 여유로움이 느껴진 덕인지 눈치 볼 일이 없어 좋다. 주말내리 그의 집에서 침대에 누워 서로 보고 싶어했던 하이쿠키라는 드라마를 보고, 장도 보고 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흘렀다. 평일부터는 내 일상을 살아야하니 집으로 돌아오는 짐을 싸는데 다정한 목소리가 웃으면서 "네가 없으면 집에 왔을 때 좀 적적하겠다." 라고 하기에 나도 모르게 다시 또 오겠다는 말이 나온다. 애교 하나 없는 줄 알았던 내 목소리가 새소리를 내던 걸 생각하면 나도 참 못말린다는 생각.


채용공고를 보다 한 번 정도 스쳤던 회사의 헤드헌터가 연락을 주셔서 이력서를 제출하고 포트폴리오를 만지고 있다. 좋은 조건이라 꼭 한번 쯤 함께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처음인 회사였는데, 공고를 보던 당시에는 아직 준비된 게 없어서 망설였거든. 나는 아직 부족한데 이렇게 이력서를 내도 될까, 하는 마음이 컸지만 컨택을 주신 헤드헌터 매니저님이 제법 다정하고 꼼꼼하신 분이라 그냥 한번쯤 시도해보는 마음으로 부탁드렸다. 와중에 친구에게 컨택주신 분이 참 좋은 분이라 말했더니 그 사람들도 너 하나 입사 시키면 인센티브를 받으니 그렇겠지, 라고 하기에 조금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건 부가적으로 그 분이 마땅하게 받는 상인거고.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 이유는 어쨌든 맡은 바 소임을 다하기 위해 좋은 서비스를 하고, 진심을 다하잖아. 취업난이 태산인 이 시대에 내 이력서 하나 꼬박 잘 읽어주는 사람이 있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데. 아무튼 나는 또 좋은 인연 덕에 좋은 회사에 이력서 한 번 내보는 좋은 기회를 얻었으니 좋다.


삶이 곤혹스러울 때에는 조금 여유로운 삶이 필요하다고 생각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최근에 다시 바쁘고 싶어졌다. 회사에서 일을 하고 내 성과를 내고, 팀원들과 함께 으쌰으쌰 답을 찾고 협업을 하던 그 순간이 잊히지 않아. 머리를 맞대고 새벽 내리 하품을 늘어지게 하면서도 서로 얼굴을 보며 할 수 있다고 외치던 그 밤들이 내게 얼마나 좋은 시간들로 남았는지 아무도 모를거다. 고작 3개월, 일하는 동안 대리급 업무를 보며 가랑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그 알 수 없는 성취감과 인정욕구 채우기들로 제일 마음이 건강했거든. 내가 그렇게 일하는 걸 처음 본 아빠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 늘 우울에 빠져살던 내가 처음으로 새벽 아침 이슬을 맞으면서 나가 늦게 들어오면서도 웃으며 들어왔으니까. 그러니 이번에도 신이 내게 마법처럼 그런 기회를 안겨줬으면 좋겠다. 


많이 추워졌다. 감기 몸살에 걸린 아빠에게 아무래도 감기를 조금 옮은 것 같아. 할머니가 푹푹 끓인 생강배차를 한 잔 마시고 할 일을 해야지. 일기도 좀 더 꼼꼼히, 꼬박꼬박 쓰기. 연애를 시작했다고 일상을 잃으면 안 돼, 소원아. 그건 너한테 너무 독이었던 걸 너 스스로도 잘 알잖아. 기운 차리고 네 삶을 살며 건강한 연애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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