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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주언니 Dec 19. 2023

이번엔 애드빌로 버텨볼까?

캐나다에서 아프면 스스로 약사가 된다.

오늘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는데 목이 칼칼하다. 분명 입을 막 벌리고 잔거 같진 않은데 칼칼하다니.. 또 시작된건가 싶어 살짝 겁이 난다. 이번에도 무사히 지나갈 수 있기를.


편도섬염이 심했던 우리 엄마는 한번 편도선염이 시작되었다 하면 일단 3일은 기본으로 앓아 누웠고 그동안 집안일을 못하는 것 뿐만 아니라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엄마의 편도선은 꼬박 3일간 엄마를 침대 위에서 내려오지 못하게 만들었고, 4일째엔 거실을 기어나올 수 있을 만큼 나아지고, 5일째부터는 일어서서 일상생활이 가능하되 목소리를 잃어가고 있는 여인인것 같았다. 결국 엄마는 나이 50이 넘어서야 편도선염 수술을 받았고 그 이후로는 편도선염때문에 이전만큼 고생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엄마가 아플때면 우리가족 모두가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불행히도 나 또한 엄마에게서 편도선염을 물려받았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엄마처럼 자주, 엄마만큼 오랜기간을 침대 위에서 지내야 할 만큼 아픈경우는 아주아주 드물다는 것이다. 캐나다로 이민온지 10년째인데 이민 후 지금껏 내가 편도선염 때문에 침대에서 못내려온 경우는 두 번 정도 있었다. 이정도면 선방인가.

문제는 그 두번에 있다. 나 또한 편도선염이 엄청 심각했을 적에는 3일간 침대 위에서 지내야만 했고, 남편이 가져다 주는 밥이며 죽이며 아무것도 먹지 못해 3일만에 누워서 몸무게가 2키로그램이 빠지는 기적을 보았다. 한국에서 가져온, 항생제가 들어간 약을 먹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고 근처 워크인에 가기위해 집 앞에 차를 타러 갈 힘 조차 없어 거의 시체처럼 지냈던 기억이 난다. 끔찍했다. 그리고 언젠가 또 찾아올 그 끔찍할 녀석이 나는 두렵다.


몸이 아프기 시작하면 그토록 한국이 그리워진다. 집 앞에만 나가도 수두룩 빽빽한 동네병원들. 한국에서 아팠을 적에, 거의 기고 기어서 찾아간 가정의학과에서는 링겔주사도 놔주고, 코와 입 속에 약을 뿌려주기도 하고, 내 상황에 맞는 다양한 약들을 의사선생님이 척척 처방해 주었더랬지. 


언제나 문제는 나의 편도선염이다. 


우리가족은 3년에 한번씩 한국에 방문하는데 최근 작년 가을에 한국에 다녀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국에 있는동안 또한번 편도선염이 왔고, 자주갔던 동네병원에서 외국에 나간다고 하여 평소보다 2주일치 약을 미리 더 받아올 수 있었다. 그 약을 나는 아끼고 아끼는 중이다. 무려 항생제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편도선염을 가라앉히기 위해 목에 좋다는 약은 다 먹어봐도, 결국은 항생제를 먹어야 증상이 가라앉는다. 비록 동네 워크인을 가도 항생제를 받을 수는 있지만 한국에서 가져온 약에는 항생제 뿐만 아니라 콧물약, 기침약, 타이레놀, 심지어 위장약까지 넣어주니 나에겐 아껴먹어야 하는 귀한 약들이다. 약에도 유통기한이 있다고는 하지만 내 몸이 아파 죽어나갈 땐 그까짓 유통기한 쯤이야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목이 좀 칼칼하다고 이 귀한 약을 털어 먹을 수는 없으니 나도 캐나다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몇 달 전 편도염이 찾아왔을 때, 이때다 싶어 동네 드러그스토어를 가서 약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살펴본 결과 크게는 두 종류로 나뉘더라. 타이레놀과 애드빌.

타이레놀도 용량에 따라, 증상에 따라, 낮과 밤에 따라 종류가 많고 애드빌 또한 그랬다. 드럭스토어에 진열된 약들을 쭉 둘러보자니 문득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 

"아프면 일단 여길 와서 내 증상에 맞는 약들을 골라 구입해서 먹으면 되는구나! 아, 여기선 내가 약사가 되는거네!"

타이레놀 아니면 애드빌, 그것도 아니면 증상별로, 가격별로 다양한 약들 중에 내가 고르면 된다니. 캐나다는 모든 의료가 공짜인 대신에 별것 아닌, 그러니까 스스로 약을 찾아 먹어서 나을 수 있는 증상을 가진 병들은 정확한 병명도 모른채 일단 약을 구입해서 먹으면 된다. 그러고도 안되면 의사를 찾아가보는 시스템. 약국에 이렇게 다양한 약들을 내놓고 파는것도, 사람들 스스로가 자신의 증상따라 알아서 약을 구입해 가는 것도 아직 적응이 안되지만 여기선 모두들 이렇게 한다니 나도 이렇게 적응을 해야겠지.




결국 나는 애드빌 낮과 밤에 먹을 것, 타이레놀 낮과 밤에 먹을 것들을 종류별로 사고 약병 뒤에 써있는 용량과 용법대로 먹기 시작했다. 당연히 항생제를 먹지 않으니 낫는 속도는 더디고 더뎠지만 어떻게든 항생제에 손을 대지 않고 버티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렇게 3일을 약국에서 산 약으로 버티다.. 결국 나는 항생제를 꺼내 먹었다. 더이상 유통기한을 미룰 수 없고, 워크인을 간다고 항생제를 준다는 보장도 없고.. 결국 한국에서 가지고 온 약을 꺼내 먹은 것이다. 그리고나서 드라마틱하게 증상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번엔 어떻해야 할까. 목이 칼칼한걸 보니 내일은 보나마나 열이 나기 시작하고, 가래도 나오고, 목이 점점더 부어오르겠지.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수많은 애드빌과 타이레놀로 버틸 수 있을까. 버티고 버티다 또 증상이 나아지지 않으면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항생제에 손을 뻗어야 하나.. 편도선염이 두려운 나는 벌써부터 내가 먹을 수 있는 약과, 아껴두어야 할 약 사이에 고민이 생긴다. 


항생제를 먹어야 증상이 나아지는 편도선염은 항생제를 얻기 힘든 캐나다에 사는 내게 불편함을 준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약을 잔뜩 가지고 올 수도 없지 않나. 나는 캐나다에 살고, 앞으로도 살 것인데 어떻게는 캐나다에서 구할 수 있는 약들로 버티는 방법을 터득해나가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아프지 않는 것인데 어느 사람이 자기 스스로 아픈 날들을 정할수 있나.. 그저 몸이 조금이라도 아픈 날엔 내 증상을 들어주고, 내 증상에 맞게 치료와 처방을 내려주는 병원이 있는 한국이 그립다.


어찌되었든 이번만큼은 꼭 애드빌만으로 버텨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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