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찐주언니 Jun 27. 2024

운동하는 평범한 엄마

평범한 아줌마로 살 것인가 노력하는 엄마로 살 것인가

벌써 내 나이가 30대 후반 안정권에 들어왔다. 곧 마흔이 되어가는 이 시기에, 결혼하고 내 인생을 돌이켜 보면 가장 잘한 것이 아이를 셋 낳은 것이고 그다음은 지금까지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처음 만 26살에 첫 아이를 낳고, 내 친구들은 아직 20대를 한창 즐기고 있을 그 나이에, 나는 임신으로 몸이 붓고, 살이 찌고, 배가 점점 불러오면서 사실 아기를 가져서 가장 행복해야 할 그 시간에 나는 또래 친구들과의 비교에 몹시 힘들었다. 아기를 가지면 자연스레 생기는 현상인데도 뚱뚱해지고 있는 내 모습이 싫었고, 숨고 싶었고, 예쁘고 아름다운 D라인은커녕 '아기만 낳으면 다시 예전 몸으로 돌아가리라'는 생각만 가득했던 시간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딸은 유당 알레르기가 있어 어떤 분유를 먹여봐도 피부가 불긋 해졌고 결국 11개월 내내 모유를 먹일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다이어트를 굳이 하지 않아도 임신기간 불어난 나의 살들은 쭉쭉 빠졌고 아이가 첫 돌이 되었을 무렵, 다시 원래의 몸무게로 돌아갈 수 있었다. 딸아이 10개월 때 우리는 이민을 왔고 남편은 아이만 보며 집에만 있는 나에게 혹시 PT를 받아보지 않겠느냐며, 내가 아기랑 있을 테니 나가서 운동하는 시간을 가지는 게 어떻겠느냐 했다. 나는 올타쿠나 집 근처 gym에 등록을 했는데 거기서 만난 한국인 여자 트레이너 선생님과 두어 달 PT를 받으면서 몸에 근육도 붙고 선생님과도 친해지고 운동도 점점 재밌어지는 기간을 거쳤다. 덕분에 여러 가지 운동 기구를 사용할 줄 알게 되었고, 아령을 사용하는 운동법, 헬스장에 놓여있는 대부분의 기구를 만지는데 큰 어려움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운동을 시작한 지 두어 달 만에 둘째 아이를 임신하게 된 것이었다. 




캐나다 헬스장엔 비록 만삭임에도 열운하는 캐나다 맘들을 종종 볼 수 있지만 아시안계인 나로서는 임신을 하고 운동을 하는 게 두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의료 후진국에서 아기나 나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어쩐단 말인가.. 그래서 몸을 덜 움직이게 되고, 헬스장에 가는 대신 집 근처 산책으로 대신하게 되었다. 그렇게 둘째가 태어나자 우리는 얼마 안돼 위니펙으로 이주를 왔다. 이곳에서 와서 처음으로 지낸 곳이 아파트였는데 대부분의 캐나다 아파트가 그렇듯 아파트 주민들을 위한 작은 헬스장이 갖춰져 있었다. 나는 이곳을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리라 다짐했다. 


아이들이 잠들 시간인 저녁 9시가 되면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겨두고 운동복으로 얼른 갈아입은 후 걸어서 1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 내 헬스장으로 향했다. 그곳은 밤 11시면 문이 잠기기 때문에 늦어도 11시 전엔 나왔어야 했다. 저녁 9시에는 나가야 마음 조급하지 않게 한 시간 반 정도 운동하고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가끔 아이들이 너무 울고 내가 남편에게 다 던져두고 나올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밤 10시에도, 어떨 땐 밤 10시 반에도 집을 나갔다. 단 20분 러닝머신만이라도 하고 오겠다는 각오였다. 왜 그렇게 운동에 미쳐있었는지 모르겠다. 살찌면 안 된다는 강박. 살찌고 싶지 않다는 강박. 또래들에게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들이 나를 운동에 목매게 만들었다.


어느 날은 남편이 말했다.

"네가 연예인이야? 바쁘고 애들보느라 피곤하면 오늘 하루 더 운동 못할 수도 있지 왜 그렇게 오밤중에도 나가서 운동을 하겠다고 하는 거냐고"

나도 모르겠다.. 내가 44 사이즈 입는 연예인도 아니고.. 44 사이즈 입고 싶어 안달 난 사람도 아니고, 난 평생에 사이즈 44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인데. 그냥 평범하게 여기서 몸을 더 불리고 싶지 않을 뿐인데 왜 이렇게 운동을 못해서 난리인 것인지..




누가 들으면 내가 대단히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생각하겠지만 난 정말로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이다. 밥 먹고 소파에, 침대에 누워서 뒹굴거리는 걸 좋아하고, 초콜릿과 젤리를 진짜 좋아하며 떡과 빵을 무진장 좋아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손엔 항상 아이스커피 들고나니 길 좋아하고, 고기 먹을 때도 꼭 밥을 먹어야 하는 사람이다. 물만 먹어도 살이 찌는 체질은 아니지만 조금만 게을러져도 나의 몸은 너무도 정직하게 무게를 늘려나가기 시작한다. 내가 나를 너무 잘 알아서 간식도, 밥도 나름 줄인다고 줄였는데 그걸로도 안돼 울며 겨자 먹기로 운동을 하는 것이다. 특히나 위니펙의 삶이 더욱 그런 것 같다. 어딜 가든 차를 타고 움직이는 일상이라 웬만해선 두 다리로 걸어 다닐 일이 없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러 멀리 나갈 일도 없고, 쇼핑을 가거나 마트에 가서 장을 보지 않는 이상 딱히 걸어서 어딜 갈 일이 없는 곳이 위니펙이다. (그렇다고 쇼핑과 장보기가 운동대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시간을 내서 운동하지 않으면 나는 내가 살아가는 하루 중에 움직일 일이 별로 없다. 


살찌기 딱 좋은 곳이 위니펙이다.


하루 뒤면 아이들이 여름방학에 들어간다. 무려 두 달이다. 그냥 놀고먹는 날들의 연속이다. 시간만 되면 사람들을 초대하고, 초대받고, 먹고 마시고 또 먹고의 반복. 살찌는 계절은 이제부터 시작인 셈이다.




바쁘고, 피곤하고, 늘어지는 일상 속에서 잠시라도 운동을 했다는 건 아이 셋 아줌마로서의 자부심이고 스스로 대견하다 칭찬해 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랑 같이 잠들어도 됐을 텐데.. 구지구지 일어나서 피곤하고 짜증 나는 이 모든 감정을 견뎌가며 오밤중에 운동을 하다니. 아주아주 잘했다고..




아파트에서 하우스로 이사를 한 후엔 집 근처에 새로 오픈한 헬스장에 다녔다. 집에 러닝머신을 하나 사두긴 했지만 그건 예비용이었고 예전 밴쿠버에서 린지에게 트레이닝을 받으며 열운했던 그런 곳이 없을까 생각하던 차에 알게 된 곳이었다. 그곳엔 새로 지은 건물답게 수영장도 있었고, 암벽 타기도 갖추어져 있고, 핫텁도 있고, 시간별로 다양한 클래스도 준비되어 있었다. 요가, 핫요가, 자전거 타기, 줌바, 플라잉요가, 아령 들고 운동하는 거 외에도 이름 모를 수업들이 어찌나 많던지.. 그 수업들을 하루에 하나씩만 들어도 한 달 회비는 뽕을 뽑고도 남는데 사람들과 굳이 섞이기 싫은 나는 똑같은 돈을 내고도 헬스만 했다. 캐나다 헬스장에 몸매 좋은 언니야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언니들이 예쁜 룰루레몬 운동복을 시원하게 입고 운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반하지 않을 수가 없다. 몸매가 좋은 사람들 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자신의 몸매를 매우 사랑하는 느낌을 받는데 어느 누구 하나 헐렁한 티셔츠 입은 사람 없이 몸에 촥 붙는, 짧은 상의에 레깅스를 입고 열심히 운동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거기서 종일 러닝머신만은 할 수 없게 된다. 저들이 가진 근육과 저들이 가진 라인을 나도 갖고자 자꾸 훔쳐보고 따라 하게 된다.


문제는 한겨울이었다.

영하 20도 이하로 떨어지는 날.. 굳이 운동을 하겠다며.. 밤 11시면 헬스장이 문을 닫는데 밤 10시에 차 시동을 켜고 파카를 입고 덜덜 떨면서 거기까지 가서 운동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이 시간에 난 여기서 뭐 하고 있나 싶고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엔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집에 돌아가는 일도 너무 무서웠다. 그렇게 2년간 헬스장에 열심히 다닌 끝에 나는 결국 홈트를 하기로 결정했다. 베이스먼트에 늘 있던 러닝머신과 운동 좋아하는 남편이 사다 놓은 몇 가지 소소한 운동기구들로 충분히, 원하는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비록 홈트를 하게 되면 집엔 다양한 운동기구가 없고, 운동하는 멋진 언니들을 볼 수 없어서 나에게 시각적 자극을 줄 사람들이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내가 원하면 언제든 달릴 수 있고 언제든 손에 들 수 있는 것들이 있어서 참 좋다. 무엇보다 헬스장 문 닫을 시간이 다가올까 촉박해하지 않아도 돼서 좋다.




나는 운동을 항상 밤에 하는 편이다. 아침형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도 그렇고 낮시간에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거기에 운동까지 얹고 싶진 않다. 운동을 진짜 싫어하는 나는 오밤중까지 운동을 미루고 미루다 잠들기 전에 하기 싫은 숙제를 하나 해치우듯 해버리는 스타일이다. 운동 후 후딱 샤워하고 후딱 잠드는 것이 나는 딱 좋다. 비록 유산소를 많이 한 날은 운동하고 나면 쉽게 잠들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고, 그럼 또 늦게 자게 되고, 그럼 또 아침마다 도시락 싸는 게 버거운.. 매번 같은 일상의 연속이지만 그건 애들 학교 보내고 잠깐의 낮잠으로 대신할 수 있는 부분이고. 어젯밤 그 피곤함을 물리치고 한 시간, 한 시간 반 열심히 운동한 나에게 잘했다고 쓰담쓰담해주고 싶다. 또 낮잠을 자고야 말았지만 하기 싫은 운동을 해내고야 말았으니 얼마나 대단한지!


선배엄마들의 말대로 30대 중반이 넘어가니 똑같이 먹고 똑같은 운동을 했는데도 뱃살이 늘어만 간다. 너무 슬픈 일인 것 같다. 운동을 싫어하는 나는 이 이상은 진짜 하고 싶지 않은데.. 이 이상을 해야 그나마 유지라도 된다는 사실이 나를 너무 괴롭게 만든다. 이젠 나이도 좀 먹었고, 마음도 여유가 있어서 먹고 싶은 거 맘껏, 건강히 먹으면서 운동은 적당히 하면서 적당하게 살고 싶은데 우리의 몸은 나이가 들수록 겨우 그 정도로 택도 없다며 몰아 붙이는 것 같다. 정말 너무한 내 몸뚱이..


그럼에도 내가 가장 원하는 나는 어떤 모습인가 생각해 보면 '건강해 보이는 몸'을 갖고 싶고, 나이가 들어서도 자기 관리를 꾸준히 잘하는 엄마이고, 아내이고 싶다. 식이조절이 철저히 되지 않아 운동을 함에도 배가 점점 나오고 몸무게가 늘어가고 있는 현실이 요즘 나를 가장 힘들게 한다. 그럼에도  내가 원하는 나로 살기 위해 계속해서 발버둥을 쳐 보려 한다. 어렵고 노력을 많이 요하는 일이겠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밤 11시가 되었든, 밤 12시가 되었든, 매일은 못해도, 일주일에 최소 몇번은 꼭! 꾸준히 운동하는 엄마로 살아야지 다짐하는 밤이다. 


반드시 드라마를 틀어야 런닝머신에 올라가게 된다. 밤 11시 운동하는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