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하오가 서울 예식에 간다.
어린 태오는 나와 집에 머물고.
오빠가 전날 문 앞에 챙겨 놓은 가방 두 개가
너무 귀엽다.
둘에게 뭘 챙겼냐 물으니
하오는 젤리랑 까까를 챙겼고,
아빠는 하오가 추울까 봐 가디건이랑 물티슈랑 치간칫솔을 챙겼단다. (하오가 고기를 먹고 이에 고기가 끼면 빼줘야 한단다.) 하오 아빠 진짜 대단하시다.
하오는 좋겠다.
아빠가 매일 퇴근하고 함께 놀이해서,
주말마다 아빠랑 함께 여행을 가니 또 좋겠다.
아빠랑 목욕 놀이도 하고 아빠가 맛있는 요리도 해주고 아빠가 그네도 밀어주니 참 좋겠다.
엄마한테 혼날 땐 아빠 등 뒤로 숨을 수도 있고
너희는 참 좋겠다.
난 그런 아빠가 없었는데 말이야.
학교 갔다 돌아오면 아빠랑 엄마는 일하러 가서 없고, 주말에도 아빠랑 엄마는 일하러 가서 없었다.
어릴 때 아빠한테 제일 자주 했던 말은 딱 세 개였다.
'진지 잡수세요.'
'다녀오세요.'
'다녀오셨어요.'
나는 과묵한 아빠가 무서웠다.
그 시절의 아빠들은 모두 돈 버느라 바빴으니까
함께할 시간이 적었던 게 당연하다.
성인이 되고 나서야 그런 아빠를 조금 이해하기 시작했고 아빠랑 많이 가까워졌다.
내가 먼저 이야기도 많이 하고
자주 아프기 시작하던 아빠의 건강을 챙기면서 말이다.
나는 그렇다.
내 어린 시절 나와 함께 놀아주시던 아빠의 기억은 없지만, ‘진지 잡수세요.' 하면 '밥 먹자' 하던 아빠가 있었고 '다녀오세요.' 하면 '오야' 하던 아빠가 있었고
'다녀오셨어요.' 하면 코를 맞대 비비던 아빠가 있었다.
지금은 아빠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곁에 있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아기를 낳고 엄마가 되니 남편이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을 볼 때면 내 아빠를 종종 떠올리곤 한다.
나도 저런 아빠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부럽다가도,
그 시절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들을 아쉬워하다가도,
그 시절 우리를 위해 견뎌내느라 애썼을 아빠가
감사하고 안쓰럽다.
첫째 낳을 땐 엄마 생각만 났고,
둘째 낳을 땐 아빠 생각이 많이 나더라.
그래서 태오 낳고 아빠에게 드린 선물.
아빠의 첫 명품 신발.
너무도 좋아하셨고,
신발 벗는 모임 장소에는 잃어버릴까 안 신고 가시면서
비가 오는 날에는 아랑곳 않고 멋들어지게 신고 나가신다.
하오, 태오는 친구 같은 아빠가 있어서 좋겠다.
근데 나도 좋아.
나도 내 아빠가 곁에 있어서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