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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캔두잇 Sep 13. 2024

빙그레해지는 하루의 시작.

어린 시절 우리 집 욕실은 꽤 컸다.

하얀 욕조가 하나 있었는데 그 욕조에서 주말이면 언니들과 통목욕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 욕조 안에 세 명이 같이 들어갔나 모르겠다.


내가 집에서 통목욕을 할 때 내 친구들은 읍내에 있는 목욕탕에서 3,000원을 내고 목욕을 했다. 나도 사실 그 목욕탕에서 목욕하고 싶었는데, 그 당시에 3,000원은 너무 비쌌다.

그래도 아주 가끔 엄마랑 목욕탕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엄마는 목욕 후에 바나나우유를 사주셨다.

그래서 목욕탕 가는 게 좋았다. 많이.


엄마는 목욕탕을 좋아한다. 엄마랑 같이 목욕탕에 가면엄마를 자꾸 잃어버려 찾기 바쁘다. 온탕, 냉탕을 오가더니 또 언제 물안마를 받고 있다. 한번 들어가면 두 시간은 기본이다.

엄마랑 서로 등도 밀어주고, 목욕 후에 갈증이 밀려오면 어김없이 엄마는 또 바나나우유를 사주셨다.

그 추억이 너무 좋아서 나도 목욕탕을 좋아한다.


아침 6시, 아기 둘과 남편이 곤히 자고 있는 틈에 몰래 안방 문을 열고 나온다. 전날 미리 챙겨둔 목욕바구니를 들고 대중목욕탕으로 향한다.


등 밀어주는 엄마가 없으니 세신사에게 몸을 맡긴다.

너무 개운하다. 이 맛에 또 목욕탕에 온다.


목욕을 마치고 위잉 위잉 머리를 말리고 있는데,

아주머니께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여기 바나나우유 다섯 개만 가져다주세요’ 한다.

그러면서 저기 어르신도 하나 드리고 여기 아가씨도 하나 주세요 그러길래 쳐다보았다.

여기 어르신이랑 나밖에 없는데 아가씨라면 날 말하는 건가.

옷을 갈아입고 집으로 가려하니 목욕탕 아주머니께서 바나나우유를 내게 주었다.

‘토담집 사장님이 주시네요.’하고.

감사합니다. 눈인사를 건네고 나왔다.


제법 시원해진 아침 공기가 코로 들어와 폐까지 전해진다. 이 느낌 너무 좋아. 바나나우유를 까서 한 모금 마셔본다.


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와.. 이렇게 맛있는 거였구나.!

목욕 후에 늘 바나나 우유를 사주던 엄마 생각도 나면서 기분이 너무 좋은 거다.


‘어르신도 하나 드리고 저기 아가씨도 하나 주세요.’

하던 토담집 사장님 말이 생각난다.

나도 다음에 목욕탕에 홀로 오신 어르신이 보이면 바나나우유를 사드려야지! 그리고 잊지 말고 내 것도 꼭 사 먹어야지!


오늘 아침 선물 받은 바나나우유 덕에 하루가 빙그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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