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오남매
뱃속에 하동이가 들으면 서운할 만한 얘기가 있다.
그것은 우리 부부가 둘째를 원하는 이유이다.
귀하디 귀한 내 딸이 언젠가 엄마 아빠가 없는 세상에 홀로 남겨졌을 때 조금 덜 외로우라고 첫째에게 주는 선물 같은 동생 하동이. 태명도 하오동생 하동이.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지 7개월 만에 아기가 생겼다. 우리 부부의 계획보다 너무 일찍 찾아와서 어떠한
기대도 없이 정말 <불쑥! 엥? 갑자기?> 찾아왔다.
일찍이긴 해도 원래 갖고 싶었던 거였으니 너무 귀하고좋다.
그리고 시작된 입덧으로 나는 많은 것들을 포기하게 되었다. 이제 막 시작해서 즐겁게 다니던 필라테스도 중단되었고 자기 계발로 주 3회 꾸준히 다니던 중국어 학원도 끊었다. 계획서를 제출했던 연구대회 출전도 중도포기하게 되었다.
평소 ‘아기 키우면서 엄마가 하고 싶은 거 하면 하지 왜 못해! ’라는 마인드로 살았는데 결국은 불가능한 현실에 부딪힌 속상함을 달래느라 꽤 우울했다.
간신히 책임감 하나로 출근을 했고, 또 간신히 퇴근해서 침대에 붙어있다가 꾸역꾸역 첫째 하원 시간이 임박해서야 부랴부랴 흐트러진 머리를 대충 만지고서 아이를 데리러 갔다. 데려온 아이는 그대로 소파에 앉혀 뽀로로를 틀어주고 나는 또 소파에 누워있다가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남편이 퇴근하고 오면 나는 또 안방에 들어가 고대로 아침을 맞이한다.
또 출근. 또 퇴근. 버티고 버티다 주말이 오면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하루 종일 나가서 놀다가 저녁시간이 다 되어서 들어왔다. 혼자 있는 주말 동안은 살고자 먹고, 살고자 토하고 그렇게 총 8번의 주말이 사라졌다.
속 쓰림은 먹어도 지랄이고 안 먹어도 지랄이었다.
(뱃속에 하동이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새벽 한시와 세시에는 쓰린 속을 붙잡고 일어나 냉장고를 열어 차가운 흰 우유를 벌컥벌컥 마시고 다시 잤다. 그나마 우유와 감자로 버텼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못 먹는 일상이 너무 우울했다.
어느 주말, 침대에 누워있다 나도 모르게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거실에서 놀던 남편과 딸이 동시에 부랴부랴 뛰어왔다. 두 돌도 안 된 녀석이 내 볼을 두 손으로 감싸며 “엄마 아파?” 그런다. 이쁜 내 딸 언제 이렇게 말을 잘했어. 엄마 입덧하느라 누워만 지낸 동안 넌 또 부지런히 컸구나. 또 광광 울었다.
너로 인해 처음 겪는 새로운 감정을 배워가며 난 또 그렇게 단단한 엄마가 되어간다.
13주가 되자 속 쓰림이 잦아들고 몇 가지 먹고 싶었던 음식들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 드디어!
하동이가 엄마 뱃속에서 열심히 컸구나.
이제 같이 맛있는 거 먹자며 신호를 보내는구나!
뱃속에 둘째보다 첫째가 더 신경 쓰이는 요즘이다.
어느새 첫째라는 호칭이 생겼고. 우리 부부는 자주 이렇게 말한다.
‘엄마 배에 아기가 있어서 힘들어.’
‘엄마 배에 올라타면 안 돼.’
‘엄마 배에 아기가 있어서 못 안아줘.’라고..
그러면 우리 하오는 또 이해해 준다.
엄마에게 덜 안기고, 아빠에게 더 안기고
안고 가다가 ‘이제 걸어가자’라고 말하면 ‘엄마 힘들어?’ 묻기도 하고. 제법 나온 엄마 배를 만지며 ‘하동아~’ 부르기도 한다. 어느새 진짜 첫째처럼 의젓해졌다.
두 돌. 지금 딱 예쁠 시기를 입덧으로 힘들어서 하루하루 하오의 순간을 놓쳐가는 게 너무 아쉽다.
할 줄 아는 말이 늘고 새로운 문장으로 말할 때면 힘들다가도 빵! 터지게 웃고 덕분에 웃을 일들이 매일매일 생긴다.
첫째와 둘째가 함께 만날 날을 기다리며 설레는 요즘이다. 우리 하오 더 많이 사랑해 줘야지.
엄마의 입덧을 묵묵히 참고 기다려준 내 딸.
나의 첫아기,
첫사랑,
첫째 딸, 하오야.
처음처럼 여전히 널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