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한 병과 양산을 들고 가는 보디가드
억새꽃, 여인들 그리고 산보
하루 중에 오후는 산보하기가 좋은 시간이다.
오전은 주로 맑은 정신으로 할 일에 집중하기 쉽다.
그러다가 점심을 먹고 나서는 밖으로 나가 신선한 바깥 바람을 쐬고 싶어 진다. 간단한 산보차림으로 차가운 물 한 병을 손수건에 싸서 들고 간다. 이는 아내를 위한 섬김이로 자처한 결과이다. 걷는 사이 사이 목을 추길 정도로 마시고자 하는 몸의 반응이 온다 하여 가져가게 된다. 거기에다 해가 서쪽으로 내려가는 즈음에도 강렬한 빛을 더 내려주고 싶은 그때는 아내를 위해 양산을, 아니면 그 대신 우산을 들고 따라간다. 물론 물병도 우산도 대부분 챙겨 내게 건네준 것이지만 불평 없이 덤덤하게 양손으로 나눠 하나씩 균형 잡은 자세로 뒤따른다. 달라하면 언제든 건네줄 양으로 말이다.
이 산보에는 저의 아내를 포함하여 여인네들이 동행한다.
아침 나절에 집에서 또는 일터에서 지내다 생긴 일이나 해프닝을 풀어내 마음을 시원케 하는 힐링의 기회로 보인다. 봇물 터지듯 서로 마음에 담았던 사연을 쏟아낸다. 이들은 서로가 반가운 달변가요 또한 청취자이기도 하다. 이 시간 즉, 오후 4:00-6:00 얼마나 기다린지 모른다.
이는 밖에서 하는 거의 유일한 신체 운동이기도 하며 자유와 기쁨을 나누는 정신적 회복운동이기도 하다.
나는 이런 시간에 앞장선 중년 여인들 이야기를 조용히 들으며 뒤따른다.
한 분은 이런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나는 하루 세끼를 오로지 김치 없이는 먹지 않아요. 질리지도 않아요. 그래서 시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너는 그 어느 반찬도 소용없구나. 집에 와서 단지 김치를 바닥 내고 가는구나."
한 가지 들은 얘기나 생각이 떠오르면 단순히 그 자체를 설명하지 않는다. 본인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여 결혼 후 시댁과의 생활, 자녀 양육하는 시절, 남편의 호불호까지 연결하여 오늘에 이른다. 즉, 하나의 이야기는 지구 한 바퀴를 돌고 제자리에 오는 사건이 된다. 걷는 내내 다리가 아플 틈이 없고, 오로지 자신의 이야기에 취해 웃고 또 웃는 시인이 된다.
이런 여인들이 서 넛이 햇빛에 그슬리지 않으려 긴팔 긴바지를 입고 거기에 채양이 달린 모자나 양산까지 챙기며 거닐게 된다.
주로 걷는 길은 집에서 동쪽으로 4-50십 분 걸리는 강 매립지인 핑크시티( Pink City) 까지다. 갈 때는 해를 등지고 가기에 등이 따뜻하고 그래서 양산을 뒤쪽으로 돌린 채 움직이는데 오는 길에는 서쪽 아파트촌 사이로 내려가는 석양을 감상하면서 발길을 집으로 재촉한다.
이 길에 가을이 되면 딴 세계가 펼쳐진다.
비가 많은 계절에는 질퍽하고 또는 물이 차 있어 조금이라도 물이 없는 곳을 찾아 다닌다. 흙길이 아닌 벽돌길이나 아스팔트길을 찾아 돌아 돌아오곤 한다.
그런 그곳에 억새가 흰 꽃을 녹색 잎사귀 사이로 쭈욱 내미는 때는 하늘 정원이 된다. 마치 우산을 펼치듯 날개를 달면 흰색에 금을 씌운 꽃술이 지나치는 바람결에 너울너울 춤을 춘다. 여기에 그 갈대의 존재감이 돋보인다.
그제사야 사람들이 모이고 그 가을 초상화 앞에 서 셔터를 누르게 된다.
그러면 반응한다. 잘 왔다고 하며 자신을 알아주는 이들에게 흔들어 주며 금빛 노래를 불러준다. 그리고서 꽃을 하나씩 나눠 우리 위로 뿌려준다. 마치 결혼식을 마치며 나갈 때 행진하는 싱그러운 한 쌍을 축하하듯 말이다.
멀리 강가에서 실려온 모래 따라온 억새야. 혼자면 쓸쓸히 사람의 시선에서 멀어졌을 너.
이제는 바다를 이루는 너의 군상으로 네가 사랑받는구나. 그래서 나도 좋구나.
나는 여인들의 웃음소리와 억새꽃을 듣고 보면서 산보를 한다. 여인들의 깔깔 웃음을 듣는 억새꽃들 사이로 걷는다. 샛길 양쪽으로
대열을 지어 우뚝 서서 나를 맞아주는 억새가 있어 억세게 사랑받는 기분이다.
옆에서 또는 뒤따라오는 보디가드가 있어 혹시 모를 남정네로부터, 뱀이나 들개로부터의 위험의 울타리가 되기에 안전하고 편하다고 나를 칭찬한다. 그러니 나는 속으로 춤을 추며 다음 산보를 기다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