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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Jang Oct 01. 2024

사쿠라 재패니스 레스토랑 (1/3)

1.

SAKURA SUSHI BAR. 참치 핏물 빛 네온사인이 안달 맞게 깜빡거렸다. 사쿠라 재패니스 레스토랑은 시카고 한인 YMCA 건물 근처 링컨 애비뉴에 위치하고 있었다. 오너가 한국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식당 인테리어는 이토 히로부미가 무덤에서 일어나 뜨거운 박수를 칠 정도로 왜색이 짙었다. 웨이트리스들은 생활 기모노를 착용했고 스시 셰프인 강 씨와 보조인 민우는 손님이 들어설 때마다 "이랏샤이마세"라고 크게 인사했다. 강 씨. 그는 무슨 곡절에선지 이름을 밝히는 것을 꺼렸다. 그래서 모두 그를 강 셰프님 또는 미스터 강으로 불렀다. 사십 대 후반인 그는 석 달 전 클리블랜드에서 시카고로 이주했다.(다행히 그는 르브론 제임스가 아니라 마이클 조던이 역사상 최고의 농구선수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이하는 그의 몽타주: 간에 이상이 있는 듯 검붉은 얼굴. 정수리에 내려앉은 위태로운 몇 올의 머리카락. 이마와 콧잔등에 흐르는 엄청난 양의 개기름. 이런 외모를 가진 그가 식당 간판이란 사실에 사쿠라 주인인 최여사는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열 번의 보톡스로도 펴지지 않을 듯한 주름이 그녀의 미간에 파여 있었다. 두 사람은 하루가 멀다고 서로를 보며 으르렁댔다. 그들의 갈등은 손님이 적은 날엔 더욱 악화됐다. 최여사는 매시간 원유가 터지는 강 씨의 몰골을 갈파했고 강 셰프는 최여사야말로 재수가 옴 붙은 여자라 그렇다며 맞받아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 두 사람의 첨예한 대립은 강 씨의 해고로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이것이 사쿠라의 미스터리라면 미스터리였다. 사쿠라에는 두 명 외에도 삼십 대 초반의 셰프 보조인 민우, 웨이트리스 두 명, 그리고 접시를 닦는 멕시칸인 카를로스가 있었다. 웨이트리스 중 한 명은 삼십 대 중반의 일본여자인 하루코였다. 오사카 출신의 하루코는 일본에서 만난 미국 남자와 결혼한 뒤 시카고로 건너왔지만 몇 해전 남편과 성격 차이로 헤어진 이혼녀였다. 그녀는 키가 165 센티미터 정도였고 볼륨감 넘치는 몸매의 소유자였다. 그녀의 유방은 여자라면 누가 봐도 부러워할 만한 크기와 모양을 가졌고, 그녀의 엉덩이 역시 대형 복숭아를 연상시키는 제대로 힙업이 된 형태를 과시했다. 그래서인지 사쿠라를 찾는 손님의 절반 이상이 하루코를 보기 위해 식당 문을 열었다. 하루코의 관능적인 기운이 사쿠라의 공기를 안티에이징 크림처럼 탄력 있게 유지했다. 하지만 숱한 남성들의 기대와는 달리 그녀가 최후의 펜스를 승냥이 같은 그들에게 여는 일은 없었다. 또 다른 한 명은 이십 대 후반의 영란이었는데, 그녀는 통통한 체형의 귀여운 타입이었고 성격은 어딘지 독특했다. 그녀는 평상시엔 말수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술이 몇 잔 들어가면 입이 닫히질 않았다. 어떤 날엔 자신의 큰 이모 둘째 아들이 영화배우 현빈이고, 작은 이모의 큰 아들이 원빈이라고 했고, 어떤 날엔 그녀의 아빠와 LG그룹 사장과 배다른 형제지간인데, 다만 아무에게도 이 진실을 발설하지 말아 달라며 새끼손가락을 내밀곤 했다. 이처럼 영란은 술에 취할 때마다 허언증 말기 환자가 되었다. 사쿠라를 찾는 손님들이 평일엔 그리 많지 않았지만, 오늘처럼 주말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로 식당 안이 붐볐다. 천장에 달린 酒와 福이라 쓰인 갓등이 홀을 오렌지 컬러로 물들였다. 강 씨는 시큼한 냄새를 풍기며 정신없이 밥알을 쥔 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그의 옆에서 민우는 캘리포니아 롤을 부지런히 만들었다. 민우가 시계를 보니 벌써 밤 아홉 시가 넘어 있었다. 강 씨는 어딘지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링컨 애비뉴의 고장 난 신호등처럼 그의 얼굴이 반짝거렸다. 이 놈의 그지 같은 식당 내가 때려치우든지 해야지. 인마 롤 좀 빨리빨리 말아라. 팔 하나밖에 없는 병신도 너보단 빠르겠다 이 새끼야,라고 강 씨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민우에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민우가 몹시 당황한 얼굴로 더욱 빠르게 손동작을 취했다. 오늘의 마지막 초밥이 나오자 영란이 그걸 포장해서 기다리고 있던 손님에게 건넸다. 강 씨가 자주색 앞치마를 신경질적으로 벗어던졌다. 올리브 오일로 얼굴 전체를 마사지를 한 것처럼 강 씨의 안면이 번들거렸다. 아 좌심방 우심실 떨려. 민우야 영란아, 우리 소주 한 잔 하자,라며 강 씨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닦으며 스시바를 벗어났다. 주말이면 으레 그는 영란과 민우에게 소주와 매운탕을 샀다. 가게 코너에 있는 텔레비전 옆 테이블이 이들의 지정석이었다. 민우가 사발과 수저를 능숙하게 탁자 위에 배치했다. 영란은 참이슬 두 병과 소주잔을 냉장고에서 꺼내 가지고 왔다. 오늘 정신없었지? 한 잔씩 받아라, 라며 강 씨가 영란과 민우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강 씨가 잔을 들자 민우가 그의 잔을 소주로 채웠다. 세 개의 잔이 부딪히며 맑고 청아한 소리를 냈다. 최여사는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하루 매상을 세다가 테이블을 흘낏, 바라봤다. 너무 많이 마시지들 말고. 내일도 일해야 하니까. 난 그럼 먼저 들어갈게,라고 한 뒤 최여사는 검은색 재킷을 챙겨 들었다. 꼬리를 쫑긋 세운 암탉처럼 그녀는 사쿠라를 빠져나갔다.


여느 토요일 밤과는 달리 가라오케를 찾는 손님이 드물었다.(사쿠라는 토요일 밤에는 가라오케로 운영됐고 하루코가 그 책임을 맡았다.) 하루코는 지루했던지 사케 서너 잔을 연거푸 들이켰다. 그녀가 노래 책을 뒤적거리다 리모컨으로 번호를 눌렀다. 12232. 잔잔한 멜로디가 가라오케 기계에서 흘러나왔다. 아이시떼루. 아이시떼루... 하루코가 마이크를 잡고 일본곡을 서글프게 불렀다. 앉아 있던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무심코 고개를 돌리자 민우와 시선이 마주쳤다. 하루코는 왼손에 잡고 있던 마이크를 오른손으로 옮겨 쥐며 민우의 눈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녀의 그런 시선에 약간의 부담을 느낀 민우는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손님이 없으면 집에나 일찍 기어들어갈 것이지. 술맛 떨어지게시리..." 하루코를 보며 강 씨는 입을 삐쭉 내밀고 투덜거렸다. 민우가 매운탕 국물을 수저로 떠먹었다. "역시 형님의 매운탕은 시카고에서 최고예요." 그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강 씨에게 말했다. "사실 난 시카고가 아니라 미국에서 최고가 되고 싶다고." 그렇게 말하는 강 씨의 눈가로 강물 같은 주름이 번졌다. "시카고에서 최고면, 그게 곧 미국에서 최고 아닌가요? 어쩌면 세계에서 최고일 수도 있어요." 영란이 젓가락으로 생선살을 발라냈다. "아냐 아직은... 뉴욕과 LA를 일단 꺾고 탄력을 받아 서울마저도...”

강 씨가 자작한 후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는 노란색 플라스틱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그가 담배를 한 모금 피운 후 말했다. "혹시 너희들 식당에서 일하면서 애로사항이나 건의사항 있으면 말해봐라."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영란이 쌍꺼풀 진 눈을 더욱 크게 뜨며 팁 분배하는 룰에 불만을 토해냈다. 하루코보다 훨씬 더 많은 테이블을 그녀가 서빙을 하는 데도 팁은 하루코와 5대 5로 나뉜다는 것이다. 강 씨는 독립투사처럼 비장한 얼굴로 영란의 불만에 귀를 기울였다. 골똘히 생각하던 그가 머리를 가로저었다. "네 말이 틀린 말은 아냐. 하지만 하루코가 데리고 온 남자들이 쓰는 돈이 얼만데." 강 씨의 분석대로 사쿠라는 하루코 때문에 유지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녀의 음란한 눈빛이 불러들인 남자들이 다운타운 고층건물들처럼 즐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걸 잘 생각해 봐라.” 강 씨가 영란의 잔에 술을 따라주며 말을 계속했다. "한국사람들은 십 불 어치를 먹었다 치면 팁을 일 불 아니면 이 불을 놓고 가잖아. 근데 일본애들은 사 불 내지는 최소한 삼 불은 놓고 가잖아. 십 퍼센트와 삼십 퍼센트의 차이라고. 이게 바로 한일 간의 차이야." 강 씨가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흥분했다. "이게 바로 동해와 씨오브재팬의 차이라고. 나는 바로 이것이 독도와 다케시마의 차이라고 생각하는 거라고. 창씨개명당하는 것처럼 네가 억울할 수도 있지만, 참아. 지금은 그런 불만을 말할 때가 아냐. 훗날을 도모하라고." 강 씨는 마치 사임을 사일 앞둔 외교부 차관처럼 그녀를 설득했다. 영란이 빨개진 목을 힘없이 끄덕였다. "너는 뭐 없어? 있을 수가 없겠지. 내가 얼마나 잘해줘." 강 씨가 누런 치아를 드러내며 민우를 보았다. "농담이고, 만약에 정말로 있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남자답게 토해내 봐. 내가 진짜로 고려해 보마." 강 씨가 민우의 잔에 소주를 가득 따랐다. 민우는 술잔을 반쯤 비운 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셰프님이 가끔 신경질을 내면서 심한 욕설을 하시는 데, 그것만 고쳐주시면 저는...” 민우는 말을 하다가 강 씨의 그새 굳어진 표정을 보고 멈추었다. "미안하다. 칼잽이로 사는 나의 숙명을 이해해 다오. 항상 사시미 칼을 잡고 있어서 그런지 예민해지는 것 같다. 예전에 중국집에서 일할 중식도는 이렇게 만들지는 않았거든. 그런데 사시미 칼은 확실히 달라. 어쩔 땐 정말이지 생선이 아니라 다른 걸 회쳐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 때도 많거든." 가느다란 그의 눈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강 씨는 미간에 흐르는 기름을 냅킨으로 닦은 뒤 말했다. "내가 중학교 밖에 못 나와서 그런가 보다. 정말 미안하다." 그가 성숙한 관계로의 전환을 기리며 술잔을 검처럼 뽑아 들었다. 민우는 소주잔을 들고 건배를 한 다음 밖을 내다봤다. 황금빛 강철 방패를 닮은 보름달이 얼굴 없는 사무라이들의 위협으로부터 밤거리를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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