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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Jang Oct 04. 2024

사쿠라 재패니스 레스토랑 (2/3)

2.

최여사는 두 시가 조금 넘어 시루떡을 손에 든 채 사쿠라에 도착했다. 두 달 전 결혼했던 한 커플의 아기가 교회에서 돌잔치 떡을 돌렸다고 했다.(사쿠라는 매달 첫 번째, 세 번째 일요일에는 영업을 했다). 이리들 와서 떡 좀 먹어봐. 완전히 꿀맛이야, 라며 그녀는 일하는 종업원들을 불러 모았다. 사람들이 떡 주위로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최여사가 가져온 떡은 오병이어의 기적이 필요 없을 만큼 차고도 넘쳤다. 커피와 같이 먹으면 더 맛있겠다, 라며 영란이 신나는 표정으로 원두커피를 내렸다. 강 씨는 떡을 하나 먹은 뒤 떡보다는 얼큰한 라면이 좋겠다며 민우에게 신호를 보냈다. 민우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 맞습니다. 자고로 남자는 떡으로만 살 수 없는 법, 라면도 먹어야 하지요,라고 민우 냄비에 물을 받으며 말했다. 그들 중 여자는 떡을 들었고 남자는 라면을 택했다. 떡과 라면의 본질이 동일한 밀가루란 사실을 모두 인식했기에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지속됐다. 이들 사이에 피어오른 이러한 화해 무드가 깨진 것은 오후  시 반쯤이었다. 최여사는 매상을 중간 점검하며 오십 불이 빈다고 짜증 섞인 목소리를 냈다. 혐의와 누명의 공기가 뒤섞인 채 식당 안에 퍼지자 종업원들은 호전적인 태도로 돌변했다. 강 씨는 최여사의 말을 가당찮다는 듯 무시했고 영란의 얼굴색은 평상시 술 마실 때보다도 빨개졌다. 민우는 범인을 필히 밝혀보자며 칼로 도마를 탕탕탕, 세 번 내리쳤다. 하루코는 그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맥주 깡통처럼 미간이 일그러진 최여사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캐시 레지스터  내부서랍을 들었다. 그러자 오십 불짜리 지폐가 반으로 접힌 채 그 밑에 숨어 있었다. 최여사가 여기 있네,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겸연쩍게 웃었다. 풍선처럼 팽팽했던 긴장감이 빵, 하고 소리를 내며 터졌다. 민우의 캘리포니아 롤을 마는 손놀림은 다시 경쾌해졌고 녹차를 운반하는 영란의 발걸음 역시 안정을 되찾았다. 하루코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얼굴로 어깨를 들썩였다. 제대로 찾아보지도 않고 생사람을 잡으려고 하다니. 저토록 경솔하기만 한 여자가 이 중요한 시국에 이곳의 주인이라니, 대체 이 일을 어한단 말인가. 강 씨는 중얼거리며 화장실로 들어가 굵고 누런 소변을 쏟아냈다. 볼일을 본 강 씨가 말보로를 입에 물 주방문을 열고 주차장으로 나갔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인 후 볼이 홀쭉해질 정도로 필터를 빨았다. 그의 깊은 한숨과 뒤섞인 허연 연기가 대기 중으로 흩어졌다. 민우는 주방 윈도를 통해 그를 바라봤다. 달빛이 강 씨의 번들거리는 이마에 떨어지자 그의 얼굴이 변화산의 메시아처럼 눈이 부시게 변했다.


식당 일을 마치고 집에 도착한 민우가 파란색 컵스 야구 모자를 벗어 벽에 걸었다. 오늘은 혼자가 아니라 같이 온 일행이 있었기에 그의 얼굴엔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었다. 민우의 집은 홀로 사는 남자답지 않게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고 은은한 아카시아 방향제 향이 집 안에서 났다. 키친 냉장고에는 미국 각 주 모양의 마그네틱이 붙어 있었는데 모두 민주당이 상, 하원을 장악하고 있는 주들이었다. 소파에 앉아있던 그가 일어나 냉장고에서 삿포로 캔 맥주 두 개를 꺼내 가지고 다시 소파로 돌아왔다. 그가 맥주 하나를 따서 하루코에게 건넸다. 두 사람이 가볍게 건배를 한 다음 맥주를 마셨다. 도톰한 그녀의 입술과 새하얀 그녀의 목덜미가 민우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차가운 맥주를 마시며 달아오른 심장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맥주 캔을 탁자에 놓으려고 하루코가 상체를 숙이자 깊이 파인 그녀의 브이넥 스웨터 속 가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민우의 페니스가 순간적으로 단단해지며 말로 표현하기 힘든 어떤 열기가 그의 몸을 훅, 하고 감쌌다. 민우 더 이상 참을 수도 참을 이유도 없었다. 그가 오늘 점심시간 후 쉬는 시간에 이따가 일 마치고 우리 집에 한 번 와 볼래요?라고 메모지에 적어 하루코에게 건넸고, 그녀 역시 메모지에 Okay라고 적어 민우에게 은밀하게 화답했다. 두 사람이 지금 이 시각 민우의 집 소파에 나란히 앉아 맥주를 마시는 이유와 그 목적에 대해선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민우는 입술에 묻은 하얀 맥주 거품을 손가락으로 닦았다. 그리고 마치 일본군이 하와이 진주만을 공격하듯 기습적으로 하루코에게 키스했다.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혀가 곧바로 그의 혀와 뒤엉켰다. 민우의 팬티 안에서 뜨거운 김이 분출돼 나왔다. 그는 그녀의 브래지어를 벗기고 녀의 탄탄한 유방을 강하게 애무했다. 민우는 페니스가 발기할 때로 발기하자 그녀를 번쩍 안아 침실로 향했다. 하루코는 그에게 콘돔을 껴 달라고 했고 그는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임신에 대한 걱정이 사라진 두 사람은 서로의 몸을 열정적으로 탐하고 탐닉했다. 민우의 배 위에서 현란하게 엉덩이를 움직이던 하루코가 절정에 다다르자 소리를 지르며 그의 몸 위로 엎어졌다.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침을 꼴깍거리는 소리를 연속적으로 냈다. 온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오르가슴을 느낀 민우도 그녀의 매끄러운 허리를 어루만지며 그의 거친 숨결을 골랐다. 어느 정도 숨이 잦아든 하루코가 마일드세븐을 집어 물었다. 그녀가 담배를 한 모금 피운 후 민우에게 건넸다. 민우의 얼굴에는 만족감과 친밀감이 함께 깃들어 있었다. 동시에 알 수 없는 어떠한 허탈감도 그녀와 포개진 허벅지 사이로 공존했다. 그는 담배를 몇 모금 피우다가 유리 재떨이에 담배꽁초를 비벼 껐다. 그동안 수많은 남자들의 추파와 제안을 거부했던 하루코가 그에게 마지노선을 허물어 버린 이유가 궁금했다. 그녀는 그냥, 젊은 한국남자 맛을 보고 싶었다고 말했고, 민우는 오래전부터 강력한 후보였다고 덧붙였다. 하루코의 눈가로 번지는 미세한 주름이 민우의 기분을 주름지게 만들었다. 내일도 일해야 하니 그만 자자며 그녀가 침대 머리맡에 놓인 램프를 껐다. 빛이 사라진 처음 몇 초동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까맣다가 밖에서 들어온 은은한 빛이 번지자 방 안의 윤곽들이 드러났다.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입을 맞추고 서로의 몸을 만지다가 껴안은 채로 잠에 빠져 들었다.  

      

SAKURA SUSHI BAR 하루코가 네온사인 스트링을 당겨 영업 시작을 알렸다. 그녀가 테이블에 놓인 소이 소스를 일일이 체크했다. 간밤에 다이내믹한 한국 청년의 정기를 받아선지 그녀의 엉덩이는 탱탱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바에 서 있던 민우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연어를 토막 내는 강 씨의 손놀림이 정교하면서도 리듬감이 있었다. 한 번 지각한 적이 없던 영란이 이십 분 늦게 허겁지겁 출근해 스미마센, 을 연발했다. 최여사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보통 정오가 지나야 그녀는 식당에 나왔다.   

사쿠라는 오전 열 시에 오픈했지만 손님은 일반적으로 열한 시가 넘어야 들어왔다. 사실 아침 열 시부터 열한 시까지의 한 시간이 사쿠라에서는 가장 여유롭고 생기가 넘치는 시간이었다. 서로에게 눈을 흘기는 일도, 서로에게 언성을 높이는 일도, 서로에게 불만족스러운 기색을 내비치는 일마저도 이 특별한 시간엔 존재하지 않았다. 강 씨가 새로 만든 싱싱한 레몬 샐러드 소스를 기다란 나무스틱으로 저었다. 소스 맛을 본 그가 역시, 하는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민우는 녹차 한 잔을 내려서 마셨다. "오늘 일 끝나고 간단하게 한 잔 하자. 이런저런 할 얘기도 있고." 강 씨가 민우와 영란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일장기 문양처럼 붉은 그의 얼굴을 보며 민우는 그리 내키진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요즘 술을 자주 마시는 것 같지만, 그래도 좋아요. 대신 오늘은 대구 매운탕 말고 다른 생선으로 매운탕 만들어주세요." 영란이 앞치마를 두르며 말했다. 대구가 얼마나 맛있는 생선인데 그러냐,라며 강 씨는 대뜸 영란의 고향을 대뜸 물었다.

"전라도 광주요." 그녀가 머리에 헤어핀을 꽂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강 씨는 그녀가 대구를 싫어하는 이유를 알겠다며 그 나름대로의 유머를 구사했다. 영란은 그의 농담을 이해하지 못한 채 내세에 대구로 환생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민우가 게이샤의 가랑이처럼 입을 벌린 채 소리 내어 웃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식당은 손님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버글거렸다. 손님들 대부분은 근처 회사에서 일하는 회사원이었다. 영란이 테이블 사이를 송사리처럼 헤엄쳐 다녔다. "Can I have some water please?(여기 물 좀 주시겠어요?)" "I'd like to have a salmon teriyaki.(연어 테리야키로 주세요.)" "하이! 아리카도 고자이마스." "저기요, 녹차 좀 더 주세요." 각 테이블에서 튀어나오는 혼합된 언어 때문인지 민우는 자신이 유엔 회의장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얼굴에 땀이 흐르자 냅킨을 반으로 접어 이마를 닦았다. 빈 접시를 치우던 하루코가 웃으며 그에게 다가와 민우의 이마에 붙어있는 냅킨을 떼어주었다. 이어서 하루코는 민우의 목에 맺혀있는 땀을 그녀의 손으로 닦아주었다. 회를 써는 강 씨의 팔뚝 힘줄이 순식간에 도드라지게 올라왔다.  

"나이도 젊은 놈이 썩은 고등어처럼 몸이 곯았냐?" 왠지 신경이 날카로워진 강 씨가 민우에게 말했다. 민우는 요즘 좀 피곤해서요. 아무래도 비타민 C를 먹어야겠어요,라고 말했다. 강 씨는 비타민보다 사과식초를 물에 희석해 아침저녁으로 마셔보라고 했고, 민우는 알았다고 대답했다. 세 시가 넘자 약속이라도 한 듯 식당을 찾는 손님들이 뚝 끊겼다. 사쿠라는 세 시부터 다섯 시까지 두 시간 동안 잠시 문을 닫았다. 강 씨가 점심으로 냄비가락국수를 끓였다. 민우는 홀 중앙에 있는 테이블 두 개를 나란히 붙였다. 영란이 단무지와 김치를 작은 그릇에 담아 가지고 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야채와 어묵이 가득 들어있는 먹음직스러운 냄비가락국수가 식탁에 놓였다. "너무 맛있게 보이네요. 잘 먹겠습니다." 영란이 두 손을 모으고 짧게 기도한 뒤 국자로 면을 퍼 그릇에 담았다. 강 씨가 냉장고에서 아사히 두 병을 가져왔다. 대낮부터 무슨 술이냐고 민우가 말하려다가 강 씨의 티존에 흐르는 기름의 양을 보고 그만두었다. "사쿠라는 점심 두 시간, 저녁 세 시간, 바싹 버는 장사야. 하루에 다섯 시간만 정신없이 뛰면 백 불 이상을 벌잖아. 아르바이트로 이만한 일 없어." 강 씨가 유리 글라스에 맥주를 따르며 영란게 말했다. 알맞은 두께의 맥주 거품이 잔 위로 구름처럼 내려앉았다. "맞아요. 시간당 이십 불을 버는 건데, 진짜 괜찮은 거죠. 제가 아는 친구는 세탁소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데 시간당 팔 불 밖에 못 벌어요." 영란이 분홍색 회오리 모양의 나루토마키를 먹으며 맞장구를 쳤다. 민우는 가락국수 국물을 들이켠 후 시간당 팔 분이면 진짜 적네,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루코는 그들과 함께 점심을 먹지 않고 언제나 켓지 길에 있는 소공동 순두부에 가서 홀로 식사를 하고 왔다. 그녀가 같이 음식을 먹지 않는 것에 대해 점심을 도맡아 준비하는 강 씨로서는 내심 불쾌했지만 그렇다고 내색하지는 않았다. 하루코가 늦은 점심을 먹고 순두부집을 나설 무렵부터 떨어지기 시작한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다. 우산이 없던 그녀가 검은 비에 젖은 히로시마 여인처럼 문을 열고 사쿠라 안으로 들어왔다. "저건 또 뭐야, 홀딱 다 젖어서... 하여튼 누가 왜년 아니랄까 봐 청승맞기는..." 강 씨가 비릿한 냄새가 나는 방어를 칼로 자르며 그녀의 음울한 분위기를 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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