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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Jang Sep 09. 2024

리글리 세탁소 (1/3)

이곳은 어떤 도시인가. 미국 일리노이주에 위치한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 미시간 호수의 남서쪽 연안에 똬리를 틀고 있고, 미국 중서부의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이며, 도시권 인구는 약 900백만 인 메가 시티. 이곳은 이 도시의 이름을 딴 학파가 있을 정도로 건축 양식으로 유명하고, 스카이라인이 기가 막히며 윌리스 타워(한때 시어스 타워라고 불린)와 존 핸콕 센터 같은 고층 빌딩 즐비한 도. 동시에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밀레니엄 파크와 네이비 피어가 도심에 자리한 곳.


블루스와 재즈 음악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는 도시. 또한 미술, 연극, 문학 분야에서도 이 도시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 세계적으로 명성 자자한 미술관 아트 인스티튜트도 이곳에 있다. 또한 이 도시는 스포츠 팬들에게도 친근한 곳으로, 불스(NBA), 컵스(MLB), 베어스(NFL) 등 여러 프로 스포츠 팀들이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백 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컵스의 리글리 필드.


금융, 무역, 서비스업, 제조업 및 건설 등 그야말로 온갖 산업의 중심지도시. 세계에서 가장 바쁜 공항 중 하나인 오헤어 국제공항이 있는 도시. 또한 이곳은 음식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데, 대표적인 음식으로는 여기 스타일 핫도그와 엄청난 양의 토마토소스 들이부어 만 딥디쉬 피자가 있다.


이처럼 이곳은 다양한 인종과 문화와 언어가 공존하는 도시로, 도시 곳곳에서 이민자들의 땀과 눈물과 피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미국 작가인 노먼 메일러는 이곳을 두고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아메리카의 마지막 위대한 도시."


그렇다. 이 도시의 이름은 바로 시카고. 갱단 조직이 경찰보다 9배나 많은 곳. 이 도시의 역사 중 제일 유명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마피아. 그리고 이들의 보스였던 전설적인 인물 알 카포네. 그가 하데스로 떨어진 후에도 샘 지앙카나 등의 후계자들이 악명을 떨치며 이곳을 마피아의 도시라는 낙인을 지울 수 없게 만들었다. 타타타타타 시카고 타자기. 현재에도 시카고 사우스 사이드에선 갱단들의 총격전으로 인해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 나간다. 날씨는 또 어떠한가. 이 도시에선 갱단의 총에 맞아 죽지 않으면 끔찍한 폭염으로 인해 죽던지, 잔혹한 한파로 인해 죽을 수 있다.


이 복잡한 성격을 가진 도시에 이민 온 수많은 사람들 중 최 씨 부부가 있었다. 그들은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최 씨가 가게 문을 열자마자 처음으로 하는 것은 간판 불을 켜는 것이었다.


Wrigley Dry Cleaners


1.

최 씨는 아침부터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몇 달 전 구입한 그의 독일산 BMW가 비에 쫄딱 젖어 중국산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색 러닝셔츠를 입은 채 그는 밖을 내다봤다. 하늘을 촘촘히 메운 재색 구름이 도무지 가실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비가 떨어지려면 확 쏟아붓든가. 미친년 오줌 싸는 것도 아니고. 그가 말보로 한 개비를 꺼내 물며 미간을 구겼다. 최 씨가 세탁소를 경영한 지도 어느새 십 년이 넘었다. 시카고 컵스의 열렬한 팬이기도 한 그는 지난해 알링턴 하이츠에서 리글리필드 근처로 세탁소를 옮겼다. 한국에서 대학까지 나온 그가 이민 와 고작 한다는 일이 세탁소라는 게 부끄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말도 안 통하는 미국 사회에서 이 정도면 성공한 거지,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최 씨는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세탁소에서 많은 역할을 했다. 멕시코에서 온 라울이 라티노의 열정을 담아 바지를 다렸고, 그 밖의 일은 모두 최 씨가 했다. 그는 셔츠를 다림질했고 드라이클리닝을 했고 옷에 묻은 얼룩을 제거했다. 얼룩이 묻은 곳에 화학약품을 몇 방울 떨어뜨린 후, 작은 스틱으로 살살 문지른 다음 물총을 쏘면 얼룩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하지만 얼룩 지우기 달인인 그도 아내의 눈 밑에 있는 다크서클은 어쩔 수 없었다.

영락없이 시퍼런 멍처럼 보이는 자국이 아내의 눈언저리에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최 씨가 아내를 때린 것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너무 티 나게 때리진 말아. 굳이 때릴 수밖에 없다면 허벅지나 엉덩이를 때려.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진지하게 조언했다. 처음에는 일일이 부인하던 최 씨도 나중에는 알았다고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드라이클리닝을 하기 전에는 세탁물을 샅샅이 뒤져야만 했다. 옷 속에 있는 동전이나 잡동사니들로 인해 기계가 고장 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옷을 뒤지다 보면 뜻밖의 횡재를 얻을 때도 있었다. 손님들이 주머니 속에 있는 돈을 까먹고 맡기는 경우도 빈번했다. 최 씨는 돈의 액수가 오 불 미만인 경우는 주인에게 돌려주었고 십 불 이상이면 자신이 챙겼다.


최 씨가 리바이스 청바지를 뒤지며 주차장에 있는 BMW를 그윽한 시선으로 쳐다봤다. 철저하게 사랑한다. 나의 BMW. 내가 항상 너를 물로 닦는 건 내가 너 안에 있을 때 받는 평안 때문이란다. 너를 완전히 소유하게 되는 삼 년 뒤에도 우린 결코 헤어지지 않을 거야. 그는 중얼거리며 하늘을 봤다. 시커먼 구름이 몰려와  것 같은 조짐을 보이던 창공을 도로 장악해 버렸다. 오늘은 글렀군. 내일 해 뜨면 세차해야지. 최 씨가 아내에게 점심을 시키라고 말했다. 아내가 건너편 몰에 있는 홍콩왁에 전화했다. 그녀가 치킨 찹수이와 비프 앤 브로콜리를 시켰다. 주문한 지 오 분이 채 안 돼 배달부가 음식을 가져왔다. 최 씨가 종이봉투에 담긴 치킨 찹수이를 꺼내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그는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한 번도 아내에게 식사를 하라고 권한 적이 없었다. 음식이 나오기 무섭게 자신의 목구멍으로 집어넣었다. 침대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내의 사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사정이 중요했다. 아내는 남편을 통해서 단 한 번도 절정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녀는 몇 년 전부터 최 씨와의 성관계를 거부하고 스스로 해결을 해오고 있었다. 번개같이 찹수이를 끝낸 최 씨가 냅킨으로 입가를 닦았다. 그는 구석에 있는 냉장고에서 펩시를 꺼내 통째로 입에 꽂았다. 다림질을 하던 라울이 최 씨를 옆에서 힐끔 쳐다봤다. 라울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팬티 속에 재빨리 손을 넣어 고환을 주물럭거렸다. 매주 금요일에는 지현이 세탁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녀는 다운타운에 있는 드폴 대학을 다니는 유학생이었다. 젊은 영양 같은 그녀에게 최 씨는 저녁을 같이 먹자는 제안을 은밀히 하기도 했다. 지현은 최 씨가 부담스러웠지만, 경제 사정이 넉넉지 않았던 그녀로선 최 씨가 교과서나 사라며 이 주에 한 번씩 건네는 백 불 때문에 그의 추파를 확실히 뿌리치지도 못했다. 최 씨가 세탁물을 집어오려면 지현이 일하는 지점을 지나쳐야 했다. 최 씨는 종종 본인의 그것을 그녀의 엉덩이에 대고 비벼댔다. 처음엔 소스라치게 놀라던 지현도 최 씨가 계속해서 꾸준히 갖다 대자 나중엔 무감각해졌다. 열 번 비벼 안 넘어가는 엉덩이 없다. 최 씨의 확고한 신념이었다. 최근엔 오히려 지현이 대담해졌다. 그녀는 탄력 넘치는 가슴을 최 씨의 등에 밀착시켜 그를 흥분시켰다. 두 사람의 성적 희롱은 얼마 지나지 않아 최 씨의 아내에게 발각됐다. 아내는 끓어오르는 증오심으로 어금니를 뽀드득 갈았다. 저 잡것들에게 반드시 심판의 불이 떨어지리라.


최 씨는 나일즈에 있는 포도나무 한인교회의 신자이기도 했다. 포도나무 교회는 어떤 교파나 교단에도 속하지 않은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가 혼합된 일명 칼미니안주의를 지향했다. 최 씨는 주일 예배 직후에 갖는 점심시간을 에클레시아의 본질로 이해했다. 박 집사가 벤츠를 현찰로 샀다든지, 윤 장로가 네이퍼빌에 백만 불이 넘는 집을 구입했다든지, 하는 정보가 식사 도중에 오갔다. BMW, 내가 요즘 얘로 인해 삶의 목적을 되찾았잖아. 최 씨가 차 자랑에 침을 튀겼다. 근데 BMW는 솔직히 한물간 메이커 아닌가. 디자인도 장난감 같고. 최 씨의 최대 라이벌인 왕 씨가 빈정거리는 투로 말했다. 최 씨는 즉각 반박했다. 이봐 왕 집사. 무슨 도널드 트럼프 4선 도전하는 소리야. BMW가 한물간 차라니, 오히려 렉서스가 개뿔도 아닌 일본 차 주제에 유러피언 브랜드 흉내 낸 거지. 최 씨가 왕 씨의 백마인 렉서스를 역으로 조롱했다. 십만 볼트의 고압전류가 두 사람 사이로 흘렀다. 한쪽 눈이 한쪽 벽으로 돌아간 고집사가 중재에 나섰다. 자자 차 얘긴 그만하고 고국 얘기나 하자고. 어때? 이번에 누가 당선될 것 같아? 누가 되든 한국은 끝났어. 가망 없다고. 후보자들을 보니 사색잡놈밖엔 없더구먼. 왕 씨가 분이 덜 풀린 듯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말했다. 그게 무슨 조 바이든 허공에 대고 묵찌빠 하는 경우야. 왜 한국이 희망이 없냐고, 희망이 넘치는 곳이지. 오히려 미국이 희망이 없지. 진짜 잡놈들은 모두 여기서 살고 있더구먼. 그저 서로 뒤에서 중상모략하고 헐뜯고 뒤통수 치고, 그 따위로 사는 것들로 수두룩한 데가 이곳이야. 최 씨가 자기 비하도 불사하며 왕 씨를 공격했다. 그는 왕 씨가 처음부터 싫었다. 왕. 그의 성마저 꺼림칙했다. 최 씨는 그를 미시간 애비뉴로 배달 나갔다가 길을 잃은 중국집 배달부쯤으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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