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최 씨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그의 얼굴은 오르가슴을 만끽한 조루증 환자처럼 보였다. 그의 두 귀 뒤로 초승달 같은 미소가 걸렸다. 최 씨가 재빠르게 재킷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벤저민 프랭클린. "바로 이거야!" 그가 쾌재를 부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거의 일 년 만에 낚인 백 불짜리 지폐였다. 최 씨는 주위를 쓱 둘러본 후 수확물을 그의 바지 주머니 속에 넣었다. 갈증을 느낀 그는 냉장고에서 스프라이트를 꺼냈다. 2리터 통을 입에 쑤셔 넣은 그를 지현이 구석에서 바라봤다. 묘한 아우라가 그로부터 풍겨져 나왔다. 최 씨는 고개를 홱 돌렸고 자신을 바라보던 지현과 시선이 마주쳤다. 최 씨가 손등으로 입술을 닦으며 그녀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지현은 그의 뜨거운 시선에 어쩔 줄을 몰라했다. 내가 왜 이러지? 사십 대 세탁소 주인한테. 그녀의 얼굴이 홍시처럼 변했다. 그녀의 동요를 눈치챈 최 씨가 걸려있는 옷 사이를 잔나비처럼 비집고 지현에게 다가갔다. 지현에게서 오이 비누 향이 은은하게 났다. 루이스 미겔의 음악에 맞춰 바지를 다리던 라울이 두 사람을 힐끔거리며 쳐다봤다. "오늘 바쁜가?" 최 씨의 목소리가 엿가락처럼 끈적거렸다. "아니요, 왜요?" 지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잘 아는 일식집이 있는데, 사쿠라라고. 거기서 회식 어때? 사장과 직원 사이에 있을 수 있는 그런 회식 말이야." 최 씨가 지현의 허리를 슬며시 어루만졌다. "라울하고 사모님도 같이요?" 그녀가 허리를 빼며 대답했다. "아니, 너랑 나랑 단둘이. 전반적인 세탁소 운영 문제로 할 얘기가 있어. 지현이의 솔직하고도 담백한 의견을 듣고 싶어서 그래. 왜 싫어?" "싫은 게 아니라... 그래요, 그럼." 지현이 회색 양복바지에 비닐을 씌우며 대답했다. 화장실에 갔던 최 씨 아내가 카운터 쪽으로 오자 두 사람이 동시에 입을 닫았다. 아내는 두 사람을 번갈아보며 이것들에게 날벼락이든 익힌 벼락이든 반드시 떨어지리라, 하고 속으로 저주를 퍼부었다. 라울이 바지를 집다 말고 끼루룩 갈매기 소리를 내며 웃음을 터트렸다. 태양은 미시간호 뒤로 떨어졌다.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친 오늘의 노동자들로 퇴근길이 붐볐다. 교외로 연결된 도로는 차들로 가득했다. 다양한 색깔의 차들이 회색 도시를 알록달록하게 물들였다. 일을 끝낸 한인들 대부분은 집으로 직행했다. 퇴근 후 그들의 거의 유일한 낙은 맥주를 마시며 고국의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었다. 리글리 세탁소의 간판 불도 꺼졌다. 라울은 그의 낡은 닛산을 타고 쏜살같이 퇴근했고, 최 씨는 뷰티 서플라이 협회장과 만나 긴히 할 얘기가 있다며 그의 아내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했다. 아내는 최 씨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지만, 물증이 없었기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지현은 최 씨와 눈짓을 주고받은 후 약속 장소로 가는 시내버스에 올랐다. 일식당으로 가는 최 씨의 BMW가 설렘으로 들썩거렸다. 그가 사쿠라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지현이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다. 밖에서 보니 그녀의 얼굴은 더욱 빛이 났다. 다운타운의 모든 네온 불빛이 그녀의 머리카락과 눈과 코와 입술과 매끈한 목을 위해 조명으로 쓰이는 것 같았다. 일본 가수 타마키 코지의 '카나시미니 사요나라'가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지현이 쑥스런 얼굴로 상체를 숙이며 식당 분위기가 정말 좋다고 최 씨에게 말했다. 최 씨는 흐뭇하게 웃으며 그녀가 좋아할 줄 알았다고 다정하게 말했다. 최 씨가 웨이트리스에게 스시 딜럭스와 소주를 주문했다. 종업원이 그들을 미심쩍은 눈으로 보며 알았다고 대답했다.
"자 한 잔 더 마시자." 지현의 잔에 최 씨가 소주를 다시 따랐다. 그녀가 발그레한 얼굴로 술잔을 들었다. 일식당에 들어서며 느꼈던 어색함은 소주가 몇 잔 들어가자 그녀의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지현의 봉긋 솟은 가슴을 보며 최 씨는 별의별 상상을 다했다. 아무리 육신의 열매는 사망이라지만, 어차피 언젠간 죽는 법, 영이든 육이든 가능한 많은 열매를 맺고 가자. 최 씨가 속으로 생각하며 길 잃은 바다사자처럼 식당 안을 둘러봤다. 스시 바 뒤에 서 있는 세프와 눈이 마주쳤다. 세프의 미간 사이로 흐르는 개기름이 엄청났다. 최 씨가 느닷없이 웃자 지현이 왜 웃어요? 라며 그의 팔을 흔들었다. 그가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지현이 몸을 돌려 세프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녀는 엉덩이가 들썩거릴 정도로 자지러지게 웃었다.
최 씨가 슬슬 나가자고 말했다. 지현은 어디를 갈 거냐고 말한 뒤 술잔을 비웠다. 최 씨는 이차를 가자면서 이차는 둘 만 있을 수 있는 지척에 있는 조용한 곳을 안다고 말했다. 지현은 그곳이 어디인지는 정확히 몰랐지만 그곳이 어떤 곳을 말하는 것인지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최 씨는 차는 내일 아침 일찍 찾으러 오겠다며 얼마의 돈을 식당 주인에게 건넸다. 두 사람은 'Motel Pulaski' 네온사인이 점멸하는 곳으로 걸어갔다. 지현은 규모 3.5 지진으로 인해 처녀성을 잃은 것처럼 깊은 날숨을 내쉬었다. 생선회를 얼마나 먹었던지 그녀의 입에선 수족관 냄새가 났다. 뜨거운 마그마가 최 씨의 허리를 지나 그의 사타구니를 타고 밑으로 흘러내렸다. 지현은 모텔 주차장에 서 있었고 최 씨가 모텔 안내실로 들어갔다. 머리에 터번을 두른 인도 남자가 카운터에서 졸고 있다가 눈을 떴다. 하룻밤에 얼마냐고 물으며 최 씨가 지갑을 꺼냈다. "한 사람은 45불, 두 사람은 80불이요." 직원이 헛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최 씨는 그에게 아까 낮에 세탁소에서 수확한 백 불을 건넸다. 종업원이 룸 키와 거스름돈을 최 씨에게 건넸다. 밖으로 나온 최 씨가 지현에게 방 키를 보여주며 가볍게 그것을 흔들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모텔 이층으로 올라갔다. 프런트에서 두 사람을 본 종업원이 씩 웃고는 서랍에서 플레이보이 매거진을 꺼내 들었다. 룸에 들어서자 지현은 최 씨에게 고개를 돌려달라고 한 뒤 옷을 벗고는 욕실로 들어갔다. 최 씨는 바닥에 털썩 앉아 양말과 바지를 차례대로 벗었다. 곧 욕실 샤워기에서 쏴하고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무기처럼 흐느적거리던 최 씨의 그것이 고개를 발딱 들었다. 호기심 가득한 15살 청소년처럼 최 씨는 욕실 문을 살며시 열었다. 욕실 수건걸이에 걸린 지현의 빨간 브래지어가 보였다. 그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몸을 씻고 있었다. 그녀의 젊은 보디라인이 뿌연 수증기 속에서 실루엣처럼 비쳤다. 기웃거리던 최 씨의 눈에 그녀의 거웃이 들어왔다. 머리를 감던 지현이 그의 인기척을 감지했다. 그녀가 샤워기를 잠그자 좁은 욕실 안에 뜨거운 침묵이 흘렀다. 같이 목욕할래요? 지현이 말했다. 최 씨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지현의 흠뻑 젖은 몸을 향해 그의 몸을 던졌다. 뒤엉킨 두 사람은 오늘만 살다가 죽을 사람들처럼 서로를 탐닉했다. 지현과 함께 절정의 다리를 건넌 최 씨가 엎드려있는 그녀를 바라봤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공허함과 무기력감이 그의 목을 조여왔다. 왜 이렇게 가슴이 답답하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난 백두산 천지처럼 폭발했잖아. 최 씨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지현이 등을 돌려 모로 누웠다. 그가 침대를 벗어나 창가로 갔다. 최 씨는 커튼을 조금 열고 밖을 바라봤다. 도시의 밤은 꽤 깊었고 멀리 존 행콕 센터의 첨탑이 인디고블루색을 띠었다. 최 씨는 다운타운 야경을 보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이민 온 처음 몇 해는 천둥벌거숭이처럼 보냈지만 그 후론 제대로 마음을 먹고 정말 열심히 살았다. 동양인을 향한 백인들의 멸시와 흑인들의 냉대에도 맷집 좋은 경량급 복서처럼 참고 견디며 버텨냈다. 아내가 유산을 두 번이나 했을 때도 그는 힘든 아내를 생각하며 무너지지 않았고, 믿었던 감리교회 장로에게 영주권 사기를 당해 오만 불을 날렸을 때에도 그는 무너지지 않았다. 많은 날을 소리 없는 눈물로 지냈지만 결코 소리 내어 우는 법은 없었다. 그리고 악착같이 모으고 또 모은 돈으로 마침내 세탁소를 열게 되었다. 하지만 통장에 돈이 쌓이면 쌓일수록, 그의 BMW를 광이 나도록 닦으면 닦을수록, 그의 영혼은 새장에 갇힌 새처럼 답답해져만 갔다. 남들 앞에서는 인생을 즐기는 것처럼 행세했지만 자기 자신만큼은 기만할 수 없었다. 언제 일어났던지 지현이 뒤에서 그를 껴안았다. "뭘 그렇게 생각해요?" 지현이 그의 어깨에 입을 맞추었다. "그냥 가슴이 답답해서." 최 씨가 몸을 돌려 지현을 껴안았다. 둘은 침대로 돌아와 나란히 누웠다. 지현은 자기랑 그런 것 때문에 걱정하는 거라면 염려하지 말라며 담배를 물었다. "너는 혹시 이런 적 있어? 뚜렷한 이유도 없이 삶이 공허해지고 사는 목적이 사라지고. 그냥 모든 것을 다 끝내고 싶은." 최 씨가 그녀의 담배를 빼앗아 물었다. 지현은 생각해 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긴 그런 생각을 하기엔 넌 아직 어리지. 그렇지만 요즘 내가 그래. 가슴이 답답해. 정말이지 확 죽어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어. "지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커튼 사이로 갈치 비늘 같은 달빛이 떨어져 그녀의 눈에서 산화했다. "언제부터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녀가 반짝이는 눈으로 물었다, "사실 좀 됐어. 뭐랄까, 나는 이곳과 영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도 들고, 내가 해야 할 일은 세탁소가 아니라 뭔가 보람이 있고 더욱 의미가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어. 그런데 이 나라에선 언어도 그렇고, 도무지 뭘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어. 두 날개가 모두 꺾여버린 새가 된 것 같아." 최 씨가 모텔 천장을 향해 양팔을 뻗었다. "미국에 온 거 후회해요?" 지현이 그에게 물었다.
"여기 온 거? 응, 요즘 들어 부쩍 후회가 돼. 처음 미국에 올 때는 아메리칸 드림으로 부풀어 있었거든. 성실하게 일만 하면 이곳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어. 망할 놈의 한국보단 그래도 미국이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 기회는 개뿔... 이곳은 한국과는 다른 이유로 망할 놈의 땅이었어. 미국은 그냥 백인들이 살아가기에 좋은 곳이지, 우리 같은 동양인은 이곳에서 백인 놈, 흑인 놈, 이놈 저놈 눈치나 보며 살아가야 하니까. 심지어 여기서 태어난 아시안들마저도 온전히 미국 사람으로 여겨지지는 않잖아." 최 씨가 말하고 코로 한숨을 내쉬었다.
"내 생각엔 사장님이 이민 와서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으로 세탁소를 오픈하고 그런 게 대단한 성취로 보여요. 아무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미국에 온 많은 이민자들이 언젠가는 자기 비즈니스 하는 게 꿈이고 목표잖아요. 그런 사람들한테 사장님은 분명 동경과 부러움의 대상일 거예요. 그러니까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사장님은 충분히 멋진 사람이니까 마음을 좀 편하게 가지세요. 나도 있잖아요." 그녀가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만약에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을 하고 싶어요?" 지현이 그의 팔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최 씨는 몇 초간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모르겠어. 한 가지 분명한 건 세탁소는 아니란 거야. 언젠가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확실히 알게 될 때 너한테 제일 먼저 말해줄게. 너는 어때?" 최 씨가 지현에게 물었다.
"현재로서는 학교 공부 열심히 하고, 졸업 제때 해서 한국으로 돌아가 방송 쪽 일을 하고 싶어요."
"방송이라면 피디나 작가, 그런 걸 얘기하는 건가?" "맞아요. 그런데 그건 뭐 그때 가서 봐야겠죠. 그때까지는 하루하루 성실하게 또 감사하는 맘으로 살면 될 것 같아요." 지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는 진짜 성숙한 생각을 가지고 사는 것 같다." 그가 지현에게 팔베개를 해주었다. "네 말대로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돼. 종일 세탁소에서 화학약품 냄새 맡으며 일해야 하는 현실에 진절머리가 나."
최 씨가 말한 뒤 눈을 지그시 감았다. 지현이 최 씨를 가만히 끌어안고 그의 등을 톡톡 두드렸다. "그래, 굳이 너한테까지 이런 부정적인 얘기를... 나도 너처럼 긍정적인 태도를 갖고 살아가도록 노력해야겠다. 오늘 너한테 뭔가를 배웠어. 아무튼 우리 잠이나 좀 더 자자." 최 씨가 지현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그런데 와이프한테는 뭐라고 했어요?" "뭐라고 하긴, 뷰티 서플라이 협회 사람들이랑 밤낚시 간다고 했지. 물고기 낚시는 밤에 해야지. 낮에는 다른 걸 낚고. " 최 씨는 킬킬대며 말했다. 지현이 잘했다며 최 씨의 페니스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그것이 순식간에 딱딱해졌다. 지현이 깔깔거리며 웃었고 그녀의 웃음소리는 곧 거친 신음 소리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