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가시의 기억

by 인상파

가시의 기억


고슴도치 같은

겁 많은 아이가 울고 있었다.

그래서 가시가 필요하다고 믿었다.


나를 지키는 줄 알았다.

조용히 몸을 말고

세상에서 숨을 곳은 제 웅크린 몸뿐이라 믿었다.


하지만

억세고 날카로운 그 가시는

말없이 다가오던 마음을

찌르고 물러서게 만들었다.


방패가 아니라 창이었고

보호막이 아니라 상처였다.


지키고 있다고 믿었을 뿐인데

다정해지고 싶었을 뿐인데


어느 날 돌아보니

내 말은 송곳처럼 뾰족하고,

내 침묵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곁에 오는 것마다 상처를 입히고

침묵마저 토막냈다.


가시를 숨긴 고슴도치가 아니라

고릴라처럼 울부짖는

성난 어른이 거기 있었다.


가슴을 탕탕 치며

그림자의 무게를 길게 끌며

무(無)를 꿈꾼다.


흙처럼,

바람처럼,

모난 데 하나 없다면


아무것도

아프지 않을 테니까.


아무도

울지 않을 테니까.


우리 모녀는 마음이 아픈 사람들입니다. 딸아이가 어릴 때는 보호자의 역할을 하면서 그 태도가 다소 강압적이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게 딸의 병을 깊게 하는 측면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 딸아이의 병이 깊어짐에 따라 저도 깊이를 알 수 없는 수렁에 빠지곤 했습니다. 때로 모녀는 심사가 사나워져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곤 했습니다.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저의 부덕의 소치가 딸아이에게 깊은 상처를 줬다는 자괴감으로 괴로워서 잠을 못 이루는 날들이 계속됐습니다. 용서를 비는 마음으로 시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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