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리우데 자네이루에서 운동했던 Ares BJJ 체육관 관장님께 페루 리마에 가는데 추천해 줄 체육관이 있는지 물어보니, 이곳 리마 관장님 연락처를 받았고, 위치가 리마 미라플로레스(Miraflores)에 있어서 숙소도 근처로 예약했다.
Balance academy의 주짓수 수업은 새벽 6시와 저녁 8시 타임으로 나누어져 있고, 이외의 시간에는 무에타이, 복싱 등의 수업 시간이 있다. 리마에서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기도 하고, 긴 여행의 피로감과 개인적인 일이 겹쳐, 잠시 쉼표가 필요한 시기였다. 그래서 관광보다는 낮에 숙소 주변을 산책하고, 저녁엔 운동을 했다.
처음 친구들과 이야기하던 중 '리마에 언제까지 머무를 거냐'는 질문에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음.. 특별히 계획은 없어. 아마 이곳에서 일주일정도 지내보고, 이후 콜롬비아 메데진으로 갈 것 같아."라고 말했다. 다음 행선지로 메데진을 간다고 하니, 도장을 추천해 주던 친구가 있었다. 이렇게 관원들끼리 추천받아서 가는 곳은 정말이지 다음 체육관에 가서도 할 말이 생기고 좋다.
첫날 관장님을 뵙고 체육관 비용을 물어봤을 때,
"너는 언제 다시 떠날지도 모르는데 그냥 운동하러 나와. 나도 네가 오면 영어를 쓸 수 있고 재밌어."라고 말해주었는데, 그 대답은 조금 감동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가는 방향이 같아, 관장님과 같이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하기도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런 사소한 것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고, 아직도 그리운 곳 중 하나이다.
어차피 금방 떠날 친구, 잘 안 대해줄 수도 있는데 관장님은 생긴 것도 멋있었고, 젠틀했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운동하면서 본인의 노하우를 잘 설명해 주고, 스파링 하면서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지속적으로 디테일한 부분에 대해 알려주었다.
주짓수 여행을 하면서 한 가지 느꼈던 것은 '사람 복을 타고났나' 싶을 정도로 모두가 나에게 친절하고, '좋은 친구들'이었다.
이곳에 있을 때, 체코에서 리마로 장기 출장을 온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는 노기 주짓수를 더 좋아해서 노기 수업 때만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이 체육관에서 이방인이었던 나와 체코 친구는 원래 그러하듯 쉬고 있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스파링을 하자고 제안했던 적이 있다.
보통 내 경우(화이트 벨트)에는 관장님이 지정해 주는 사람과 스파링 할 때가 많아서 기다리는 편이지만 이 친구는 먼저 다가가 손을 내미는 편이었다. 나중에 끝나고 관장님이 말해주었는데, '이곳에서는 스파링 제안을 아래 급의 벨트가 상급 벨트인 사람에게 먼저 제안을 하는 것은 안 된다'며, '한국에서도 이렇게 벨트 상관없이 스파링을 했는지' 물어보았다.
'보통 수업 중에는 관장님이 정해주시는 대로 스파링을 했고, 자유 스파링을 할 때면 벨트 상관없이 운동했었다.'라고 대답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에서 운동하면서 상급자에게 스파링을 먼저 제안하면 안 된다'라는 것은 배운 적이 없었다.
남미 여행을 하며 처음 듣는 말이었지만, 이 체육관만의 보이지 않는 룰이었다. 사진을 찍을 때도, 사람이 적으면 한 줄로 나란히 서지만, 많은 경우에는 벨트 순서로 차례차례 뒤로 이동한다. 그래서 앞에는 유색 벨트가, 뒤에는 화이트 벨트가 서있는 구도가 완성된다.
이곳에서는 나이보다 벨트가 '깡패'였다. 대부분의 것들이 벨트 순서였다. 아마 이 체육관만의 전통(?)인 것 같았다. 해외라고 다 격이 없이 편하게 하는 건 아니고, 보수적인 곳도 분명 존재했다.
며칠이라도 운동하면서 체육관비를 받지 않으면, 떠나기 전날에 보통 음료수를 사들고 간다. 대개 10명 내외의 관원들이 나와서 모자라면 안 되니, 12개의 차가운 음료수를 사서 낑낑대며 안고 갔다.
하필 마지막 날에 인원이 관장님 포함 3명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 친구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며, 관장님께 이런 말을 전했다.
이곳에서 정말 좋은 시간을 보냈고
주짓수 수업, 그 이상의 값어치를
얻은 것 같아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에 꼭 다시 놀러 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