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스코는 과거잉카제국의 수도로,세계문화유산으로보존이 되고 있어 시간이 멈춘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고산지대의 특징인 일교차가 커서 아침, 저녁으로 기온이 많이 떨어지고, 계단을 오를 때마다 숨이 찬다는 단점이 있지만 훌륭한 한식당들이 있어 오래 머무르기에 나쁘지 않은 것 같다.남미여행을 하는데 마추픽추는 꼭 보러 가야 하니 쿠스코는 필수적으로 거쳐가는 곳임에 틀림없다.
쿠스코에 도착하기 전, 미리 구글에 주짓수 체육관을 검색해 보았는데 보통 관광객들이 머무는 아르마스 광장 (Plaza de Armas) 주변과는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었다. 아마 이 동네에서 주짓수는 유명하지 않은가 보다. 그래서 거의 포기하고 있던 찰나에 에어비앤비 호스트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운동을 하고 싶은데 근처에 원하는 체육관이 없다'고 했더니, 그런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있다며 같이 가보자고 했다.
주짓수 도장은 아무리 검색해도 나오질 않아서 주변에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일단 따라나섰다. 숙소에서 1분 거리의 헬스장에 들어가서 전단지를 구경하는데 놀랍게도 주짓수가 쓰여있었다. 주짓수 이외에도 무에타이, 카포에라, 복싱, 크라브마가 등 믿을 수 없는 다양한 투기 종목들이 있었다. '과연 이걸 모든 걸 다 가르칠 수 있는 관장이 있을까?', '여러 명의 관장이 있는 걸까' 의문스러웠다.
이 체육관 구조가 1층은 헬스장이고, 2층은 투기 종목을 배울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1층에 계신 헬스장 사장님께 물어보니 주짓수를 배울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수업이 몇 시인지 물어보니, 오히려 나에게 몇 시에 올 수 있는지 되물었다. 그래서 원하는 시간을 이야기했더니 가르쳐줄 관장님이 그때 오신다고 했다. 마치 1:1 과외처럼 진행하는 것 같아 수업이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 주짓수는 사람이 운동기구이다 보니 많을수록 좋은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일단 1주일치를 결제한다고 했다. 가격은 20 솔 (1 솔당 대략 360원) 일주일에 7,200 원인셈이다. 아마 한 달 단위로 결제했으면 80 솔보다 더 저렴했을 테니, 믿기지 않는 가격이었지만 놀라지 않은 척 20 솔을 내고 일주일을 등록했다. 고작 며칠 전 브라질 리우에서는 일주일에 10만 원가량 내고 다녔던 걸 생각하면 물가가 1/10도 되질 않았다.(물론 퀄리티도 그만큼 떨어졌다)
첫날 수업은 준비 운동을 5분 정도 하고, 드릴로 몸을 풀고, 노기로 가볍게 스파링을 하고, 관장님의 스펙에 대해 설명을 듣고, 끝이 났다. 처음 준비 운동을 시작할 때, 가볍게 매트 위를 원을 그리며 뛰라고 하셨다. 그래서 천천히 뛰는데 이 좁은 체육관을 2바퀴가 넘어가니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경험하지 않고서는 믿기 힘들 수도 있다.거리로 치면 대략 100m를 천천히 뛰었는데, 숨이 차서 더 이상 뛸 수가 없는 상황이다.
쿠스코는 해발 3,400m에 위치해 있다. 한라산 정상이 1,950m라고 하니 한라산보다 1,450m 더 높은 곳에서 뛰는 셈이다. 이곳에서 적응되기 전까지는 계단만 올라도 숨이 차서 쉬었다가 가야 하고, 오르막 길을 잠깐 걸어도 호흡이 거칠어진다. 지병이 있다면 위험할 수도 있는 수준이다. 실제로 남미 여행을 하다가 고산병이 심하게 와서 쓰러지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 반드시 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그것도 나름대로 산소가 희박한 곳에서 운동하니 더 훈련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뛰었다.
이곳에서 총 4번의 수업을 받았는데, 1번의 노기 주짓수 수업과 3번의 복싱 수업을 들었다. 복싱 수업에는 가끔 한 두 명의 관원과 같이 운동했는데 복싱 3일 배우는 것도 나름 재미있었다. 지루한 잽, 스트레이트 자세 연습과 줄넘기만 1시간 내내 했지만 지나고 보니 추억인 것 같다.
쿠스코를 방문했을 때가 마침 Holy week 시즌이어서 금요일엔 거의 대부분의 식당과 마트, 체육관 등이 문을 닫는데 마지막 날 관장님은 연락도 안 되고, 수업시간에도 오지 않았다. 사진 속 가운데 있는 분이 관장님인데 그렇게 추천할만한 체육관은 아니다. 쿠스코에 간다면 주짓수 도장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