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 지금 고백받은 걸까

by 여름온기

치과의사는 번역기를 꺼내더니 이렇게 적어 보여주었다.

“Quiero verte cada semana.”

(나는 너를 매주 보고 싶어.)

순간,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턱관절 질환 9년 차.

긴장과 스트레스가 쌓이면 어김없이 통증이 찾아왔다.

낯선 멕시코 생활 초반, 운전만 해도 목숨 건 전투 같았다.

심호흡으로도 진정되지 않는 불안에 밥 먹는 것도, 웃는 것도 힘들어졌다.


다급히 찾아간 한인 병원은 실망의 연속이었다.

비싼 보톡스만 권하고, 맞춘 스플린트는 씹던 껌처럼 굳은 불량품이었다.

내가 낫지 않는 이유는 그의 부족한 의술이 아니라 결국 내 스트레스 때문이랬다.


돈도 아깝고, 아픈 사람을 이용당한 기분까지 들어 턱은 더 아파졌고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러다 알게 된 한 멕시코 치과.

체격이 제법 큰 의사가 일어나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했다.

"Buenos días. Mucho gusto. 좋은 아침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목소리는 마치 금관악기 튜바에서 울려 나오는 듯 묵직했다.

그는 갈 때마다 긴장하고 걱정 많은 나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항상 질문에 하나하나 답해주고 차분히 설명했다.

“지금 근육이 많이 긴장되어 있어요.

시간은 걸리지만 반드시 나을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환자를 향한 이해심과 멕시코 특유의 친절함이 묻어났다.


의사의 영어 실력은 몇 마디 단어 수준이지만 다행히 번역기가 있었다.

문제는 진료비였다.

첫 진료는 3,500페소(약 30만 원), 진료 볼 때마다 700페소씩(5만 6천 원).

매주 오라는 말은 곧, 매주 남편의 등골이 휘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결국 의사의 권유를 뒤로하고 내 마음대로 2주에 한 번씩만 갔다.

그러자 번역기에 다시 적힌 그 문장.

“Quiero verte cada semana.”

(나는 너를 매주 보고 싶어.)

'예? 저… 결혼했는데요?'


나는 내가 결혼반지를 잘 끼고 있는지 흘끗 확인했다.

머릿속으로 "매주 진료 보러 오셔야 한다."라고 재빨리 자체 의역을 하며 터지는 웃음을 꾹 참았다.


의사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친근하게 느껴졌고 동네 친근한 아저씨처럼 느껴졌다.

매주 통증이 점점 나아지기 시작했고 왠지 번역기를 쓸 때마다 뭔가 모를 기대감도 생겼다.

병원을 나서며 생각했다. 구글 번역기의 직역과 멕시코의 친절함의 조합은 상당히 강력한 치료제라고 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