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표정의 기본값은 제로다. 무뚝뚝하고 때로는 뚱하게도 보인다.
몇 해 전, 한 로봇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이 약 60개가 넘는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오, 나보다 표정이 훨씬 풍부하네...'
처음부터 이런 표정을 원한 건 아니었다. 어린 시절의 상처와 겹치며 웃는 모습을 감췄다.
웃으면 가벼워 보일까 봐, 실없고 만만하게 보일까 두려워서.
그렇게 뚝딱뚝딱 방어벽을 쌓으며 사람을 경계했다.
초겨울 어느 날 새벽 여섯 시.
차량 서류 업무를 보러 멕시코 교통청으로 향했다.
번역기가 있으니 든든하고 영어를 할 수 있으니 한시름 덜었다며 씩씩하게 갔다.
그러나 이른 아침, 우버에서 내리니 낯선 겨울 바람이 두피와 피부를 차갑게 파고들었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멕시코의 거리에는 차도 사람도 드물었다.
밀려오는 공포감에 머릿털이 삐쭉 섰다.
내리자마자, 떨며 외쳤다.
"나 너무 무서워!!"
그 외침은 허공으로 흩어지고, 당연히 대답하는 이도 없었다.
마치 혼자 공포영화 속 한 장면 속에 들어온 듯했다.
우선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입구를 찾았다. 때마침 빨간 승용차 한 대가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백발의 멕시칸 할아버지가 창문을 내리고 다정하게 웃었다.
"Instito de vehículos (멕시코 교통청)..."
나는 어색한 미소와 함께 번역기를 보여주며 도움을 청했다.
"저도 마침 거기 가는 길이에요, 같이 가시죠."
그 한마디에 긴장과 추위가 조금은 누그러졌다.
할아버지와 나눈 소소한 대화는 추위를 녹이고,
개점 후에는 줄을 서며 내 자리를 내어주기까지 했다.
덕분에 업무는 단 몇 분 만에 끝났다.
돌아가는 길엔 또 다른 아주머니가 우버 타는 곳까지 동행해 주었다.
그날 만난 두 사람의 온정은 내 안의 편견에 금을 냈다.
‘멕시코는 위험한 곳만은 아니야.
이곳에도 따뜻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구나.’
겨울바람 속에 건네받은 친절은 손난로처럼 오래도록 내 마음을 데웠다.
요즘 나는 산책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이웃이나 우버 기사와 가볍게 미소와 대화를 나눈다.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한국에서 왔어요."
"오, 멕시코에는 왜 있는 거예요? 여행하는 거예요?"
"남편이 여기서 일해서요."
"어? 그럼 남편이 멕시칸이에요?"
"아니요, 하하 한국인이에요."
"아, 하하하."
사람과 사람을 잇는 건 화려한 말재간이나 외향적인 모습만이 아닌,
진심과 미소, 다정한 손길임을 깨닫는다.
굳었던 표정은 조금씩 풀리고,
내 표정의 기본값을 새로운 미소로 업데이트했다.
앞으로 어떤 긍정의 표정이 내 삶에 깃들게 될까, 마음의 문을 살며시 더 열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