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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신부의 출국

by 여름온기

어허. 깜빡이는 켜고 들어와야지.

후면 범퍼 한쪽이 찌그러진 빨간 승용차 한 대가, 안전거리도 확보하지 않은 채 내 차 앞으로 휙 들어왔다.

위험을 감지한 나는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몸은 앞으로 쏠렸다가 이내 뒤통수가 관성에 밀려 좌석 시트에 부딪쳤다. 잠시 흔들린 후에야 다시 안정을 찾았다. 혈압이 솟는다. 벌써 한 달 사이 몇 번이나 겪은 일인지, 저혈압도 여기선 고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도로 위를 달리다 보면 왼쪽 사이드미러가 아예 없는 차, 앞유리 대신 투명 비닐을 팽팽하게 씌운 차, 폐차 직전처럼 찌그러진 차들이 지나간다. 물론 멀쩡한 차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차량들이 아무렇지 않게 달리는 걸 보고 있자면, 꿈속에라도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운전도 제각각이다. 질서도, 배려도 부족하다.


한번은 멕시코 운전자가 난폭하게 끼어들었다.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 놀란 나는 클랙슨을 눌렀고, 그 순간 햇빛 가림도 안 된 그의 차량 뒷유리를 통해 중지 손가락을 들고 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본인이 잘못해 놓고도 잘못을 모른다.


나도 똑같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못 본 것 같아서 옆으로 지나가며 한 번 더 보여주고 싶었다. 교통법규를 알려줘야 한다는 나름의 취지였지만, 상대방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결국 화가 나도 자제하기로 했다.


물론, 모든 멕시칸이 그런 건 아니다. 도로가 꽉 막혀 있을 때도 양보를 잘해주는 편이다. 내가 먼저 양보하면 그들은 웃으며 손을 들어 고마움을 표현해 준다.

여긴 멕시코. 결혼하자마자 남편 직장을 따라 이곳으로 왔다. 좋은 사람을 만나 감사하고 기뻤지만, 부모님 곁을 떠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노쇠해진 부모님을 두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신부 대기실에 온 친구들도 이제 나와 이별한다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

몇 년만 있다가 돌아올 예정이었지만, 떠나는 나도, 보내는 이들도 그 이별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결혼식 당일.
「행복해야 해」
엄마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고, 나는 식이 시작되기도 전에 눈물을 펑펑 쏟을 수밖에 없었다.

무덥던 여름이 끝나고 가을을 알리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날.

기쁘고 떨리는 마음, 행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픈 마음을 꾹 눌러 담고, 나는 환하고 밝은 미소로 신부 입장을 했다.


꽉 조여진 코르셋 안에서 심장은 드레스를 뚫고 나올 듯 요동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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