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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곳, 도착한 신혼집

by 여름온기

"멕시코로 가서도 건강하게 잘 살아라. 사랑한다."

아버지의 축사가 이어졌다. 그 한 줄 속에, 한껏 절제된 아버지의 섭섭함이 담겨 있었다. 한국도 아닌 멕시코로 떠나는 딸을 보내며, 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버지를 마주 보며 북받치는 눈물을 참느라 목구멍으로 온 감각을 집중시켰다. 이내 못다 흘린 눈물이 목구멍에서 꿀꺽꿀꺽 넘어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제 공항, 엄마와 눈물의 작별 인사를 하고 아버지와 인사를 하려고 했다. 근데 아버지가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니 저 멀리서 아버지가 뻘건 눈을 닦으며 걸어오셨다. 그리고 나와는 눈조차 마주치지 않으셨다. 평소 표현이 많이 없으신 여태 살면서 본 적이 없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눈물.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던 등대가 꺼진 황량한 밤바다를 지키던 암흑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만성 긴장 덩어리인 내게 급작스러운 변화가 한꺼번에 생겼다. 결혼생활, 낯선 나라, 처음 만나는 한국 사람들과 멕시코 사람들,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언어들이 「께께쎄쎄떼떼까까」 하며 내 주위 사면을 둘러싸고 있다. 「이게 무슨 일이지? 」 빙글빙글 돌며 상황을 파악했다. 사면에서 비치는 쨍한 현실에 동공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라는 말은 내 머리 한 부분에서 저절로 희한하게 각색되어「여긴 누구, 나는 어디」라고 뱉을 만큼 허우적거렸다.


사실 결혼식이 끝나고 또 다른 단계를 마주했다. 삼십 분 단위로 돌아가는 결혼식 공장에서 공산품으로 찍혀 나온 기분을 느낀 것이다. 예쁜 드레스를 입고, 화장하고, 웃고, 걷고, 사진까지 찍은 뒤 마침내 유부녀 명찰만 달고 나온 느낌이었다.


남편에게 불편한 마음을 조심스럽게 나눴다.
"나, 결혼한 게 실감이 안 나."

참 고맙게도 남편은 이렇게 답해 주었다.
"다들 그렇대. 시간이 좀 지나야 한대. 계속 같이 붙어있고 아기도 생기고 그러면 조금씩 실감이 난대."


공항에서 내려 우리의 보금자리로 가는 길.
도로에 차선은 눈발처럼 흩어졌고, 곳곳에 깨진 아스팔트 도로 위 구덩이들로 차들은 펭귄 마냥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높고 낮은 낡은 건물들과, 간판에 스페인어로 적힌 투박한 글씨들을 보았다. 어떻게든 익숙해지고자 눈으로, 귀로, 느낌들로 이곳을 내 안에 하나하나 담기 시작했다.


남편과 끌어안고 신혼집 첫날을 축하했다.

"우리의 첫 번째 집이자 신혼집이네! 축하해. 우리 행복하게 잘 살자."

아직은 서툰 우리, 아직은 낯선 이곳.
하지만 저 산 중에 자리 잡은 집들의 불빛들로 따뜻한 환영을 받은 잔잔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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