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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등 떠밀리는 시니어의 쓸모와 역할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프니까 노인이다?

by 초맹


오피서는 너도나도 아파. 그냥 다 아파!


전편 : 회사에서 꼭 나가야 하는 이유. 나이 들어서!


늙었다. 몸이 마음만큼 못 따라간다.

아프다. 약 안 달고 사는 날이 없다.

회사는 언제 나가라고 할지 모른다. 눈치 보인다. 골 병든 거 티 내지 말아야지. 버림받는 건 한 순간이다.


시니어 오피서들은 편안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눈치 주는 사람이 없어도 스스로 눈치를 본다.


대개 오피서들은 당당하게 약봉지를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일부러 보란 듯이 놓기도 한다.

'일하다 병원 신세다.'

'아프니까 그만 시켜라.'

'약빨로 버티는 중이다.'라는 메시지다.


반면 20년 차 넘어가는 언제 고장 나도 이상할 게 없는 시니어 오피서들은 약봉지를 철저히 숨긴다. 건강 이상설이라도 제기되는 날에는 시니어 무용론이 일어난다. 기다렸다는 듯 목에 칼이 들어온다.


"건강 괜찮아?" 난 요새 병원 달고 살아! 허허허


"직원들 평균연령이 많이 높아지던데, 이래서 회사가 점점 정체되고 고여가는 거 아냐?!"

"암요 암요. 고정비 대부분 인건비인데 점점 높아지고 꼰대들이 많아지니 방안이 좀 필요합니다."

"회사가 젊어져야죠. 그게 바로 혁신 아니겠습니까?"

보드 미팅에서 임원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고령자 정리 시그널은 이렇게 시작된다.


보드 미팅 후, 제니 부사장은 현자를 찾는다.

"50대 고령 직원들은 보직자 외에는 쓸모가 없나요?"

"부사장님은 그들이 쓸모없다고 생각하세요?"

"고인물이다. 고연봉이다. 꼰대다. 자리차고 일안한다. 그런 무용론이 나오더군요."

"나중에 제가 50대 되면 쓸모없다고 내보낼 건가요?"


순간 멈칫하던 제니. 순간 장난기가 발동한다.

"아니 그럼 50대까지 다 해 먹을라고 했어요?"

"저는 아마도 때가 되면 알아서 나갈 거예요. 뭐 부사장님이 저 싫으시다면 내일부터 안 나와도 됩니다만?"

"흐음.. 그건 안 되죠. 현실장님 나가고 말고는 제가 정해요! 나이 들면 정년을 10년 늘려버릴까 봐요."


"제 얘기의 요지는요. 핵심은 회사가 사람을 무용지물로 만들고서 무용론을 펼친다는 겁니다. 사람은 배치하고 활용하기 따라 얼마든지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부사장님이 저 못 나가게 하는 것처럼요. 다만 회사가 해본 적이 없다 보니, 그 방법을 모르는 거겠죠."

"제 생각도 그래요. 제 말.. 무슨 뜻인지 알겠죠?"


"시니어 무용론을 되치기 할 실용론을 내오면 되나요?"

"빙고! 아마도 현실장님은 이러다 점점 더 나가기 어려워질 것 같네요. 후후."


에이.. 저 무능하고 밥만 축내는 시니어들..


얼마 뒤, 현자는 시니어 실용론을 만들어낸다. 이름하여 팀 어드바이저 제도다.

"회사의 문제는 시니어들을 보직에서 끌어내리고 제대로 된 일을 안 준다는데 있죠. 이미 의욕 저하 상태입니다. 수시로 몰아붙여 지방 좌천에 권고사직을 시킵니다. 현업에서는 일도 제대로 안 주면서 시니어들이 일 안 한다고 하죠. 이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럼 저들을 어떻게 잘 활용할 수 있을까요?"

"50대 시니어 직원들 중 일부 팀장급 보직자를 빼면 80%가 남습니다. 부서에서 실무자로 충분히 역할 중인 50대를 빼면, 60% 정도 남죠. 이 중 절반은 사업과 현장 경험이 많고 관리 이력이 풍부한 자들입니다. 나머지 절반은 기술 노하우가 많은 자들입니다. 팀 어드바이서 제도를 실시하여 각 팀에 50대 시니어 직원들을 1명씩 유관부서로 배치하고, 어드바이저로 공식화하는 거죠. 이들의 주 업무는 팀장을 근거리에서 보좌하고, 사업에 관한 조언, 실무진 협업, 노하우 전수와 같은 역할을 맡습니다. 단, 여기서 분쟁을 없애기 위해 결정권한을 배제시키고, 리더십은 팀장에게만 부여합니다."


시니어 직원들을 더 잘 활용하려면요!


"이미 사내에 여러 악순환으로 사기나 의욕이 떨어진 분들인데, 어드바이저의 역할이 가능할까요? 말은 어드바이저지만, 내용은 실상 팀에서 팀장 보조하며 실무진들이 어려워하는 건 다 하라는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그게 핵심입니다. 최근 젊은 팀장들이 시행착오를 많이 겪습니다. 실무진 컨트롤에도 어려움이 많죠. 이들의 중간다리 역할을 하게 됩니다. 팀장은 업무를 상의하기도 하며 부담을 낮추게 됩니다. 실무진들의 회의에 함께 들어가서 뒤섞이게 될 겁니다. 계약 미팅에도 따라가겠죠. 노하우들은 자연스럽게 전수됩니다. 말 그대로 진흙탕 조율맨입니다. 그렇지만 저들은 기꺼이 할 겁니다. 그리고 이걸 할 수 있는 자들이 바로 시니어 직원들입니다."


"팀장과 트러블이 있거나 완강한 꼰대면 어쩌죠?"

"존심이 너무 강한 자들은 스스로 버티지 못하고 낙오할 거고, 팀장과 트러블이 있는 자들은 그때그때 적당히 부서를 체인지하면 됩니다. 이렇게 제도가 안착되면, 시니어들이 충분히 제 값을 할 겁니다. 보직자들은 이후 자신들이 감당해야 하는 코스로 받아들이게 될 겁니다. 실무진들은 숙달된 노하우를 체득하게 됩니다."


"이 제도의 핵심은 배치 같네요. 모든 팀에 단순히 1:1로 맞추는 거면 실패할 겁니다. 그럼 각 시니어 직원들이 어떤 특징이 있는지 정확히 알아야 되는데, 이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파악하죠?"


"그 점은 HR 선과장이라면 가능합니다. 이미 파악 중일 겁니다. 선과장은 장점과 특징을 잘 살피죠. 이미 재배치에서는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수준입니다. 직원들 사이에 별명도 칼잡이년에서 재활용꾼으로 바뀌었죠. 사람 짜르려고 들여다보던 재주가 마음먹기에 따라 사람의 재능을 꽃피웁니다. 이번 일의 마지막 퍼즐은 선과장에게 달려 있습니다. 믿고 가 보시죠."


(주)초맹은 팀 어드바이저 제도를 시행합니다!


팀 어드바이저 제도 시행이 공식화되었다. 각 팀마다 팀장이 있고, 그 핵심 참모로 어드바이저가 생겼다. 본사, 현장, 연구소, 지사에 이르기까지 50대 시니어 직원들을 어드바이저로 배치했다. 사전 교육 과정에서 시니어 직원들에게는 업무와 노하우 전수, 팀장 보좌를 강조했다. 다른 직원들에게는 시니어 직원들을 활용하도록 권장되었다.


서서히 노인들의 위상이 달라졌다. 각 팀의 어드바이저가 된 시니어 직원들은 어린이들의 맨땅 헤딩을 황금 발차기로 바꿔 주었다. 주니어 직원들은 풀리지 않는 일이 생기면 이들에게 상의했다. 때로 번쩍이는 아이디어를 들고 오면, 어드바이저들은 이에 맞는 거래처를 찾아주고 협상 미팅도 동석해 주었다.


얘들아! 삽질 그만하고 이거로 해 봐!


팀장들이 연차가 낮아 회의에서 밀릴 때면 뒤에서 어드바이저에게 부탁했다.

"저.. 부장님. 해외영업 팀장이 일을 떠미는데, 쉽지가 않네요. 내일 회의인데 혹시 같이 좀.."

"네. 팀장님. 원래 히스토리 좀 정리해 둘 테니 같이 얘기합시다. 아마 함부로 떠밀지 못할 겁니다."


팀장의 무한폭주와 갑질에도 상호견제 효과가 생겼다. 처음에 못 마땅해하던 팀장들도 이들의 지원사격에 부담감이 줄어들고 점점 만족하기 시작했다.


연구소에서는 연구 노하우들이 새로운 연구와 시너지를 냈다. 기술센터는 장인들이 주니어 직원들을 가르쳤다. 영업 일선에서는 넉살 좋게 거래처를 상대하고 있었다. 자연스레 실무진들의 능력치가 올라가고 있었다.


"우와!" 어때? 이렇게 만드니까, 잘 나오지?


시니어들은 더 이상 회사의 고연봉 천덕꾸러기가 아니었다. 새로운 트렌드를 애써 따라간다고 스트레스받을 일도 별로 없었다. 그런 일은 주니어들이 하면 되니까. 무엇보다 자신들의 쓸모와 가치에 이들은 헌신했다. 지금까지 그렇게 당해왔으면서도.. 시니어들의 자존감 회복의 결과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들도 나타났다. 주니어들은 업무를 떠나, 사고 치면 수습하는 방법도 알게 모르게 배웠다. 팀장에게 하기 어려운 말을 어드바이저를 통해 전달하기도 했다. 팀장 또한 직원들에게 털어놓지 못할 고민을 어드바이저에게 털어놓으며 해법을 같이 모색하였다. 세대 간의 이해와 배려가 나타나고 있다.


물론 팀 내에 분란이 생기는 곳도 있었다. 그러나 HR은 제도 시행 후 계속해서 의견을 듣고 조정하며 뒤에서 많은 관리를 수행하고 있었다. 선과장은 계속 뛰어다녔다. 시니어들 중 분란쟁이나 꾸러기, 존심이들은 제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알아서 떨어져 나갔다.


"여기 누르면 돼요!" 시니어와 주니어가 보완된다.


그러던 어느 날. 실적으로 깨지고 온 팀장. 다 회의실 집합을 건다. 사자후를 시전하며 분위기는 냉기가 흐른다. 어드바이저 이부장은 오후에 눈치를 보다 팀장을 토닥이며 한 마디 건넨다. 알아서 분위기도 챙긴다.


"오늘 별일 없으신 분! 시원하게 치맥 한 잔 어때요? 제가 쏩니다! 내가 오늘 아무도 모르는 팀장님 흑역사도 다 얘기해 줄께! 허허허"


오늘 회의실 분위기 살벌하네..


"우리 꼰대들이 왜 자꾸 라떼 하는지 알아? 마음은 다 청년이야. 그래서 어린 직원들 보면 마음이 동하는 거지. 그 모습이 좋아 보이고 괜히 부러운 거야. 잔소리하고 가르치려는 게 아니라. 허허"


그랬구나. 꼰대들이 라떼는 어쩌구 뭐가 그리 자랑스러운지 싶었는데. 그냥 자신들의 젊은 날이 함께 보였던 것 뿐이구나. 어른이란 저런 거구나. 시니어 그들은 몇 년 남지 않은 오피스 게임을 의미 있게 보내려,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었구나..


얘들아 가자! 오늘 내가 쏠께! "선배님! 아이 저두 같이 가요!"


오해가 이해로 바뀐다.

무시는 존중으로 덮여진다.


멀리 떨어진 간극이 좁혀진다.

평행선은 수평선이 되어 간다.


서로 다른 세대가 사람이란 이름으로 통합된다.


회사는 청년이든 노인이든 어느 한쪽으로 쏠리면 망가지게 되어 있다. 신구가 서로 각자 할 수 있는 일에 조화와 균형을 이룰 때, 게임의 난이도는 비로소 쉬워진다.


P.S. 물론 이를 인정하지 않는 자는 바로 회사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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