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진상 고객들의 클라스
몸 사리는 경영진. 누가 갈 거야?
그날 어느 고객의 악성민원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초맹폰에 앱을 깔았는데 그다음부터 폰이 버벅거려요. 음성통화도 잘 안 되고 배터리도 빨리 닳아요."
"앱이 어떤 앱인가요? 폰에 그 앱만 깔려 있나요? 자세한 오류 현상을 알려주시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아이 진짜! 고객이 문제 있다고 하면 그쪽에서 달려와서 해결해 줘야 할 거 아냐! 내가 누군지 알아? 내 말 한마디면 그 회사 들쑤시는 거 일도 아냐!"
"네. 선생님. 그럼 저희가 자세히 진단할 수 있게, 가까운 서비스센터에 방문해서 기기를 점검해 주시면.."
"아 이거 기분 나쁘네? 내가 지금 거짓말한단 얘기예요? 오라 가라 하지 말고, 직접 와서 보든가 해야 할거 아녜요!! 보상 제도랑 금액이 어떻게 돼요? 확인해서 나한테 바로 전화하세요!"
그 고객은 서비스센터 방문을 거부했다고 한다. 하루를 멀다 않고 컴플레인을 걸며 줄기차게 요구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보상이다. 자신의 시간과 불편을 어떻게 보상할 건지 계속 요구했다. 신고를 언급해 대는 까닭에 이를 관장하는 고객만족팀도 고민이 깊어졌다.
고객이 주장하는 대략적인 증상을 정리하여 서비스센터의 의견을 받아본다. 고객이 폰을 가져오지 않아 알 수 없다는 답변이다. 난감하다.
결국 기술팀에 문의하기에 이른다. 기술팀에서는 나올 수 있을만한 것들을 유추하여 답변을 준다.
"해당 건으로 문의가 온 사례는 없습니다. 고객이 말하는 앱이 어떤 앱인지 확인이 불가하고, 앱 간섭 현상은 설치된 앱들 사이에서도 발생 가능합니다. 문제가 앱의 호환성이라면 앱 개발사가 처리해야 하는 문제지 기기와는 별개의 사안입니다. 그러나 원인은커녕 현상조차도 확인되지 않아 문제가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고객만족팀에서는 고객에게 연락하여 서비스 센터를 방문해 달라고 하는 한편, 고객을 달래기 위해 앱스토어 쿠폰, 폰 액세서리 쿠폰을 지급했다. 이후 고객은 서비스 센터에 가서 문제를 접수했는데, A/S 직원이 유상이라며 가서 돈 가져오라고 면전에서 모욕을 줬다고 한다. 그리고는 다시 보상을 요구했다.
"내가 알아보니까 이 정도면 최소 100만 원 이상은 받아야겠는데, 저번에 검토해 본다던 보상 건 어떻게 됐어요? 적당히 쿠폰 따위로 넘어갈 생각 말고 확실하게 얼마 주겠다 얘기하세요. 험한 꼴 보기 싫으면. 내일까지 연락 없으면 신고 들어갑니다."
근데 서비스 센터에 확인해 보니 그런 고객의 접수 기록이 없댄다. 아. 돌아버리겠다. 이 고객 어째야 되지?
며칠 뒤, 회사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쏘울경찰서입니다! (주)초맹 사기 사건이 접수되어 조사가 필요합니다."
응? 이건 뭐지? 무슨 사기인지 물어본다. 간략히 답해준다. 자세한 건 와서 얘기하잔다. 아. 이거 저번 그 고객이 신고한 건이구나. 근데 누가 어디서 전화를 돌렸길래 우리 팀까지 넘어오는 거지? 모르겠다. 일단 선보고 각이다.
"뭐어?? 경차알?? 사기이??"
관할 부서의 팀장들은 내용을 잘 모른다며 발을 뺀다. 임원들은 스케줄이 있다며 법무팀과 상의하라는 말을 남긴 채 빤스런을 친다. 이것들 봐라? 발칙하네?
그래. 이런 거 하라고 법무팀이 있는 거지? 사내 변호사에게 일임하면 될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고 찾아간 법무팀. 얘기를 듣더니 내용을 정리해서 사건 의견서와 회사 대리인 위임장을 하나 쥐어줄 뿐이다.
"저.. 이 건 법무팀에서 출석하는 건 아닌가요?"
"저희는 조사받으러 가고 그런 거 안 합니다. 법원 재판은 가는데 경찰은 안 가요."
말이야? 방구야? 저 뿡뿡이 같이 생긴 게.. 법이랑 관련 있음 다 하는 거 아냐? 경찰서도 변호사 잘만 따라가드만.. 아. 이런 거였구나. 결국 쫄리는 상황이 되면 너도나도 서로 떠미루고 내빼는 거다.
경찰서의 전화를 직접 받았다는 이유로 결국 회사의 대리인이 되어 버렸다. 사내 변호사는 위임장을 넘겨주고 한 마디 한다. "파이팅 하세요!" 저 개새..
불리한 순간에는 내가 회사 대표인가? 뭔가 허망하게 떠밀려 도착한 경찰서. 뉴스에서나 보던 곳이다. 압도된다. 입구에는 방송사 취재 차량들이 서 있다.
'와.. 뭐지? 설마.. 이 건 취재한다고 몰려든 건가? 그럼 저 현관에 서서 한 말씀해줘야 되나? 그냥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다고 하면 되는 건가?'
취재차량을 보자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별의별 생각을 다하며 들어서는 길. 우려와는 달리 기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저 취재 차량들은 원래 저기서 대기하는 듯해 보였다.
안내를 받아 들어가니 형사 두 분이 자리에 앉게 한다. 옆 자리도 조사받으러 온 사람들인가 부다. 쫄린다. 심장이 쿵쾅댄다. 죄지은 것도 없는데 말이다.
'어쩌면 오늘이 철컹철컹하는 날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는 찰나, 담당 형사는 접수된 내용을 알려주며 사실 확인을 위해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한다.
"신고인은 이렇게 주장하고 있는데 여기 대해 가지고 온 증거나 제출할 자료들이 있습니까?"
"아.. 그게 폰이 서비스센터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딱히 자료가 있는 건 아니구요. 에.. 또.."
"그럼 이 고객 주장에 회사는 동의하는 입장인가요?"
"아.. 그걸 제가 얘기하기가 좀 섣부른 거 같고, 뭐 원인이 밝혀진 것도 아니어서.. 뭔가 좀 답답하네요."
"저희도 답답해요. 회사가 대리인이라고 보내는 게 말단 직원입니까? 수장들은 다 뒤에 숨어버리고.. 거 참.."
아. 어질어질하다. 시간 참 안 간다. 한 30분 지났을까? 별 진전 없는 조사의 도돌이표가 계속될 때 즈음..
"저희 회사 수장은 직원의 등 뒤에 숨지 않습니다!"
어? 저 익숙한 목소리는?
뒤를 돌아봤다. 제니 부사장이다.
"너무 늦지는 않은 것 같군요. 미안해요. 구질구질한 일까지 말리게 해서.."
"부사장님. 어떻게 여기까지.."
"너무 주눅 들 거 없어요. 경찰을 두려워해야 하는 건 범법자 밖에 없으니까요. 그렇죠 경찰관님?"
제니가 옆자리에 앉는다. 머리를 질끈 묶고 왔다. 저건 전투모드라는 의미다.
"제가 부사장 제니입니다. 지금부터는 저와 얘기하시면 됩니다. 잘못이 있으면 벌을 받을 것이고, 고칠 점이 있다면 고치겠습니다."
다시 조사가 시작되었다. 경찰의 접수된 사건 설명을 듣고, 제니는 줄곧 이의를 제기했다.
"이건 그 분만의 주장이십니다. 저희가 파악한 사실과는 달라요. 이 분이 20번 넘는 통화에서 줄곧 요구하는 게 있습니다. 바로 보상인데요. 보상을 계속 언급하더군요. 이상하지 않나요? 고객 주장만으로 불량을 입증할 수 없고, 입증되지 않은 일인데 사건 성립이 어렵다고 봅니다. 10번 양보해서 불량이라고 해 봅시다. 근데 이게 어떻게 사기가 되죠? 기망의 의도가 입증되었는지요? 저희가 A/S를 거부한 사실이 있나요?"
경찰. 당황한다.
"아.. 일단 신고 접수된 건이라 우선 사실 확인을 하는 단계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구요."
"좋습니다. 사건 성립은 사실관계와 의사표시가 만족해야겠죠? 우선 사실관계가 일치하던가요? 그래서 그 고객 분이 입은 피해는 뭐죠?"
"고객 분은 사기와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하시는데.."
"명예훼손은 공연성을 기반으로 하는데, 여기 공연성이 있나요? 훼손될 명예가 있는지도 의문이고요."
"아.. 네. 우선 그분 주장을 기초로 해서 앞뒤가 맞는지를 저희도 따져봐야.."
"그래요. 대략적인 사건이 그렇다고 해 보죠. 이게 사건의 구성요소가 성립되는지는 경찰에서 딱 봐도 사이즈 나오지 않나요? 경찰이 다루어야 하는 일이 매우 많고 늘 일선에서 힘써주시는 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건의 본질은 사기나 명예훼손이 아니라, 소비자 보호와 관련된 것이에요. 경찰이 취급할 영역이 아니죠. 게다가 딱 봐도 억지 보상금 노린 악질 고객 건이잖아요. 경찰이 이 정도 파악은 충분히 하실 것 같은데, 사건감도 안 되는 걸로 기냐 아니냐 따져가며 혈세가 낭비되는 게 참 애석할 따름입니다."
"네.. 그러니까 이게 실은 본청으로 접수된 게 이쪽으로 내려온 거라, 저희도 일단 조사는 해야 돼서.."
"그럼 본청으로 이런 악성 민원을 열댓 개 접수하면 일선 경찰서나 회사 업무 마비시킬 수도 있겠네요? 저희가 영업방해와 무고로 똑같이 걸면 저희 건도 이렇게 꼼꼼하게 잘 봐주실 건가요?"
"아.. 네. 그런 게 아니라.. 음.. 오늘 다 확인했으니 그냥 진상 고객으로 결론짓고, 저희가 의견서 올려 내사종결 시키면 될 것 같습니다."
결론은 고객이 진상인 것으로 끝났다. 우아. 이 하드캐리 뭐지? 대단하다. 변호사 귀 싸다고 후려치는 솜씨다. 이런 걸 두 글자로 ‘존멋’이라 하는 거구나..
나오는 길. 제니가 잠시 편의점에 들른다.
"얼른 한입 먹어요. 원래 빵에 갔다 오면 먹는 거래요."
두부를 사 왔다. 두부 먹을 각인 것이냐? 한 입 떼어먹으니, 자기도 달라며 한 입 먹는다. 그렇게 사이좋게 두부를 한 입씩 나눠 먹고 복귀한다.
회사에 도착했다. 사내 변호사가 꼬리를 흔들며 두 팔 벌리며 알짱댄다. 아까 파이팅 외치던 저 개새..
"아! 부사장님. 직접 다녀오셨습니까? 제가 계약 건 법리 검토 마치는 대로 가려고 했었는데.. 아하하.."
소식을 들었는지 곧 고전무도 달려 나온다.
"아이고.. 부사장님! 별일 없었는지요? 저희가 대책 상의 중이었는데..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을 한지 안 한지 어떻게 알아요? 직접 봤어요?"
제니는 그들을 한 차례씩 힐끗 째려볼 뿐이었다.
다음 날 임원회의 분위기는 얼음장 같았다고 한다.
"임원의 핵심업무는 바로 책임입니다. 그래서 좋은 대접 해 주고 높은 연봉주는 것입니다. 리스크 비용입니다. 임원이 직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면 누가 여러분을 믿고 따릅니까? 변호하지 않는 변호사! 팀원을 외면하는 팀장! 직원들을 지키지 않는 임원! 이런 분이 여기 계시다면 서둘러 다른데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대고객 매뉴얼도 다시 정비되었다. 그중 인상 깊은 건 진상들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말고 원칙대로 응대하라는 것이었다. 뒤에 부연설명이 붙었다. 고객들의 신고 협박에 굴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 어떤 경우라도 회사는 직원들을 보호할 것이라는 말이 함께 쓰여 있었다. 이 대목은 딱 봐도 누구 작품인지 알겠군.
그 진상 고객은 경찰의 종결처리에 불만을 품고 다른 경찰서로 가서 다시 신고를 넣었으나, 경찰서 간에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접수조차 받아주지 않았다.
어쨌든 진상 고객 하나의 임팩트는 참으로 대단하다. 임원들과 관리자들의 진정성을 시험하고 싶다면, 진상고객 하나 밀어 넣어 테스트 해 보자.
바로 나온다.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사람은 위기에서 본성이 드러나는 법이기 때문이다.
P.S. 야 이 진상들아! 적당히 좀 해라! 경찰이 무슨 니들 감정받이 쓰레기통이냐? 전용 심부름센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