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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후배가 말했다 “언니. 전문대 나왔다면서요?”

스펙이 주는 함정. 스펙을 보는 의미

by 초맹


회사는 스펙이 우선일까?


"에효.. 우린 대기업보다 일도 훨씬 많이 하는데 월급은 왜 이거밖에 안 돼요?"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 보니까 뭐 별 거 없더라고요."

"야! 억울하면 공부 잘해서 대기업 가지 그랬어? 솔직히 공부 못하고 스펙 안 돼서 여기 온 거 아냐!"


어느 중소기업 신세한탄 광경이다. 줄 세우기 사회다. 대기업도 다르지 않다. 줄부터 세우고 시작한다.


"고전무님. 채용 시즌입니다. 소위 전자는 이번에 블라인드 채용으로 진행한다고 합니다."

"훗. 소위 김하진​ 대표 완전 미쳤구만. 거긴 우수인재 포기했대? 우린 최고 스펙 아니면 다 떨어뜨려 버리자구. 어차피 사람 넘치는데."


쏘울대 출신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전반적인 줄 세우기 분위기 때문일까? 스펙은 과연 어디까지 그 유효기간을 가지는지에 대한 찬반논쟁이 뜨겁다. 스타트부터 인정받기 위해, 출신 성분으로 나 엘리트요를 외치고 시작하는 이들이 꽤 있다.


얘 쏘울대 나왔대! 쏘울대래! 영혼 가득한 대학!


"저는 쏘울대 나왔습니다."

"와! 역시 쏘울대 출신이라 다르긴 다르구만!"

후광효과를 노린다. 분명 버프 효과는 있다. 다만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그 버프는 정확히 6개월짜리다. 버프 효과와 동시에, 주변의 기대감이 함께 커진다.


이것이 무슨 의미냐?

6개월의 버프 기간 동안 엘리트에 걸맞은 실력을 입증하지 못하면, 디버프를 패시브로 옴팡 뒤집어쓰는 거다. 그냥 공부 밖에 못하는 애..로 전락하는 동시에, "쏘울대가 왜 그래?" 비아냥이 꼬리표로 붙어 다닌다. 6개월 동안 다 하드캐리 할 자신 없다면, 가만있는 걸 추천한다. 기대감 잔뜩 고조시켜 득 볼 건 없다.


회사가 스펙을 따지는 이유

"회사는 쏘울대를 가장 선호해."

"아냐. 그다음 클라스를 더 선호해."

논쟁이 많다. 상위권을 선호하는 건 맞다. 그러나 우리는 선호하는 이유를 알 필요가 있다. 스펙을 따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자기 주도력을 보기 위해서다.


아 쏘울대 나와가지고 왜 이거 밖에 못해 와!


자기 주도성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확인할 길이 아주 드물다. 그래서 이를 스펙에 빚대 서열을 세우는 것이다. 모든 학습의 원리는 비슷하다. 배우고 그다음 스스로 익히며 늘어간다. 같은 시간 배웠다고 똑같지 않다는 거다. 성적이 높은 자와 낮은 자는, 누가 더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학업에 매진했냐에 따라 갈린다. 이를 학생들에게 확인할 수 있는 건 성적이다.


스펙이 낮은 자에게는, '게으르다 + 엉덩이 가볍다 + 노는 거 좋아한다 = 자기 주도력이 낮다.'로 귀결된다.

스펙이 높은 자에게는, '부지런하다 + 집중력이 좋다 + 스스로 할 줄 안다 = 자기 주도력이 높다.'가 된다.

물론 편견일 수 있지만, 이것이 회사가 스펙을 따져대는 근본적인 이유가 되겠다.


이 원리를 이해했다면, 꼭 공부와 성적이 아니어도 자기 주도력이 높다는 걸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 명문대가 아니어도, 서로 상관없는 다른 전공 3~4개 이상을 가져버린다? 영문과, 전자공학과, 금융학과, 통계학과 이 정도 해 버리면, 스펙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상당한 의지의 자기 주도력이 없으면 연관되지 않은 분야는 건들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방법도 있다. 학교 다니면서 특정 관심사를 가지고 출간을 한 두 어번 했다? 이러면 스펙이고 나발이고 필요 없다. 끝났다. 이미 사고력과 인사이트의 세계로 인정받은 것이다. 학점은 낙제 수준인데 발명특허를 한 5개 냈다? 끝났다. 더 볼 것도 없다.


누군가는 여유있고, 누군가는 헬게이트의 연속이다.


만약 너라면 출판사 담당자 자리에 명문대 국문과 출신을 뽑겠는가? 아니면 투고부터 출간까지 모조리 성공시켜 버리는 류귀복을 뽑겠는가? 둘 중 누가 스펙 좋은 자인가?


반대로 생각해라. 학교, 학점, 외국어 이게 스펙이 아니라, 자기 주도력을 드러낼 수 있는 게 찐 스펙이다. 그게 없어 고만고만한 사람들을 따지는 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스펙일 뿐이다.


신비주의 전략의 이점

회의 시간. 신제품 홍보 전략에 다들 열을 올린다.

"이번 초맹패드가 저번 시즌과 그닥 달라진 게 없어요. 중국 부정 반응이 큽니다. 내수도 위축되어 있어요."

"신규 고객 유치가 어려워요. 가격이 너무 쎄요. 기존고객 이탈도 우려되고 ROI가 제대로 나올지 의문이에요."

"광고는 어떻게 만들죠? 내세울 만한 킬링 포인트를 찾아야 하는데, 참 애매합니다. 난감하네요."

"자아! 자. 그래도 여기 핵심 브레인들 다 모였는데, 뭐라도 좀 해 보자고! 최선의 방안이 뭘까?"


이때까지 조용히 듣고 있던 초대리가 말을 꺼낸다.

"하지 마요. 안 하면 되잖아요."

"으응??........................"

"못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벌써 열댓 개나 나왔는데, 모하러 해요? 안 하는 게 최선이지."

"그럼 손 놓자는 거야? 일 안 할 거야?"

"안되는 거 빨리 버리고, 되는 거 하잔 거예요. 초맹패드 버리고 그냥 초맹폰 밀어요."


그거 갖다 버리고 초맹폰 밀자!


"흐음.. 그럼 초맹패드는 뭐라고 하지? 홍보 안 해주면 여기저기서 뭐라 할 텐데.."

"브레인들이 모여서 안 되는 이유 10개 찾았는데 그거 쎄우면 되잖아요. 자꾸 이러니까 연구소에서 우리 믿고 물건 대충 만들어오지! 아니에요?"


다들 동공이 휘청인다.

'아.. 그렇구나! 안 하는 것도 방법이구나.'

신박하다. 왜 꼭 해야 한다고만 생각했을까?


그렇다. 자기 주도력이 있는 자들은 다양하게 눈에 띈다. 남들이 생각 못하는 걸 생각해 낸다. 시야가 다르다. 일을 안 줘도 창조해 낸다. 직책이 없거나 직급이 낮아도 필요에 따라 야 모여봐를 시전 할 수 있는 능력을 심심찮게 선 보이곤 한다.


그때서야 사람들은 수군거린다.

"쟤 신박하드라. 어디 나왔대?"

"어디 초대인가 나왔다는 것 같던데?"

"뭐? 초대졸? 전문대 나온 거야?"


언니. 전문대 나왔다면서요? 별거 없네.


"저기. 언니. 전문대 나왔다면서요?"

"엥?? (모라는 거야?)"

바쁘다. 귀찮다. 뜬금없다. 가만 있는다.


카더라가 돌고 소문이 왜곡된다. 그럼 꼭 애써 바로 잡으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필요 없다. 만약 전문대라고 치자. 그럼 낮은 기대감을 유지한다. 그럼에도 포텐셜을 한껏 터뜨려주니 더욱 고평가를 받는다.


만약 누가 어디 나왔냐 묻거든 답할만한 모범답안을 제시한다. 저스펙이든 고스펙이든 똑같이 답하면 된다.

"초등 6년, 중학 3년, 고교 3년 총 12년 간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밟았습니다."


신비주의 베일을 겹겹이 쌓아놓는 것이다. 절대 기대감을 높일 필요가 없다. 손해 볼 게 없을 때는 가만있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진실이 밝혀지기도 한다. 카더라가 웃긴 건, 지들끼리 왜곡도 시키고 정정도 한다는 것이다. 그냥 사내 빅마우스 스피커들이 쑈를 한다.


"알고 보니 초대졸이 아니라, 초대! 초맹대 출신이래!"

"뭐? 초대? 쏘울대 발라버린다는 그 명문 초맹대?"

"어쩐지. 초대 출신이라 뭔가 달라 보이긴 했어."

이러면 또 후광 효과가 생긴다. 이때도 누가 물어보면 모범답안은 위에서 나온 것처럼 똑같이 한다. 그럼 겸손 버프 효과가 팍팍 돋는다.


명심해라. 정답은 신비주의다.

어떤 경우든 내 입으로 말하면 안 된다.


월드클래스 지성의 산실 초맹대학교 CF. 당신은 초맹인가?


오피스 게임은 스펙으로 나대봐야 재미를 못 본다.

자기 주도력이 가장 핵심이다. 이 능력을 보여주면 끝난다. 그 자체가 스펙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미쳐서 공부와 성적으로 줄 세우기를 하지만, 자기 주도력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여전히 많다.

원리를 이해하고 시선을 돌려보면 보일 것이다.


스펙은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감추는 것이다.


P.S. 본 글은 자기 주도형 인재의 요람, 스펙의 새로운 기준, 초맹대학교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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