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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을 타자! 우리들만의 회사 커넥션

직장 생활. 라인은 어떻게 타는 것인가?

by 초맹
넌 누구 라인이야?


사회생활은 인맥이라고 했던가? 라인을 탄다. 누가 누구랑 패밀리라더라. 이런 말은 곳곳에 나돈다.


우리는 정서 상 라인 타는 걸 매우 싫어한다. 그 이유는 손쉽게 그리고 불공정하게 득을 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그걸 더 싫어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지가 라인을 못 탔기 때문이다.


사람은 내게 없는 게 남에게 있을 때. 그래서 배알이 마구 꼴릴 때. 근데 내가 없는 건 들키기 싫을 때.


이 모든 것을 희석시키는 가장 쉬운 방법이 있다. 바로 공정론을 외치는 것이다. 실력과 능력으로 승부를 해야지 라인 같은 걸 타서야 쓰겠냐? 맞는 말이다.


쟤들이 팀장 라인이라 이거지?


"줄 잘 서라! 팀장님이랑 회사 생활 오래 할 꺼 같애? 나랑 오래 할 꺼 같애?"


라인 타는 걸 좋아하지 않아도, 이 라인이라는 건 오피스 게임에서 뗄레야 뗄 수가 없다. 대놓고 타려 하지 않아도. 억지로 노리고 붙으려 하지 않아도. 라인은 이미 신입부터 시작된다.


편안한 오피스 라이프를 염두에 두고 보통 사수를 라인으로 잡고 시작한다. 사수 말이 정답이다. 사수가 시키는 건 다 한다. 사수가 곧 부모다. 근데 점점 그 사수가 병신인 걸 알게 된다. 그럼 다른 일 잘하는 대리에게 붙어먹으며 라인을 탄다. 이를 갈아타기라고 한다. 환승연애 같은 거다. 또 닮고 싶은 선임들에게 붙어서 관계를 유지하며 라인을 타기도 한다. 이렇듯 실무자 때는 능력치를 보고 라인을 잡는다.


여기까지가 오피스 게임에서 필수로 들어야 하는 4대 보험 정도로 보면 된다. 이건 신입이나 경력직이나 마찬가지다. 이 실무 라인은 한계가 있다. 기껏 해봐야 누군가 괴롭힐 때 도움을 주거나 한 순간 모면을 해 주는 수준이다. 내 자체를 어찌하지는 못한다.


줄 잘 서라! 나중에 너네 책임지는 거 언니들이다!


선임자가 되면 새로운 라인을 물색한다. 이때부터는 누가 팀장 라인이냐로 경쟁이 벌어진다. 팀장들은 오른팔, 왼팔 최소 두 명은 라인을 두기 마련이다. 스스로 모든 팀원들의 업무와 진행현황을 세세하게 관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부터의 라인은 손해보험, 실손보험 수준이 된다. 보험에 들었냐 안 들었냐의 차이가 회사 생활을 무지막지하게 좌우하기 때문이다.


라인을 못 타면 똥 치우는 업무 배정을 받는다. 직장생활의 만족도가 폭삭 주저앉는다. 인사고과가 나락 가고 승진이 밀려 버린다. 월급에 차이가 나버린다. 그래서 팀장이 바뀌면 바로 보험사 갈아타 듯, 새 팀장에게 알랑방구를 그렇게나 뿡뿡 껴대는 것이다.


"우리 팀장님 송별회 해 줘야 하지 않을까?"

"이제 이빨 빠진 호랑이인데, 뭐 하러 충성해요? 그동안 맞춰주느라 지긋지긋했는데.."


저것들이 현자한테 줄 대고 있네?


관리자 선으로 올라가면 그다음은 지각의 변동을 보기 시작한다. 지진이 일어나고 화산이 분출한다. 학교 다닐 때 그렇게나 외우기 귀찮았던 지구과학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판게아에서부터 고생대와 중생대, 트라이아스기를 거쳐 대륙이 나뉘고 합쳐지는 과정을 공부한다.


언제든 지각은 변해가기 마련이다. 대륙은 합쳐졌다 쪼개졌다를 반복한다. 그 와중에 자리 빠진 누군가는 소멸하여 땅속 어두운 지층에 묻혀 화석이 되어 버린다. 어떤 이는 시베리아에 버려져 1년 내내 혹한을 보낸다. 누군가는 늘 무더위 땡볕에서 개고생 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4계절 뚜렷한 핵심지로 급부상한다.


이에 라인은 얽히고 꼬이며 더욱 치열해진다. 이들이 잡아야 하는 건 어느 임원의 끈을 잡을 것이냐다. 여기서부터는 생명보험의 시작이다. 임원 하나 잘못 잡았다가 똥간에 처 박힌 채 못 나와 그대로 뒷간 화석이 되어 버린다. 예리하게 줄 잘 서서 라인 잘 잡았는데, 알고 보니 썩은 동아줄이다? 이러면 한 칼에 다이 하는 것. 보통 라인이 엮인 팀장이나 그룹장들은 임원 한 명 날라가면 그날부로 목숨 줄 끝이다. 그래서 본부에 임원이 새로 오면 비상이 걸리는 것이다.


흐음. 제니보다는 역시 전통의 고전무 라인이 튼튼하지.


이때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팀장들은 새로 온 임원의 길잡이를 자처한다. 새로 온 임원은 파악할 것이 많다. 그러나 자신의 눈치를 보는 아래 팀장들은 조심만 할 뿐, 시원하게 응해주지 않는다. 또한 이들이 자기 세력이 되어줄 리 없다. 이 와중에 길잡이를 자처하여 TMI를 마구 구사해 주는 팀장은 일단 쓸모가 있다. 1년 동안 본부가 굴러가는 사정과 내막을 모두 파악한다. 이 무렵, 길잡이를 하는 팀장은 새 임원에게 라인을 탔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개국공신이라도 된 양 착각한다.


오산이다. 1년이 지나면 그 팀장은 좌천이다. 자고로 필요가 끝난 간신배는 중용되는 법이 없다. 이후 그 자리에는 새 임원이 데려온 사람들로 채워진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다. 역사는 반복되는 법이지만, 인간은 어리석다고 했던가? 여전히 멍청하게 같은 루틴을 돌다 최후를 맞는다.


"제니 부사장님! 사랑합니다!" 라인 갈아타자!


라인이 판을 친다. 입사기수제는 이미 전통적인 그들만의 라인이다. 노조도 라인이다. 심지어 사내 동호회조차 알고 보면 다 라인이다. 사방팔방 보이는 라인에서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온갖 커넥션이 난무한다. 실력만으로는 오피스 게임을 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상사와 충분히 관계가 좋더라도 얘만 믿고 있기는 불안하다. 그래서 보험도 하나만 드는 게 아니잖아? 그치? 그럼 어느 라인에 타야 할까? 어떻게 타야 할까? 누구에게 소개를 받지?


가끔 어릴 적부터 라인 따위에 연연하지 않고 게임을 하는 자들이 있다. 이들은 철저히 중립을 유지한다. 분위기에 따라 이쪽저쪽에 서지 않는다. 흉흉한 소문에도 개의치 않는다.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무지막지한 스탯이 아니더라도 기본 실력들이 좋다. 이들의 특징은 길게 가기 딱 좋다는 것이다.


쟤 요새 제니 라인 탄다며? 재수없어!


왜일까? 라인을 타는 무리들이 이들을 서로 내 편으로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 가운데서 양쪽 줄을 다 잡고 있거나 둘 다 잡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유지시킨다. 즉, 휘둘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충분히 존경할 만하다. 모든 일에 초연해져야만 가능한 스킬이기 때문이다.


누가 줄을 잡고 특혜를 보더라도 애써 비교하지 않는다. 라인을 타며 얻는 이득보다 손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 결과 조용하고도 강하다. 그래서 배터리가 오래가는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멘탈이 꺾이지 않는 것이다.


늘 자신을 들여다보되 남들과 비교하지 말아라. 남이 라인을 타던 미끄러지던 니 알바 아니다. 어떤 놈이 오더라도 다 똑같다 생각하고 상사 보기를 돌 같이 해라. 월급 주는 건 상사가 아니다.


야! 내가 언제 라인 탔어? 오늘 라인깔고 작두 함 타볼까?


우리는 오피스 게임에서 늘 착각을 하며 산다.

라인 잘 타는 놈은 고수가 아니다.

라인을 안 타고도 사람들이 찾는 놈이 진정한 고수다.


보험?

오피스 게임에 보장성 보험이 어디 있어?

그냥 마음 편해지는 보험이겠지.

그거 다 세금 같은 거야.


아직도 오피스 게임을 라인으로 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 결말은 배신에 배신이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그 썩은 동아줄을 놓아라.

그 줄이 곧 니 목줄이 될 것이다.


그래서 넌 무슨 라인 잡고 있냐고?

나?? 내가 뭐하러 라인 따위를 잡니?


나는 초맹.

내가 곧 줄이요. 라인이요.

동아줄을 만들어 내는 자다.


P.S. 알겠으면 줄 잘 서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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