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숫자를 사용하는 방식(feat. 난무하는 조작질)
숫자 가지고 어떻게 사기 치나 잘 봐!
다음 중, 누구 말이 그럴싸해 보이는가?
1. 요새 실적이 꽤 괜찮은 것 같더라구요!
2. 이달 매출이 동기간 대비해서 20% 상승했기 때문에 실적이 좋습니다.
대부분 2번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렇다. 둘의 차이는 근거다. 근거는 숫자다. 사람은 현상을 들여다볼 때 객관적인 것을 원한다. 그리고 그 객관은 바로 숫자다.
회사는 숫자를 좋아한다. 상사가 물어볼 때가 있다.
"김대리! 보고서 만들고 있는 거 얼마나 했어?"
"네. 진행 중입니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어이! 초맹! 그쪽 보고서는 얼마나 했나?"
"대략 80% 정도 했구여. 오늘 다 끝나여."
김대리의 말은 애매하게 들린다. 반면 이제는 호도 있는 어이 초맹 선생의 대답에는 선명한 메시지가 있다.
"금방 끝나니깐 자꾸 확인하지 마라. 귀찮다!"
숫자를 사용하는 팁이다. 숫자는 한 자리까지 말할 때 일잘지수와 신뢰지수가 200% 솟구친다. 대략적인 것이라도 80% 정도라고 하지 말고, 그냥 87%~88% 정도라고 해 봐라. 뭔가 철저하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진짜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냐구? 알빠노다. 그냥 하는 거다. 대충 둘러대면 다 통한다. 숫자는 한자리 수까지 말하는 것이다. 이는 말에 권력을 불어넣어 준다.
객관을 숫자로 만들고 지표로 관리한다. 이것이 회사의 방식이다. 매출은 인격이다. 이익은 품격이다. 인류 최고의 발명품은 숫자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숫자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오피스에는 온갖 개소리가 명언처럼 난무한다. 요지는 그만큼 숫자를 맹신한다는 의미되겠다. 숫자를 내세우는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하려는 것이다.
숫자가 나오면 모두 진실이라고 믿는가? 속지 마라.
회사가 숫자를 조작하는 대표적 방법이다. 반대로 이를 이용하면 되치기에도 매우 유용하다는 뜻이다.
통계의 조작
통계를 조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온 수치의 결과를 그대로 고치지는 않는다. 그건 말 그대로 대놓고 조작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표본과 범위를 조작해 원하는 숫자가 나올 때까지 재보고, 입맛에 맞는 숫자를 발췌해서 사용한다.
"이번 신제품 판매가 30% 호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전체 평균은 10%인데, 수도권만 봤더니 30%다. 그럼 수도권 30%만 가지고 전체가 30%인 것처럼 말하는 것이다. 표본을 조작함으로써 일부에서 나온 결과를 전체인 양 왜곡할 수 있다.
누군가 이를 발견하고 수도권만 30% 아니냐! 이러고 태클을 걸면?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수도권 위주로 판매에 집중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면 된다. 이렇게 지방에서 죽 쑤는 걸 피해 갈 수 있다.
유리한 숫자 취사선택
불황이다. 매출을 10% 올리기로 했는데 심각하다. 매출을 올리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돈을 벌려고 함이다.
판매가 저조하다. 그럼 지출을 억제해 버리면 매출이 좀 떨어지더라도 이익률이 좋아진다. 그럼 매출 치워버리고 이익률로 비교를 해 버리면 된다.
"매출이 소폭 떨어졌지만, 이익률은 10% 오르고 있습니다. 매출의 구조가 더욱 견고해지고 있는 겁니다."
이 따위로 조작하면 된다. 견고는 무슨.. 실제 실무진들은 돈 줄 다 막혀 아무것도 못하고 있지만, 위에서는 아 그런갑다 한다. 그럼에도 위에서 매출 가지고 노래를 부른다면? 할인을 팍팍 쳐 버리고 사은품 행사 팍팍 껴 줘서 판매를 늘리면 된다. 그럼 매출은 훌쩍 오른다. 적자가 날 뿐이다.
만약 매출, 이익률 이런 거 KPI로 이미 쪼고 있어서 죄다 답이 없다면? 괜찮다. 가져올 숫자는 아직 많다.
"아직까지 실적은 나오고 있지 않지만, 초맹한 카드 신청 회원이 20% 늘었습니다. 우리 초맹카드의 미래가치가 재편되고 있습니다. 괄목한 성과입니다!"
대놓고 사기를 쳐 대면 된다. 다른 카드 신청 회원은 저조하다는 비교와 함께. 그럴싸하게 먹힐 것이다. 임팩트 있을만한 숫자들만 골라잡아 편식하면 된다.
우물 안 비교법
초맹한 카드 신청자 20만. 이게 많은 걸까? 적은 걸까? 어떻게 많이 나온 것처럼 포장하지? 다른 카드사와 현황을 비교해 보자.
헙.. 라이테 친환경 카드. 시골 카드가 30만 명이나?
그럼 소위 돈워리 카드는? 걱정도 상팔자인 게 50만?
제일 만만한 마음의 온도 카드는 어떨까? 어라? 혜택도 드럽게 없는 게 40만 명이나 가입시켰네?
초맹한 카드. 큰일이다. 꼴찌다. 이런. 그래도 다 방법이 있지. 초맹카드 안에 있는 카드들만 비교하면 된다.
참초맹 카드 10만, 초맹X찬란 콜라보 카드 3만, 아이초맹 카드 5만. 음. 초맹한 카드 20만이니까 1등이네!
이 수치를 그래프로 떠억하니 그려놓고, 초맹한 카드 20만명 크게 숫자 찍고 그래프 가장 높은 곳에다 The First 하나 써 주면 끝!
"초맹한 카드 당당히 1위! 다른 카드들을 제치고 가장 선두로 도약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우물 안에서만 프레임을 짜고 비교시키는 것이다. 이 프레임 비교는 매출이 곤두박질 칠 때 용이하다. 매출 떨어지면 욕 밖에 안 먹는 법. 이 때는 외부의 더 못한 애들 숫자를 가져와 역프레임을 씌운다.
초맹전자 -2%, 소위 전자 -7%, 진 테크 -10%, 난주 산업 -13%. 어떠냐? 매출이 떨어진 게 아니다! 오히려 오른 거다! 되치기를 시전 할 수 있다.
농도 희석 물타기
초맹 식품에 비상이 걸린다. 생필품 물가가 너무 많이 올라 원성을 산다는 것. 여기저기서 문제를 삼는다. 이거 잘못하면 누구 하나 책임지고 나가야 할 판이다.
빌미를 준 스테디셀러 초맹 라면 가격 15% 상승! 분명 얘가 주범이다. 이럴 때는 원인 제품들을 철저히 숨긴다. 초맹식품의 모든 라면과 식료품 가격 데이터를 긁어모아서 계산기를 돌린다.
"저희 초맹식품은 어려운 서민 물가를 고려해, 전년 대비 평균 판매가를 3% 낮췄습니다!"
100개 넘는 제품의 단순 가격 비교와 평균법을 통해 오른 가격을 시원하게 낮춰버리는 매직!
만약 이게 잘 안 된다면 부진 제품들만 가격 팍 깎아버리고, 다시 계산해서 평균을 내면 된다. 됐다. 주력 초맹라면은 15%나 올렸다! 물타기는 이렇게 하는 거다!
가끔 우리가 체감하지 못하거나 이해되지 않는 수치는 대부분 이런 식으로 나온다.
경쟁자 나락 보내기
통계가 왜곡되는 경우는 다양하다. 가장 기를 쓰고 왜곡하는 경우는 딱 두 가지다. 내 업적을 칭송하고 싶을 때와 상대를 나락 보내고 싶을 때다.
일명 내로남불 스킬이다. 앞서 언급된 여러 방법들을 이용해 필요한 것들을 총 동원한다. 좋은 숫자는 내게 가져다 놓고, 나쁜 숫자는 제거 대상 앞에다가 가져다 놓으면 된다.
평소 맘에 안 들었던 현자. 고전무는 늘 고민이다. 저걸 어떻게 치워버리지? 그렇지! 신사업과 투자가 많으면 실적은 곤두박질치는 법. 아래 지시해서 그럴싸한 숫자들을 채워 넣은 보고서를 받고 결전을 치르러 간다.
"현실장. 손대는 사업마다 어찌 숫자가 다 이런가? 앞으로 힘들겠네. 쯧쯧.."
반면, 자신의 공적을 내세울 때는 철저하게 드라마틱한 숫자들만 가져다 쓴다.
"회원 유치 200%, 사업 매출 1,000억, 불량 제로!"
알고 보면 가관이다. 신규회원은 많으나, 기존회원 유출이 300%고, 매출은 1,000억이나 이익은 적자 100억, 불량은 나와도 아닌 걸로 처리해 버린 것이다. 이런 건 언급도 안 하고 다 빼 버린다. 조작질에 예외란 없다.
잘못된 공식과 시스템 방치
대부분의 회사는 숫자를 뽑아내기 위해 시스템을 만들어두고 통계 수치를 빠르게 뽑아낸다. 여기에도 함정이 숨어있다. 시스템에서 나온 숫자라고 하면 그대로 믿는다. 누군가 다시 돌려봐도 같은 숫자가 나오기 때문이다. 컴퓨터는 정확하다는 믿음을 가지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시스템을 만들 때 공식을 알고리즘화 해서 반영해 둔다. 미세한 기준점의 차이, 정제되지 않은 데이터의 오류, 공식 자체가 틀렸을 가능성도 많다. 대개 사람들은 이 지점을 건들지 않는다. 수학 공식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조작적 정의에 따라 이루어진다.
제 아무리 시스템에서 통계가 나온다 할지라도 집계 방식, 기간 산정, 조건 정의, 예외사항, 변수 처리 등의 로직에 따라 다른 숫자가 나오게 되어 있다. 그러나 사람은 시스템에서 나온 숫자라고 하면 다 믿는다.
시스템의 공식이 타당한지에 대해서도 한번 짚어보자.
그동안 알고 있던 것들을 모두 부정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근데 아무도 이런 말을 입밖에 내지 못할 것이다. 그동안 다 조작하고 회사생활했다는 게 만천하에 알려지기 때문이다.
자. 이제 보던 숫자들이 달라 보이기 시작하는가?
숫자가 각광받는 이유는 사람들이 팩트에 열광하기 때문이다. 숫자는 팩트를 대변해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팩트에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미안하지만 우리가 궁극적으로 알고 싶은 것은 팩트가 아니다. 트루스다. 단지 팩트가 트루스로 연결된다는 믿음이 팩트에 열광하게 만드는 것 뿐이다.
결코 팩트에 머무르지 마라.
시선이 트루스로 향하고 있다면 보일 것이다.
진짜인지 조작인지..
저 숫자를 들이밀며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내세운 숫자를 통해 득 보는 건 누구인지까지도..
팩트에 열광하는 그 틈을 파고들며,
오늘도 숫자는 조작되고 진실은 왜곡된다.
절대 속지 마라..
P.S. 저번에 잘못 뽑아준 그 부풀려진 숫자. 다시 안 뽑아줘도 돼. 이미 보고 다 끝났어. 쉿! 비밀이야!! 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