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더 달라고 계속 징징 대봐. 어떻게 되나?
회사가 가장 아끼고 싶은 건 니 몸값이야!
경기가 불황이다. 회사가 어렵다. 모든 회사는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러나 지출 억제가 우선이다. 자아. 딱 보아하니 허리띠 두 칸 정도 줄여야 될 시기다.
자금회전을 살피는 고전무. 여기서 떡상각을 잡는다.
‘어차피 불황이야. 매출도 안 나올 거 이익률 높여 건실한 재무구조로 밀자. 제니도 현자도 태클 못 걸어. 30년 짬. 위기를 기회로 리더십이 뭔지 보여주지!’
세금은 내면 안 되는 꽁돈이다.
세금은 회사에 배 아픈 돈이다. 법인세부터 각종 세금 나가는 거 다시 다 뜯어본다. 회계사, 세무사 속속들이 투입된다. 각종 계정과 비용이 세탁된다. 비과세 액수 꽉꽉 채워 넣는다. 이 과정에서 많은 서류들과 영수증이 조작된다. 내역을 끼워 맞추기 때문에 당연하다. 거래 방식이 바뀐다. 지급 방법이 바뀐다. 지출 시기도 바뀐다. 심지어 쓸데없는 합병과 분할이 일어난다.
나중에 뒤탈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되냐구?
위에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절세하랬지? 언제 탈세하랬어?"
무슨 개소리냐구? 절세를 위해서는 탈세해도 된다.
다만, 걸리면 독박 쓰라는 의미되겠다.
광고 마케팅은 할 일 없을 때 쓰는 돈이다.
"광고 전부 취소하라는 지시입니다. 마케팅 비용은 기존 예산 대비 20%로 줄인다고 합니다."
"뭐야? 그럼 우린 일 어떻게 하라는 거야?"
회사에게 광고선전비는 호황기, 널럴해서 할 일 없을 때, 임원이 야심 차게 떡상 승부수를 띄울 때 쓰는 돈이다. 필수재가 아니라는 소리다. 그래서 회사는 비용을 줄일 때, 좋소부터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너도나도 여기부터 후려치고 시작한다.
광고 마케팅 비용을 줄이면 단순히 지출 억제 효과만 있는 게 아니다. 2차 효과가 무조건 동반된다. 손발 묶인 마케팅 부서는 돈 없이 아무것도 못하는 무능아로 전락한다. 이에 현타를 느낀 실무 담당자들이 이직을 택한다. 줄이기 어려운 인건비가 알아서 줄어든다. 그럼 업무에 구멍이 숭숭 나기 시작한다. 어쩌지?
조금 더 패자. 이때다. 구조조정 타이밍! 비슷한 부서들을 자연스럽게 통폐합한다. 거기서 날라가는 오피서들이 더 생긴다. 어떠냐? 광고비를 빙자한 인건비 절감!
연구개발비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돈이다.
비용을 줄일 때 광고 마케팅을 먼저 패고 나면, 그다음은 연구개발이다. 실적도 못 내는 것들. 회사가 무슨 창작 놀이 문화예술 공간도 아니고.
비용을 줄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대놓고 예산을 아작 내 버리는 것이다. 근데 이건 초짜 임원들이나 하는 짓이다. 비용 절감에 눈이 멀어 회사의 미래를 내다 버렸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기 좋다. R&D는 머리 써서 잘 패야 한다.
예산은 그대로 내비둔다. 대신 1~2년 내 양산에 성공해서 돈 벌어올 제품들을 만들도록 조건 세워 놓고 돈을 쓰게 하면 된다. 그럼 신기하게도 갑자기 지출이 알아서 반토막 난다. 왜일까? 자신 없으니깐. 만약 그런데도 돈을 쓴다? 그다음은 실적으로 쪼아 세워 압박한다.
만약 실적 터지는 제품이 나온다면? 그때는 좋은 개발 건을 잘 발굴해, 불황에도 신념과 뚝심으로 밀어붙인 선견지명형의 훌륭한 리더가 된다.
"저희는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돈은 돈대로 쓰고 결과가 제대로 안 나오면?
연구소에 무능 프레임을 옴팡지게 씌우면 된다.
"거 봐. 내 이리될 줄 알고 쓰는 돈 줄이라고 한 거야!"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상관없다. 실적은 무조건 얻게 되어 있다.
거래처 상생? 돈 앞에 그런 거 없다.
쓰는 돈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금 회전도 중요하다. 회사는 돌려막기가 일상이기 때문이다. 이 일타쌍피가 가능한 곳이 바로 거래처다. 무역, 거래, 협력, 하청을 하는 곳에 공문부터 뿌린다.
"우린 이제 거래대금 어음으로 지급할 거야! 싫으면 단가 낮춰. 낮추면 현금 줄게! 어때?"
그리고 사내 모든 사업부를 압박한다. 불황에 등장하는 만능 모범 키워드다. 원. 가. 절. 감.
외차면 비용이 줄어들게 되어 있다. 줄어든 숫자가 나오면? 그럼 실적 어필 타이밍이지. 핀셋 마이크로 매니징으로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했다고 하면 된다. 내용은 관심 없다. 어차피 아무도 모른다. 봐도 모른다.
근데 신기하지? 매번 이래 왔을 텐데, 어떻게 똑같은 방법으로 원가절감이 계속 가능해질까? 더 쥐어짤 것도 없을 텐데? 궁금하지 않아?
간단하다. 유통, 물류, 재료, 조립 등 중간 과정에서 일처리가 대충 날림으로 되면서 비용이 줄어드는 원리다. 세 번 거쳐 처리할 일 한 번에 해서 공임이 줄어든다. 박스 5개 쓸 거 대충 우겨넣어 2개 쓰고 하는 식이다. 하청업체 갑질하고 쪼아대면 두 명이 할 일 한 명이 하며 다 줄여오게 되어 있다. 즉, 퀄리티를 돈으로 환전하는 방식이다. 언제 어디서나 먹힌다.
채권 회수. 관계가 틀어져도 돈은 받아낸다.
"받을 돈 안 받고 미루는 것은 도둑질이나 다름없다!"
불황에는 채권에 민감해진다. 거래선 담당자, 법무팀이 바빠진다. 온통 내용증명만 쳐대고 전화가 빗발친다.
회사에서 모든 일을 다 적시에 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바로 하는 일과 미루는 일이 생긴다. 채권은 보통 미루는 일에 해당된다. 미루다가 문제가 생길 것 같을 때 몰아치기를 하는데, 여기를 치고 들어가서 팬다.
도둑놈 프레임을 씌우는 게 가장 좋다. 회사의 돈을 받아오지 않는 자. 회사 돈을 도둑질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 일을 미루는 담당자는 도둑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기적의 논리를 들이밀고 패면, 관련된 오피서들은 눈에 불을 켠다. 돈을 받아오겠다는 의지가 아니다. 도둑놈이 되지 말아야겠다는 일념이다. 효과는 직빵이다.
관리비는 언제든 줄일 수 있는 돈이다.
"다 줄이면 뭐 먹고살아요?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이 태산인데.."
그렇게 생각하는가? 살림을 해 본 이들은 안다. 쓰는 돈은 마음먹기 따라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는 것을..
법카 한도부터 강제로 줄여 버린다. 빠듯해진다. 이따금 어쩔 수 없이 모자란 돈은 사비를 지출하는 경우도 생긴다. 뭐 애사심이 있으면 회사를 위해 내 돈 쓸 수도 있는 거지. 미담이잖아. 이런 건 못 본 척 눈감는 거다.
회식? 기강이 해이해졌군. 불황에 무슨 회식이야? 몰려서 돈 쓰고 회식하기보단 그 시간에 일하는 게 건전한 문화다. 법인차량 과속 딱지, 신호위반, 주차위반 고지서 이런 건 다 사용 직원한테 물려버리고, 차량 이용금지 6개월 박아버린다. 그러면 외근이나 출장도 알아서 자차를 가져가게 된다.
가만 보니 식대도 많이 나가는 것 같다. 이거 뭐라 하고 줄여버릴까? 나가서 먹으면 비싸기만 하고, 기다리다 시간 다 보내니 비효율이다. 함께 하는 도시락 문화를 만들면 되잖아. 컵밥 시켜다가 안에서 도란도란 일하고 회의하면서 먹는 생산적인 문화. 식대도 줄이고, 일과 휴게의 경계도 줄여버리니 딱 좋다.
프린터도 전원 뽑아버리고 용지 공급도 하지 말자.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친환경! 그래. 이거 좋구나. 친환경 실천! 디지털 전환! 관리비의 큰 부분은 전산 장비다. 컴퓨터도 자주 바꿔주지 말고 5년씩은 쓰라고 해 버리자. 그럼 관리비가 또 절반 줄어든다.
임원 급여 반납은 쇼잉용 보상투자금이다.
여기가 하이라이트다. 돈을 쪼아매기 시작하면 임원들은 내로남불이라는 원성을 산다.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가장 좋은 게 급여 반납이다. 50%씩 급여를 반납한다. 사실 다 해봐야 얼마 되지도 않는다. 그 반납된 급여는 보통 사용하지 않고 따로 모아둔다.
몇 개월 후, 임원들이 급여를 반납하고 있다는 소문이 다 퍼질 때쯤 적당히 멈춘다. 연말쯤 되면 비용절감 실적을 계산한다. 이때 그간 모아두었던 반납 급여와 이런저런 수당을 만들어서 몇 배로 리턴 받는다.
서로 자기들끼리 고생했다고 치하한다. 우린 급여반납도 했었으니, 이 정도 좀 받아먹어도 되지 하는 거다.
그렇다. 급여 반납이 아니라 임원 전용 급여 펀딩이다. 다 속은 거다.
몸값 상위 20%는 늘 요주의 인물이다.
"고과를 잘 받아야 돼요! 승진해야 돼요! 연봉협상에 사활을 걸어야죠!"
이유는 다 돈 때문이다. 오피서들은 돈을 많이 받고 싶어 한다. 당연하다. 하는 것에 비해 많이 받고 싶다. 덜하고 더 받고 싶다. 계속해서 받는 돈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연봉이 오르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급격하게 오르고 있다면 조심해라.
몸값 상위 20%는 항상 주요 감시 대상이다. 회사에서 모든 관리자의 육성, 조직의 개편, 부서 통폐합들이 일어나는 방향을 자세히 살펴봐라. 기본 방향은 저들을 대체하는데 맞춰져 있다. 저들 없이도 대체할 수 있어야 내다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연봉 상위 20% 외에도, 몸값의 20%는 확장판으로도 매겨진다. 연봉 이외의 회사 비용을 개인적으로 누가 많이 쓰는지를 합산하는 방법이다. 회식비, 출장비, 교육비, 복리후생비, 초과근무, 각종 수당들을 합치면 사실상 연봉 이외에 개인이 받아가는 돈이 된다. 이런 걸 영리하게 많이 쓰는 사람들이 있다.
연봉이 높더라도 몸값 확장판이 낮다면 좀 용서가 된다. 그러나 연봉도 높은데 개인 지출비용이 높다면 이걸 회사는 최악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돈 가지고 징징댈 때는 적당히 하자. 돈 쫓아 발악하면 지속력이 짧아진다. 직책이나 이런 거 받지 말고 수당 팍 줄여서 적당히 하는 것도 방법이다. 몸값은 적당히 눈에 안 띄게 스물스물 오르는 게 가장 좋은 거다.
실적의 떡상각 잡은 고전무. 완벽한 실행 안이다. 제 아무리 제니라도 이번에는 안 될 것이다.
"전무님. 진행 중인 긴축 재정 실행에 매우 공감합니다. 근데 비용을 참 전근대적으로 줄이시네요?"
"우리 제니 부사장님께서 잘 모르시는 거 같은데, 이거 다 필요 없는 돈들입니다. 허허허."
"필요 없는 돈에 꼼수 쓰는 돈도 많이 묻어 있네요?"
"허허.. 그게 무슨.. 회사의 위기를 타개할 소임을 다 하고 있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섭하지요."
"임원들 급여 반납 계정이 다른 이유가 뭐죠? 전 다 내놨는데.. 연구개발비는 이렇게 해 놓으면 누가 개발합니까? 협력사들은 우리보다 훨씬 힘들 겁니다. 조기 현금 지급 원칙으로 해 주세요. 초맹은행에 우리 거래처는 대출 최저금리 적용도 검토해 봐 주시구요."
"부사장님! 다 회사를 위한 일입니다. 회사가 먼저 살아야죠. 회사는 땅 파서 장사합니까?"
발끈하는 고전무와 양미간을 살짝 찌푸리는 제니.
"제가 바보인 줄 아시나요? 차라리 땅을 파세요. 석유라도 뽑게. 파는 김에 묘자리도 같이 파실 거예요? 결정은.. 제가 합니다. 선 넘지 마세요!"
"아.. 그런 뜻이 아니라.. 음.. 죄송합니다."
"이 건에 대해 현실장님 생각은 어떠신가요?"
"허리띠 졸라매는 건 찬성입니다만, 무엇보다 길게 내다봐야 합니다. 미봉책과 꼼수는 안 됩니다. 보아하니 본부장들의 관행적인 치적용 사업 때문에 새는 돈이 훨씬 더 많습니다. 선택과 집중은 이럴 때 하기 더 좋죠."
고전무는 못 마땅하다. 현자와 제니 둘 다 맘에 안 든다. 저들만 아니면 이미 대표가 되었을 것 같은데..
회사는 늘 지출을 아끼고 싶어 한다. 물론 새는 돈은 아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회사들이 아끼는 돈은 새는 돈과 무관한 돈이다.
그렇다. 어디서 얼마를 아낀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아낀 액수가 중요하다. 그래서 단기 금액에 집착하고 결과는 늘 개판이 된다. 폭풍이 지나가면 아사리판이 나 있다.
분명한 건 회사는 모든 돈을 아끼고 싶어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끼고 싶은 돈은,
바로 너의 몸값이다. 너 말야.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