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은 업무의 완성? 그리고 그다음에는 또 뭐?
저의 특기는 태생적 꼼꼼함입니다!
본다. 들여다본다. 뭘 보는 걸까?
나올 때가 됐는데.. 뭘 잡아낼까?
어? 이건? 찾았다! 역시!
"여기 띄어쓰기가 틀렸잖아요! 양쪽 줄 간격이 무려 0.5 픽셀이나 차이가 나요!"
선 길이와 맞춤법에 특화된 이들.
꼼꼼함의 꽃. 바로 디테일러다.
오늘도 수많은 오피서들이 일벼락에 이래 치였다 저리 치인다. 밥숟가락 들고 여기저기 거지꼴로 헤매는 사이, 틀린 자료와 앞뒤 구분 없는 보고서를 남발한다. 관리자는 아무 생각 없이 이들이 써 준 자료를 위에 들이밀다 옴팡지게 털리고 나온다.
"김팀장. 예전에는 꽤 똘똘했는데, 요새 왜 이렇게 디테일이 쳐져? 지금 나 치매끼 있나 확인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신속하게 곧바로 수정해서 다시 보고를.."
김팀장. 이번 주 고전무에게 계속 털렸다. 목 줄이 간당간당하다. 관리자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사자후가 나오는 법.
평소의 그라면 "아 쪽팔려.." 나지막이 내뱉고는 다시 해 와 아래다 툭 던져줬을 법하지만. 그도 한계에 다다른 탓일까? 오늘은 언어가 다르다.
"아이!! 씨발!! 오늘 쪽 다 깠어!!"
기분 잡친 성난 맹수의 분노. 군중들은 책상에 의지해 몸을 낮춰 은신하며 보호색을 가득 띄운다.
이런 이유로 꼼꼼함을 입고 있는 실무자들은 관리자들의 원픽이자 군중 속에 빛난다. 보고서의 토씨하나 주옥같이 고친다. 눈에 띄고 평이 좋다. 뭘 하든 기본 장착된 디테일의 미학으로 인해 잔실수가 없다.
관리자들에게 안정감과 편안한을 선사한다. 마치 맞춤형 옷을 입혀주는 것과도 같다. 눈은 곧 핀셋이요. 손이 곧 자다. 디테일러. 이것들 알고 보면 테일러샵이다.
디테일러. 이들이 상사가 되면 시작된다. 아랫사람들이 피곤해진다. 이유는 자신의 디테일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남이 해 놓은 자료나 보고서를 보면 스스로 참지 못한다. 어쩔 때는 막 화가 치밀어 오른다.
"정마온 작가님. 저 대본 수정 벌써 10번째인데, 이번 건 여기까지 하면 안 댈까여? 퇴근시간 다 돼서.. 헤헤"
"이 대본 쓰는 이유가 뭐지? 초심을 잃었군. 상암이 만만해 보여? 시청자가 우스워? 자장면은 불면 끝이고, 방송은 나가면 끝이야! 시청률은 쫓아가는 게 아니라 따라오는 거라구! 표정 왜 그래? 아직 못 알아듣는 거 같은데? 밤새 같이 대본 수정해 볼까?"
"아.. 아녀. 아녀. 저 다 이해했어요. 다시 해 오께여."
싫다. 하기 싫다. 재수 없다. 니가 해라 지르고 싶다. 근데 할 말이 없다. 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더 싫다. 많은 아랫것들이 디테일러와 대적해 보려다가 패전을 기록하고 돌아온다. 그 와중에 피 터지기도 한다. 맞추기 힘들다며 퇴사를 지르기도 한다.
약점이 안 보여 상대하기가 어렵다고? 아니다. 오히려 이들에게 적응하는 건 쉽다. 나의 창조적 발상을 버리면 된다. 철저히 내 스타일을 배제하면 된다.
피곤해지는 이유는 단순하다. 창의적인 안을 낼 때, 디테일러들은 더욱 세부적인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지 맘에 안 들어도 세부적인 것을 요구한다. 이유는 뻔하다. 디테일하지 못해 안 된다고 하기 위해서다.
디테일이 곧 거절의 이유가 된다.
디테일러들에게 맞춰야 할 일이 있는가? 그렇다면 저들이 해 놓은 기획안이나 보고서 몇 개 보고 빙의해서 따라 하면 된다. 가끔 그들의 디테일에 양념 한 스푼 추가하는 용자들이 있다. 이는 디테일러에게 싸워보자는 소리다. 즉, 그들의 디테일보다 더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디테일에 특화되지 않은 대부분의 오피서들은 그 정도 하는데도 매우 힘들 것이다.
쉽게 갈 수는 없을까? 있다. 덜하면 된다. 대놓고 덜하면 안 된다. 그럼 탈수기에 넣어져 표준 코스로 탈탈 털린다. 그때그때 간 보기를 해야 한다. 그 부분만 아차 한 듯. 이미 해놓고 잘라서 던져보는 식으로 간을 보면 된다. 제 아무리 디테일러라도 지가 바쁘면 그냥 넘어간다. 정확히는 여유가 없어 제대로 못 본다. 그러나 뒤에 발견하고 속으로 아차 하더라도 이를 지적하지 않는다. 그때 못 본 나의 디테일이 흠 잡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디테일이 곧 함정이 된다.
철저히 바쁠 때를 노려라. 아무리 약점 없어 보이는 디테일러지만 한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느리다. 그렇다. 이들은 태생적으로 쾌속질주가 불가능하다.
더 파헤쳐보자. 디테일. 좋다. 그러나 결국 디테일의 기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은 관리자가 되어 철저히 이를 이용한다. 지가 기준이 되려고 한다. 이들이 요구하는 디테일을 까보면, 별 거 없다. 정말 그 일 자체의 디테일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프레임과 틀에 맞추기를 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그들이 해놓은 틀을 그냥 가져다 쓰면, 의외로 이들에게 맞추는 건 쉽다는 의미되겠다. 자꾸 디테일에 낚여 소모적인 감정 노동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아무리 디테일이 좋더라도 나는 내 방식대로 하고 싶은데. 이 넘치는 갈증을 어찌 해결할 것인가? 기껏 일할 거라면, 같은 시간 들여서 하는 일이라면, 나도 충분히 만족스럽고 성과 내고 보람도 느껴야 할 게 아니냐 이 말이지?
알아. 알아. 무슨 소린지 알겠는데, 그렇게 생각한다면 지금까지 오피스 게임을 잘못하고 있던 거다. 돈 벌러 왔으면 그냥 하란대로 하고 돈 벌면 되지. 어차피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빠꾸 먹을 건데, 무리수 둘 필요가 있냐는 거다. 니가 무슨 노빠꾸 잔다르크니? 니 회사야?
정 그렇게 하고 싶으면 방법은 있다. 디테일러들이 관심 갖지 않는 일에 모든 창의성을 쏟아붓고 보람을 느끼면 된다.
디테일에 스트레스받는 오피서들아.
어려운 자들 만나면 쉽게 쉽게. 해달라는 대로 해주고 쉽게 쉽게. 마음 쏟지 말고 쉽게 쉽게. 피곤하다 생각 말고 쉽게 쉽게.
그냥 쉽게 좀 가자 이 말이다.
어때? 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