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 오진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아?
비싸? 모가 비싸! 니가 만들어 봐!
우리는 뭘 사려고 할 때, 습관처럼 내뱉는다.
"아! 비싸!"
"이게 뭐라고 이렇게 비싸?"
비싸다는 말. 이제는 기본 번들 장착 감탄사다.
뉴스에서도 연일 한 목소리로 떠든다.
"물가가 계속해서 가파른 오름세입니다. 식료품부터 안 비싼 거 찾기가 힘듭니다."
"여보! 우리 집 못 사? 미친 집 값! 비싸도 너무 비싸.."
어쩌다 싼 걸 찾으면 혜자라고 득달같이 달라붙는다. 그리고 이내 싼 게 비지떡이란 걸 깨닫는다.
비싼 걸 싸게 팔면 어떻게 될까? 막 애국기업. 서민기업이라며 돈쭐 내주자고 달려들 것 같지? 키보드 워리어들이 분위기 좀 만들어준다. 애국. 서민. 이래가면서.. 사람들은 달려든다. 혜자니까.
근데 그거 얼마나 갈 것 같아? 가격 조금 올리는 순간 사람들은 돌변한다. 악덕기업이라며 불매운동을 외친다. 그래서 가격은 중요하다. 한번 매겨 놓으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바보야. 그럼 가격을 싸게 주면 되잖아? 싸게 많이 팔면 되지. 그럼 계속 잘 팔리잖아?
아니. 절대 아니다. 소비자는 처음 싼 맛에 찾는다. 곧 싸구려로 인식되며, 더 비싼 것을 찾는다. 좋은 취지로 가격을 낮춰도 곧 외면받고 망하는 거. 그게 소비자 심리다. 망하면 소비자는 금세 잊고 딴 걸 찾는다.
이게 사람이다. 사람은 원래 싸면 달려든다. 인간의 생리 본능은 간단하다. 마려우면 싸는 거다. 싸면 달려드는 거다. 경제 본능이다. 누구나 비싸 보이고 싶지만, 싼 거에 혹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사람만 해도 그렇잖아? 있어 보이고 싶고, 비싸 보이고 싶지. 싸 보이고 싶지 않잖아? 마찬가지다.
회사는 가격 결정에 매우 심사숙고한다. 싸면 소비자가 달려드는 것은 잘 안다. 그러나 한번 싸면 끝없이 싸야 한다. 게다가 마진은 남겨야 한다. 너무 비싸지면 외면받는다. 다른 회사와 차이가 너무 나도 곤란하다. 이 모든 걸 해결해 주는 옵션이 바로 원가절감이다. 마진은 보호하면서도 원가와 판매가 둘 다 낮출 수 있다. 좀 비싸게 팔면 이윤은 더 남으니 개이득이다. 원가절감이 되면 취할 수 있는 옵션과 스킬이 늘어나게 된다.
초맹폰 7th 제너레이션. 드디어 완성 샘플이 나왔다. 시장 공개 전에 고위층 설명회 자리가 열린다.
몇 달을 밤새워 제작한 광고 영상이 먼저 나온다.
"테크.. 퓨쳐.. 휴먼.. 그리고 초맹.. 내 손 안의 무한 커넥티드 월드. 초맹폰"
"우리가 다음 세대에 제시하는 정답은 바로 초맹폰 7th 제너레이션입니다. 초맹 AI 탑재로 저 세상 폰이 될 역작입니다. SNS에 미친 세대를 겨냥해 실물왜곡샷으로 성형미 물씬 뽐내는 신기 발랄함을 갖추고 있습니다. 카메라 안면인식으로 누가 나쁜 애인지 착한 애인지 호감 지수를 구별하는 기능도 가지고 있죠. 넥스트 제너레이션의 상징이자 결정체 그 자체가 될 것입니다."
설명회 발표가 끝나자마자 고전무가 질문한다.
"그래서 소매가 얼만데?"
"190만 원으로 책정했습니다."
"무슨 폰 하나가 190 만씩이나 해! 그래서 팔리겠어요? 옆에 싸요미는 80만 원이고, 사과폰도 200만 원인데! 뭐가 이렇게 비싸?!"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는데요. 저들과 비교해도 모든 성능이 다 충분히 우위예요. 전작과는 완전히 풀체인지 되었구요. 그걸 고려하면 충분히 착한 가격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이런 불황에 190만 원이 누구 애 이름도 아니고. 이게 무슨 원숭이 바나나 따는 소리야? 나한테 100만 원만 줘 봐. 똑같이 만들 수 있다구!"
'저러니까 대가리에서 빛이 나지.. 저 눈부신 새끼..'
순간 초대리의 머릿속에 무언가 스쳐 지나간다.
여기서 그날의 사건이 터진다.
"고전무님. 여기 100만 원 드릴게요. 함 똑같이 만들어 와 보세요. 헤헤."
고전무. 주변을 둘러보며 당황한다.
"어? 어? 무슨 소리야? 똑같이 만들라니.."
"100만 원 드릴 테니까! 똑같이 만들어 보시라구요!"
"허허... 이게 무슨.................................."
"여기 돈 받으세요. 뭐 해야 되는지 알려드려요? 금형공장 가서 몰드제작 알아보시고, 디스플레이 공장 가서 강화유리 개발해서 패널 만드시구요. 소프트웨어 회사 가서 AI 만들고, 운영체제랑 앱 다 만드신 담에, 반도체 회사 가서 메인보드랑 칩셋 테스트하고 오더 넣으신 다음에요. 배터리 회사 가서 리튬이온 좋은 거 달라하시고, 안테나 업체 가서 초소형 수신기 잘 구하세요. 마이크랑 스피커는 업체 다른데인 거 아시죠? 그거 다 하시면, 베트남 하드웨어 조립공장 가서 도면 그려주고 응우옌한테 조립해 달라 하세요. 그리고 디자인 회사에 박스, 인스, 패키지 디자인 하고, 충전기 업체에 벌크 공급계약 해 주세요. 샘플 나오면 제품 안전인증 꼭 받으셔야 해요. 이거 100만 원에 다 포함되는 금액이에요. 비싸죠? 무쟈게 비싸죠?"
"...................................."
무차별 속사포에 좌중이 모두 할 말을 잃는다.
초대리의 돌발 행동에 고전무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어쩔 줄 모르다 이내 수습에 들어간다.
"아.. 말이 그렇다는 거지. 저 금액이면 소비자는 비싸게 느낀다.. 이런 말이에요. 에헴.."
"그럼 싸야만 팔려요? 단순히 가격만 가지고 평가절하하면 안 되죠. 비싸던 싸던 구매의 선택은 소비자가 시장에서 하는 거잖아요. 비싸도 그만한 값어치 있으면 사는 거예요."
분위기 싸해지자, 제니 부사장이 관전모드를 해제한다.
"두 분. 계속 가격 논쟁 하실 거면 뭐라도 좀 걸고 하는 거 어때요? 원론적이면서도 건설적이고 재밌는데요? 아까 바나나랑 원숭이 얘기도 나오던데, 제가 3천 원 주면 필리핀 가서 바나나 따다 주시는 건가요?"
논쟁은 일단락되었다. 고전무의 억까는 오래가지 못했다. 신제품 발표회 내내 그는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제니는 총평을 했다.
"가격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원하는 제품에 결국 더 지불하게 됩니다. 가지지 못하면 계속 원하게 되죠. 조금 더 올려도 될 것 같은데요? 전작이 잘 안 돼서 이번 개발에 고생 많았던 거로 알고 있어요. 잘 팔아서 고객들도 만족했으면 좋겠구요. 무엇보다 고생한 우리 직원들께 성과급도 더 챙겨주고 싶습니다."
초맹폰은 10만 원 더 올려 200만 원에 출시되었다. 초반 판매추이를 본 이들은 이번에 제대로 터졌다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 와중에도 시장 여론을 의식한 제니는 영리하게 금융권과 취약계층을 위한 착한 초맹폰 프로모션도 추진했다. 현자의 전략이었다. 덕분에 추가 오더가 들어가며 부품 하청업체에 낙수효과가 제대로 떨어졌다. 하청업체 공장들은 비수기에도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정신없이 돌아갔다.
신제품 설명회에서 사고 친 초대리는 어찌 되었을까? 보복? 좌천? 아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역시 미친 짓에는 초대리란 찬사 밖에는..
괜찮다. 그냥 까자는 식으로 아무 근거 없이, '이거 아냐!', '저거 아냐!' 하는 놈에게는, 그냥 니가 해보라고 하면 된다. 쫄 거 없다. 어차피 걔는 못한다. 처음부터 그냥 까려는 게 목적이었으니까. 그때는 승부수를 띄워야 하는 타이밍이다.
자본주의 본질을 망각한 질문을 임원이 한다는 건, 그냥 까려고 아무 말 대잔치를 하는 것이다. 적어도 가격을 말할 때는 포지셔닝, 원가, 재화의 교환 가치, 가격 대비 성능, 판매 대비 재고, 다 따져서 논의해야 한다.
어쨌든 그날의 설명회는 빠르게 카더라 통신을 탔다.
"돈 줄게. 니가 해보세요. 니가 해보시라고요."는 그 해 최고의 유행어로 등극했다.
더군다나 고전무의 원숭이 바나나 따는 소리 하네.. 를 비집었던 제니의 명언..
"바나나 3천 원이 비싸다구요? 3천 원 줄께. 필리핀 가서 직접 따와 보실래요?"는 계속해서 구전되며, 여기저기서 다른 여러 변형 메이킹 버전을 만들어 냈다.
"지하철 요금이 비싸다구요? 2천 원 줄 테니까 선로 깔고 열차 만들어서 타 보실래요?"
"여기 밑반찬 감자 맛있다. 더 달래자! 안데스 산맥 가서 직접 캐 와 봐. 비행기 값만 얼만데.. 깔깔깔."
이런 식이었다. 전염병 마냥 가리지 않고 돌았다.
심지어 돈이라고 하는 자본을 재화와 교환할 때, 그 가치를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기폭제가 되어버렸다. 가격을 매길 때만이 아니었다. 저렇게 농담 따먹기를 하며 문득 이거 저거 따져가며 생각해 보니, 비싸다고 생각해 오던 것들이 싸게 느껴지는 경우도 많았던 것이다. 그렇다. 이게 자본주의의 본질이다. 그 편안함과 달콤함 때문에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뭐? 그래도 초맹폰은 비싼 거 아니냐구?
이거 너무한 거 아니냐구?
모가 너무해? 모가 비싸?!
내가 100만 원 줄께.
직접 만들어 와 봐! 만들어 와 보라구!
얼마나 편하냐? 돈 내면 이 짓, 저 짓 안 하고, 방구석에 가만 앉아서 초맹폰 쓸 수 있는데. 안 그래?
이게 자본주의야.
니가 하고 싶은 거! 갖고 싶은 거!
돈 좀 내면 알아서 오피서들이 다 만들어다 갖다 주는 거! 그게 자본주의라고!
그니까 돈만 가져와! 어때? 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