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연봉은 회사 내규에 따르겠습니다.
회사 내규는 니 연봉 깎는 게 내규야!
회사는 신입사원보다 경력사원을 선호한다. 적응이 빠르고 즉시전력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회사던 신입보다 경력직이 훨씬 많다.
대이직의 시대. 경력직 시장은 어느 때보다 호황이다. 채용에서 인건비를 줄이는 광대역 규모의 경제! 바로 경력사원 채용에서 나온다. 경력사원은 보통 충원 부서 팀장이 면접 보고 채용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나 처우 사정은 다르다. HR팀 권한이다. 채용이 결정되면 면접자에게 합격을 통보하고 연봉협상에 들어간다.
이때부터다. 경력에 흠을 잡기 시작한다.
"UI/UX 디자이너에 지원하셨는데, 경력 7년 중 다른 디자인이 2년 되네요? 경력 인정은 5년만 해 드립니다." 10~15% 할인된다. 경력이 6년 10개월이면 개월은 자르고 시작한다. 올림은 없다. 반올림도 없다. 내림만 있다. 더럽다. 치사하다.
경력 후려치기에서는 HR이 1년이라도 더 내리려 필사적일 때가 있다. 그것은 경력을 조금만 내리면 직급을 하나 깎을 수 있는 경우다. 예를 들어 경력 8년에 과장이다. 1년만 더 깎으면 대리다. 그럼 미세먼지 흠잡기와 억까를 동원하여 기어이 깎아낸다. 이 경우 20% 이상의 할인 효과이기 때문이다.
불평하는 합격자에게 내년에 과장 승진하면 보상된다고 잘 다독인다. 그러나 경력사원이 들어오자마자 다음 해에 곧바로 승진하기란 쉽지 않다. 이방인이 성과를 보여줄 만한 시간적 여유가 절대 부족하다. 실적은 이방인에게 안 넘긴다. 이런 불리함은 설명하지 않는다.
경력 자체를 깎을만한 여지가 없다면 넥스트도 준비되어 있다. 고무줄 매직이다. 이건 누구에게나 먹히는 절대 치트키다.
먼저 고연봉자의 경우, 같은 직급이라도 돈을 많이 줘야 한다. 그래서 회사에 직급대로 정해진 연봉 상한선이 있다고 선빵을 날린다. 거기 맞추도록 한다. 그게 내규라고 한다.
그럼 뻔하다. 받던 것보다 깎아서 와야 한다는데 누가 좋아할 것인가? 그러면 간을 보다 한발 빼는 모양새를 취한다. 그다음 전 회사와 동일하게 맞춰줄 테니 입꾹하라고 한다. 고연봉을 형평성으로 들이대 역으로 약점 잡는다. 그럼 올려주지 않아도 된다. 맞다. 목표는 애초에 동결이었던 것이다.
이직의 대부분은 반대급부가 더 많다. 기본적으로 저연봉자를 선호한다. 저연봉자가 들어오는 경우는 안전마진이 상당하다. 페이밴드와 같이 정해진 연봉선이 있다면 그냥 거기 맞추면 되지만 이 경우 다르게 적용한다. '전 회사 연봉에서 10% 올려주겠다.' 이런 식이다. 연봉 3,000만 원이면 낙찰가는 3,200~3,300이다. 원래 페이밴드대로면 4,500만 원은 받아야 되는데 할인율이 30%나 된다. 이를 숨긴 채 HR은 '전 직장보다 올려줬다.', '넌 더 받고 오는 것이다.'로 혜택성 포장을 한다. 경력사원은 이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 하게 된다.
HR에서 깎았다는 기준 지표는 사내 페이밴드다. 그리고 현 재직자의 년차, 직급별 평균 연봉이다. 이와 비교하여 깎는다고 보면 된다. HR은 내부 수준과 비교 삼아 깎고, 경력직에게는 전 직장을 비교 삼아 최대한 동결에 가깝게 협상을 치는 것이다.
소속 팀장은 경력직이 연봉 얼마에 들어오는지 크게 관심 없다. 내돈내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력직은 나중에 한참 근무하다 알게 된다. '아.. 내가 신입사원보다도 못 받고 있었구나..' 설마 그 정도까지? 아닌 것 같지? 진짜 있다. 그것도 많이. 그리고는 경력이랍시고 신입보다 많고 어려운 일을 시킨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HR에 따져봐야 다른 사람도 다 그렇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 니가 싸인한 그 초특가 폭탄세일 노비문서를 보여줄 것이다.
만약 채용 시 경력사원이 "나 안 갈래!" 입사를 포기하면? 잘 됐다. 다시 채용 딜레이가 되며 공석 상태로 인건비는 자동 절감된다.
경력 후려치기는 간단하다. 여기까지 잘 따라왔다면, 다음 실전 연습 문제를 풀며 같이 후려쳐 보자!
문제 : 초맹의 경력 할인율을 구하여라!
기획팀 지원자 초맹. 열심히 하겠습니당!
경력사항
1. 마케팅 - 1년 10개월
2. 언론홍보 - 1년 9개월
3. 세일즈관리 - 1년 7개월
4. 미디어기획 - 1년 8개월
뽑아놔도 별로 잘 못할 것 같은 초맹. 일단 얘는 돈이 아까워 보이니 좀 팍팍 후려치도록 하자.
총경력은 다 더해서 6년 10개월이 나온다. 경력 후려치기의 기본은 년 뒤에 개월을 삭제해 버리는 것이다. 그럼 총 경력 6년 10개월에서 6년이 된다. 거의 1년 깎았다. 이건 기본 번들이다. 누구나 다 안다. 경력 6년 쳐 주면 10개월 줄인 거다. 겨우 초맹 따위에게 대리를 내줘야 할 판이다. 그래서야 되겠는가? 할인율 12%. 회사 살림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건 HR 초짜들이나 하는 어리석은 짓이다.
고수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각각의 경력 별로 나눠서 개월 수는 다 삭제한다. 그러면 앞에 년수만 더해 경력 4년만 쳐 주면 된다. 근데 저러면 대리를 줘야 한다. 연봉을 깎던가 직급을 깎던가 둘 중 하나 더 쳐 줘야 할인이 많이 된다. 딱 1년만 어떻게 더 깎아보자. 뭐가 있을까?
그래! 하나 더 있다. 경력 중 가장 연관성이 낮아 보이는 세일즈관리. 여기를 흠잡아 관련 경력 아니니 인정 못하겠다. 1년 더 삭제! 됐다! 초맹에게 이제 대리 직급은 주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최종 경력은 3년만 인정. 6년 10개월을 무려 3년까지 깎았다. 할인율 56%. 저 정도면 재고떨이 폭탄 세일이다! 게다가 직급도 깎았으니 급여는 더 낮아지게 된다.
근데 누가 봐도 저 정도면 상도덕 상 너무 심하다. 그치? 분명 목멘 소리가 나올 것이다. 솔직히 저 정도까지 깎으면 채용 안 된다. 진짜 스킬은 여기서부터다. 일부러 이렇게 실망시켜 놓고 연속기로 애프터서비스 들어가는 거다.
"원래 3년만 인정되지만, 특별히 직급은 대리로 해 드릴께요." 내지는 "너무 많이 손해 보시면 안 되니 퉁쳐서 경력 4년 인정해 드릴께요." 서비스 선심을 쓰면 된다. 이렇게 하면 최종적으로 사원보다는 좀 높으면서 대리보다는 좀 낮은 애매한 수준으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 뒤에 '쉿! 이건 비밀이야!'로 입막음을 해 둔다. 최종 할인율 42%. 끝났다. 이겼다.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 초맹. 아마 다행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가격은 바로 이렇게 후려치는 것이다. 어떤 물건을 살지 보다 얼마에 살지가 더 중요하다.
만약 퇴사와 이직을 감행하고 있다면?
"희망연봉은 회사내규에 따르겠습니다." 이거 좀 제발 절대 하지 마라! 회사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호구들이나 하는 말이다. 내규 그런 거 없다. 니 연봉 깎는 게 내규다. 그다음 이직러들에게도 민폐다.
연봉은 어차피 깎인다. 보통 올려 부르면 안 뽑아줄까 봐 특가 세일에 당한다. '내가 이 정도 받아도 돼?' 싶을 정도로 일단 쎄게 부르고 시작하자. 생각하는 희망연봉에서 20~30% 정도 올려 불러라. 올려 부른다고 탈락시키지 않는다. 이유만 그럴싸하게 댈 수 있으면 된다. 관련 경력 아니라고 흠 잡거든 다 지원한 업무에 상관있다고 해라. (그렇다고 주제파악 못하고 3억 희망이요 이러는 사람은 없겠지?)
부서에서 필요하다 하면 어떻게든 조금만 적당히 깎고 채용한다. 괜찮다. HR도 채용 안 끝나면 일이 안 끝난 거다. 이번에 더 못 깎은 건 그다음 호구. 회사내규 잘 따르는 애한테 옴팡 뒤집어 씌워 니 몫까지 팍팍 깎을 거다. 오피스 게임은 계속되니까..
'너는 특별히?' 그 스페셜 스킬에 속지 말자. 그거 제너럴 스킬이다. 입꾹닫을 시전 하는 건 다 캥기는 게 있어서다. 니가 특별해서가 아니다. 오피스 게임에서 너를 특별히 여기는 건 너밖에 없다.
HR은 힐러가 아니다. 인건비 절감 R&D에 특화된 명석한 지능캐다. 여러분의 급여 HP에 극딜을 꽂아 넣는 핵심 딜러다.
업그레이드는 하되 옆그레이드는 절대 하지 말자!
P.S. 공공부문은 얼마 안 깎이니 안심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