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과 막장 드라마의 원탑 성지는 회사
쫄깃하다고 계속 씹으면 끊어진다!
"죄송합니다. 헤어지려 했어요.."
"야! 이 년아! 남의 가정 파탄내 놓고 너는 행복해 지시겠다?"
사내 카페. 여자 둘이 앉아 대화를 한다. 한 여자가 무릎을 꿇는다. 화가 잔뜩 난 다른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 꿇은 여자 머리 위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 붓는다.
무슨 장면일까? 이 막장 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인데..
그렇다. 무릎 꿇은 여자는 불륜녀다. 아아를 들이부은 여자는 불륜남의 와이프다. 둘은 사내불륜이었다. 때마침 불륜남과 불륜녀. 이 둘은 서로 장난질을 끝내고, 공식적으로 헤어지려던 안타까운 시기(안타까운 건가?).. 와이프에게 딱 걸렸다. 격노한 와이프는 회사로 쫒아온 것이다.
헤어짐이 안타까운 걸까? 어긋난 인연이었을까? 10년 전에 만났다면 행복했을까? 지금이라도 위험을 무릎쓰고 행복해지고 싶던 것일까? 저들은 어찌하여 어려운 불륜을 감행하고도 헤어지게 된 것일까? 와이프에게 걸려서?
"니 결혼할 남자도 이거 알아야 되지 않겠어? 그 남자는 무슨 죄냐?"
웅? 이건 무슨 소리지? 더 웃긴 건 불륜녀는 사내불륜 말고도, 사내연애로 결혼 준비 중이었다. 그렇다. 사내에서만 양다리였던 것이다. 아무리 동물의 왕국이라도 이건 너무 원초적이지 않은가? 와이프는 회사에 다 떠벌려서 둘 다 아작내겠다는 걸, 불륜녀는 자기 결혼 꼬이겠다 싶어 무릎꿇고 빌었던 광경.. 되겠다.
사내연애는 미혼 청춘 남녀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시대가 더욱 각박해질수록 다른 단계로 진화한다. 오피스와이프. 오피스허즈밴드. 많이 들어봤지? 오피스 연인은 유행처럼 번지는 전염병이다. 대상은 모든 오피서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누구나 걸릴 수 있다.
불륜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 회사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이는 그냥 세계적 추세다. 불륜의 성지다. 사내 불륜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한다. 가장 많은 시간을 회사에서 함께 보낸다. 원하든 원치 않든 함께 있는다는 것 자체가 일단 최적의 여건이다. 이들은 플러팅 팡팡거리는 청년들과는 모양새가 조금 다르다.
일반적인 사내연애는 뭇남녀가 때가 되어 짝짓기 상대를 찾는 반면, 사내불륜은 아무 재미없는 일상의 무료함에서 시작한다. 철저히 감성적 동기가 작용한다. 업무나 회사에서 오는 스트레스, 어려움을 함께 나누며 이야기 한다.
말이 잘 통한다. 같이 일해서일까? 칭찬도 잘 해준다. 이 여자 너무 잘 이해해 준다. 마누라는 돈 벌어오라고 난리치는데..
서로 도와가며 정서적으로 의지한다. 나를 존중해준다. 함께 있으면 자아가 살아난다. 이 남자 너무 괜찮다. 집에 있는 남의 편은 밥이나 달라고 하는데..
이런 생각이 둘 다 들었다면 불륜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시간에 흐름에 따라 점점 생각과 감정이 변화해 간다. 여기서 시간이 지나면 초반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면 안 돼. 가정을 지켜야지. 일이나 하자.'
시간이 더 지나면 인위적으로 같이 있는 시간을 늘리게 된다. 가령, 같이 할 만한 일을 많이 만든다. 회의를 같이 많이 하거나 한다. 점심도 같이 먹고, 티타임이 늘어난다. 그러면서 점점 아슬아슬하게 타던 선은 넘어가기 시작한다. 양쪽의 중심을 잡던 무게추가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이 무렵이면 중반에 이른 것이다.
미묘한 감정이 든다.
'우리가 10년 전에 만났다면 어땠을까?'
'우리 인연이 왜 이토록 꼬여 이제서야 만난 것일까?'
점차 은밀해진다. 모험감이 든다. 짜릿하다. 아찔한 스릴. 이제는 주말이 더 싫다. 회사에 가고 싶어진다. 어서 월요일이 되었으면..
시간은 계속 지난다. 외근이나 출장도 같이 나간다. 연락도 스스럼없다. 주말도 핑계대고 나간다. 주말근무나 모임이 많아진다. 외모도 더욱 꾸민다. 이 무렵 잡고 있던 균형의 끈 중 이성의 끈을 놓는다.
'지금이라도 행복해지고 싶다.'
'다시 시작하고 싶다.'
'이제 돌아갈 수 없다.'
차츰 이런 생각이 든다. 그녀가 보이지 않으면 뭔가 불안하다. 그가 이제는 내꺼였으면 좋겠다.
이쯤되면 이제 직진하는거다. 뭐가 이성이고 뭐가 감정인지 모르겠다. 회사에서 공과 사 이런 건 없어진지 오래다. 사내불륜이 사내연애와 같은 점은, 주변에선 다 눈치챘는데 자기들만 모르는 줄 안다는 것이다.
뭐 좋다. 자기들끼리 좋다잖아. 남들의 불륜 시선? 오해다. 불륜이 아니다. 이건 로맨스다. 시기가 엇갈렸을 뿐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이름하여 내로남불은 모두 이런 모양새를 하고 있다.
뭐 자기들이 알아서 꽁냥꽁냥 하는 거라면 모른척 해줄 수도 있겠다. 남의 사생활일 뿐이잖아. 간섭할 필요 없잖아. 알빠노잖아. 그치? 근데 알게 모르게 다른 오피서들에게 그 여파가 간다. 이들의 이상한 일처리나 의사결정. 다 이유가 있다. 그 초점이 어디 맞춰져 있는지 쫄래쫄래 따라가 보면 답이 나온다. 자신의 불륜 파트너들에게 유리하도록 되어 있을 것이다.
사내불륜의 조합은 다양하다. 미혼+기혼, 팀장+팀장, 팀장+팀원, 이 부서+저 부서, 임원+비서.. 써놓고 봐도 애니멀 킹덤이 따로 없다. 그 목적도 다양하다. 대부분은 나름의 순수(?)한 감정적 불륜인 반면, 권력 지향적 불륜, 일시적 일탈성 불륜, 한쪽이 목매다는 크레이지 불륜들이 있다.
나이도 들만큼 들었고 알 것도 알만한 사람들이 불륜까지 강행할 때는 충분한 모험을 하겠다는 의지이다. 그러니 더더욱 주변에서 뭐라 해도 들리지 않는다. 뒤늦게 찾아온 폴인러브란 그런 것이다. 저들의 강력한 사랑의 힘은 주위의 비난과 온갖 손해를 역경이라는 키워드로 포장하여 이를 극복하게 해 준다.
회사는 불륜에 관대하다. 사생활에는 간섭하지 않는다는게 대부분의 원칙이다. 공공부문은 좀 더 엄격하다. 대개 회사는 이렇다 할 뭔가를 하지 않는다. 사내에서만 딱히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딱히 구실도 없다. 그러나 회사도 공과 사는 구실일 뿐, 불륜이 적발되면 언제든 강력한 목줄 수단으로 사용한다.
그럼 결국 어떻게 되냐구? 어떻긴 뭘 어때? 나락이지. 사내불륜 성공해서 행복하게 잘 되었다는 사람 본 적 있는가? 사내불륜은 오피스 게임의 스릴을 주기 위해 있는 짜릿한 이벤트 같은 것이다. 근데 그게 애초에 잘 될 수 없는 설정이다. 열심히들 해 봐라. 뒤늦게 불어온 폴인러브의 힘으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로맨티스트들아!
이게 안 되는 게임이었다는 것을 언제 깨닫느냐? 걸리고 나서다. 불륜이 걸리면 이들에게 남은 것은 현실 돌파다. 이런 저런 소송에 휘말린다. 각종 책임론에 휩싸인다. 주변의 시선은 생각보다 따가웠다. 두 눈으로 그녀를 보러 다니던 회사에 날 보는 눈이 수백개 쯤 생긴다. 평소처럼 그에게 향하던 발걸음을 이제는 뗄 수가 없다. 이걸 낙인이라고 한다.
그렇다. 이들의 오피스 게임 엔딩을 예고하는 것이다. 그래서 회사가 딱히 뭘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들은 100% 알아서 몇 달 안에 나가게 되어 있다. 나가서도 순탄치 않은 것은 보너스..
여기서 이들은 현실을 직시한다.
'내가 이혼을 하면 과연 얘가 나를 선택할까?'
'애들은 어쩌지? 남의 새끼 키울 수 있을까?'
'이직도 해야 되는데..'
뒤늦은 사랑방 로맨티스트들은 이 현실을 직시하고 즈덜끼리 피터지게 싸운다. 그 로맨스는 여기저기 민폐를 끼치며 불륜의 현실로 변해간다. 아니다. 처음부터 불륜이었던 것이다. 로맨스로 착각해서 포장질 했을 뿐.
이 정도면 그나마 낫지만, 이들로 인해 가정이 파탄나고 인생이 나락에 빠진 이들이 가만있을 리 없다. 이런 저런 복수극을 펼쳐온다. 이 불륜 커플은 서로 수습 좀 해 보라며 또 싸워댄다. 이들의 로맨스는 대개 이 단계에서 파경을 맞이한다.
사내불륜은 결국 승자 없는 죽이기 퀘스트다. 그래서 오피스 게임 공략집에서는 이 달콤한 유혹의 퀘스트에 빠져들지 않기를 권장한다.
결국 막장 드라마 뺨치는 이 불륜 사태는 모두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불륜남은 발빠르게 퇴사했다. 이혼 당했다. 그 가정은 파탄이 났다.
불륜녀는 정신과 치료를 이유로 휴직을 했다. 아마 복귀 못할 듯하다. 한 달 남았던 결혼도 파탄이 났다. 사내연애 상대였던 예랑이는 가장 큰 충격에 휩싸였다. 사람보는 눈 없네.. 불륜도 모르고 만났네..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결국 그도 여행을 간다며 휴가를 냈다가 곧 휴직으로 전환했다.
오피서들이여. 무료한가? 인생의 단비를 기다리는가? 잊혀진 옛 감정이 활활 타오르는가? 스릴과 짜릿함을 맛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퇴근 전에 뭐할지 검색 좀 해라. 뭘 하면 재미있을지. 뭘 하면 조금이라도 즐거워질지. 뭘 하면 기분이 나아질지. 그리고 땡 치면 집에 가서 뭐라도 해라. 옆길로 새지 말고.
오피스 게임에는 로맨스란 존재하지 않는다. 자꾸 하다보면 착각하는데, 이건 비정하고 차가운 게임이다. 사내연애, 사내불륜 이런 건 모두 오피서들을 나락보내기 위한 스페셜 퀘스트다. 퀘스트를 해 볼지 말지 선택은 자유다.
네임드가 되어 유명세를 떨치고 싶다면 해봐도 좋다.
자! 이제 집에 갈 시간이다. 쓸데없는 짓 말고 퇴근하자.
P.S. 주변의 관심을 받으며 사내결혼 커플 탄생을 알리던 예랑이 대리님. 청첩장 다 돌리고도 결혼은 파토나고, 결국 휴가에 이어 휴직을 던졌다. 마음이 아주 힘들겠지만, 결혼 전에 다행이다 생각하고 잘 이겨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