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누굴 담그려고?
전환배치란 담그기 위한 수작질일 뿐
오피서들의 역량을 키워주고 회사에 필요한 인재가 될 수 있도록 만드는 취지로 사용되는 제도가 있다. 직무순환제. 한 곳에서 고이지 않도록 해 주고, 새로운 능력을 키우는 직원 역량 개발 기법 중 하나다.
공공에서는 이미 당연하게 사용되고 있다. 민간에서도 많은 곳들이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효과는 글쎄다. 취지는 그럴싸하지만, 현실은 다 거짓말이다.
직무순환제가 제대로 쓰이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회사는 기본적으로 돈 벌기 위해 어떤 방법으로든 일이 잘 돌아가는 것이 우선이다. 오피서들의 능력이나 역량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다. 직무순환제가 필요 없으면 없애면 그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갖추고 있는 이유가 뭘까?
우선 이 제도가 제대로 사용은 되는지, 사용이 어떻게 되는지를 잘 살펴봐야 한다. 백화점이나 은행같이 동일한 지점이 각지에 있고 너도 나도 의무적으로 지점 이동을 하는 경우, 그럭저럭 순환제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회사는 그렇지 않다. 본사 지사가 명확하고 그 대우가 너무 다르다. 본사 내에서도 대개 요직과 한직이 명확하다. 공식적인 순환제에 의해 이동을 시키려 해도, 특수한 인력들, 부서의 주축 인력들은 다른 곳으로 빼기가 어려운 상황이 많다. 요직 부서는 한직 부서에 있는 자를 받으려 하지 않는다. 한직 부서는 잘 가려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게 애초에 공평하고 기회를 주는 형태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HR은 이동 대상 부서와 인원수를 미리 정하고 직무순환제를 구실로 각 본부에 할당을 한다. 누구를 보낼 건지 몇 명 정해와라.. 이런 식이다. 각 본부에서는 본부장이 팀장들을 소집해서 명을 하달한다.
그럼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본부 핵심 에이스 당연히 안 내준다. 일 좀 하는 대리, 과장들 안 내준다. 당연하다. 내주면 관리자들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부서 실적 안 나온다. 그럼 안 봐도 뻔하다. 직무순환제로 인해 FA 시장에 나오는 자들은 죄다 부서 폐급, 뉴비, 팀장이 정리하고 싶은 아이들이다.
즉, 회사의 정책이다 뭐다 좋은 말로 구슬리겠으나, 직무순환제로 부서 이동이 낙점되었다면 부서에서 버림받았다고 생각해도 좋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이 직무순환제라는 게 비슷한 근무환경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회계 업무 담당자에게 영업 경험도 해 봐라.. 그럼 숫자 보는 역량이 더 늘어날 것이다 하고 영업으로 보내 버린다. 외국어 좀 할 줄 아는 마케터를 외국어를 구실로 회사의 미래 인재가 되라며 중국 지사로 보내버린다. 자재 구매 담당자를 현장 경험도 익히라며 지방 어디 고속도로 까는 현장으로 보내버린다. 여기서 오피서가 얻는 이득이 있을까? 당연히 없다. 몸과 마음만 피폐해질 뿐이다.
앞선 예와 같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몇 년에 한 번씩 자연스럽게 도는 지점 이동 수준이라면 이해하겠다. 비슷한 업무 수준과 환경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직무 순환제에 걸리면 오피서들의 고민이 많아진다. 일단 커리어가 망가진다. 자칫 삶의 질이 떨어지고 인생 나락 같은 경험을 하기도 한다. 운 좋게 핵심 부서나 원하던 직무에 걸리면 또 모른다. 다만, 그런 경우는 10명 중 1명이다.
일단 오피서들은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옮기게 된다. 여기서 간과하는 핵심이 하나 있다. 회사 제도에 의한 자리 이동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이미 갇혀 있다. 이는 제도라는 프레임 공격일 뿐 실제는 그렇지 않다.
업무의 형태 자체가 바뀌거나 원거리로 가야 하는 등의 사항은 부당 전보에 해당하는 불법이다. 여차하면 오피스 게임 심판(노동부)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다. 그래서 직무순환제의 대상이 되었을 때는 어디 사인한다거나 동의했다는 근거를 남기지 마라. 계속 고민 중이다 생각해 보겠다 하고 시간을 끌어라. 그러면 아마도 회사는 마감시한 임박에 맞춰 일방적으로 통보할 것이다.
오피스 게임에서 심판을 찾아갈 때는 최소 3번은 생각해보고 해야 한다. 저 단계까지 가는 건 물불을 가리지 말아야 할 때이다. 가급적 심판에게 안 달려가는 게 베스트이긴 하다.
"김대리가 이번 직무순환제 대상자로 선정되었어. 팀장으로서 여기서 더 했으면 좋겠는데, 회사 정책이라 어쩔 수 없네. 새로 가는 부서는 지방에 있는 도로건설 현장이야. 자재 구매 업무를 계속했고, 도시공학에도 해박하고 식견이 있으니까, 현장 가서 실제 어떻게 쓰이는지 직접 겪어보면 아마 이후에 직무순환될 때, 건설사업부 설계자리도 갈 수 있을 거야!"
직무순환제를 통보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꼬신다. 맞다. 다 그짓말이다.
잘 보자. 자재 구매라는 연관성과 도시공학이라는 해박한 식견으로 도로건설 현장으로 연결시켰다. 그 이후 넥스트를 예견하며 낙관론을 펼친다. 그러나 오피스 게임에 보장되는 넥스트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좋은 자리는 본사에서 지들끼리 다 돌려먹는다.
물론 예외도 있다. 도로건설 현장에서 궂은 일하면서, 아메리카 대륙까지 연결하는 금빛 반짝 최첨단 시그니처 도로를 완성하여 세계가 극찬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근데 과연 이게 될까? 즉, 가능성 제로라는 얘기가 되겠다. 눈에서 멀어지면 찾지 않는 법이다. 그때서야 아마 깨닫게 될 것이다. '아.. 작업당했구나.'
대부분의 오피서들은 능력 있어 보이고 싶어 한다. 이거부터 조심해야 한다. 너도나도 스킬을 남발한다. 없는 스킬도 있어 보이게 만든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반대로 해라. 없어 보여야 한다. 스킬과 필살기는 숨기는 것이다. 위기에서 한 번씩만 몰래 꺼내 쓰는 것이다.
조심해야 하는 부서는 신생부서, 지방부서다. 신생부서는 대단한 미션을 받은 것처럼 말하지만, 대부분 임원들이 보여주기 목적으로 만든다. 쓸모가 다 하면 허문다. 지방사업장은 당연히 별로다. 회사는 요직을 지방에 두지 않는다. 본사에 두거나 본사를 대체할 만한 본사 같은 지사에 둔다.
직무순환제를 하고 있다면 어떻게 돌아가는지 실상을 잘 관찰해 보기 바란다. 규모가 어느 정도만 있더라도 직무순환제를 제도상에 가지고는 있을 것이다. 실제 운영하고 있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건 나중에 문제가 되었을 때 사내 제도적 일환이라도 둘러대려는 회사의 꼼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직무순환제는 불필요한 자들을 걸러내는 제도적 수단이다. 물론 역량개발과 다양한 경험으로 철저히 위장하고 있다. 그러나 목적은 같다. 이런저런 방법으로 널 담궈버리는 것이다.
실제 요직에 가는 자들을 보라. 직무순환제에 의해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앞에서는 일하고 있지만, 뒤에서는 임원들이 직접 픽을 하기도 하고, 이 팀 저 팀에서 서로 에이스를 데려가려는 수작질이 남발하고 있다.
핵심부서나 좋은 자리는 그렇게 내부 스카웃에 의해 가게 된다. 누군가 권한을 가진 실력자가 땡겨준다는 소리다. 그 얘기인 즉 직무순환제 따위로 공평하게 할당받지 않는다는 의미다.
속지 말자. 그들이 제시하는 희망찬 미래를 믿지 마라. 그들이 널 생각한다면 직무순환제 대상자가 되더라도 어떻게든 안 보내려고 애쓴다. 대신 누군가는 보내야겠으니, 다른 담금질 후보자를 찾을 것이다.
회사는 너희의 능력을 뽑아 먹고 싶어 한다. 키워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오피스 게임에서 레벨을 키우는 건 각자의 몫이다.
각자도생 게임이니까!
P.S. 아임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