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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글 Apr 05. 2024

25화. 인고의 10개월(2)

1. 이름 : K

  - 직업 : 정규직근로자

  - 자녀(연령) : 태아1

  - 기타 : 지혜의 친구


 [00제일여성병원] K님,
#월 ##일 시행한 임신성 당뇨검사 결과 정상범위 140 미만에 비해 (152)로 높아
임신성 당뇨 재검이 필요합니다.
2주 안으로 내원 후 재검 바랍니다.
검사를 위해 8시간 금식이 필요하며, 재검 3시간 동안 채혈 4회가 진행될 예정이니
참고 바랍니다.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어마무시했던 각종 검사들을 수월하게 통과했었는데, 임신 24주 차에 시행한 '임신성 당뇨'검사에서 그만 딱 걸리고 말았다.

 그간 느글거리던 속을 달래기 위해 먹어댔던 과일, 주스, 아이스크림이 머리에 떠올랐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단 말이다. 그것들이 아니었다면 영양실조로 쓰러졌을 판이었다. 의사는 여러 사유로 인해 수치가 높게 나올 수 있으니 너무 자책하지 말라했지만, 지난날의 일들이 계속해 나를 괴롭히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임신성 당뇨검사에서 재검 결과를 받게 되면, 다시금 채혈검사가 진행되는데 그것은 알 것 다 아는 임산부들 사이에선 어머 어떡해... 하고 상대의 측은지심을 일으키게 하는 사건이었다. 고통스러운 또 한 번의 금식은 간헐적 단식으로 친다 자체 위안 삼더라도 앉은자리에서 피를 네 번이나 뽑아야 하는 것은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재검은 무사히 통과하리라 다짐하며 검사 며칠 전부터 답지 않게 건강식을 챙겨 먹었다. 그 맘 때쯤엔 입덧도 조금 가라앉았었기에 절밥과 다름없는 채식 위주의 식단을 먹어가며 관리했다.

 채혈이 쉽도록 반팔티를 받쳐 입고 입고 벗기 쉬운 후드 집업을 겉에 걸쳤다. 긴 검진시간 동안 기다리는 것도 일이라는 후기를 보고서 얇은 책도 하나 챙겼다. 정상범위로 가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피를 뽑고, 근처에 있다가 알려준 시간에 다시 가고, 다시 뽑고, 다시 가고, 다시 뽑고, 이러다 팔자에도 없는 빈혈이 생기는 건 아닌지 걱정하다가 네 번째 채혈로 검사가 완료되었다. 관리하기도 했고, 1차 검사도 정상 범위보다 크게 높지 않았던 것 같기에 이번만 잘 넘기면 되겠다 싶었다.


 수차례 채혈로 더는 말릴 피도 없을 듯한 피 말리는 일주일의 시간이 흐른 뒤.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정상이라면 별다른 연락 없이 문자만 준다고 일렀었다. 그 말인 즉, 정상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낯설디 낯선 당뇨검사키트를 받고 당뇨 모니터링 방법을 설명 듣는데도 이게 내 일이 맞나 싶었다. 평생을 적정체중에서도 조금 모자란 저체중으로 살아왔고, 집안 대대로 그 흔한 당뇨병을 앓은 어른들도 없었다. 아무래도 아이스크림과 주스 그것들의 문제인 듯했다. 또 한 번 과거의 식습관을 후회하는 나를 두고 의사 선생님은 조금은 지긋지긋하다는 듯 태아의 생장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달래주었다. 뱃속 아이가 커가며 인슐린 저항성이 증가하는데, 그 과정에서 인슐린의 효과가 감소하고 혈당 농도가 증가하기 때문이라 일렀다.

 그럼 뱃속 아기가 인슐린을 어쩌고 해서 제 피에 당 농도를 높이고 있다는 얘기네요, 자책 대신 태아를 원망하는 듯한 나의 발언에 의사 선생님은 이제 조금 질린 듯했지만 마지막 남은 참을성을 발휘하며 원인 모색보단 앞으로의 관리가 더 중요하다 일렀다. 임신성 당뇨를 잘 관리하지 못한다면 아이를 낳은 이후에도 당뇨를 지닌 채 평생 살아갈 수도 있고, 태아에게도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그제야 나는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 대한 원망을 멈추고 당뇨관리법을 귀담아 들었다.

 하지만 임신이 나를 팔자에도 없는 당뇨환자로 만들었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러고 있는 거 보니까 꼭 아픈 사람 같다."

 "그럼, 아픈 사람 맞지. 나 당뇨환자야. 이게 장난 같아?"

 괜스레 농담을 하는 남편인 걸 알았지만, 그 모든 게 고깝게만 들렸다. 우리가 만든 아기는 왜 내 배에만 착상하고 내 배에서만 자라나서 나만 고통을 받는 것인가. '남자는 재미만 봤지'라고 티브이 예능프로에서 누군가의 어머님이 하신 얘기가 틀린 말 하나 없었다.

 먹은 음식을 식단표에 쓰고, 당뇨키트를 꺼내 손가락에 바늘을 찔러 피를 내고는 수치를 확인해 적는 것이 일상이었다. 여간 귀찮은 게 아닐뿐더러, 노력한다고 하는데 도통 낮아지지 않는 숫자를 보면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 내 앞에서, 아픈 사람 같다고 나름 한다고 한 그의 말에 열이 뻗친 것이다.

 나의 정색에 남편은 맞은편에 앉아 입을 꾹 다물었다. 이 모든 게 오랜만에 외식을 하고 싶다고 억지로 날 끌고 나온 저이 때문인 듯 해 난 그 다문 입이 더 꼴 보기 싫었다. 식사를 한 장소가 집과 멀지 않은 곳이었기에 운동 겸 걸어서 집에 가겠노라 선언했다. 배도 무겁고 힘들 텐데 같이 차를 타고 가자는 남편에게 한마디 일갈 해 준 뒤 자리를 떴다.

 "나 당뇨환자라 많이 걸어야 돼."


 

 당뇨환자가 된 배불뚝이 임산부인 나는 많이 걸어야 했다. 이제 곧 출산 예정일이 머지않았으니 아이가 잘 내려올 수 있게 많이 걸어야 했고, 밥을 먹은 직후에는 최대한 움직여야 혈당이 치솟지 않는다 하였다. 이러나저러나 걸어야 했다.

 하지만 제법 무거워진 배로 예전처럼 걷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열심히 걷는다고 조금 욕심 내 걸을 때면 여지없이 무릎에서 신호가 왔다. 그렇게 되면 또 몇 날 며칠은 걸을 수가 없었다.

 임신해서 아기가 배에 있을 때가 제일 좋은 때야,라는 육아 선배들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얼른 이 커다란 짐을 배에서 빼내고만 싶었다. 하루 빨리라도 빼내서 고무줄바지 대신 내 정장바지를 입고 싶고, 코끼리처럼 부풀어 오른 다리를 본디 내 것으로 돌려놓고만 싶었다. 하루종일 붓기가 차오른 느낌을 더 이상 느끼고 싶지 않았다.

 


 급격한 통증이 느껴지던 어느 밤, 오늘이 그날이라는 생각을 운명처럼 느꼈다. 통증의 주기를 셈하며 점점 주기가 짧아지는 것을 확인한 뒤, 나의 통증엔 아랑곳없이 곤한 잠을 자고 있던 남편을 흔들어 깨워 얼른 병원을 가자 일렀다.

  곧장 분만실로 가리라 생각했지만, 분만대기실로 향했다. 분명 곧 애가 나올듯한 통증이었는데. 간호사 선생님들은 나를 눕히고 이것저것 묻더니 몸에 각종 장치들을 달고, 미처 준비하지 못했던 그곳의 제모까지 말끔히 해주셨다. 민망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지만 배의 통증에 수치심이란 것이 어느 정도는 사라져 있었다.

 몸속의 대변들을 모두 뽑아내기 위해 관장약을 투여했다. 투여 후 5분을 버티고서 화장실에 가라 일렀지만 귀신같이 느껴지는 신호에 3분 채 못 버티고 링거를 주렁주렁 메단 채 화장실로 내쳐뛰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어디까지 짓밟힐 것인가, 변기에 앉아 고민했다.

 곧이어 의사 선생님이 등장하고 내진이란 걸 한다고 했다. 그것으로 존엄성이란 것은 없어졌다고 보아야 했다. 선생님은 조금 불편할 수 있어요,라는 한마디를 끝내자마자 장갑 낀 손을 나의 질 속으로 쑤셔 넣었다. 제아무리 수치심이 없어졌다 한들 내 몸속에 무심코 들어온 낯선 이의 손이 반갑지만은 않았다. 아이가 나올만한 것인가 검사를 하기 위함이겠지만 자궁을 후벼 파듯 들쑤시는 느낌에 잠깐동안은 극심한 배의 진통이 사라지는 것도 같았다.

 의사 선생님은 아직 아이가 내려오려면 멀었다며 좀 더 기다려야 한다 했다. 이렇게 아픈데 아직이라고?라는 나의 표정이 익숙하다는 듯 의사 선생님은 할 일을 마친 뒤 저만치 사라져 버렸다.



 배는 점점 더 아파왔다. 병원에 온 지도 벌써 8시간이 지난 후였다. 새벽에 왔는데 이미 점심때가 지나가고 있었다. 진통은 더 심해졌지만 선생님들은 아직, 아직, 을 외치셨고 남편은 점점 나를 꾀병취급하는 듯했다. 네가 뭘 알아, 진짜 아프다고.

 그러다 배 위로 코끼리가 밟고 가는 느낌, 덤프트럭에 깔린 느낌, 그 모든 느낌을 합친 듯한 고통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이전의 통증은 아무것도 아닌 수준이라는 듯. 호출을 받은 의사 선생님의 손이 다시 내 몸속에 들어온 뒤 나는 그제야 분만실로 옮겨졌다.



 "힘을 주세요, 대변을 보듯이 힘을 주시면 돼요, 호흡하시고요."

 힘을 주고 있는데도 계속해 힘을 주라는 말들을 했다. 너무 힘을 줘 이가 다 깨질 지경에 머릿속 혈관이 터질 듯한데도 나를 둘러싼 사람들은 계속해 더 힘을 줘야 한다 말했다. 아파 죽겠고, 힘이 없어 죽겠는데, 계속 힘을 주라 일렀다.

 "더요, 더, 더 하셔야 돼요, 더, 더, 더, 멀었어요."

 멀었어요? 멀었다고? 얼마나 더 힘을 줘야 되는 건가. 그 옛날 아이를 낳다 사망했다는 산모들의 이야기가 머리를 스쳤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정말 죽을 것을 각오해야 할 일임이 분명했다. 그때였다.

 "어? 아가야 안돼, 갑자기 얘가 머리를 트네? 방향이 조금 바뀌었어요. 좀 더 힘들 거예요, 여기서 힘 못 주시면 수술해야 될 수 있어요. 힘을 더 크게 주셔야 돼요."

 있는 힘 없는 힘 쥐어짜던 내 귀에 들어온 의사 선생님의 의문스럽다는 발언과 어쩔 수 없이 수술해야 된다는 말은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머리를 틀어버린 아이를 내 힘 다해 낳을 자신이 없었다. 아니,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내 몸을 지키고 싶었다.

 "선생님, 저 수술할래요. 수술시켜주세요."

 망설임 없이 내뱉는 나의 말에 의사 선생님은 남편을 향해 물었다.

 "남편분, 수술 진행하실 건가요?"

 내가 한다고, 내가. 고통과 분노 그 모든 것이 혼합된 심정으로 남편을 올려다보자니 평소의 내 성질머리를 알던 남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얼른 수술 진행 해 주세요."

 마지막 내 몸에 대한 결정권마저, 내가 아닌, 남편에게 있었다.


 그 이후 수술에 대한 절차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부분마취를 한 뒤 몇 분 지나지 않아 아이는 울음소리로 세상밖에 나왔음을 알렸고, 핏덩이 아이를 보면서 나는 전신마취에 취해 눈을 감았다. 와중에 진작 수술할걸, 이란 생각을 하며.


 제왕절개를 했다는 이유로 시가에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했다. 자연분만을 너무나도 당연시하는 어른들이었기에, 그것의 혜택을 못 받은 아이가 불쌍하다 여겼기에. 대놓고 손가락질하진 않았지만, 아쉬운 마음은 애써 감추질 않았다.



 임신과 출산은 신성한 것이 맞을 것이다. 한 생명이 잉태하여 세상에 태어나는 것보다 성스럽고 귀한 일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꼭 그렇기만 할까. 임신이라는 과정에서 엄마의 몸은 변하고, 상하고, 낡아지고, 상상 못 할 고통을 수반하며 변한 몸은 예전으로 완벽히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이 현실이다.

 신성함에 가려진 현실이 보기 싫고 누추하다고 하여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적어도 지하철역 임산부석을 비워두는 작은 배려가 당연한 것이 되고, '자신의 환상'이 깨어질까 두려워 출산하는 아내의 곁에 있어줄 수 없다는 남편의 행동은 이해가 필요한 행동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겠지.



  기어코 하수구를 막아버린 출산 탈모의 흔적을 치워보며 씁쓸하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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