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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글 Apr 03. 2024

24화. 인고의 10개월(1)

반(半) 픽션 <슈퍼맨은 없다_우리가 아이를 낳지 않는 진짜 이유>

1. 이름 : K

  - 직업 : 정규직근로자

  - 자녀(연령) : 태아1

  - 기타 : 지혜의 친구


 생리 예정일이 일주일이나 지났건만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었다. 늦어도 3일 이상은 지연된 적이 없었는데,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가, 괜히 몸 상태가 걱정되었다.

 그러다 문득 피임하지 않은 채 부부관계를 가졌던 지난 날의 취한 저녁이 생각났다. 우리는 딩크로 살자, 혹여 낳더라도 즐길 거 다 즐기다가 낳자, 그래 그러자, 남편과 이야기하던 날들. 꼬박 피임하면서 2년간의 결혼생활을 철두철미하게 즐기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그놈의 술이 웬수였다. 그놈의 술.

 

 집 근처 약국을 찾았다. 평생 사 본 적 없는 물건을 사려니 죄 진 것도 아닌데 뭔가 부끄럽고 쑥스러운 기분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약사에게 물었다.

 "저... 임신테스트기 있나요?"

 약사는 그저 그것이 평범한 비타민제 하나와 같은 것인 냥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뒤쪽 선반에서 네모 납작한 상자 하나를 슥 꺼내 건넸다.

 "만 이천 원입니다."

 생각보다 비싼 금액에 임신이 아니라면 조금 억울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카드를 건네 결제하고 봉지를 담아가겠냐는 물음에는 고개를 저었다. 점퍼 주머니 속에 무리없이 들어갈 크지 않은 크기였다. 물건을 건네받아 재빠르게 챙기고 얼른 테스트해 볼 생각에 급히 약국을 떠나려는 찰나 약사가 물었다.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아시나요?"

 당연히 몰랐다. 대답 대신 다시금 부끄러운 태도가 되어 고개를 내저었다.

 "첫 소변은 버리시고요, 테스트기 끝부분에 중간 소변으로 묻히시면 돼요. 평평한 곳에 두시고 최대 5분까지는 지켜보셔야 됩니다."

 건강검진의 소변검사와 다를 바가 없구나, 어렵지 않네, 싶어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빠르게 약국을 떴다.


 

 약사가 무심히 일러준 대로 첫 소변은 찔끔 버리고 중간 소변이 시작될 때쯤 테스트기를 갖다 댔다. 쪼륵쪼르륵 그곳의 힘을 조절해 가며 소변을 컨트롤하려니 이 뭐 하는 짓인가 싶어 급격히 자괴감이 몰려왔다.

 평평한 바닥에 휴지를 깔아 그 위에 테스트기를 얌전히 올려두고 정확한 소변 채취를 위해 희생된 지린내 나는 손을 깨끗이 씻으러 세면대로 향하려는 찰나, 테스트기에 두 줄이 선명하게 떴다. 이렇게 빨리 뜬다고? 믿을 수 없었다.


 이게 뭔 일인가 싶었다. 일단 다시 등을 돌려 손을 뽀득뽀득 씻으며 뇌까지 같이 씻고만 싶었다. 뭐지, 내가 방금 본 게.

 다시 휴지 위 곱게 누워있는 테스트기를 바라보았다. 두 줄이 분명했다. 모든 소변에 두 줄이 뜨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선명하고, 빠르게, 그 존재감을 뿜어댔다.


 두 줄 선명한 테스트기를 손에 들고 방방 뛰며 배우자와 얼싸안고 행복해하던 드라마 속 주인공들 서너 명이 머릿속으로 지나갔다. 지금 나도 그래야 하는 건가.

 하지만 방방거리기보다는 조금 울적한 기분이었다. 예상치 못하기도 했고, 그 때문에 막막하기도 했다. 남편도 줄곧 같은 생각이었기에 나와 같은 반응이리라. 그것이 나를 더욱 울적하게 만들었다.


 그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사실을 어찌 알릴 것인가. 드라마처럼 테스트기를 코앞에 내밀고 두 줄이야! 희망차게 외칠 것인가, 아니면 우리 이제 어쩌지? 인생 중대의 고민상담모드로 갈 것인가. 늦은 남편의 퇴근을 앞에 두고 머리는 더욱 복잡해졌다.

 마침내 퇴근한 그의 앞에서 내가 선택한 건 구구절절 작전이었다. 내가 며칠 전부터 생리가 없어서, 테스트기를 사서, 아까 했는데, 어찌나 현타가 오던지, 그게 글쎄, 구구절절, 이러쿵저러쿵, 그래서 두 줄이야, 어쩌지 우리.

 남편은 평소와 같이 내 일상적인 푸념이 시작되겠거니 싶어 심드렁하게 이야기를 듣다 테스트기에서 조금 흥미를 보이더니 두 줄이라는 부분에서는 동공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확장되었다. 그래서? 임신인 거야? 묻는 그에게 아마도,라고 대답했고 그는 조금 흥분하며 나를 꼭 끌어안았다. 그의 지나치게 환희에 찬 반응에 여지껏 나와 같은 생각이 아니었나, 싶어 그간의 행동들이 의문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내 뱃속에서 자라는 새 생명을 싫어하진 않는구나, 싶어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집 근처 산부인과의 의사 선생님은 우리에게 뱃속 아이의 심장소리를 들려주었다. 부정맥이나 빈맥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빠르게 뛰어대는 심장소리에 그는 아주 정상적인 태아의 심장소리라 일러주었고, 남편은 여전히 감동에 젖어 있었다. 나 몰래 자녀계획을 세워뒀었구나, 확신할 정도로.

 하지만 나의 입장을 말하자면, 그 때부터 진정 지옥이 시작되었다 할 수 있겠다.



 임신이 정확하다는 진단을 받은 그 때부터 부터 신기하게도 몸이 삐걱대기 시작했다.

 우선, 지독한 입덧에 시달려야 했다. 처음엔 생선과 육류의 비린내를 맡을 때에 속이 울렁거리고 거부반응이 일어나더니 점차 각종 야채냄새, 반찬냄새, 냉장고에서 나는 모든 냄새가 역해졌고 심지어 밥 짓는 냄새마저 구역질이 났다. 사람 가득한 곳에서 각종 채취를 품고 온 남편의 냄새는 말할 것도 없었다.

 구첩 반상 차려진 상다리가 휘어질 듯한 밥상 앞에서 우욱! 하고 구역질을 하자니 K-드라마의 현실고증에 다시 한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가보아도 입덧이 심한 임산부의 역할을 나는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먹을 수 있는 거라곤 상큼한 과일, 아이스크림, 액상과당 가득한 음료수뿐이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안 되니 먹을 수 있는 게 어디냐 싶어 그것들은 가리지 않고 먹었다.

 그럼에도 하루종일 운전에 소질 없는 택시기사의 뒷자리에 앉아 구불거리는 대교를 건너는 듯한 기분은 나아지질 않았다.

 


 좁디 좁은 몸통안에서 꾸역꾸역 자라는 태아로 인해 제 자리를 압박당하는 내장기관들이 각자의 활동에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하기도 했다.

 겨우 입덧이 가실 것 같아 곡기를 입에 넣을 때면 여지없이 체했다. 억눌린 위장이 움직임을 멈춘 탓이었다. 울렁거림이 가셨더니 메스꺼움이 찾아올 줄이야. 산 넘어 산이었다.

 혹시 모를 태아에의 영향 때문에 위장약 한 알도 함부로 먹을 수 없었다. 엄지와 검지손가락 사이를 구멍 나리만치 꾹꾹 눌러가며 제발 체기가 사라지길 기도했다. 그로도 안되면 열 손가락 바늘로 찔러가며 검붉은 피를 보아야 소란스러운 소화장애가 가라앉고는 했다. 그 옛날 조상들의 지혜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잠잠해진 위장이 괜찮아질 때쯤엔 대장이 말썽을 부렸다. 철분제를 복용한 이후로 장 활동은 파업을 선언한 듯했는데 어느 날 대장은 아주 힘겹게 배출해 내던 그것을 거의 배출해 내지 않기에 이르렀다. 가스가 가득한 느낌인데 나오질 않으니 죽을 노릇이었다. 배를 문지르면 방귀만 붕붕 나오는 것이, 배는 불룩하고 엉덩이는 커지는 게 방귀대장 뿡뿡이가 따로 없었다. 방귀대장 뿡뿡이의 모티브는 임산부였구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했더랬다.

 변기에는 1분 이상 앉아있지 말라더니, 이번엔 혹시나, 제발, 싶어 미련토록 앉아있던 시간에 치질이라는 병이 찾아왔다. 그제야 육아책을 뒤져보니 임산부가 조심해야 할 질병 중 하나가 치질이었다. 왜 진작 공부해 놓지 않았을까, 그제야 후회했다.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누워있는 것도 불편했다. 모든 신경이 그곳을 향했고, 그곳은 마치 불타오르는 듯 했다.

 병원에서는 수술을 권고했다. 임신한 상태에서 마취를 하는 것은 위험하지 않겠냐 물었더니 아무래도 그럴 것이라며 의사는 안타깝다는 듯 대답했다. 그럼 어쩌나 다시 되물었고, 마취하지 않고 수술하는 방법이 있다 했다. 내 생 살을, 그것도 여리디 여린 그곳의 생 살을 마취 없이 찢고 어쩌고 해야 한다니 못 할 노릇이라 했다. 좌욕하고 물 많이 먹으며 버텨보겠다 했다.

 못 버텼다. 생 살을 찢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으니 얼른 찢어달라 했다. 그렇게 생 살을 찢었다.

 

 평소의 똥배와 별 다를 게 없던 배가 임신 5개월에 접어들자 갑작스레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샤워를 하다 다른 이의 것 같은 내 배를 내려다보니 희미하고 옅은 가로줄이 여러 겹 자리 잡고 있었다. 잘 못 본건가 싶어 힘들게 고개숙여 다시 자세히 살폈다. 뱀이 탈피한 가죽처럼 징그러운 주름이 분명 내 옆구리 양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안돼!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이름마저 두려운 형태인 튼살, 그것의 무서움은 익히 들었기에 꽤 비싼 가격의 튼살크림을 구입해 임신티가 거의 없을 적부터 주야장천 발라왔었다. 내가 바르기 힘들 땐 남편에게 던지며 얼른 발라달라 당당히 요구했었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발랐었다. 그런데 왜?

 샤워실에서 나와 얼굴에 로션도 바르지 않은 채로 튼살크림을 먼저 찾고서 배에 쭈욱 짜 펴 발랐다. 자세히 보니 주름이 꽤 많이 나 있었다. 도대체 왜?

 옷을 입는 것도 까먹고선 나체의 상태로 친구들의 단체방에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친구 지혜가 무정하게 답했다.

 "튼살도 유전인가 봐. 나는 임신 초기부터 매일같이 발랐는데 튼살 생겼고, 내 사촌언니는 튼살크림은 바른 적도 없다는데 튼살이 하나도 안 생겼더라."

 입덧도, 변비도 유전이라고 하던 지혜였다. 지혜의 징글징글한 유전론은 튼살까지 쫓아왔다. 별게 다 유전이다 싶었다.



 한 달에 적어도 한 번씩은 산전검사를 위해 병원에 가야 하는 것도 일이었다. 10개월 뒤 출산을 위해 큰 병원으로 옮긴 이후부터는 병원 대기와의 전쟁도 함께 시작되었다. 산부인과에 가는 날이면 이 나라가 진정 저출산국가가 맞는지 의문스러워졌다. 평일에 시간을 내지 못해 주말에 향하던 산부인과는 배가 각양각색으로 불룩한 임산부들로 인산인해였다. 많은 산부인과가 저출산으로 문을 닫아 그런 것이라는 설명을 들어서야 돗데기 시장 같은 산부인과의 상황이 어느정도 이해되었다.

 검사들은 또 어찌나 무서운지. 별다르게 무리한 생활을 하지 않았음에도 검사를 하는 날들은 심장이 쿵쾅거렸다. 초음파검사, 혈액검사, 심장박동검사는 기본, 목덜미 투명대검사, 다운증후군 검사는 이름마저도 겁을 먹기에 충분했다. 콩콩이 잘 크고 있어요,라는 말을 들어서야 한시름 마음 놓던 날들이었다.


 초음파 사진으로 본 태아는 그 생김새를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엄마 닮았네, 아빠 닮았네,라는 주변인들의 반응은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에게 옷이 정말 멋지시네요,라고 거짓말하는 비열한 신하들의 모습과 비슷한 듯했다. 도대체 저 뭉그러진 얼굴로 어떻게 생김새를 파악한단 말이지.

 내 몸만 조금씩 더 힘들어졌을 뿐 , 뱃속 아이를 향한 애틋한 모성애의 미음(ㅁ) 그 비슷한 것도 생기지 않았다. 약을 먹지 않고, 마취를 하지 않았던 것은 태아를 향한 사랑이라기 보단 나에게 주어진 책임감에 훨씬 가까웠다. 워낙 책임감 강하게 키워진 대한민국 장녀로서 이정도는 해얄듯 싶었기에.



 구역질 나는 입덧과 생 살을 찢은 변비, 징글징글한 튼살의 역경에도, 그리고 엄마될 사람의 사랑을 듬뿍 받지 못함에도, 뱃속의 아이는 무럭무럭 잘 자라는 듯 했다.

 24주 차, 공포의 임당검사가 있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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