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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글 Apr 01. 2024

23화. 느린육아(2)

반(半) 픽션 <슈퍼맨은 없다_우리가 아이를 낳지 않는 진짜 이유>

 1. 이름 : J

  - 직업 : 가사노동자

  - 자녀(연령) : 남아 1(11세), 여아 1(9세)

  - 기타 : 지혜의 사촌언니



 "안녕하세요, 저는 이준우 엄마입니다. 저희 준우는 발달장애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새 학기 학부모총회도 벌써 다섯 번째. 이젠 남들과는 조금 다른 소개 인사가 그다지 어렵지 않은 J였다.


 


 "자기야, 준우 봐봐. 또 책 읽는다? 조리원 동기들한테 얘기하면 이런 애기가 없대. 애기가 벌써부터 책에 관심 많다고 엄청 신기해하더라니까?"

 "그러게. 적어도 엄마 아빠보다는 공부 잘하겠네 우리 준우."

 "뭐래, 난 공부 잘하는 편이었거든?"

 이제 겨우 제 몸 가누며 앉아 있을 나이가 되었을 무렵부터 아들 준우는 줄곧 책에 관심을 많이 보였다. 오동통 살이 오른 등을 귀엽게 구부린 채 속이 터질듯한 만두처럼 볼이 아래로 쏠려서는 이리저리 책을 탐구하는 준우가 너무나 사랑스럽고 기특한 J였다.

 

 글자를 읽지도 못할 텐데 책에 코를 박고 한 장 두 장 넘기며 집중할 때엔 정말이지 그리 귀여울 수가 없었다.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으며 조리원 동기의 단체 대화방에 자랑이 아닌 듯 자랑을 위해 사진을 올렸다.


 - 얘는 왜 이럴까 진짜 ㅋㅋㅋㅋ

 - 어머, 준우 또 책 보는 거야?

 - 우와, 준우엄마는 좋겠다. 우리 애는 아직까지 모빌을 못 벗어나는데.


 돌이 지날 무렵부터는 자동차에 부쩍 관심을 많이 가지는 준우였다. 그런 준우가 또 한 번 엄마 아빠의 귀여움을 듬뿍 받던 버릇이 있었는데, 장난감 차를 아주 정갈하게 줄 세우는 것이 그것이었다.

 택시, 버스, 승용차, 지하철, 기차까지 차란 차는 다 사다준 남편 덕에 준우는 하루종일 장난감 차를 크기별로 각 맞춰 줄 세워가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었다. 이번에도 조리원 엄마들은 혼자서도 잘 논다며, 어쩜 아기가 벌써 성격이 그리도 꼼꼼하냐며 칭찬을 아낄 줄 몰랐다.



 그 모든 게 발달장애의 신호였다는 걸, J는 수년 후에야 알게 되었다.



 왜 그때 좀 더 유심히 아이를 보지 못했을까. 왜 그리 단순하게 생각하고 어른의 시선으로만 아이를 보았던 것일까.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주의를 쏟았더라면. 매일이 후회와 자책의 시간이었다.

  

 겨우 남편을 설득해서 병원으로 갔던 날. 진료실을 입장하기 직전까지도 J부부는 다퉜었다.

 "왜 이렇게 유난이야 유난은. 당신이 일을 키우는 거라고. 잘 크고 있는 애를 왜 아픈 애 취급 하냐."

 "진짜 잘 크고 있다고 생각해? 다섯 살이 다 됐는데 말을 안 하는 게 정상이야? 자기 이름을 불러도 쳐다도 안 보는 게 정상이냐고. 어린이집에서 작년부터 병원에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하던 거 당신 때문에 겨우겨우 기다리다 이제 온 건데. 2년 늦게 태어난 준희랑 비교해도 한참 떨어진다고 생각 안 해?"

 "사람마다 속도가 있는 거라고. 좀만 기다리면 알아서 말하고 할 텐데 왜 이렇게 성급하냐, 너는. 진짜 그 성격 어디 가냐, 어휴."

 점점 감정적으로 변모하던 부부간의 대화는 준우의 발달장애 중 자폐라는 판정과 함께 조용하고도 비참하게 막을 내렸다. 눈앞에 들이닥친 현실에 이제 두 사람이 싸워야 할 대상은 서로가 아닌 참혹한 세상이었다.



 쏟아지던 눈물을 주체할 수 없던 시간들도 잠시. 어떻게든 하루라도 빨리 치료를 시작해 준우의 발달을 앞당겨야 했다. 먼저, 가장 활동이 활발하다는 발달장애 육아 커뮤니티에 가입했다. 생각보다 많은 회원수와 글들에 놀라는 J였다. 정상발달로 진입했다는 글들을 일부러 골라 읽었다. 수 백개의 글들 중 손에 꼽게 있던 글들을 남편에게 공유하고 읽고 또 읽으며 희망을 품어나갔다.

 커뮤니티에서 얻은 정보로 전국의 유명하다는 발달센터에 연락했다. 최근 발달장애 아이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는 게 사실이라는 듯, 많은 기관들은 예약조차 쉽지 않았다. 꽤 이름난 곳들은 대기가 1년이 넘는 곳도 수두룩 했고, 집 근처의 클리닉마저도 몇 달을 기다려야 했다.

 

 J의 하루 일과는 완전히 달라져버렸다. 대중없는 진료일정에 회사일은 도저히 지속할 수 없었다. 회사일 욕심으로 내 아이가 이리된 것은 아닐지 죄책감에 시달리던 차였기에 미련 없이 퇴직수순을 밟았다.

 둘째 케어도 여의치 않았다. 이제 겨우 세 살배기로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아야 할 딸이었지만, 오빠 준우에게만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말 잘하고 애교 많은 딸을 보고 그만하면 됐다 싶었다. 매정하게도, 그렇게 어린 딸을 품에서 떼어냈다. 또 다른 양육자인 남편에게 딸을 맡기고 준우를 위한 치료의 여정을 떠난 J였다.



 자폐 진단 이전에는 그 어떤 치료도 한 적이 없었기에 치료를 시작한다면 다이내믹한 호전이 보이지 않을까 하던 기대가 있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말을 하지 않던 아이는 놀이치료, 언어치료, 감각통합치료를 통해 한 달 만에 "엄마, " "고마워", "배고파"등의 간단한 말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준우가 발화를 할 때마다 영상을 찍고 행복에 겨워했다. 찍은 영상을 밤마다 다시 재생해 보며 다시 행복해했던 하루들이었다. 이 기세라면, 정상 발달의 수준으로 가는 것도 시간문제이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두 달, 세 달이 지나니 준우의 발달은 크게 호전되지 않았다. 원대하게 품었던 희망 앞에 한없이 좌절했고, 어쩌면 이 전쟁은 죽음 이전에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 되리란 생각이 그제야 엄습했다.

 아이의 정상발달만을 위해 정신없이 달려온 몇 달간의 시간 동안은 그것에 집중하느라 더 깊은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그러다 앞을 가로막힌 듯한 막막함에 그제야 마음 깊숙한 곳 자리했던 울분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연고 없는 서울의 단칸방 월세집에서 아무것도 모른 체 깊은 잠에 혼곤히 빠져든 준우를 두고 J는 미친 듯이 울어댔다. 와중에 아이가 깰까, 텁텁한 냄새가 배어있는 베개에 얼굴을 깊게 묻고 서럽게, 원통하게, 절망적으로 울었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내가 그렇게 나쁘게 살았나, 이 정도면 착하게 살아온 듯한데.

 왜 이 아이에게 그리 혹독한 시련을 주는 걸까. 아무것도 모르는 이 아이에게. 세상에 신이란 건 분명 없는 듯하다.

 앞으로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하지, 나는, 너는, 우리 가족은. 이 무서운 세상을 어떻게.

 준우야, 우리 차라리, 차라리 죽을까. 그것이 낫지 않을까. 너에게도, 나에게도.


 

 쓰러진 건지 잠이 든 건지, J는 아침이 되어서야 눈을 떴다. 간밤의 눈물로 눈은 쉽사리 떠지지 않았다. 평소보다 눈에 좀 더 힘을 주며 어거지로 눈을 떠 보니, 코 앞에는 준우가 J의 입술 쪽을 보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난 J를 보고서 준우는 말했다.

 "엄마, 배고파."


 

 J는 목표를 변경했다. 정상발달로의 욕심을 버리고, 앞으로 준우와 함께 살아갈, 가족 모두와 함께 살아갈 하루하루에 집중하기로.

 이산가족 생활을 청산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오랜만에 본 딸은 엄마를 서먹해하더니 이내 엄마에게 달려와 안기며 너무 보고 싶었다 고백했다. 엄마가 미안해, 이제 엄마 어디 안 갈 거야, 아직 어린 딸을 꼬옥 안으며 함께 눈물 흘렸다.

 남편의 얼굴도 많이 상해있었다. 거칠어진 얼굴로 희미하게 미소만 띠고 있었다. 한두 푼 하지 않는 치료비를 감당하느라 야간 업무까지 마다하지 않던 그였다. 거기에 작은 딸의 육아까지, 보지 않아도 그의 고생이 눈에 선했다.




 "준희야, 오빠는 아픈 게 아니야. 느리게 자라는 것일 뿐이야. 사람은 저마다 자라는 속도가 다른 거야. 오빠는 키는 준희보다 크지만, 마음은 준희보다 느리게 자라서 더 어려. 준희는 우리 가족이니까 이해해 줄 수 있지?"

 겨우 초등학교 입학을 한 준우였지만, 여전히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남들과 많이 다른 아이였다. 문장도 곧잘 뱉어내고,  상동행동은 많이 줄었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정상'의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 오빠의 특별함을 서서히 인지하던 준희가 어느 날 친구들로부터 오빠를 구실로 놀림을 받아 온 것이었다. 오빠는 왜 아파서 우리를 다 힘들게 하는 거야!,라고 소리를 치는 딸에게 J는 그를 진정시키며 차분히 설명했다.

 하지만 딸 준희도 겨우 5살 난 아이였을 뿐이었다. 그 모든 설명이 온전히 이해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게 아픈 거잖아. 엄마는 오빠 편만 들고, 오빠만 사랑해 주고, 오빠랑만 놀러 다니고. 그럴 거면 나도 아플 거야!"

- 찰싹

 순간 J의 손이 딸의 뺨을 향했다. 거친 그의 손에 부드러운 딸의 볼이 닿는 순간부터 아차, 싶었다. 하지만 저도 아플 거라는 딸의 발언에 J는 이성을 잃고 말았다.

 충격을 받은 딸은 그대로 얼어붙어버렸고, J는 미친 사람처럼 딸을 껴안으며 연신 미안하다 눈물로 사죄했다.

 "엄마가 미안해, 미안해, 엄마가 잠깐 정신이 나갔나 봐. 미안해, 준희야. 엄마 준희 사랑하는데 왜 그랬을까, 준희야, 미안해. 엄마가 다 잘못했어. 미안해."

 괜찮아질 때쯤 등장하는 거친 돌부리들 앞에 J는 여지없이 쓰러졌다.




 - 괜찮아요, 엄마 잘못이 아니에요. 자폐는 아직도 이유가 명확하지 않아요. 절대 자책하지 마세요.

 - 노력한 만큼 괜찮아질 거예요. 시간은 충분하니까, 마음으로 아이를 보듬어주세요.

 - 맞아요. 삶이 뒤흔들리고 매일이 무너지는 듯하죠? 저도 그랬어요. 하지만 충분히 하실 수 있어요. 천천히, 엄마 아빠가 몸 잘 챙기면서 우리 예쁜 아이 사랑으로 보듬어주세요.

 

J는 아이들이 학교에 간 틈을 타 발달장애 커뮤니티에 들어가 힘든 시간을 보내는 듯한 이들의 글에 위로의 댓글을 적는다. 내가 지나왔던 길을 그대로 지날 이들을 위로하고, 함께 가야 할 길을 서로 보듬으며.


 딸 준희는 어제저녁 갑자기 오빠와 같은 초등학교로 전학을 시켜달라 했다. 남들과 다른 오빠 때문에 적잖이 힘들어하던 준희를 위해 부러 다른 초등학교로 입학을 시킨 것이었는데, 갑작스러운 요청에 연유를 물으니 자기가 오빠를 지켜줘야 한단다. 마음만 이쁘게 받겠다 이르니 한다는 소리가,

 "엄마, 오빠는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느리게 자랄 뿐인 거잖아. 근데 멍청한 정연이가 계속 우리 오빠는 이상하다고 어디 아픈 거 아니냐고 하잖아. 근데 그 멍청한 정연이가 오빠 초등학교로 전학 간대. 오빠 학교에 멍청한 정연이 같은 애가 많으면 어떡해. 내가 가서 다 말해줘야 된다고."

 이번엔 울지 않고 딸을 꼭 껴안아주는 J였다.


 

 J는 지난주부터 시작한 오전 아르바이트를 위해 신발끈을 매고 집을 나선다. 그다지 발전 없는 치료를 아직은 유지하고 있기에 만만치 않은 그 비용을 조금이라도 메꾸고자 시작한 일이다. 수입이 크진 않지만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음에 감사한다. 이젠 그런 평범한 하루에 감사하는 날들이다.


 집에서 내려온 커피를 한 모금씩 마시며 발걸음을 옮긴다. 발달장애인들이 일하는 회사에서 만든 원두라고 한다. 아들 준우가 커피 원두를 볶으며 일한다는 상상을 하니, 새삼 행복하다.

 향긋한 커피 향에서 아들이 살아갈 좋은 나날들을 소망하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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